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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편소설 이야기
글쓰기, 살아내기 _ 부록 독자들께 한없이 현명하고 교활한 한 편집자에 대하여 동시대인들과 미래 세대를 위한 작가, 토머스 울프 _ 맥스웰 퍼킨스 옮긴이의 말 |
Thomas Wol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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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 아주 훌륭한 편집자가 여섯 달쯤 전에 내게 말하기를, 우리 둘이 해낸 작업에 대해 매일의 기록, 말하자면 업무 일지를 남기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치러야 했던 상호 거래, 치고받기, 흐름과 정체, 삭제, 매만지기, 만 번의 맞대면과 삐걱거림과 수정과 항복과 쾌재와 동의에 대해서 말이다. 이 편집자는 일을 다 마친 다음, 지난 책 작업을 하는 동안 아주 멋지고 놀라운 순간들이 있었다면서, 너그럽고 친절하게도, 자신이 출판계에 몸담은 서른 해 가까운 세월 동안 겪은 그 어떤 일보다도 이번 일의 전체 과정이 흥미로웠다고도 했다. / 이제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내 이야기가 가치 또는 흥미를 지닐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p.9-10
나는 내게 주어진 이 특별한 기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 기억이 닿는 한 정직하게, 내가 책을 쓴 과정에 대해 털어놓으려 한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내 삶과 직결된 이야기다. 지난 몇 년은 내 생애 최고로 멋지고도 격렬한 시간이었다. 최고로 격렬한 노력과 땀, 회의, 고통을 바친 시간이었다. 내 이야기는 그다지 문학적이지도 않다. 땀과 고통과 절망과 부분적 성취의 이야기다. --- p.11 세상이 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줄기차게 썼지만, 그러면서도 독자가 누구일지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내 글이 누구에게 가닿을지, 내 고투의 끝, 목표점,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거센 창작열의 불꽃은 두 해가 넘는 세월 내내 타올랐고, 그들이 내 글을 선택하고 읽고 좋아해 주고 나를 작가로 인정해 주리라 믿었다. 비록 ‘그들’이 누구일지는 쓰는 내내 몰랐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로지 거세고 뜨거운, 꺼트릴 수 없는 희망의 불꽃에 의지해 첫 책을 써 내려간 경험이 있는 지난날의 작가들은 모두 다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게 틀림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비록 자신의 첫 작품을 쓰고 출판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기까지 거쳐야만 하는 처음이자 가장 중요하고 독보적인 그 과정에 대해 꼭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한 것이다. --- p.17-18 마침내 나는 나의 발견자이자 협력자인 편집자에게 이 작업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바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며, 이 일이 얼마나 잘될지 자기는 예언할 수도 알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다만, 이 점만은 확실합니다. 세상이 이 작품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 책은 자기 자리를 찾아갈 겁니다.” --- p.21 내 책은 무명작가의 첫 책이었다. … 1929년 가을에 이 책이 출판되면서 나는 비로소 작가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리하여 작가로서 치러내야 할 엄청난 수업의 첫 장이 열렸다. --- p.22 무엇보다도, 나는 사람이 책을 한 권 쓰고 나면 절대적으로 명백하고 분명해지는, 그러나 다 쓰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책을 쓰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해서라는 사실이었고, 책을 쓰고 나니 그 점이 자명하게 와닿았다. … 말하자면 나는 성공한 유명인이 되고 싶었으나 그때까지 누려온 무명인의 사생활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고, 나를 두고 명성이며 성공을 말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 이 당황스럽고 이율배반적인 문제가 또 다른 고통스럽고 까다로운 상황을 빚어냈다. 작품을 써서 출간하고 나자 나는 이미 작품을 아득히 멀리 떠나보낸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와 동시에 세상에 내놓은 그 책의 생생하고 실체적인 존재와 날마다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중은 내 책에 대해 편지를 쓰거나 말을 걸어왔고 그에 응답하려 애쓰다 보니 내가 사기꾼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p.26-27 내 첫 소설은 흔히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종류다. 