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일본 노동법 입문
양장
베스트
법 top100 13주
가격
43,000
43,0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목차

[머 리 말] 일하는 것과 법 ⅲ
[서 문] 신판 집필에 있어 1
[역자서문] 일본 노동법 입문을 번역하면서 2

제1장 노동법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노동법의 역사 67
1. 노동법의 배경-두 혁명과 근로자의 빈곤 71
2. 노동법의 탄생-‘개인 자유’를 수정하는 ‘집단’의 발명 80
3. 노동법의 발전-‘황금의 순환’ 85
4. 노동법의 위기-사회의 복잡화와 글로벌화 111
5. 일하는 방식 개혁 122

제2장 노동법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 노동법의 법원(法源) 143
1. ‘법’이란 무엇인가 144
2. 사람은 무엇을 근거로 타인으로부터 강제되는 것인가 146
3. 노동법에 고유한 법원(法源)이란 156
4. 일본의 노동법 체계와 특징 167

제3장 채용, 인사, 해고는 회사의 자유인가 / 고용관계의 전개와 법 173
1. 고용관계의 종료-해고 등 174
2. 고용관계의 성립-채용 202
3. 고용관계의 전개-인사 209

제4장 근로자의 인권은 어떻게 지켜지는 것인가 / 근로자의 인권과 법 233
1. 고용차별금지 234
2. 노동헌장 260
3. 인격적 이익·사생활의 보호 266
4. 내부고발의 보호 271
5. 근로자의 인권보장 의미 274

제5 장 임금, 근로시간, 건강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 근로조건의 내용과 법 277
1. 임 금 278
2. 근로시간 290
3. 휴가·휴업 328
4. 근로자의 안전·건강의 확보 338
5. 근로자의 건강을 확보하기 위한 과제 349

제6장 노동조합은 왜 필요한가 / 노사관계를 둘러싼 법 355
1. 노동조합은 왜 법적으로 보호하는가 355
2. 노동조합의 조직과 기반 361
3.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371
4. 단체행동권의 보장 376
5. 부당노동행위의 금지 384
6. 기업별 노동조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389

제7장 노동력의 거래는 왜 자유롭게 맡기지 못할까 / 노동시장을 둘러싼 법 395
1. 왜 노동시장에는 규제가 필요한가 396
2. 고용중개사업의 법규제 403
3. 고용정책법 408
4. 일본의 노동시장법과 관련된 과제 414

제8장 근로자·사용자는 누구인가 / 근로관계의 다양화·복잡화와 법 417
1. 근로관계가 다양화·복잡화하는 중에서 418
2. 근로자-노동법의 적용범위 421
3. 사용자-노동법상 책임추궁의 상대 430
4. ‘근로자’의 개념을 재검토하기 위하여 435

제9장 노동법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 노동분쟁해결을 위한 법 439
1. 법원에 가기 전의 근거 439
2. 최후의 방법으로서 법원 443
3. 분쟁해결의 첫걸음 448

제10장 노동법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 노동법의 배경에 있는 변화와 향후 개혁을 향하여 451
1. 일본 노동법의 방향성 451
2. ‘개인’인가 ‘국가’인가-그 중간에 있는 ‘집단’의 관점 453
3. 향후 노동법의 모습-국가·개인·집단의 적절한 조합 456
4. 노동법의 미래의 열쇠 461

부 록
[부록 1] 일본의 노동법 개혁과 관련된 이론의 전개 / 467
[부록 2] 일본의 4차 산업혁명과 노동법의 역할 단상 / 474
[부록 3] ?일하는 방식 개혁?의 도달점과 과제 / 477
[부록 4] 좌담회 : 일하는 방식 개혁법과 인사관리 / 489
[부록 5] 36협정 / 511

사항 색인 / 51

저자 소개 2

미즈마치 유우이치로

관심작가 알림신청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박사과정 졸업(법학박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심판) 고용보험심사위원회 위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국가인권위원회(사회권) 전문위원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동경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동경대학 법정치학부 객원연구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노동법학회 회장(2016) 한국사회법학회 회장(2017-2019.6) 소셜아시아포럼(SAF) 한국 대표(2016-현재) 한국비교노동법학회 회장(2019.2-2020.1)

이승길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26쪽 | 828g | 158*233*35mm
ISBN13
9791130339931

출판사 리뷰

서문
신판 집필에 있어

2018년 6월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을 제정해, 2019년 4월부터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일하는 방식 개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노동3법을 제정한지 “70년만의 대개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본의 일하는 방식과 일하는 사람의 의식 자체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 개혁이다. 그 주된 내용은 시간외 근로에 법적 처벌과 상한 시간을 함께 설정하고, 회사에 연차휴가를 부여할 의무와 처벌을 함께 부과한 것, 정규직과 비정규직(단시간·기간제·파견근로자) 사이의 대우 격차를 시정하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의 초판 水町勇一郞, 勞動法入門, 岩波書店 1329(2011.9). 이번 신판이 나오기 전까지 8쇄까지 출판되었다. 을 집필한 이후에 노동기준법, 노동계약법, 파트타임노동법, 근로자파견법, 노동안전위생법, 장애인고용촉진법, 육아개호(돌봄)휴업법, 여성활약추진법 등과 같이 다양한 법률을 개정·제정하였다. 근로조건의 변경, 정액 잔업비의 규제, 직장내(모성, maternity) 괴롭힘,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등의 분야에서 판례의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법률의 제개정 및 판례의 전개 상황을 포함해 최근 크게 발전한 노동법의 배경과 그 기반·특징을 그려내기 위하여 이 책의 초판을 개정하고, ‘신판’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판한 「노동법입문」(신판)을 통하여 사회의 변화와 결부해 일본 노동법의 발전된 모습을 알게 되면 기쁘겠다.

역자서문

일본 노동법 입문을 번역하면서

1. 한일간 정치·경제·사회 배경
2. 최근 한국의 노동법 개정 동향
3. 한일의 노동문제
4. 일본의 노동법 입문
5. 미즈마츠 교수와의 관계
6. 후 기

