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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들어가며: 성찰-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보기 어렵다
대학에서 6 청와대에서 7 국회 여당 의원으로 9 국회 야당 의원으로 10 시민으로 돌아오다 11 책의 구성 13 02 한국인의 이해 언어 18 의식주(衣食住) 25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 통합적 사고 vs. 분석적 사고 31 03 한국 사회의 이해: 국가 간 문화 비교 권위주의(권력거리?위계성) 40 집단주의-개인주의 48 특수주의-보편주의 52 04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 권위주의(위계성) 60 집단주의 63 타인의식 66 결과중시 70 한국 사회의 문화 DNA: 최고 중심의 위계적 집단주의 73 05 시대정신 과거를 돌아보며: “건국(정부수립), 산업화, 민주화” 83 미래를 내다보며 85 문화?시대정신?개혁전략 91 06 공 정 공정의 조건 1: 비례성 원칙-보상은 투입에 비례한다 101 공정의 조건 2: 질과 양을 모두 주지 않는다 119 공정의 조건 3: 선택의 폭을 넓힌다 137 07 다양성과 시민의식 다양성의 출발: 차별금지와 우대정책 155 다양성을 보는 시각 168 포용(Inclusion) 175 다양성과 포용의 필요조건: 시민의식 180 국민통합: 포용의 사회 185 08 분권, 자율과 책임: 진단 대통령제: 미국의 견제 장치를 통해 한국을 본다 199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 미국의 대통령제 ‘+α’ 권력 208 의원내각제: 유럽의 정당정치를 통해 한국을 본다 213 정당제도와 선거제도: 권력구조와의 정합성 222 09 분권, 자율과 책임: 처방 미국 정치제도의 교훈: 견제-질과 양을 모두 주지 않는다 251 EU 정치제도의 교훈: 정당의 자율과 책임 256 한국의 정치제도 개혁 259 대통령: 분권 이전에 권력 공유 261 국회와 정당: 자율과 책임 265 10 개혁의 실행: 모두 함께 정치권: 문화정합성과 정당개혁 282 국민: 나의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 286 행정부(공무원): 시스템 설계 및 투명성 291 국가 지도자: 변혁적 리더십-솔선수범?진심?비전 297 부록 301 참고문헌 307 그림/표 출처 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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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보기 어렵다
대학에서 대학원 공부와 몇 년간의 생활을 미국에서 했기 때문에 서양의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한국을 떠나니 보이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비판적으로 볼 때도 많았다. 1991년에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시작하였다. 초기 조교수 시절 교수식당에서 동료 교수들과 식사를 할 때면 늘 한국 정치, 대통령, 국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함께 공감했다. 재단과 총장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교수들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연구 주제에 대하여 피드백을 주고받고, 때로는 자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즐거워했던 시간이 그리웠다. 미국에서 정치나 대통령 그리고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대화의 부차적인 소재였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그것이 늘 대화의 중심이고 심지어 친한 친구 사이에도 견해 차이가 커 서로 감정이 상하고 어색해지는 경우를 보았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 이야기로 소비하며 스트레스 받는 시간을 자기개발과일에 관한 생각이나 가정을 향한 관심으로 채울 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교수직 초기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개념이나 이론으로 한국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강의하고 연구한 지 10년 정도 지나면서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서양의 이론이나 정책, 제도가 더 좋다는 고정관념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개념이나 이론 그리고 벤치마킹하던 외국의 정책과 제도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 외국의 정책이나 제도를 기준으로 한국을 비판하거나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한편으로 순진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 인사 두 명이 인수위원회에 참여해 달라는 당선인의 뜻을 전하러 대학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렇게 인수위 참여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획수석으로 2년 가까이 일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감당하기 힘든 정치의 역동을 권력의 중심에서 경험했다. 공무원 연금개혁도 2년간 여야와 집권 세력 내에서 개혁의 범위와 시기에 대한 논란이 컸던 쟁점이었다. 당시에는 공무원 연금개혁, 서비스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 집권 초기에 추진했던 개혁 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당?정?