나는 첫 책의 서두에서 모든 진지한 창작물은 어차피 자전적일 수밖에 없으며, 《걸리버 여행기》보다 더 자전적인 소설은 아직 나온 적이 없다는 주장으로 자전적 소설이라는 명칭에 이의를 제기했다. --- p.31 나는 처음으로 예술가가 겪는 가장 큰 갈등 중 하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것을 직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예술가도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고 땀 흘리고 사랑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즐거워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슬픔, 죽음, 위험, 가난, 비애, 그밖에 힘겨운 나날의 근심, 걱정을 알아야 할뿐더러,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일해야 하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그 갖은 환란 속에서도 일해야 하는 존재였다. 어쩌면 단순하고 따분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같은 사실을, 나는 생애 가장 힘들고 최악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 예술가를 위한 진공실 같은 건 없다. 남들은 다 알아야만 하는 땀도 괴로움도 고뇌도 벗어던지고, 안락하고 평안한 분위기에서 작업할 수 있는 예술가만의 시간 따위는 없다. 잠시 그런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해도, 그것을 바라서는 안 되며, 그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며, 그것을 끝없이 추구해서도 안 된다. --- p.37 어떻게 해야 글이 써질까? 글쓰기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얼마나 자주 바쳐야 할까? 글쓰기에 도입해야 할 묘방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문득 마주한 것은 꾸준히, 멈추지 않고, 매일매일 쓰는 수밖에 없다는 엄숙한 진실이었다. --- p.38 나는 즉각적이고 영원한 깨달음을 얻었다. 신화적인, 마술적인, 경이적인, 기적적인, 신비로운 작업 환경은 내 주위 도처에 있었으며, 내 안에 힘과 의지가 있고 써야만 할 강력하고 불가항력적인 필요만 있다면 내가 있는 곳이 글을 쓸 최적의 장소였다. --- p.43 우리 모두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숨결이요, 맥박이며 삶의 요체인 그 수많은 것들이 그 당시 내게는 강렬한 이미지로만,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쓰라리고 견딜 수 없는 기억으로만 다가왔고, 어느 순간 나는 그것들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모습과 차원과 분위기와 특질을, 그것들이 미국인들에게 안겨주는 의미와 정서를 전혀 형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러자 스스로 표현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알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에 관해 발언할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p.49-50 실은 내가 책을 썼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 책은 한마디 한마디, 한 줄 한 줄, 한 챕터 한 챕터 써 내려간 책이 아니다. 화산의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하듯이 나에게서 터져 나왔다. 단어들이 천 단위가 아니라 백만 단위로 저절로 구축되어 갔다. 작업이 나를 휘어잡고 지배했으며 내가 작업을 다 마치기 전에, 다시 말해 내가 마침내 첫 완성본을 탈고하기 전에 그것이 스스로 완성되었던 것만 같다. 한 인간의 가슴과 두뇌와 살과 뼈와 힘줄의 거처, 하나의 목숨이 담긴 작은 배는 창작욕이라는 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센 폭풍을 도저히 배겨낼 수 없다. 그럴 만큼 강하지도 크지도 않다. --- p.52-53 내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생각, 핵심적인 이야기는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다. 절망과 회의로 허우적거릴 때도 내 신념을 굳게 다지기 위해 상기하곤 했던 그 핵심적 이야기는 이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절실하게 추구하는 것, 어쨌든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 찾기, 단지 육신의 아버지나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무관한, 자신의 배고픔보다 중요한, 자기 인생의 신념이나 힘과 결합시킬 수 있는 힘과 지혜의 상징으로서 아버지 찾기라는 것. --- p.54-55 내 첫 작품이 출간된 지 1년 반이 지났고 내 친구들, 아는 사람들, 내 첫 책을 읽은 사람들 그리고 몇몇 평론가들은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순전히 선의에서 나온, 분명 악의 없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 어떤 못되고 고의적인 조롱이나 모욕보다도 지긋지긋하고 견딜 수 없는 소리로 내 귀에 꽂히는 “다음 작품은 아직 안 나왔나요?” “다음 작품은 언제 출판되나요?”