1. 한일간 정치·경제·사회 배경

(1) 21세기는 제4차 산업혁신 시대이자 정보통신기술(ICT) 시대이다. 급속도로 진전하는 경제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한 국가의 경제가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21세기의 세계적 도전으로 지정학적·지경학적 위기, 사이버 위기, 해로 안전 위기, 기후변화·에너지 변화 위기, 전염병 대응 등이 있다. 종전의 산업혁명이나 근대 패러다임의 종언 속에서 21세기에 탈(脫)세계화 현상, 새로운 기후 변화, ‘기후 위기’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및 태국 홍수로 현지 일본 자동차공장의 가동 중지, 지구 온난화, 인도양 쌍극화(Dipole) 현상, 2019년 호주 산불사태, 2020년 미국 텍사스 한파로 인한 정전으로 삼성전자 조업 중단 등 생명체와 자연환경에 대한 대규모 재앙과 연결되었다. ‘글로벌 그린뉴딜 논쟁’은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1.5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 이내로 안정화해야 한다. 기후 위기 극복책과 함께 심각한 불평등 위기 극복책이 그린뉴딜의 통합적 목표임을 천명했다. 구체적인 중요 목표로 (ⅰ) 모든 지역사회와 근로자를 위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제로 달성, (ⅱ) 수백 만개이 양질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과 모두를 위한 번영 및 경제적 안전보장, (ⅲ) 21세기 도전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인프라와 산업에 투자, (ⅳ) 깨끗한 공기와 물, 기후와 지역사회 회복력, 건강한 식품, 자연 및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접근권 보장, (ⅴ)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 금지와 정의 및 공정성 증진 등이다.
에너지 전환, 급격한 고령화·저출산·인구 감소(인구 절벽)와 함께,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따른 무역분쟁 등의 전방위적 확산, 미중의 기술패권 경쟁, 중국의 부실채권과 부동산 거품, 중국은 1990년부터 30년간 국내총생산(GDP)은 39배, 1인당 GDP(1만500달러)는 32배 증가했다. 2019년 미국 GDP의 6%에서 72%(21조4280억달러:14조3430억달러)에 도달했다. 자동차·반도체·항공기 등 여러 산업에서 세계 최대 시장이다. 시진핑 집권 2기(2018-2022)에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위해 국가 자본주의를 드러내고,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건설하는 것이다.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투자 수익률 하락, 생산성 증가 정체, 중산층 7억명, 대학진학률 54%, 현지 삼성전자, 금호타이어, 현대자동차, 이랜드,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등은 경쟁 외국기업으로 줄줄이 하향 추세에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3대 리스크로 막대한 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강도의 공기업 개혁과 암호화폐 규제 강화, 중앙은행 디지털화(CDBC)도입 촉진 등이 놓여있다.
유럽 리스크의 심화, 온실가스 배출 감축 방안, 국제협력과 다자주의, 일본의 인구 고령화에 따른 경제 역동성 저하 및 고질적인 부채문제, 북한의 핵개발 문제 등의 뇌관이 놓여 있다. 이러한 시대전환 속에서 지난 2020년 초 이후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펜데믹(대유행)의 장기화 영향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쇼크를 주고, 세계 경제는 스태크플레이션(경기후퇴+물가상승)의 우려도 있으며 동반적 위기로 세상은 종전과 전혀 다른 신세계로 블랙홀처럼 빨려들고 있다.
향후 4차 산업혁명의 급변에 따른 초지능·초연결 디지털 시대와, 코로나 펜데믹으로 대처를 위한 양적 완화에 따른 천문학적 유동성의 위험 등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변화하는 대전환기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망은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시기이다. 5G 경쟁은 가속화되고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은 더욱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컴퓨터, 휴대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드론 등을 망라해 혁신과 정보기술이 없으면 산업개편과 일상생활도 어려운 세상이다. 생산과 소비패턴의 변화, AI가 전환한 근로·교육현장, 정부와 국가의 역할 변화를 이념의 프레임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국가는 불확실한 시대에 미래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위기관리 능력을 마련해야 한다. 2021년 현재 한국과 일본은 작년부터 코로나19 펜데믹 현상은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다양한 위기 상황을 상정하면 한일 양국의 안보·외교, 경제·기술 등의 ‘동맹’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우려도 많다. 협력을 강화해 대응해야 한다.
일본은 2012년 아베 신조 아베 신조(安倍晉三)(1954- )는 2006-2007년 내각 총리대신 역임 후 사임. 2012년에 다시 내각 총리대신에 취임해 2020년까지 최장수 내각 총리대신을 역임. 국수주의적 우파 사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명예를 회복하고, 1930년대의 역사를 일본에 유리한 시점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베신조 1차 내각은 2006년 총리 취임후 전후 헌법의 개정(제9조의2, 집단적 자위권-자위대 명기), 과거사 사과 없이 오히려 강한 군대 추구, 일본 주권 체제에서 황실의 중심적 위치 선정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산하의 사회보험청(현 일본연금기구)에서 5000만 명에 이르는 연금기록이 뒤섞이거나 분실되는 사건 등 이후 건강 문제를 이유로 1년이 안되어 사임하였다. 당시 일본 국민의 관심사는 삶의 질과 노후자금의 마련, 자녀의 구직, 노부모 부양 문제였다.
2차 내각이 출범하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 개의 화살’이 필요하다는 경제 슬로건을 내세웠다. 통화정책, 재정 부양책(바라마키, 선심성 예산 뿌려대기)과 경제체제 개혁(광범위한 규제완화 및 구조 개혁)이다. 특히 일본은 고용관행과 임금체계(종신고용, 어용노조, 샐러리맨 신화), 기업 지배구조, 서비스 분야, 금융시장, 농업, 토지사용권, 유통망, 교육, 여성의 지위 향상 및 각종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2013년 9월에 선정된 ‘2020년 도쿄 올림픽’은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있었다. 올림픽은 구미의 전유물이었으나, 최초로 아시아 개최는 1964년 일본 ‘도쿄 올림픽’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극복해 재건의 탈아입구(脫亞入口)의 기회로 삼아 국가의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 사태의 악화로 1년 연기해 2021년 7월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일본은 확진자수가 여전히 많아서 (준)긴급사태를 (일부)지역에 연장해 반복해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이래 ‘아베 신조’ 정부는 코로나 초기 대응책이 ‘미즈가와 대책’(水際, 본토의 상륙 저지)과 ‘3밀(三密, 밀폐된 공간에서 밀집과 밀접을 회피 계몽) 강조’, 아베노믹스 효과의 격차 사회, 소비세 인상, 아베 개인 스캔들(모리토모(森友)학원, 가케(加計)학원, 사쿠라), 재정 건전화의 요원 등에 대한 불신으로 지지율이 하락해 결국은 물러났다. 아베의 정치 일정은 2020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 재건과 부흥을 위한 2020년 7월 도쿄 올림픽의 개최 열망(1년 연기됨),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피해의 상흔 극복, 결국 일본헌법의 개정을 염원했지만, 코로나19 범유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그 후 2020년 8월에 아베 신조 노선을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1948-) 아베 신조의 최측근으로 제1차 아베 정권에서 총부장관 엮임하였다. 2012년 제2차 아베 장관에서 내각 관방장관 역임하였다.
정부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도쿄 올림픽’ 개최의 연기로 국가적 부담이 커졌고, 아베 내각 이후 일본의 인구 고령화에 따른 경제 역동성 저하 및 고질적인 부채문제 등으로 계속 고전 중이다. 반면에 한국의 2017년 5월 출범한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대하여 초기에 적극적인 3T(Test, Trace, Treat) 및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승차 검진) 등의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K-방역의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소득주도 경제정책, 부동산 정책의 실패, 친노동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 등으로 경제는 코로나 사태에 겹쳐서 악화되고 있다.
(2) 한국과 일본은 다른 외국보다 비슷하다. 양국은 지정학적으로 가깝고, 한자 문화권 속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고, 문화적 공통 기반이 양국의 소박하고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높이는 토대가 있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 과거사, 영토분쟁, 안보문제(비핵화), 지구 온난화와 환경파괴 위기 문제, 자연재해와 원전사고, 에너지문제, 정치·경제의 한계, 지리적인 무대 전환 등의 문제로 난맥상이다. 한일간의 상호 대등한 존재로서 반(反)일한·배(排)일한보다는 양국을 위해 극(克)일한·용(用)일한의 첩경은 깊기에 철저한 ‘지일’(知)한이 선제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분석·비판하는 분(分)일한과 비(批)일한의 단계에서는 양국을 제대로 이해하며, 상호 협력할 것인지는 큰 과제이다. 미래의 동북아시아의 번영·평화·안녕, 남북한의 화해·공존·통일에 대한 공존을 위하여 상호 협조와 보조 역할은 막중하다.
일본은 7,000개의 섬으로 구성되고, 면적은 38만㎢로 한반도의 1.7배, 인구는 1억 3,000만 명으로 남한의 약 2.5배다. 일본은 지형은 폭이 좁고 길어 들판보다 산이 많고 가파르며 해안까지 펼쳐져 있다. 2,000m 이상의 산이 500개가 넘는다. 후지산만해도 3,776m이다.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고 섬으로 고립된 환경이다. 아직은 2019년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한국 3만 3천 달러이지만, 일본은 4만 1천 달러로 30%의 차이가 있고, 인구수를 곱한 GDP의 한일 격차는 2019년 3.12배이다. 또한 급격한 고령화·저출산 선진국, 인구 감소라는 경험도 10~20년 앞서간 일본의 경제·사회 구조변화 및 산업구조, 기업 경영과 문화, 고용형태에 있어 시행착오와 실패의 역사에 관한 정보와 지식도 반면교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은 빈곤율과 빈부 격차, 세대간 격차, 헬조선과 단카이 주니어(잃어버린 세대)세대의 취업 빙하기의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양국의 사회복지모델도 조세 부담률을 올리기보다는 국채 부채를 통해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3) 한편,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 정의, 법치,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상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양국의 역사를 파노라마와 같이 되돌아보면, 계속된 정치적 갈등의 소용돌이 중에 있다. 한국(조선) 입장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착취와 식민지적 강제와 탄압에 따른 굴욕의 역사였다. 이러한 역사 과정에서는 ‘후세 다쓰지’(1880~ )는 일본인 인권변호사로 조선인을 위해 변호했고, 재일 조선인 선거운동을 지원했고, 대한민국 헌법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전달했다. 그 후 2004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한국은 일본과 불평등한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일본의 청일전쟁(1895),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중국을 누르고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나섰다. 또한 ‘타이완’을 할양받았다. 러일전쟁(1904~1905), 중일전쟁(1937~1945)의 승리 이후에, 한반도를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직접 두는 ‘일제 식민지’, 그 후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을 거쳐 강제 병합된 전 과정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의 피해자’를 낳은 고통스러운 수난시대의 출발이었다.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는 정치적·군사적 목적, 점차 경제적 이익도 추구하면서 최악의 제국주의 시기였다. 창씨개명을 강요받고 한국말(조선어)을 쓰지 못하고 일본말을 쓰도록 강요받는 암흑의 시대였다. 하기사 1945년 8·15 해방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이었지만 국력이 약하여 침탈당했던 수모도 되새기게 된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同族相殘)이란 최대의 민족적 비극이 발발했고, 3년간 동족간 피아(彼我)가 560만 명이 죽고 다친 ‘소규모 세계대전’으로 끝났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9월 일본과 연합국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소련과의 냉전으로 일본의 전쟁책임을 최소한으로 줄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질서가 형성되어 한일관계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강력한 패권과 자유주의의 뒷받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강화조약을 추진하면서 참가국에서 ‘한국’이 제외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한반도 남북의 두 국가와 각각 교섭을 추진해야 했고, 그간 36년의 식민 지배를 청산하는 방법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한반도의 적대 행위를 멈추기 위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지금도 남북간은 정전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1945년 8·15 해방 이후에 1950년에 한국전쟁이 있었지만, 고유한 근대성 요소들과 서구 자유주의 근대성이 융합된 특유의 복합적 근대성이 이끄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을 이루었다. 세계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기적적인 경제 발전을 달성한 국가이다. 먼저 ‘산업화’는 공업화와 도시화다. 농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업경제가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경제로 이동한 것이다. 산업화는 미래의 혁신을 위해 그대로 인정해 효율적인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향하게 되었다. 또한 ‘민주화’는 엄청난 갈등을 겪으면서도 급속하게 이루었다. 이에 따르면 광복절에는 반일 감정보다 자국의 국력을 키워 가는데 관심을 가져야 했다. 국내적으로 해방의 공간에서 친일잔재 청산의 조사와 처벌은 과거사 문제로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에 미국은 한국에 대하여 경제 지원, 차관, 투자를 외교의 지렛대로 이용했다. 이러한 경제·군사 원조와 기술 지원, 자본 투자가 한국의 생존과 발전에 필수적인 디딤돌이 되었다.
우선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지와 원조를 기대하고서 한일 관계의 재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 후에도 미국은 적극적으로 한·미·일 공조를 이끌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수교 협정)를 이루었다. 어쩌면 한국 경제발전을 지원하면서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는 간접통지 전략인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 협력 방식(총 8억 달러는 무상 3억 달러, 유상 저리 2억 달러, 민간의 상업차관 3억 달러)을 선택함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한일 기본조약‘ 및 ‘한일 청구권 협정’ 이를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엄청났다. 그 밖에도 양국 간의 (ⅰ)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 (ⅱ) 어업에 관한 협정, (ⅲ)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국민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이 있다(4개).
을 체결하였다. 일본은 북한에 대해 아베 정권시 핵, 미사일, 납치문제의 현안이 있었다. 또한 북일 국교정상화가 되면 일본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최소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제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이 국력 차이를 좁히며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한국은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일본의 경제협력을 경제적 도약의 기폭제로 삼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정책이 일본의 원조와 조응해야 한다는 일본 대표단의 요청은 거절하였다. 하여튼 한국의 입장에서는 대일 무역 적자 규모가 1963년 이래 50년간 60조엔 이상으로 일본은 중요한 수출 상대국이었다. 중일관계에서 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은 문화혁명 후 개혁·개방을 준비하면서 일본 후쿠다 총리에게 일본의 기술과 자금, 경험을 배우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에즈라 보걸의 ‘뎡샤오핑 평전’, ‘넘버원 재팬’, ‘중국과 일본’(2021, 까치) 참조.

