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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詩 - 이수현, 1월의 햇살 4
1장. 2001년, 1월의 햇살 9 2장. 왜 하필 일본이냐 47 3장. 바다 사나이 59 4장. 내 이름은 ‘깁슨 71’ 83 5장. 벌거벗고 풍덩 111 6장. 나의 최고 보물은 129 7장.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 141 8장. 젊다는 건 후회하지 않는 것 157 9장. 도쿄 신오쿠보의 스웨터 181 10장. 2021년, 1월의 햇살 199 後記 - ‘우리는 인간’ 229 이수현 연보 236 수현의 20주기를 추모하며 신윤찬 - 이수현 어머니 240 김영건 - (사)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 이사장 242 마루야마 코우헤이 - 주부산일본국총영사 246 아라이 도키요시 - 아카몽카이일본어학교 이사장 248 고마운 사람들 254 사진으로 보는 이수현의 삶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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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27일 새벽 2시.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고요한 겨울밤이었다. 부산 연산동 동서그린아파트 수현의 본가 거실에서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현의 아버지 이성대(李盛大) 선생과 수현의 어머니 신윤찬(辛潤贊) 여사가 거의 동시에 잠에서 깼다.
--- p.11 “일본에서는 족발이 너무 비싸. 희한하게 비싸니까 더 먹고 싶어지는 거 있지. 더 먹고 싶은데 비싸니까 못 먹고, 못 먹으니까 더 먹고 싶은 악순환에 빠진 거야. 그 고리를 끊고 가야 해.” 그렇게 어리광을 부리면서 환하게 웃던 아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 p.19 사고현장에는 현장검증 때 그어놓은 분필 자국이 남아있었다. 수현 어머니는 그 자리에 백합 꽃다발을 내려놓고 두 손을 모은 다음 눈을 감았다. 차가운 겨울바람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따스하게 볼에 와 닿더니 가슴 속 무언가를 툭 건드려 터트렸다. 순간 수현의 어머니가 큰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 p.34 그래도 아들의 계획을 들은 이성대 선생의 마음은 복잡했다. 왜 하필 일본일까. 오히려 영어를 더 잘하는 아들 아니었던가. 어쩌다 이렇게 3대가 모두 일본과 연관이 되었나. 어떤 필연이 있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 p.55 수현은 1974년 7월 13일, 울산 중구 우정동에서 1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주 이씨 44세손. 같은 족보의 효령대군 21세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4kg의 우량아로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한여름이었던 그날은 날씨도 수현의 성격처럼 밝고 맑았다. 이성대 선생으로서는 서른여섯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 p.61 수현에게는 이 무렵부터 평생을 함께하게 될 소중한 친구들이 여럿 생겼다. 정성훈, 박영준과 같은 친구들이 그들이었다. 수현, 성훈, 영준, 이렇게 셋은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다. 영준이랑 수현이는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친했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성훈까지 합세해 교내에서는 ‘삼총사’로 불릴 만큼 친하게 지냈다. 소풍갈 때면 일부러 옷을 맞춘 것도 아닌데 우연히 세 친구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날 정도였다. 공교롭게 다 같이 백바지를 입고 와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백바지 삼총사’라 부르기도 했다. --- p.79 그래도 수현이가 가장 좋아하고 아꼈던 닉네임은, ‘깁슨 71’ 이었다. 팬더와 깁슨은 기타 마니아들에게는 상징적인 양대 브랜드라 해도 좋을 만큼 유명한데 수현이는 이 중에서 당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록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 Roses)’의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를 따라 하고 싶어서 그가 쓰던 기타인 깁슨을 따라 사용했다. --- p.98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수현이는 당구장에 가지 않게 되었고 무사히 고3 시절을 지나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대학 생활에도 잘 적응했고 아버지의 말에 따라 1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나보냈고 그 시기 내내 아버지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인생의 선배였고 스승이었다. --- p.154 타국에서 홀로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며 조금은 외로웠을 그해 겨울, 수현이가 일본의 집에서나 학교에서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면서 내내 입었던 옷이 있다. 어머니가 직접 짜 준 스웨터였다. 수현이 중학교 때 짜준 것이니 얼마나 낡았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후로 수현이가 또래의 다른 아이처럼 부쩍부쩍 클 때마다 어머니는 실을 더 사 와서 그 스웨터를 늘려 주었다. 특히 팔이 짧아지니 풀어서 그때마다 자꾸 늘려 준 게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 p.196 나카무라 사토미 씨는 어째서 이렇게 오랜 시간, 수현의 사고 직후부터 무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현을 추모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게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 “1985년 도쿄 군마현에서 JAL 항공기가 운항 중 산에 부딪혀 500여 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어요. 일본인들은 이 참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하고 있습니다. 옴진리교 사린가스 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항상 기억하려 하고 추모하려고 노력합니다. 오히려 우리에 비해 한국이야말로 10주년, 20주년, 100주년 등 무슨 기념할 만한 주기가 되어서야 겨우 추모하는 흉내 정도만 내는 건 아닌지 되묻고 싶어요. 매년, 매번, 일상 속에서 추모하는 행위는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이상할 정도로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으로 쌓이는 것 이상으로 단단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카무라 사토미 씨의 지적은 한국인으로서 뼈아프다. --- p.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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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상실의 시대에 더욱 빛난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 이수현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나 1976년부터 부산에서 자랐다. 낙민초, 동래중, 내성고를 졸업하고 1993년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 후 2000년 1월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가 이듬해인 2001년 1월 26일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책은 추모의 서시(序詩)로 시작해 2001년 사고 당시의 일을 상세히 소개하고 이후 수현의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 갈 때까지의 삶을 모두 10개의 장으로 나눠 생생하게 전한다. 운동과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수현의 모습은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젊음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환기하게 만들고, 수현의 부친 이성대 선생과 모친 신윤찬 여사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지금 우리가 다시 살펴야 할 교육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들과의 추억을 통해 수현의 평범한 사춘기와 일탈의 시간을 엿볼 수 있고 그런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사려 깊고 멋진 어른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청년 이수현의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는 이수현의 연보와 사진으로 보는 삶, 그리고 어머니 신윤찬 여사를 비롯해 김영건 사단법인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 이사장, 마루야마 코우헤이 주부산일본국총영사, 아라이 도키요시 아카몽카이일본어학교 이사장의 추모사를 담았고 지난 20년 동안 수현을 위해 마음을 보탠 이들과 장학금을 수혜한 학생들의 명단을 함께 기록했다. 차가운 세상의 어둠에 문득 쏟아진 한 줄기 햇살 이수현의 건강하고 열정적인 삶과 숭고한 희생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의 홈페이지 (http://www.soohyunlee.com/)에 들러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매년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고 직후 고려대학교는 이수현의 부모님을 초청해 최초로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으며 한일 양국 정부는 각각 훈장을 추서했고 이수현의 모교와 일본의 여러 곳에 민간 주도의 추모비와 기념공원 등이 조성됐다. 이수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LSH아시아장학회는 매년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으며 그 수가 20년 동안 1천 명에 달한다. 영화와 음반 제작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수현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움직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아들의 죽음 이후 대신 동분서주하며 아들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부친 이성대 선생도 지난 2019년 3월 21일 작고해 부산시립공원묘역에 있는 아들 곁에 모셔졌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젊다. 나는 내가 젊다는 것을, 건강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나는 이수현이다.” --- 이수현의 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