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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Ⅰ. 서론 ― 조선시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공론정치’ ―Ⅱ. 조선시대 ‘공론정치’의 구조와 그 전개 1. 조선 정치사 이해와 공론정치론 2. 공론정치의 구조 3. 공론정치의 전개와 지방 향회Ⅲ. 공론정치의 지속과 단절 1. 여론과 공론정치 2. 조선의 정치 발전과 공론정치의 성쇠 3. 18세기 공론정치의 단절과 지속Ⅳ. 18세기 향회의 성격변화 1. 향중공론의 분열 2. 관 주도 통제책 강화와 ‘대소민회의’ 3. 사족 자치기구에서 부세운영 자문기구로Ⅴ. 19세기 향회, 민회와 공론정치의 새로운 전개 1. 19세기사 이해의 방향 2. 향회의 다중성과 공론 실현방식의 대립 3. 19세기의 향회 4. 19세기 민회의 전화Ⅵ. 결론 참고문헌Abstract찾아보기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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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仁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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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는 과거 조선왕조를 이끌어 온 ‘공론정치’에서 양반계급이 중심이 된 ‘공론’과 병행하는, 때로는 그것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전 인민의 이해를 반영하는 공론의 장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향회’와 ‘민회’가 바로 그것이다. 향회와 민회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지방사회 대소민인의 의사를 결집해 내고 있었던 조직으로서 당시 새롭게 제기되고 있던 지방사회 공론을 대변하였으며, 기존 양반 문화와는 다른 전 주민들의 새로운 정체성의 기반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이 새로운 공론장은 기존 공공영역과 충돌하면서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으로서 합법적 공간과 비합법적 공간을 넘나드는 것이었는데, 기존의 공론장을 대체하는 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을 더 필요로 하였다.머리말 중에서조선시대의 공론정치가 역사학계만이 아니라 철학계 및 사회과학계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서구의 공론장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자극제가 된 것이기도 하지만, 사방이 꽉 막힌 한국 현실이 그렇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현실적인 고민을 가지고 보았을 때 조선의 공론정치는 매력적인 주제임이 틀림없다. 현실이 아무리 문제가 많고 어렵더라도 만세토록 없어지지 않을 그 무언가를 부여잡고 유교적 이상사회를 추구하며 자신들이 그 공론의 담지자임을 자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지만 사림공론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공론정치는 자부심의 대상이면서도 한편으론 그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심이 가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조정 신료들의 함묵성풍(含?成風) 풍조 속에 새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국왕 정조의 노력도 시세(時勢)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정조의 죽음으로 시작된 19세기에 들어오면 예의 세도정치가 열린다. 중앙정치만을 놓고 볼 때 세도정치기에 들어오면 공론은 사라지고 그 결과 ‘민란’이 만연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연 조선후기에 들어와 공론정치는 막을 내린 것인가.이 책은 바로 위와 같은 위로부터의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시작한다. 1980년대 이래 크게 성장한 사회사적 연구에 기반 해서 본다면, 기존 공론정치와 대립하면서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방 향촌사회에서는 새로운 공론장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 19세기의 대소민인(大小民人)이 같이 만들어 간 향회(鄕會)와 민회(民會)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사회를 흔히 양반사회라고 하지만, 조선사회는 국왕과 지배계급인 양반, 그리고 그 밑을 받쳐 왔던 민 등 이들 3자가 연출한 역동적인 사회였다. 그러니 조선후기는 공론정치가 종식된 것이 아니라 공론정치가 새롭게 전개되어 간 시기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근대’ 국민의 형성과정에서 큰 갈등 없이 ‘민주공화정’을 스스로 선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 지나친 억단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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