한일관계는 한국전쟁을 마친 후 폐허 속에서의 국가 부흥을 위하여 미국과 유럽 원조와 지원으로 전후 복구 작업을 일군 후에 경제성장을 이룩한 역사를 돌아보면, 동서 냉전의 최전선에서 긴장했던 한국은 냉전 ‘냉전’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동맹관계가 깨지면서 자본주의의 서유럽 국가와 공산주의의 동유럽 국가간에 국제정치적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1947년 미국 대통령 고문인 버나드 바르크가 ‘냉전’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이 같은 대립을 ‘냉전구도’라 부른다.
종식과 함께 냉전 체제에서 해방되었다. 이러한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그 당시의 한국은 경제 약소국이자 개발도상국이었다. 전쟁을 겪고 지금도 분단된 국가가 이룬 불가사의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원인은 한국 국민의 우수성, 근면성도 커다란 몫을 하였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는 변변한 산업이 없는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최빈국이었다. 한때 국방예산의 72.4%를 미국에 의존해 원조의 권부 유송(USON, 주한미국경제협조처)에는 수백 명의 미국인이 상주하면서 가난한 신생국의 돈줄을 관리했다. 국민의 민주화 열정과 기업가들의 헌신 덕분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유일한 국가이다.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의 역사적 기억이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강의 기적’에 원동력이 된 제조업 및 산업화 모델은 큰 역할을 해왔다. 수출을 중시한 결과 대외개방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민간 기업의 성장이나 ‘잘살아 보세’의 새마을 운동 전개, 외환을 벌기 위한 근로자의 희생, 어머니들의 근면·절약정신·교육·남편과 자식의 성공을 위한 희생정신이 있었다. 동서 냉전을 마치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한국은 고속의 경제성장으로 선진경제를 달성하였다. 그 후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급상승하고 있다. 한국이 성공한 비결은 TV·조선·자동차 등을 수출하는 ‘수출주도 산업화’, 원가 이하로 수출하는 ‘적자 수출’ 전략, 도로·교통 등 인프라를 조성하는데 ‘최저가 낙찰제’, ‘빨리 빨리 문화’라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김태유, 한국의 시간, 2021. 참조
하지만 일제강점기 및 근대화·경제발전의 과정에서 특히 철강과 조선, 전자 등 주력사업은 일본의 산업정책·각종법령·시스템을 모방하고 학습했다.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휴유증을 극보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통해 자기성찰도 필요하다.
(4) 그리고 일본에 있어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을 마친 직후 미국(GHQ)은 패망국 일본의 식민지를 접수하기 위해 나섰다. 일본인은 전시체제에 동원되었고, 극심한 전쟁피해를 입었다. 전사자가 270만 명이었다. 미국 점령 초기에 강력하게 일본에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는데 집중했다. 통치의 편의로 전쟁의 최종 결정권자인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면서 군국주의의 뿌리 제거를 위한 많은 정책에 혼선이 잇달았다. 미국은 강력한 후견 역할을 통한 일본의 점령 종료는 ‘역코스’라는 극적인 방향전환사태가 일어나 미일 안보체제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일본은 1949년 중국의 공산화, 한반도에서의 1950년 6·25라는 ‘한국전쟁의 특수’(特需)를 얻었다. 미국은 군대에 보급하기 위하여 무기를 제외한 모든 물자를 끝도 없이 발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납품을 받으면 ‘달러’로 대금을 지급했다(35억 2,700만 달러).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이러한 한국전쟁 특수(‘하늘의 도우심’)로 그 당시 일본의 폐허가 되었던 경제상황에서 경제를 재건하는데 최상의 경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일본의 경제성장의 기반과 경제성장의 모델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나아가 아시아 자유주의 경제의 견인차로 극적인 경제발전의 성과를 이루었다. 사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고도 지정학적 위치와 냉전, 미국의 일본 우선정책으로 제도적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행운과 기회를 얻었다. 일본은 혼만 남기고 다 바꾸는 ‘화혼양재’(和魂洋才) 일본 근대화의 부국강병을 위한 구호로서 합리적 취사선택으로 서양의 기술만을 선택하는 태도이었다. 이는 압축적 근대화의 휴유증으로 나타나지만, 일본 고유의 전통·문화·정체성의 핵심이다. 선택적 수용을 통해 후발주자의 이익(시간·비용)을 보았다.
의 정신에 따라 과학기술과 함께 국가제도를 혁신해 성공했다. 사실 한국전쟁은 일본의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도요타는 차량의 대량주문의 특수(신풍)로 설비 근대화 및 경영합리화에 집중 투자해 새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철강업과 조선업도 대호황을 누렸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탈아입구론(脫亞入口論) 일본은 서양 문명국(영국·독일·미국)과 진퇴를 함께 조선을 지나 중국을 침략·병합해 식민지로 지배하겠다는 선민의식의 제국주의 선언이다.
, 제국주의 과거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광기), 계속되는 냉전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지렛대로 삼아 경제를 일으켰다. 또한 차별화된 신민주주의, 고도 경제성장의 기적, 거품경제, 군사적인 부담 해소와 다양한 기술 제공, 동남아시아의 원재료 자원과 일본 공업력의 결합, 전쟁 배상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은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68년에는 세계 2위의 자본주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1970년대는 도요타, 혼다, 소니, 교세라, 파나소닉, 캐논 등의 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해 간 시기였다(섬유, 조선, 철강, 라디오, 컬러TV, 토목장비, 영화, 기계 공구, 워크맨, 카메라, 전자계산기, 시계, 필림, 팩스기계, 프린터, 복사기, 피아노, 굴착기, 오토바이, 자동차, 컴퓨터산업, 반도체 등). 1970년 중반 이후 경제대국으로 부상되어 ‘일본 주식회사’론이 유행했고, 관민일체의 일본선단이었다. 기업은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의 특징이 있었다. 1980년대는 버블의 형성으로 인해 일본의 수출이 더욱 늘어난 시기로, 이는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 유지되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었다.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산업체제의 전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도시화에서 교외화로의 변화까지 나타났다.
한편, 미일 경제전쟁으로 세계적인 금융시스템을 장악한 미국은 1985년 달러화 강세의 시정 조치인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금융)의 기를 꺾었다. 미국의 강요로 체결한 플라자 합의로 단기간에 환율이 2배로 뛰었다. 이는 일본 경제침체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자 재앙이었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제2의 페리 굴욕’)으로 반도체(산업)의 덤핑 수출을 막았다. 이러한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수출이 감소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지만, 부동산 및 주가는 상승했다. 1990년 말부터 일본의 ‘버블경제’는 일본 정부의 규제 강화로 인해 부동산과 주식이 폭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경제현상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내수가 줄어들고(소비세 3%→5% 인상), 기업의 수익성도 나빠지면서 부실채권의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자 일본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줄이고 해외의 자금 등을 환수하기 시작했다. 그 후 기업과 개인의 파산은 늘어났고, 은행의 연쇄 도산까지 있었다.
1990년대 말의 거품경제 붕괴 후부터 ‘잃어버린 세대’(어정쩡하게 살아가는 불행한 세대)의 출현, 불경기의 장기화, 신자유주의의 도래, 고령화, 디플레이션, 대량의 불량채권 처리, 고용 불안의 확대, 호송선단 방식의 금융시스템의 와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소련, 중국, 일본에 대한 세계 패권을 장악해 왔다. 그런데 그 후 일본의 경우는 ‘경제력’으로 미국을 추격했다. 일본은 1980년대 공작기계, 반도체, 가전,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매미 무역 흑자를 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대일 적자 규모를 감소하기 위해 일본에 대한 무역 전쟁에 돌입했고, 1985년 미국 뉴욕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를 대폭 인상하는데 성공했다. 엔고로 일본 기업들은 수출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반면, 미국 기업은 상황이 크게 호전됐다. 반면에, 플라자 합의 당시 일본의 GDP(국내총생산)는 미국의 32% 수준이었고, 1995년에는 70%선까지 상승했다. 엔고로 큰 타격을 입은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부동산 거품 붕괴까지 겹치면서 ‘잃어버린 20년 내지 30년’이라는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2020년 일본 GDP는 4조9000억 달러로 미국 20조9000억 달러의 23% 수준이었다. 여전히 미국의 교육, 과학기술, 군사, 달러 패권 등에 우월함을 넘기는 어렵다.
, 제조업 중심의 1940년 체제론의 생산자 우선주의와 경쟁부정 등이 있었다. 2000년 초에는 일본 경기가 좋아지면서 장기 불황 탈출의 기회로 보였지만,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국가는 다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기존 회사시스템이 무너졌다. 성과주의가 대세로 바쁜 각자도생의 저성장시대가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일본 원전이 폐쇄되면서 일본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2012년 아베 신조 내각의 아베노믹스 등 다양한 정책으로 2013년부터는 주식 상승 등 일본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2018년까지 성장했다. 2019년 소비세율의 인상(8%→10%)을 단행했다.
(5) 다른 한편 한국은 8.15해방 → 정부 수립 → 6.25전쟁 → 산업화 → 한강의 기적 → 그리고 민주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역사 속에서 1987년 6월 민주화 체제의 성취로 권위적 군부정치가 종식되어 대통령 직선제 쟁취, 문민정부로의 전환, 마침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졌다. 1987년 체제는 권위적인 군부와 관료 중심의 체제가 해체되고 민주화 정부가 들어섰다. 그 후 냉전 종결(1989), OECD 가입(1996),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통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극복(1998), 첫 남북 정상회담(2000),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2002)등과 같이 대내외 환경변화 요인은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한편, 역사는 반복 중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증폭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지속된 측면도 있다.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한반도에 대한 외국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그 후 한국은 경제 성장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졌다. 지난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9월 리먼 브러더스 등 글로벌 투자회사가 연이어 파산하면서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터지고 국내 경기도 요동쳤다. 하지만 그 해 10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라는 적극적인 초동 대처로 시국을 전환했다. 이러한 2008년 리먼 쇼크에서 신속히 경제를 회복한 후,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에서 의장국으로 개최했던 G20 정상회의의 역사적 사명, 공적(국제) 개발원조(ODA) 수원국으로서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어 공여국(供與國)으로 지구촌 문제 해결에 참여하기 위해 공적 개발원조 사업을 시작했고, 2010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0월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해 개도국에 허용되는 특혜를 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국력을 신장시킴에 따라 존재감이 커져서 경제 ‘선진국’이 되었다.
(6) 한일간의 정치 역사의 흐름을 돌이켜 보면, 일본은 1993년에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과정 강제성과 일본 정부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1937- ) 모시 요시로 정권의 외무장관, 미야자와 기이치 정권의 내각 관방장관, 사회당 무라야마 도미이치 연립 정권의 부총리, 2003-2009년 일본 헌정 사상 최장의 중의원 의장을 역임한 자민당의 유명한 정치인.
담화’를, 1995년에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공식 사과와 반성의 뜻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1924- ) 1948년 이래 일본 사회당이 배출한 처음이자 유일한 (자민당과 연립정부 구성) 내각 총리대신. 8개월 재임기간 중 1930년대 제국주의 일본이 저질렀던 일에 대해 정부를 대변해 공식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헸다. 별도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아시아 여성기금)을 설립·운영했다.
를 각각 발표했다. 또한 1998년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망언’ 속에서도 1998년 10월 8일 한일간 우호적 파트너 쉽을 선언한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게이조 총리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惠三)(1937-2000) 총리는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했다. (그는 2년의 총리를 못채우고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경색을 일으킨 후 총리직을 사임한 몇 주 후 사망했다.).
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주된 내용은 양국의 우호협력 결의, 각료 간담회 설치, 대북 햇볕정책 지지, 다자간 경제협력 촉진, 한국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청소년 교류확대 등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 발전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를 해금(解禁)하거나 그에 이른 한류로 한일 관계를 개선했다. 열린 지도자의 리더쉽과 활발한 민간 교류가 핵심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시 일본이 지원한 일,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2002) 등 수년간 양국은 ‘미래 지향’의 매우 좋은 시절이었다. 한일의 전략적 이해와 판단이 일치해 2000년대 한일관계는 황금기가 도래하였다.
그 후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5월 일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불신과 대립이 초래한 역사 인식의 한계가 부상하고 있다. 한일 정부간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독도 영유권(다케시마(竹島)의 날 조례 제정, 2005), 일본은 영토분쟁으로 한국과 독도(다케시마, 리앙쿠르 암초) 영유권 분쟁, 중국(타이완)과 센카구열도(댜오위다오, 釣魚島), 러시아와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가 다투어지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도쿄 중심에 있는 커다란 신토(神道) 사당으로 국체(전전 천황 중심의 국가체제) 이데올로기를 떠받드는 정신적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포함해 일본을 위해 죽은 사람의 위패(1978년 도조 히데키를 포함해 14명의 A급 전범 위패를 옮겨옴)가 보관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일본의 문화적 유산(조국과 역사)을 복잡한 심경없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R. 태가트 머피(윤영수/박경환 옮김), 일본의 굴레, 글항아리, 2021, 481-487면).
참배, 일본군 위안부, 그 밖에 재한 피폭자, 재사할린 한국인의 개인청구권을 한국 법원에 제소했다. 또한 조달청은 지적 주권을 위해 일제 강점기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에 대한 창씨개명(1939)한 ‘4자 성명’을 공적장부에서 지우고, 국유화 사업을 하고 있다(여의도 면적 1.5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일본 전범 기업의 자산 강제 매각 절차), 그 전에 일본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호협정)를 연장하거나, 한국인 비자발급 제한, 금융제재 등 보복조치도 검토했다.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 규제,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위협비행 및 한국 해군의 (사격통제) 레이더 조준 사태, 일본발(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태평양 방출 문제, 한일 시민단체들은 각각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개최했다. 별도로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일본의 제소는 실효성이 낮고, 국제기구인 IAEA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아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코로나 감염병 협력 등 한일 정치·경제·사회 문제는 현재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다.
(7) 21세기 현재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한때 일본과 관계를 단순하게 선악보다 더 객관적으로 봤고, 일본도 건설적인 관계회복을 환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근자에는 양국의 신뢰관계가 후퇴한 것 같다. 의식적으로 공동 관심사를 공론화하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일본을 잘 안다는 함정에 빠져있다. 그런데 일본 사회는 과거사를 기본적으로 사과했으며, 전후 세대의 사죄는 지나치다는 의식이 있다. 일본은 전쟁 책임국이지만 원폭의 최대 피해국 의식도 있다. 이러한 양국의 상이한 정치와 경제·안보·문화 수준에서 양국은 비즈니스 관계가 주류로 활발한 교류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양국의 지도자들은 국민과 갈등으로 고통스런 통치는 피하고, 과거사의 협상과정에서 현재와 미래 관계의 파탄보다는 상호 필요한 국익을 교환하는 디테일한 협상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양국의 역사적 갈등으로 과거사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만드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먼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국제적인 여성인권 문제로 한일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기반한 난제이다. 심규선, 위안부 운동-성역에서 광장으로, 나남, 2021. 참조. ; 최근 마크 램지어 교수(하버드대 로스쿨)의 ‘태평양 전쟁 중 성(性)계약’의 논문이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다. 쟁점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의한 일본 국가의 개입, 강제 동원, 인신매매, 성노예 규정에 대한 거부, 특히 “위안부 여성이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과 동의에 따른 계약으로 높은 임금을 벌려고 매춘하였다”고 주장한다(박명림,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중앙일보 2021.3.22. 25면).
해방후 70년이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에 한일간 2014~2015년 치열한 외교 협상을 통해 2015년 12월 28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 ‘한·일 위안부 합의’ 이것은 한국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과 교섭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장기간 외교 협상을 거친 후의 산물이었다.
의 당시에 일본 외무상이 아베 총리의 이름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발표하였다(그 후 위안부 지원재단-‘화해치유재단’(2016.7.-2018.11)을 설립·운영해 피해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10억엔(약 110억원) 출연금(일본 정부예산)이 확보돼 99명이 수령함). 일본은 인권문제로서 일본 정부에 의한 정치적 해결의 시도로서 1995년 7월 ‘아시아 여성기금’(피해자 200만엔 위로금(국민모금으로 충당)과 300만엔의 의료지원금(정부 예산으로 충당)을 건넸다. 한국은 이를 거부하고 대일투쟁에 나섰다. 일본 법원을 통한 소송(3건 모두 패소), 한일 정부간 외교적 타협(2015.12.28. 합의)이 있었다. 그후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후 30년이 경과한 2021년 국내에서 상반된 하급심 위안부 판결이 있었다.
