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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왕록(賓王錄)-서문을 곁들임1. (1273년) 이달 11일 패강(浿江) 도중 바로 읊다.2. (1273년 6월) 12일 금암(金岩)으로 가는 길에3. (윤 6월) 길은 분수령(分水嶺)을 지나기에 한 수 남겨두다4. (1273년) 이달(윤 6월) 29일에 비로소 동경(東京)에5. (1273년) 7월 9일 사로(斜路)에서 길을 떠나6. (1273년) 이달(7월) 16일 악두참(渥頭站)에 도착하고7. (1273년) 이달(7월) 29일 신산현(神山縣)에 이르러8. (1273년) 이달(7월) 그믐날(30일) 병풍산(屛風山)을 경유하여9. (1273년) 8월 4일 연경(燕京)에 들어가려고10. 차운하여 봉답(奉答)하다11. (1273년) 중추(中秋) 이튿날 정 시랑의 기재(忌齋)12. (1273년) 이달(8월) 21일 후저를 모시고13. (1273년) 이달(8월) 24일 황제 폐하(원 세조)께서14. 이달(8월) 28일은 바로 황제의 성절(聖節)이다15. 9월 1일 중서성(中書省)이 강 선사를 시켜16. (1273년) 이달(9월) 7일 중서성이17. (1273년) 그 이튿날(9월 8일) 후저께서18. 행차(行次)가 소문(蘇門)의 동쪽 교외로19. 즉석에서 차운해 답하다20. 이달(9월) 25일 압록강까지 돌아와서21. 10월 2일 행차가 흥의역(興義驛)에 이르니편집 후에 우연히 씀부록원(元)나라 사행단 사행일지원문해설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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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록’≪빈왕록(賓王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록’이다. ‘사행록’은 사신 행차에 대한 기록이다. ≪빈왕록≫은 ≪제왕운기≫의 저자로 유명한 이승휴가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1273년 원나라 수도 대도(大都: 현 북경)를 다녀온 후 1290년 10월에 편집해 남긴 사행 기록(使行記錄)이다. 현재 ≪빈왕록≫은 이승휴의 문집(文集)인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권4에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용으로 보아서는 문집 안에서 독립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빈왕록≫은 1개월여 동안 원나라 수도를 향해 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대도에 도착해서 사절의 예식 절차와 당시의 정경 등을 묘사하고 있어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크다.사행단(使行團)의 여로(旅路)와 의전(儀典)≪빈왕록≫은 서문에서 ‘어느 날 상자를 뒤지다가 지난날의 삶의 부침(浮沈)이 새로워 사행 기록을 한 부 엮어서 ≪빈왕록≫을 냈다’라는 말과 함께 책 전체를 간단히 요약,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첫 번째는 개경을 1273년 윤 6월 9일(양력 7월 24일) 출발해 8월 4일(양력 9월 16일) 대도에 도착할 때까지 통과하는 지역 연도(沿道)의 풍물·유적과 장마로 인한 사행단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7언 절구, 율시, 배율, 고시 등의 형태로 읊고 있다.두 번째는 대도에 도착해서 황제를 만나기 전 중추일에 천복사(薦福寺)의 당두노숙(堂頭老宿)을 만나서 시를 지어주고, 8월 21일에는 여강(濾江) 석교(石橋) 관람 길에 올랐다. 이 석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노구교(蘆溝橋)다. 8월 24일에 황제인 세조(世祖)를 만나 표문을 올리고, 그 후 황후(皇后), 황태자(皇太子), 중서성 단사관(斷事官) 등을 만나 사절로서 예수(禮數)를 행하는 등의 절차를 정리했다. 이때 원 황제에게 올린 표문(表文)이 격식에 맞는 문장이라 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그 표문 때문에 이승휴는 문장으로 중국을 감동시킨 사람이라고 지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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