라는 질문을. --- p.68 그리고 놀랍고도 신기하게도, 그 모든 일이 지나간 뒤에는 패배와 고뇌와 암담한 고통의 시간의 결정체인 영혼이, 인간의 불굴의 정신력, 겪고 견디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그 능력의 증거물인 타오르는 기억이 최후의 담보로 남았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그 암흑 시기를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쁜 마음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로 하여금 패배를 가까스로 딛고 일어서 첫 완성에 이르도록 이끌어준 시기이고, 개인적 고투, 고통, 노력의 차원에서 내 주변 사람들의 고투, 고통, 노력을 함께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해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 권의 책을 쓰는 과정이 내게 안겨준 또 다른 수확이다. 그 과정은 한 작품의 완성이 작가의 삶에 가져다주는 바로 그런 종류의 확장과 성장을 내 삶에 가져다주었다. --- p.82 그는 끝으로 나는 내 갈 길을 계속 가면서 더 좋은 작품을 쓰면 된다고, 이제 그토록 많은 혼란과 낭비와 헛된 고통을 치르지 않고 작업하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라고, 앞으로 쓸 작품들은 더 많은 통일성과 안정감, 그리고 작가라면 누구나 자기 작품이 갖추기를 바라는 완결성을 갖출 수 있을 거라면서, 더듬어 나아가고 몸부림치며 앞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가운데 이제까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깨우쳐 나갈 거라고, 그 방법 아닌 다른 깨우침의 지름길은 없다고 말했다. --- p.101-102 이런 어렵고 정직한 방식을 통해서만 우리는 말을, 언어를, 그리고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우리가 갖춰야 할 양심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지금 가진 것 이상을 갖지 못한 우리는, 지금 아는 것 이상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현재의 우리 이상의 우리가 아닌 우리는, 우리의 미국을 발견해야만 한다. --- p.106 나는 진실로 쓰기 위해 살았을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해 써왔다고 말할 수 있다. 글쓰기는 나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다른 수입원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끊임없이 써왔다면 그것은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부양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나는 또한 진실로 말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어떤 단어, 어떤 문장, 어떤 문단도 오로지 돈만을 목적으로 쓴 적은 없었다고. --- p.117 그들이 그 황량함의 유령을 끌어안는 일에 그토록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정말 놀랍거니와, 만일 그 친구가 ‘길 잃은 세대’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면 그건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나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다. 내가 선택되었다 해도 그건 내 뜻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빠지겠다. 나는 내가 ‘길 잃은 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아가, 암중모색하며 나아가는 어느 세대나 길 잃은 세대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라면 몰라도, ‘길 잃은 세대’의 실체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 p.126-127 어린 시절부터 그녀[명성]를 얻는 게 내 의지의 종착점이었는데 그게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크나큰 상실을 통해 나는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절망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맞았듯이, 추방이 나를 새로운 땅으로 데려다주었듯이. 이어서 나는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구축해 온 세상,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왔던 삶의 구조의 실상이 무엇인지 가차 없이 까발려진 건 바로 그녀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 p.178-179 시련이 시작되어 2년이 넘게 사회 전 분야를 휩쓰는 동안 나는 부패하고 난잡한 가짜 인간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낙심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전체를 명료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손에 쥐고 싶었던 것을 얻는 데 실패함으로써 나는 마침내 세상사가 어떤 모습인지 실상 그대로 깨우치고 있었다. 기이한 역설인지 몰라도, 나는 이 암울한 상실에서, 이 새로운 발견들의 황량감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더 새롭고 어찌 보면 더 나은 희망을 길어 올렸다. 