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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삶과 사랑01. 주렴이 드리워져 02. 한이 가득한데 03. 그대에게 기대어 04. 수심과 걱정이 가득하지만 05. 그 사람 얼굴은 지금 어디에 06. 소매에서 향기가 생겨나는데 07. 끝없는 원망과 근심이 얼굴에 깃든다네08. 애간장이 마디마디 끊어지니 09. 작년의 그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10. 아름다운 구름과 같던 날들이 쉽게 날아가 버리니11. 가는 이를 보내고 12. 우리는 서로 이별하니 13. 울며 화장하니 14. 그리움만 쌓이고 15. 청명절이 되니 16. 이별을 원망하네 17. 다시 서로 그리워해야 18. 은밀하게 기약하니 19. 이별의 근심만을 20. 이미 마음을 주었으니 21. 주렴과 막은 여러 겹이 드리웠네 22. 꿈에서도 찾을 곳이 없다네 23. 좋은 소식은 끊긴 채 오지 않으니 24. 서로가 꿈에서 생각하네 25. 올 때의 그대는 보이지 않네 26. 그 사람 돌아오지 않았는데 27. 아득한 사랑이 있으나 28.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네 29. 귀한 내 임을 그리워하네 30.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31. 이별 후에 32. 마음속의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네 33. 쉬었다 더디 가야 하네 34. 오랫동안 그대에게 기대어 35. 이별의 한 36. 미인이 부끄러워 37. 추억이 더해오네 38. 그 사람을 생각하면 39. 다시 만나요 40. 그대는 외롭게 멀리 있네 제2부 삶과 멍에41. 세월은 모두가 한순간이니 42. 슬픔은 여전한데 43. 떨어진 꽃은 44. 높은 누각에 의지하니 45. 적막하고 쓸쓸한 46. 봄빛은 무정하게 47. 봄날의 근심은 48. 덧없는 삶을 생각하네 49. 술잔을 잡고 탄식하니 50. 봄이 가진 원망 51. 왜 돌아올 기약을 지키지 않는 것인가52. 봄날을 저버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53. 세월이 정말 빨라서 54. 봄은 왔다가 또 떠나니 55. 세파에 시달리니 56. 술잔 앞에 57. 나를 머물게 하네 58. 헛된 세상에서 59. 장안성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늙는다네60. 하늘 끝에서 늙어가고 61. 충성을 약속했으니 62. 유양으로 출수하는 유원보에게 63. 조개에게 64. 꽃 앞에서 술을 들고 65. 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는데 제3부 삶과 자연66. 서호 예찬 1 67. 서호 예찬 2 68. 서호 예찬 3 69. 서호 예찬 4 70. 서호 예찬 5 71. 서호 예찬 6 72. 서호 예찬 7 73. 서호 예찬 8 74. 서호 예찬 9 75. 서호 예찬 10 76. 서호 예찬 11 77. 서호 예찬 12 78. 서호 예찬 13 79. 1월의 노래 80. 2월의 노래 81. 3월의 노래 82. 4월의 노래 83. 5월의 노래 84. 6월의 노래 85. 7월의 노래 86. 8월의 노래 87. 9월의 노래 88. 10월의 노래 89. 11월의 노래 90. 12월의 노래 91. 석류 92. 목단93. 연꽃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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歐陽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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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詞)란 무엇인가사(詞)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사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구양수의 문학 세계사람들은 작가로서의 구양수를 유학(儒學)과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와 관련한 대부분을 ‘개인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것’에, ‘해이한 것보다는 경직되고 긴장된 것’에, ‘유흥적인 것보다는 건설적인 것’에 무게를 둔다. 틀린 것은 아니다. 구양수의 시문을 통해 그를 이해한다면 맞는 말이다. 별다른 배경 없이 상식만을 가지고 구양수를 본다면, 구양수는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한 사람을 제삼의 눈으로 보아낸다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아쉬울 것이 없어도 앞으로는 아쉬울 것이 있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특히 심리의 저변은 본인만이 알기 때문에 옆에서 단정 지어 무어라 말할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 구양수는 사를 통해서 아쉬운 소리와 사람들이 보지 못한 많은 심정들을 쏟아내고 있다.이처럼 구양수가 사를 통해 사람들이 보아내지 못하는 이면의 감정을 상당 부분 노출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배경 때문이었다. 사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수단이었고, 점차 흥행해 구양수가 살던 시기에는 지체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애용하는 국민 문학의 형식이 되었다. 따라서 아무리 구양수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계승하고 한유(韓愈)의 도통(道統)을 이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녀와의 사랑에서 느끼는 세심한 희열과 비애를 사 형식을 빌려 거침없이 쓰는 것이 결격이나 비난의 사유가 되지 않았다. 당황스럽고 민망한 내용이나 표현도 적잖게 보이지만 오히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구양수 문학 세계의 전체적인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망라해 보아야만 하고, 사는 구양수의 문학에 대한 오해를 일소하고 환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관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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