청 회의를 통해 여당의 협조를 구했고 당이 적극 협조했지만, 국회가 여당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성과를 내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당과 원내 지도부는 청와대 2중대냐는 당시 야당의 비난을 들어가면서까지 청와대의 개혁 의지를 국회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그런 여당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여당 의원 중에서 청와대(정부)가 추진하는 법이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발언이 나오면 언론은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거나 당내 계파 간 갈등이 있다는 식의 기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났다. ‘도와주지 못하면 조용히 있어 주기나 하지’ 하는 마음이었다. 국회에서 개혁 법안의 통과를 가로막는 국회선진화법이 야속할 때도 많았다. 국회선진화법을 고쳐서라도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여당에서 선진화법 개정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야당이 협조할 리가 없었다. 법안 처리를 위한 소위원회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매일 상임위를 열어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통과든 부결이든 정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야당의 의도적이고 정치적인 발목잡기가 분명하다는 생각에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장은 이미 여당의 당적을 떠났기 때문에 초당적인 타협을 강조하면서 무리하지 않았다. 청와대나 당 지도부의 섭섭한 마음은 당연했다. 개인적 공명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모든 의장이 저런 자세라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인사청문회도 피곤하고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민정수석실을 원망한 적도 있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확인할 수 있는데 도대체 검증을 어떻게 한거야, 휴….’ 하지만 인사는 도덕적 무흠결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치는 미지수 두 개의 2차방정식 문제풀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2015년 1월 말, 1년 11개월의 청와대 공직생활을 마치고 3월 1일자로 성균관대학교에 복직하였다. 국회 여당 의원으로 2016년 제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여당) 비례의원으로 국회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교수직을 사직해야 하는 큰 결심이었다. 청와대에서 기획했던 국정과제 중에서 법이 개정되지 않아 멈춰 있는 것들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런데 총선 결과 다수당이 되지 못하고 국회의장을 야당에 넘겨주면서 국회의 주도권을 잃었다. 여당이었지만 개혁을 위한 적극적 활동보다는 오히려 국회에서 야당이 청와대와 정부에 퍼붓는 공격을 막아야 하는 수비수가 되었다. 정책 중심의 의정활동을 생각했는데 정책은 실종되고 대립의 정치가 일상이 되었다. 상임위원회에서 정부가 업무보고를 할 때나 국정감사에서는 여당 의원으로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칼날은 태생적으로 무딜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세상의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늘 먼저 눈에 띄고 그것을 비판하는데 익숙한 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라 정부의 잘못을 눈감고 지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야당이 대통령을 비난하고 정책 실패라고 밀어붙이는 공세 중에는 사실과 다르거나 한쪽만을 과장하여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의혹 제기일 때가 많았다.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야당의 잘못된 지적과 공세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역할이 점점 중요해졌다. 그런대로 견딜 만하던 야당의 공세도 아주 잠깐이었다. 국회가 개원한 지 3개월이 지나고 정기국회가 시작하면서 야당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가 모든 뉴스 매체를 장악했고 급속하게 탄핵 정국으로 전환되었다. 국민 정서와 여론이 대통령과 여당을 완전히 떠났다. 태풍과 같은 모진 비바람을 피할 담벼락조차 없었다. 당은 침몰하는 선박과 같았고, 그 와중에 당은 위기 앞에 결집이 아니라 각자의 살길을 찾아 분당(2017년 1월 바른정당 창당)이 되고 의원들의 생각이나 정치적 행동 또한 원심력으로 더욱 분화되었다. 국회 야당 의원으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국회에서의 공수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국정 동반자로 같이 일해오던 행정부가 이제 반대편에 서있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정무직 공무원이 어느새 새로운 정부의 국정철학과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방어하는 모습을 보며 바뀐 현실에 눈을 떠야 했다. 직업공무원은 지난 정부와 반대되는 논리로 의원실에 찾아와 이해와 협조를 부탁했다. 직업공무원으로 상사의 지시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찾아왔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학자로 훈련된 나의 능력을 보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으로, 전문성으로, 논리로 나의 태도를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당은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되고 지지율은 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계속 추락하기만 했다. 