우물의 바닥, 땅의 맨 밑바닥에서, 벌집 상부의 부패하고 조잡한 구조 안에서, 나는 인간의 평범한 마음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것만은 누군가 아무리 배신하려 해도 배신당하지 않을 것임을, 누군가 아무리 타락시키려 해도 끝내 타락하지 않을 것임을, 아무리 굴복시키려 해도 결코 꺾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인간의 평범한 마음은 우리가 내려앉을 수 있는 맨 밑바닥이며,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받침대이며, 스스로 변화하지만 억지로 바꿀 수 없으며, 견뎌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민중! 그렇다, 민중! 영원히 패배당할 리도, 배반당할 리도 없는 민중, 그럼에도 배반당하고 패배한 민중, 타락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진 민중, 속아 넘어가고 미신을 믿는 민중,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민중, 그러나 마침내, 언제나 민중! 오로지 민중! 아무도 꺾을 수 없고 변함없는 민중이라는 반석! --- p.179-180 그는 늘 거시적 의미의 미국을 생각했고, 아직 못 가본 지역으로 여행 떠날 계획을 세웠으며, 마침내 떠났다. 계속 바뀌었던 그의 거처는 늘 잠시 머물고자 방금 들어온 임시 숙소처럼 보였다. 무엇이든 간에 소유하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세상천지 구경에 골몰하면서 멀리 방랑하는 자의 기질을 타고난 탓이고, 방은 그를 붙들어 앉힐 수 없는 최소한의 생활 근거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에 머물러 있을 때조차도 그의 정신은 그곳에 없었다. 그에게는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구석구석 쏘다닐 대륙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의 자리는 미국 전역이었다. 미국은 그의 가장 깊은 근심거리였고, 나는 그가 사상 최초로 미국을 동시대인들에게, 그리고 내일의 작가와 예술가와 시인 들에게 열어 보인 작가라고 믿는다. 분명 그는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었다. --- p.21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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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니어스〉의 주인공 토머스 울프가 쓴 자전적 작가론
작품의 탄생과 명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와의 편집 과정 이야기 “내 책은 무명작가의 첫 책이었다. … 1929년 가을에 이 책이 출판되면서 나는 비로소 작가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리하여 작가로서 치러내야 할 엄청난 수업의 첫 장이 열렸다.” (22쪽) 영화 〈지니어스〉의 천재 작가, 토머스 울프가 자신의 첫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어디에 이를지 알지 못한 채 쓰고 또 써 내려간 방대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하기 수차례, 마침내 명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와 만나 ‘무명작가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온다! 토머스 울프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퍼킨스의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영화 〈지니어스〉의 실제 인물 토머스 울프가 말하는 ‘소설 쓰기’ 그리고 ‘소설가라는 직업’ 대공황을 몇 해 앞두고 투기 광풍에 휩쓸린 1926년 미국, 소설가로서 청운의 꿈을 품고 처음으로 쓰고 또 쓰기를 거듭해 장장 5000매가 넘는 장편소설을 2년 반 만에 집필한 괴상한 젊은이가 있었다. 세상에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 이른바 무명작가였던 그는 운 좋게 자기 원고의 가치를 알아본 베테랑 편집자를 만났고 그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계약금 500달러짜리 수표와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이 만남 이후 1년 반이 지난 1929년에 무명작가 토머스 울프는 첫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로 일약 미국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다. 연작소설인 두 번째 장편소설 《시간과 강에 대하여》를 출간한 해인 1935년에 그가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라는 주제로 한 강연, 1938년 ‘글쓰기 선언’과도 같았던 그의 마지막 대중 강연은 모두 밀도 높은 글로 재탄생했다. 이 책은 울프의 이 두 글이 중심 뼈대를 이룬다. 그리고 여기에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의 서문에 딸린 중요한 지은이 주, 울프의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울프와 10년간 동고동락한 찰스 스크리브너스 출판사의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1884-1947)를 모델 삼아 창조한 인물이 주인공인 한 챕터, 울프가 사망한 이후 퍼킨스가 그를 회상하며 쓴 ‘울프 약전略傳’,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성실한 해설까지, 어느 글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을 만큼 흥미롭게 구성된 부록이 덧붙여져 있다. 