이러한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이후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커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위기로까지 확산되었다. 그 이면에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지정학적 충격이 몰고 온 동아시아의 ‘신냉전화’의 기류도 있었다.
그리고 2017년 12월 28일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평창겨울(평화)올림픽에 막판 참석한 아베 총리와 한일 약식 정상회담(2018.2)에서는 상호 감정의 골만 악화시켰다. 그 후 뉴욕의 한일 정상회담(2018.11)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이견이 표출되었다. 일본은 여성 인권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 한국측에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달라’고 요구했다. 역사는 기억의 싸움이고, 기억은 기록을 기초로 한다. 사실(성착취가 관 주도로 행해진 점)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 2010년대 이후 한일관계의 영향으로 ‘일본 남’과 ‘한국 여’의 커플 수는 감소 추세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한국이 일본과 대등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일본 남성이 가졌던 선진국 후광이 떨어졌고, 아베 총리가 2010년 이후 장기간 집권해 혐한(嫌韓)문화가 강화되었다. 혐한은 주로 일본 남성이 주도한 영향,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각종 불안감 등의 영향도 있다. 이에 일본인 남편수는 1818건(1995), 3423건(2005), 808건(2015), 135건(2020)의 변동이 컸으나, 일본 며느리는 1193건(2010), 903건(2019)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역사적 사실인데, 정치·외교상 레토릭으로 전락된 채 양국은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
또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이다. 드디어 2018년 10월 18일 대법원(전원합의체)은 ‘(일본 전범기업인) 일본제철(판결 당시 신일철주금)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2005년 8월 26일 노무현 정부시 ‘민간 공동위원회’는 한일간 ‘반인도적 불법행위’의 범위로 위안부, 사할린 잔류 한국인, 원폭 피해 등의 사실상 3개 과제로 한정했었다.
인 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위자료)으로서 강제징용(동원) 피해자(징용공, 4명)에게 1인당 1억 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미국의 경우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후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 내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미국 시민권자 포함) 약 12만 명을 1942년~1946년 강제수용소에 억류했다. 이 사건에 대하여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고, 1990년 민권자유법(Civil Lieberries Act)에 서명하면서 11만 명 이상의 피해자 후손들에게 대통령의 사과 친서와 1인당 2만 달러 정도의 국가배상을 제공했다(12억 5,000만 달러).
일본 정부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국교 정상화의 기초가 된 국제조약)에 비추어 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판결은 피해 당사자를 구제하고 법원 판단을 존중해야 하지만, 양국의 갈등을 고착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최대 쟁점이 되었다. 그 후 법원은 피해자들의 일본제철에 대한 한국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했다. 이러한 한일간의 파국의 최대 뇌관은 일본 기업의 강제매각한 한국 내 자산의 ‘현금화 문제’였다. 이것은 일본에서는 사법부가 행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판결을 하기가 어렵기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일본 측은 한국 법원이 진행 중인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조치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일본도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한국 측이 제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한국 법원의 판단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측은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워 사법부 판단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국을 미래 담론이 사라진 과거 회귀국가로 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도 평가한다.
위의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경제 보복 차원에서 일본의 외교협의와 중재 요청 등 문제 해결과 관련한 요청을 거부하자,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2019년 8월 한국을 신뢰관계 훼손, 수출통제제도 미흡 등을 이유로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3개 물질의 수출규제를 강화하고,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관리 ‘화이트국가’(백색국가, 우대 조치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경제보복(경제전쟁)을 조치하자, 한국도 2019년 9월 맞대응 조치를 취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동아시아의 한일관계에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ⅰ)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멈추고, (ⅱ) 한국은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절차를 정지하는 ‘현상동결 협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아베)측은 거부했다.
그리고 양국은 2019년 8월-11월 한미일 지역안보 협력의 상징으로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줄 수 있는 한일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비밀정보 포괄보호 협정)의 연장 거부의 논란 중에 연장했다. 미국은 동아시아(새 글로벌 전략) 정책의 핵심으로 안보위협인 중국·러시아·북한의 견제를 위해 한일 협력에 기초한 한미일 3각 연대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협정 기능을 보다 선명하게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사실 한국은 후속 조치로 딜레마에 빠져 있고, 일본은 한국의 경계에 신경을 별로 안 썼다.
나아가 한국은 일본 제품(자동차, 맥주 등)의 불매운동 및 일본 여행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일 갈등의 맞보복의 충격파가 연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보도를 보면, 역사적으로 일본의 피해자 의식은 심화되고, 젊은 세대는 이미 사과 피로증과 화해에 대한 체념으로 신뢰가 크게 떨어졌고, 혐한과 반한이 팽배하며 친한파가 무력화되는 현실에 아쉬움이 크다. 이러한 한국은 반일 감정과 응어리로 일본내 혐한 감정에 편승해 대치하며 타협점이 없는 사태로 악화되었다. 현실적으로 일본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배려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8)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한일 기업은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에 공동 참여해 상호 의존하는 관계이다. 이에 양국의 미래 지향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생존하려면 기업의 산업 경쟁력 코로나19 내수 확대로 경제 성장률을 방어하는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국의 경우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유엔산업개발기구의 ‘세계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 2018년 경제지표 분석)에서 한국은 152개국 중에서 독일·중국에 이어 3위로 선방하고 수출을 빠르게 늘렸다. 한국 경제의 주력업종 대부분이 글로벌 공급망에 연결되어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 공급망 재편 가능성을 검토하고 수출시장 다변화, 기업활력 제고 등이 필요하다(산업연구원, “한국 제조업 경쟁력, 코로나19 경제위기의 버팀목”, 2021).
과 경제력의 강화가 불가피하며, 경제 협력도 필요하다. 여전히 한국은 일본의 기초산업과 과학기술에서 격차가 있다. 이에 무역 갈등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상호간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사안별로 분리해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오로지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발판으로 국민 총생산 600조엔 고지를 향해 질주해갔다.
다른 차원의 미래 대비책으로 2018년 발효된 지역협정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회원국은 일본, 멕시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페루, 칠레,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11개국이다(한국과 FTA 미체결국은 일본과 멕시코가 있음). 영국과 중국은 가입 신청 중이고, 미국은 국내 사정을 미가입하고 있다. 주로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국영기업 등 새로운 통상 관련 분야에 대한 국제규범을 도입했다.
에 ’누적원산지 규정‘ 등의 이유로 가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3년 개시한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은 농산물시장 개방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로 중단되었다. 이를 통해 한일관계 개선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째든 역사의 프리즘을 통해 한국 광복 76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56년이 되었다. 그 동안 양국은 전선을 역사 갈등에서 외교·통상·경제보복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2017년 5월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일관계의 흐름을 과거 청산과 사죄, 보상 요구로 ‘강경→출돌→유화→혼돈’으로 요약된다. 지난 2020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삼일절 연설에서 “함께 (코로나 등) 위기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노력하자”의 화해 제스처에 이어, 2021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건설적, 미래 지향적인 관계 복원이 필요’하며, ‘일본은 역사적, 지리적,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근접 국가이자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동 협력의 동반자’라고 밝혔다. 이는 종전의 반일 정서를 부추기는 한국 정부 태도와 달라진 자기부정적 입장 내지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9) 최근 한국 정부는 지나친 대일 자신감으로 한일관계의 악화를 방치하다가 “항상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사실 양국 정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움직이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배상 판결 문제의 해소’는 양국간 합의를 통한 피해자들의 성숙된 협의가 중요하다. 정부는 사법부 판결 존중과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속에 외교의 영역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서 활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로서는 일본 정부 및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유보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일 기본조약에 대한 양국의 실용적인 대응책을 상호간에 준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기초로 양국에게 환경 정비도 하면서 끈기 있게 해결해 나가려는 타협·협력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일관계의 회복은 차기 정부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정말로 양국 간의 점철된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면, 큰 틀에서 평상시의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해야지만, 국가 차원의 어려운 시기에 상호간에 큰 힘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선제적인 최고의 리스크 관리법이다. 양국은 필요할 때만 찾는 관계가 아닌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양국간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거나, 우선 국내에서 논의해 해법을 도출한 후에 이를 일본에 제안하는 식의 책임감 있는 태도도 필요하다. 정말이지 한일관계의 악화는 비대칭적으로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해왔다. 양국은 서로 민감한 감정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나리카와 아야, 사랑의 불시착, 니쥬 돌풍에 4차 한류 붐, 한국 선 잘 몰라, 중앙SUNDAY, 2020.12.12.-13, 27면(한국이 일본내 한류 붐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양국의 국민성 대비로 일본인은 조용히 참지만, 한번 화나면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반면에, 한국인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화해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한번 선을 넘은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다시 안보지만, 한국인은 서로 막말한 다음 날에도 술잔으로 화해하는 경향이다. 언뜻 보면 양국은 유사한 부분이 많은 듯하지만, 사고방식이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만나서 한잔하면 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했다면 양국의 관계 개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양국의 원상회복이나 정상화를 위한 ‘균형점’을 찾는 해법은 어려운 과제이다. 과거사 문제의 해결은 미래의 대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적어진다. 어찌보면 일본도 자학사관에 기초해 과거사를 겸손한 자세로 임하고 적절한 역할을 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때가 되면 양국은 냉정하게 사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양국의 일반 상식이 어떠한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찍이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동양 문화의 뿌리는 체면의 상실을 ‘수치심’(羞恥心)이라고 말했다.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요체가 아닌가?
집단주의 문화로 한국은 가족형 집단주의 성향(혈연·지연·학연)이 강하다. 이것은 염치(廉恥), 즉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수치심)을 아는 마음으로 아량을 베풀 줄 아는 ‘눈치 문화’에 기초했다면, 일본은 조직형 집단주의 성향(회사·학교)이 강하다. 이에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매뉴얼 시스템’과 개인의 잘못으로 전체 집단에 민폐(めいわく, 에이와쿠)를 끼치는 행위를 매우 수치스러워하는 ‘수치문화’(羞恥文化)에 기초해 세워진 국가이다. 일본의 수치문화는 비슷한 체험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질성이 강한 사회였다. 이에 집단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부방침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하기에, 국민들이 순응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매뉴얼 문화는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의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폭발 후에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가 변화한다고 전망된다.
또한 2020년 이후 코로나19 펜데믹과 관련해 수치문화는 초기에 의료붕괴를 막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결국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며 2020년 7월에 개최하려던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본은 경제대국인데 코로나 대처가 왜 엉망일까? 아베 노마스크, 검사 키트와 선별진료소의 부족, 보건소의 부족, 의료체계의 부실, 공공의료 체계의 붕괴가 있었다. 이번 올림픽 개최는 세계 선수들에게 인생과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반면에 세계가 부러워했던 한국의 K-방역 성공은 대형병원들의 잘 갖춰진 방역시스템,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제도와 정보통신망, 우수한 의료진의 헌신 및 자원봉사, 성숙한 시민의식 수준(드라이브 스루, 의료보험카드 번호를 통한 요일별 마스크 판매, 감염병 진단키트)에서 나타난 한국 민주주의 결과물이었다.
(10) 한국은 이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아 선진국으로서 선도국가로 가야만 한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가깝고 먼 일본’이 ‘멀고도 먼 일본’이 됐지만, 옆집 국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일은 유럽과는 달리 종교, 문화, 정치체계, 경제 수준 등에서 상이하고, 더 나아가 지정학적 입지의 차이에 갈등의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양국의 외모가 비슷해 깜짝 놀라면서도 편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한일간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다르다. 일본의 문화적 특성으로 자신들의 분수에 맞는 지위를 갖고 그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중시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본심(혼네, 本音)을 명확하게 내어놓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단체의 의견을 따른 경향이 있다(다테마에, 建前).
결국 양국은 상이한 인식을 전재로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편이 좋다. 일본의 타인에 대한 ‘민폐’가 되지 않도록 행동을 자제하는 배려심과 공중도덕의 생활화는 일상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공공선의 출발이다. 하지만 지난 일본의 30년 역사(平成)는 ‘실패와 충격으로 점철된 역사’였다고 평가한다. 격차사회(2006), 넷카페난민(2007), 무연사회(2010), 블랙기업(2013), 간병살인(2017) 등 신조어가 일본 사회 분위기를 드러냈다. 양국에 문화의 차이나 국민감정의 이해를 반면교사로서 일본 사회도 경제적으로 계층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고, 미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먼저 일본의 중장년층은 옛날의 한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세대이다. 이들은 당시 한국이 약소국으로 일본과는 비교해 취약한 존재로서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 및 장기불황 전까지는 한국의 요구에 정치·경제적으로 수용할만한 여유가 있었다. 이것은 양국간 국교 정상화 이후에 한미일 협력의 기본 구도를 유지하고,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배려해 왔고, 한국의 경제발전을 도와주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또한 일본의 주택 가격 장기 침체의 원인은 고령화·저출산, 주택 수급의 불일치, 정책 실패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일본은 공급 폭탄이 가격 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인의 신앙이라고 볼 정도로 ‘신축’(新築)을 선호하는 것은 지진(地震)이 잦은 특수성에 기인한다. 일본은 제로금리 상황에서 매년 30~40만 가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왔다. 한편, 비자의 발급을 완화하는 등과 같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인구 감소를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완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코로나19 펜데믹에 따른 장기간의 경기 불황 이후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이 중단되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로 인해 인구의 감소, 빈집의 증가 등 여전히 주택 소유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 반면에 한국은 주택 재고가 부족한 데다 지나친 부동산 정책의 규제로 일본과 같이 집값이 급락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조선일보 2021.2.25. A34 참조.