국회의원, 사무처 직원, 당원 모두 어디 안식을 취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수도권의 단체장 후보조차 찾기 어려운 곳이 많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 상황에서도 20~30%의 지지자들이 당을 받쳐주었고 그들을 의지해 절벽과 절망의 끝에서 당은 버티고 있었다. 국회는 멀리 내다 볼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전개되는 현안에 대응하는 기동타격대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여당은 대통령 지지율을 앞세워 국정과제와 개혁입법 통과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몇 번의 대화가 결렬되면 국회의장이 앞장서 정면 돌파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때의 국회의장과 달랐다. 국회의장은 여당은 물론 청와대와 개혁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공유하면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했다. ‘아! 이게 청와대 2중대로구나!’ 청와대에 있을 때 야당이 하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동안 어느 정도 존중되고 지켜져오던 국회의장의 초당파적 지위와 중재자 역할의 관행과 전통이 무너지는 정치퇴행에 너무 화가 났다. 이제 당이 의지할 곳은 집권 여당 시절 개정하려던 국회선진화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거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이 상정되고 여당과 다른 야당이 연합하면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는 숫자(의석의 2/3)를 확보하였다. 본회의에서의 필리버스터도 소용이 없었다. 저항했다는 기록이 남을 뿐 강행 처리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강행 처리된 선거법은 거대 양당이 비례정당을 만들면서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20년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대참패를 하였다. 범여권은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고 입법 독재가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였다. 미래통합당은 우호적인 의석을 합쳐 위태로운 개헌 저지 의석을 얻은 것만으로 한숨을 돌려야 했다. 시민으로 돌아오다 정치가 목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국회에 들어갔고 현재의 정치풍토에서 그 한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미련없이 국회를 떠났다. 이제 나는 한 국민, 한 시민으로 돌아왔다. 출퇴근 시간이 없는 자유인이 되었다. 돌아보면 스스로를 정치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청와대와 국회라는 권력의 중심에서 6년을 지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6년간 생활했다. 국사 공부를 할 때 정치나 공직의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나 야인으로 조용하게 살던 선비를 존경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정치를 관망하면서 지내는 삶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친구나, 아파트 이웃이나, 지인이나, 제자나 만나는 사람들 다수가 나라 걱정을 할 때 그냥 그렇다고 맞장구치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들의 공통되고 한결같은 마음은 나라 걱정과 함께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이었다. 특히 그동안의 경제성장에 이어 최근에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 K-컬처에서 글로벌 경쟁력과 국가 위상을 확인하면서 ‘정치만 한 단계 레벨업(level-up)되어 준다면 정말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가 될 텐데’라는 정치에 대한 원망과 함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만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그런 심부름을 대신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도 대한민국의 앞날이 너무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제20대 국회에서 여권의 선거법과 공수처법 강행 처리를 보았고, 제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결과 2/3 의석을 확보하면서 개원과 함께 상임위 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고 여당이 원하는 법안을 안건조정의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입법 독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당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전운(戰雲)마저 느껴져 두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정치의 현장에서 몸으로 행동하는 역할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학습한 학문적 시각과 현장의 경험을 글로 쓰고 말로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과 글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동안 학교에서 연구한 것, 청와대와 국회에서 경험한 것을 하나로 엮기 시작하였다. 지금부터 학자로서 연구해왔던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공정, 다양성과 시민의식, 분권, 자율과 책임의 시대정신’을 개혁의 방향성으로 하여 ‘교육, 취업, 권력구조, 정당제도, 선거제도 등’의 이슈에 대한 쟁점과 대안을 논의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