첫 번째 글 〈어떤 장편소설 이야기〉에는 울프가 어떻게 하여 글쓰기를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첫 책을 쓰고 출판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 두 번째 책을 출간하기까지 이어진 몇 년 동안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어떠한 고난을 겪었고 또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는지가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글 〈글쓰기, 살아내기〉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울프의 성찰이 담긴 글로, ‘소설가는 곧 노동자’라는 주장, 인간 삶과 사회에 천착하는 것이 곧 소설 쓰기의 본질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울프의 소설은 방대한 분량 때문인지 국내에 온전히 전편이 소개되지 못했고 그나마 출간되었던 책들도 오래전 절판된 상태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서 울프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토머스 울프와 맥스웰 퍼킨스의 이야기는 영화 〈지니어스〉(마이클 그랜디지 감독, 2016)로도 만들어졌다. 주드 로가 울프 역을, 콜린 퍼스가 퍼킨스 역을 맡았다. 뉴욕의 한 출판사. 한 편집자가 거대한 원고 뭉치를 들고 다른 편집자의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부려놓으며 검토를 요청한다. 퇴근길, 코네티컷행 통근 열차 안에서 편집자는 첫 페이지에 ‘오, 사라진 것들이여O Lost’라는 제목(《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의 원제)이 적힌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귀가한 뒤에도 그는 식구들과의 저녁 식사 시간 말고는 내내 그 원고에 붙들려 있다. 이튿날 출근하는 열차 안에서 그 원고를 마침내 다 읽어낸 편집자의 얼굴에 ‘괴물이 하나 나왔구나’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 그 얼마 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손질하던 그 편집자 앞에 원고 뭉치의 주인공이 나타난다. “뉴욕의 편집자 놈들은 하나같이 내 글을 싫어해요.” 이번에도 퇴짜 맞을 것을 각오한 그에게 편집자는 이 원고를 출판하고 싶다고 말하며 계약금으로 500달러 짜리 수표를 내민다. (215쪽, 부록, 옮긴이의 말) 소설가 울프, 명편집자 퍼킨스 토머스 울프의 글쓰기 방식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글쓰기 노하우가 있겠지만 울프의 경우는 독창적인 방식임이 틀림없다. 전체적인 윤곽이나 플롯을 구성하기 전에 다양한 ‘자료’를 치밀하게 ‘발굴’하고 탐색하고 조사하여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거의 강박적인 욕망과 끝없는 노력. 이것이 바로 울프만의 방식이다. 그런 토막글들을 울프는 자신이 ‘장부책’이라 부르는 공책에 수백, 수천 편 기록한다. 그러기를 두 해 가까이, 그것들이 마침내 어떤 흐름을 이루고 점차 소설의 꼴이 되어가도록 계속해서 써 나간다. 말하자면 뼈대에 살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거대한 혼돈 덩어리를 차츰 그 형태가 또렷이 드러나도록 깎아내고 덜어내는 방식이다. 이 같은 사전 조사 작업이 언뜻 보기엔 정력의 지나친 낭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울프는 자신만의 생각과 표현법을 찾아가는 이런 탐구가 옳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웅변한다. 그런데 글과 너무나 밀착된 나머지 작가는 자신이 쓴 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자연히 그 역할은 노련한 편집자의 몫이 된다. 이때 편집자는 타오르는 창작욕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데 따른 고통, 자신에 대한 실망, 자포자기 같은 감정으로 작가가 허우적거릴 때 그의 곁을 지키며 침착하고 단호하게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안내자이기도 하다. 이 책 전편을 통해 글쓰기에 온 힘을 기울였던 울프의 뜨겁고 진실한 목소리, 자신과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준 동료에 대한 깊은 감사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내 여러 해의 삶을 바쳤으며, 그것을 글로 바꾸고자 몸부림쳤던 조사와 탐구에 관하여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다. 그런 일이 남들 눈에는 아무리 바보스럽고 헛되어 보이더라도, 내가 언급했던 방대한 도표와 목록이 남들 눈에 아무리 지나치고 기괴하고 무절제하고 심지어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그 경험 전체의 질과 목적과 효과는 쓸모없지도 기괴하지도 지나치지도 않다는 것이다. … 내가 빠져서 허우적대야 했던 그 모든 낭비와 오류와 혼동, 헤아릴 수 없이 자주 맞닥뜨린 막다른 골목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덕분에 내 손에 쥔 자료의 구체적인 의미를 더 명확히 할 수 있었고, 그 무렵의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가늠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찾고 있는 표현법, 작가로서 내 삶이 진보하고 자라나고 있다면 내가 갖춰야만 할 나만의 언어에 대한 어렴풋하고 초보적일망정 살아 있는 이해에 이를 수 있었다. 