그리고 일본은 2010년 이후 중장년층 남성의 ‘고독사’(타인과 관계 단절이나 소통 공백으로 홀로 죽음을 맞는 것)와 2010년대 전후 취업 빙하기에 청년층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가 부각됐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고독사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일본은 고독사를 줄이기 위해 유형별, 제공 주체별로 세밀한 돌봄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그 후 2021년 2월 내각에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설치했다. 한국도 2000년대 이후 고령사회에 진입해 독거노인 등 고령층,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우울증·무기력을 동반한 심리적 고립 위험에 노출된 은둔형 외톨이의 중장년·청년층의 고독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고독사예방법’ 제정(2021.4)). 결국 고용문제이면서 복지, 교육, 주거, 문화의 문제이다. 최근 일본 대학가에 스타트 업 붐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해 ‘코로나 패전’의 위기를 겪으면서 교육·의료·행정 분야의 혁신, 기업 경영층의 디지털화를 위해 스타트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즉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을 위한 지원 패키지 프로그램(1조 2,300억원)’을 통해 정부가 직접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해 서로 연계시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11) 한일 양국은 최근 문화 분야에서는 선별과 여과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선린우호관계를 꾸준히 유지 발전시켜왔다. 특히 한일 청년들은 음악·드라마·영화·만화·애니메이션·소설·관광 등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고 있다. 일본에서 한류 흐름은 영화 및 드라마에서는 쉬리, 겨울연가(2003), 대장금, 내 머리속의 지우개, ‘기생충’(2020, 아카데미상 4관왕, 헬조선, 반지하의 가족) 등이 있다. ‘겨울연가’의 배용준 열풍(1차 한류, 2003-2004, 冬のソナタ, 배용준(욘사마), 최지우(지우히메), 박용하), 동방신기·카라(KARA)·소녀시대(NHK 연말 가요제인 홍백가합전 출연)(2차 한류, 2010-2011), BTS(방탄소년단)·토와이스(TWICE, 홍백가합전 출연)(3차 한류, 2017)

