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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만물상 김정호 거대한 지도를 한손에 자연과 삶이 담긴 지도 〈조선어독본〉이 낳은 오해 조선 후기의 변화 지도의 역사 〈청구도〉 이전과 이후의 지도 〈대동여지도〉 속 우리 땅 방방곡곡 김정호와 함께한 사람들〈대동여지전도〉지도의 단짝, 지리지 김정호가 생각한 지도는? 어휘 사전 한눈에 보는 인물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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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진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좋아하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부은 조선 최고의 지리학자, 김정호” 대동여지도를 모르는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대동여지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열두 번도 더 오르내리고 전국을 여러 번 다녔다. 그리고 너무 정밀하게 만든 대동여지도가 국가 기밀을 누설한다고 하여 흥선대원군은 김정호를 옥에 가두어 죽였고 대동여지도는 불태워졌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알려지게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교과서에 이렇게 실렸기 때문이다. 점차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김정호가 모든 곳을 답사하고 지도를 만들지 않았으며, 옥에 갇혀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대동여지도를 금지시키고 불태우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허구 속에서도 변함없는 사실은 대동여지도가 현재 위성으로 그려지는 지도만큼 세밀하고 정확했으며, 편리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또한 청일전쟁 때 일본이 대동여지도를 보고 군사 작전을 짤 정도로 당시에 가장 유용한 지도였다는 사실이다. 김정호는 세로 길이만 약 7미터나 되는 조선 지도를 나무 판을 일일이 깎아 목판본으로 만들 정도로 끈기 있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좀 더 정확한 지도를 쉽게 쓸 수 있게 하고 싶었던 실학자였다. 당시 구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자료를 참조했다는 점은 김정호가 어떤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도를 제작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그레이트 피플 시리즈 42권 《김정호의 지도표》에서는 김정호가 어떤 열정과 꿈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김정호가 만든 여러 가지 지도와 지리지를 통해 알아본다. 또한 지도란 무엇이며 지도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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