이는 그때까지 내가 했던 어떤 경험에서도 얻지 못한 것들이었다. …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 아무리 쓸모없고 소모적이기만 했다 해도, 나는 믿는다. 그 길을 선택하여 경험하고,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자원과 한계와 역량을 탐색하는 쪽이 유명인의 글쓰기 교실에서 희곡이나 소설 쓰기를 배우거나, 글쓰기 관련 책 혹은 다른 작가들의 책을 뒤적이며 스스로 깨우쳐야 할 문장, 형식, 양식, 구성 따위에 대해 한 수 배우려 드는 것보다 작가에게 훨씬 이롭다고. (64-66쪽) 그러나 그때 나는 더없이 귀중한 한 조각 행운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엄청나고 끈질긴 지혜와 온화하지만 고집스러운 꿋꿋함을 간직한 한 남자를 벗 삼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산고로 절망감에 빠져들면서도 내가 망가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이 남자의 용기와 인내심 덕분이었다. 그가 내가 포기하도록 방관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그 특별한 상황에서 전쟁터의 노련한 참관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잘 활용하기도 했다. 나는 그 전쟁에 직접 뛰어들어 흙먼지와 진땀을 뒤집어썼고, 격전으로 진이 빠졌으며, 정작 내가 치르고 있는 격전의 본질과 진척에 대해서는 나의 벗만큼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켜보는 것, 내가 일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이런저런 방법으로 구슬리는 것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 역할을 수많은 조용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75쪽) “내가 겪어보니 작가는 단연코 노동자다” 울프 자신이 그랬다고 고백했거니와 우리는 여전히 글쓰기 혹은 작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노력하지 않고도 엄청나게 재미난 이야기를 술술 쓸 수 있다는 환상. 이에 대해 울프는 단언한다. 단연코 소설가는 노동자라고. 따라서 글이 잘 써지는 ‘명당’ 같은 곳은 이 세상에 없으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 그곳 장삼이사의 삶에 깊이 천착해야 한다고. 몇 년에 걸친 탐색을 통해 울프는, 글쓰기란 개인적인 고뇌와 열망을 풀어놓는 틀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눈, 세상을 읽는 눈을 밝히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울프가 소설가로 데뷔하고 그 이후 작가 수업을 쌓아가던 몇 년 동안,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전무후무한 사태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한 사태를 팔짱 끼고 분석하거나 모른 척 눈 돌리지 않고 진실을 알기 위해 삶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간 덕분에 울프의 글은 한 단계 깊어진다. 그래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고향, 자기 조국의 삶에 천착하게 된 울프의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그 신실한 목소리에 독자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책에 수록된 두 번째 글인 〈글쓰기, 살아내기〉의 밑바탕이 된 강연을 한 해에 울프는 폐결핵으로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그런 일들이 대체 왜 발생했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으므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실로 어마어마한 탐사와 발굴 작업인 새 책 쓰는 일에 맹렬하게 매달리면서 처음으로 미국 땅이 품고 있는 만물의 겉모습, 느낌, 크기, 모양새, 냄새, 맛을 발견하는 중이었다. … 이제 중요한 일은 오로지 그것들을 파헤쳐서 받아 적고, 받아 적고, 또 받아 적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기록하기, 객관적 기록으로 변환시키기였다. 그 기록이 수천 페이지를 채울지라도, 그리고 그 기록이 영원히 활자화될 리 없을지라도, 어떤 독자도 만나지 못할지라도,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가다듬어지지 못할지라도, 어쨌든 기록했다. 내가 받아 적는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한. / 발굴하고 탐색하고 발견해 나가는 그 막대한 작업은 브루클린에서 4년 동안 이어졌고, 그러는 동안 작품의 구조적 윤곽이 천천히 드러났다. 한편으론 그 작업, 그 작업이 일으킨 놀라운 생기를 통해, 나는 줄기차게 세상을 빨아들였다. 마치 흐리고 충충한 날의 광선처럼, 5월의 햇살처럼, 미량의 습기처럼, 끊임없이 내리는 비처럼. (본문 167-1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