반면에 한국에서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는 ‘러브레터’, ‘고독한 미식가’, ‘너의 이름은’, ‘어느 가족’(연금 사기사건) 등이 있다. 최근에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김미례 감독)은 1970년대 일본 미찌비시중공업 폭파 사건 등 연쇄 기업 폭파 사건을 일으킨 일본 좌익 그룹이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배나 노동착취를 비판했다. 하지만, 과격한 행동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4차 한류(사회의 현상화)의 진행으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스’, ‘김비서가 왜 그럴까’ 및 소니뮤직과 손잡은 JYP(박진영 프로듀서)의 일본인 글로벌 걸 그룹 ‘니쥬’(NiziU)가 엄청난 인기란다. ‘82년생 김지영’,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한국·페미니스트·일본’, ‘덕혜옹주(도쿠에 히메(德惠姬))’ 등 한국 젊은 여성 작가가 쓴 책도 화제를 모았다. 일본 워킹맘 특파원이 쓴 ‘한국 아버지’ 이중섭(李重燮)에 관한 ‘돌아오지 않는 강’이 일본의 평단을 달구었다. 최근에는 이병헌 인터뷰, 한류 드라마 소개, 니쥬 표지 사진, JYP(JY Park) 소개 등이 일본 매체에 실렸다. 도쿄의 신쥬쿠의 신오쿠보에 ‘코리아 타운’이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양국 관계는 부침과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이젠 영화나 드라마 등의 한류가 일상화되고 있다. 양국의 마니아들은 문화적 관점에서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이 큰 나라로 라이벌보다는 상호보완적 상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내수 시장 집중하여 정부 주도 프로젝트, 정치적 요소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를 띠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 영향을 받았지만, 글로벌리즘(세계화 추구)에서 격차가 나고 있다. 양국의 문화는 선린우호 관계를 위한 지속적인 문화교류 속에서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오해하는 부분도 많다. 역사적으로 문화사절단인 ‘조선통신사’(1429-1811, 총 20회)는 양국의 문물은 전달하는 창구를 역할을 했다. 또한 양국간에는 상이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ⅰ) 한국에만 있는 것[참외(cf. 마쿠와우리), 깻잎, 김치냉장고, 과속방지턱, 한복, 온돌, 다락, 쇠로 만든 수저, 고속도로의 버스전용차로], (ⅱ) 일본에만 있는 것[핫사쿠(八朔, cf. 천혜향), 시소(紫蘇, 차조기), 우메보시(梅干し), 아마도, 기모노, 유카타, 다다미 문화, 고타스, 빙수(팥빙수), 동전지갑, 개인번호카드(2016), 택시의 자동문, 고속도로의 오토바이].
양국은 청소년 등 민간인의 베이스로 교류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열린 문화로 가는 것은 연결사회의 인프라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의 뉴노멀 시대에 K콘텐츠가 생환해야 한다. 결국 양국의 대중문화는 정치적 다양성에서 상이함을 존중·공존하는 문화와 구조가 필요하다.

(12) 양국은 목전의 짧은 이해관계를 넘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상생하는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펜데믹은 일상화되고, 양국 관계는 해방 이후 최악이라 할 정도의 분위기이다. 양국 모두 코로나 백신 접종을 통한 경제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의 K-방역은 건강보험시스템, 행정력, 의료진의 헌신, 국민의 협조와 인내가 합쳐진 결과로 우수성을 띠웠다. 하지만 코로나 일상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또한 일본은 집단면역을 위한 백신 접종이 일본의 내부 시스템에 발목이 잡혀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지체되고 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개최 여부는 악화일로인 부정적인 추세이다. 양국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지정학적 변화와 정치·경제적 확실성이 애매한 시기에 특별한 도전 과제들에 대하여 공동인식을 공유하면서 인적·제도적 신뢰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은 공통된 생각과 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

최근에 양국의 갈등관계가 누적되면서 회복할 수 없는 ‘중증 다중 복합골절’로 진단하기도 한다. 잦은 정책의 실패로 큰 기대는 큰 실망이 되었다. 향후 한미일의 평화적인 삼각 공조의 복원을 위해서도 한일관계는 매우 중요하기에 여전한 냉각된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양국간의 잠정적 신뢰조차 없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인 스스로는 사회적 질서와 합의를 잘 준수하며 잘 어울리고 있으면서도 왜 이웃국가와 영토분쟁, 역사분쟁 등 계속하는지에 대한 아이러니한 측면도 있다. ‘연대’와 ‘적대’는 동전의 양면이지만,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면서 진정성 있는 행동을 통해 미래의 좋은 모습을 신뢰해야 한다. 양국이 음식점에서 ‘주방장 추천’(오마카세)과 같이 상호 소통·존중·신뢰·협력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서 폭넓은 관점에서 살펴보면, 어려운 양국 문제에 대한 근거없는 희망적 사고에 기반한 오산과 오판을 해서는 안된다. 역사의 공과와 명암의 재평가는 균형된 역사관을 통해 역사의 과오와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보아야 한다. 양국의 복잡한 실타레를 풀면서 개방적이며 과거의 제도와 행동을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 양국의 공통된 과거를 기반으로 소통과 연합을 해야만 미래를 함께 공유할 여지가 많아질 것이다. 현실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 과거에 구속받지 말고 미래 비전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언제나 치밀한 다양한 전략과 조건을 대비하면서 효력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일간 청소년 교류 활성화, 저출산 문제 대응 협력, 한일 국경을 넘는 청년 취업의 제도적 취업 등 공동협력의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영자들은 오랜 가난한 친척처럼 여기며 대했던 ‘한국’을 바다 건너 서쪽의 국가로 두려움과 경탄의 눈길을 돌리고 있다. R. 태가트 머피, 일본의 굴레, 358면.

결국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 회복 요체는 결국 필요한 순간에 치루어야 할 큰 대가보다는 필요한 말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각자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차이를 인정하고 이웃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국은 협력과 공존, 존중을 위해 정교한 비전과 철학, 미래 지향적인 대안,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양국의 정부가 이념, 당파적인 진영논리는 현실 파악을 못해 실책하며, 난제를 미봉책으로 소극적 회피주의에 치우치지 말고 국가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지도자의 미래를 보는 통찰력과 확고한 역사관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배려를 파고들며, 때로는 명분을 주장하며 치밀하고 당당한 실리적 리더쉽, 포용력, 대범함의 회복이 필요하다. 매스컴을 통해 양국 정치 현안이 국민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에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양국의 역사 인식, 환경 지리적 여건, 사회문화적 배경, 언어습관 등의 다양한 요인이 상이함을 인정하고, 공감·존중·화해해야 한다.

2. 최근 한국의 노동법 개정 동향 이승길, 포스트 코로나시대 노사관계·노동법 전환 추진 필요, 키워드 2021, 이데일리, 2020.11, 243-246면 ; 이승길, 노동관계 3법 개정과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단상, FOCUS, 한국공인노무사회, 2021년 4월호. ; 이승길, 노동법상의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방안, 관악사, 2021 ; 고용노동부,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설명 자료 등.

(1) 경 과
제21세기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급변하는 시대에 위기감의 발원지는 기후변화(탄소중립), 디지털 전환(데이터 경제),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에 따른 글로벌 경영환경은 급변화 중이다. 세계의 정치·경제·사회가 다양화·복잡화되었다. 펜데믹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게 되면서 세계경제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국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스마트 팩토리 등의 장밋빛 논의가 활발하였던 시기였다. 현재의 경제 상황은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보다 경제활동을 급격히 위축되었다. 우리 경제는 수출무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위기에 빠지는 것이 우려된다. 뒤처진 국가의 산업 현장은 다양한 문제를 파악해 실태에 따라 적절하게 해결할 능력이나 자원의 한계가 있다.

2017년 5월 정권이 문재인 정부로 교체되면서 노동법 부문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되었다.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핵심적 과제는 노동기본권을 신장하는 노사관계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전 정부의 2대 지침(공정인사지침,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폐지, 불합리한 단체협약 시정지도 개편 등을 단행했다. 하지만 당장은 여야 정당 사이의 의석수의 비등함으로 노동 입법은 더딘 진척이 있었다. 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조정, 산업안전에서 도급업체의 책임 확대와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제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적용범위 확대, 1년 미만 근로자에 퇴직급여 지급 등의 과제 등이 있었다.

그 후 2018년이 되어서 (ⅰ) ‘근로기준법’에서 1주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연장·휴일근로 포함),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주 최대 52시간제 기업 규모·업종별 단계적 적용, (ⅰ) 2018.7 : 300인 이상(9개월 계도기간 부여)(특례업종에서 제외된 300인 이상은 2019.7.부터), (ⅱ) 2020.1. : 50인-299인(1년 계도기간 부여), (ⅲ) 2021.7. : 5-49인. ; 2022년까지 1,800시간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로 임금근로자(상용 5인 이상)의 근로시간이 2017년에는 연간 2,014시간이었으나, 2020년에는 1,952시간으로 감소하였다. 또한 ‘근로시간단축법’(주52시간제)이 2020년 5월 국회사무처 설문조사에서 ‘국민이 뽑은 제20대 국회 좋은 입법’의 ‘사회문화환경 분야’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26개→5개), 관공서 공휴일 민간 의무 적용휴일 도입, 휴일근로수당 지급기준 명시(2018. 2. 28. 국회 통과)([표 1] 참조), 직장내 괴롭힘 방지 등이 제개정되었다. (ⅱ) ‘산재보험법’에서 유족보상연금 수혜범위 확대, 보험급여 수급권 소멸시효 연장,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도입 등이 있었다. (ⅲ)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적용대상 확대, 고객응대 근로자 건강보호,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명시,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금지, 법 위반 사업주의 처벌 강화 등이 있었다. (ⅳ) ‘최저임금법과 그 시행령’에서는 비교대상 임금 산입 범위, 비교대상임금 환상 방법 등이었다. (ⅴ) ‘고용보험법’과 그 시행령에서는 65세 이후 계속 고용자에 대한 실업급여 적용, 건설일용근로자에 대기기간 배제 및 구직급여 수급 요건 완화, 육아휴직 급여 특례의 상한액 인상 등도 개정되었다.
[도표 2] 장시간 근로의 관행 해소를 위한 근로기준법 정비

근로시간 단축
(주68시간→52시간)

?1주를 휴일을 포함한 7일로 명시
?적용 시기

300인 이상
50~299인
5~49인
2018. 7. 1.
2020. 1 .1.
2021. 7. 1.

휴일근무 시
임금가산율

?(8시간 이내 휴일근로) 통상임금의 50%?(8시간 초과 휴일근로) 통상임금의 100%
※ 현행과 동일


특별연장
근로 허용

?(적용대상)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한도) 1주 8시간(총 60시간) 한도
?(시행요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 사유, 기간, 대상근로자 범위 적시
?(적용시기) 2021. 7. 1 ~2022. 12. 31
※ 총 1.5년간 한시적 허용, 이후 재연장 여부 검토(소위 속기록)

공휴일 유급휴일화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신설)
?적용 시기

300인 이상
50~299인
5~49인
2020. 1. 1.
2021. 1 .1.
2022. 1. 1.

?근로자대표 서면합의시 공휴일 갈음, 별도 유급휴일 지정
※ 공휴일 종류는 시행령 위임(근로기준법)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리뷰/한줄평1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43,000
1 4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