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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 아니 있기
000 경유지_ 런던에서 엉망진창 2년 후_ 날씨는 화창했고 모든 게 끔찍했다 001 France_ 하필… 팬티를… Korea_ 아빠의 아빠가 죽었다 002 France_ 여기는 왜 해가 안 지냐 Korea_ 인생은 누군가 일부러 쓴 소설 같다 003 France_ 제발 주목하지 마세요 Korea_ 2년 만에 생긴 동네 친구 004 France_ 프랑스에서 생리대가 필요할 때 Korea_ 인생이 불규칙해서 생리도 불규칙한가 봐 005 France_ 칸 영화제 가서 칸한테 두드려 맞았다 Korea_ 늙어야 할 것 같아 앞머리를 기른다 006 France_ 사실 하나도 잘 지내고 있지 않다 Korea_ 확실히 망했다 지구도 나도 007 France_ 프랑스에서 평범하게 영화관에 간다면 Korea_ 지금은 2020년 설마 스마일은 안 팔겠지 008 France_ 불쌍해 보이면 영화 티켓이 공짜다 Korea_ 나는 지금도 끌려다닌다 009 France_ 한달살기 하러 와서 아무것도 안 하기 Korea_ 걷다보니 전 남친 집이다 010 France_ 프랑스에서 비가 내리면 Korea_ 미움만 가득한 글을 누가 읽어 011 France_ 살다살다 보이스피싱까지 나를 걱정해주더라 Korea_ 그냥 좀 냅두라고요, 성질 더러우니까 012 France_ 누드비치인 줄 모르고 갔습니다만? Korea_ 나는 89만원짜리 시계가 있다 013 France_ 프랑스 남자에게 억지로 차를 얻어 탔다 Korea_ 거기엔 불행만 있을 것이다 014 France_ 나는 늘,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별로인 사람 Korea_ 나는 그냥 우울하고 게으른 뚱땡이일 뿐인데 Intermission_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고 지겹게도 또 생일이 됐다 015 France_ 밤에 프랑스 해변에서 영화를 봤다 Korea_ 절벽을 내려보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016 France_ 영화를 시작한 후엔, 영화만큼 현실이 아름답지 않았다 Korea_ 오지 않아도 좋다, 나도 가지 않을 테니 017 France_ 마리화나??? 하자고????? Korea_ 내 머리카락 어디 갔어? 018 France_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서 Korea_ 집주인 아주머니가 불쑥 김치를 주셨다 019 France_ 소녀들은 명심할 것, 함부로 미안해하지 않을 것 Korea_ 서른셋, 첫사랑에게 연락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 020 France_ 프랑스에서 조용히 도자기를 만들었다 Korea_ 김밥 싸 주는 엄마, 김밥 사주는 엄마 021 France_ 여기 바다 아주 많은 소금, 조금 휙휙, 아이 캔 둥둥 Korea_ 나는 5위 밖이라 5인 이상 집합 금지는 안 된다 022 France_ 이제 여행은 다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됐다 Korea_ 영화관이 다 없어지면 이제 우리 어디서 만나죠? 023 France_ 그림 앞에 서서 펑펑 울고 싶었다 Korea_ 3년 전 그 화가에게 문득 편지를 썼다 024 France_ 칸 영화제가 끝난 후의 칸 Korea_ 나까지 주식 시작했으면 말 다한 거야 025 France_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 Korea_ ‘저기요’를 쉽게 하는 사람 026 France_ 한달살기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Korea_ 친구 안 사귄 이야기 027 France_ 밤비행기를 타면 꼭 창밖을 보세요 Korea_ 여행은 불행해서 떠나는 거잖아요 에필로그_ 라디시옹 실부플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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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거 다 털어 프랑스에 왔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다. 그러나 이렇게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어도 이건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거기 때문에 특별한 순간이 된다. 식당은 한 번 잘 갔으니 두 번째에도 잘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없지만 0보다는 1이 낫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마트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고 싶다.
--- p.53, 「002 프랑스: 여기는 왜 해가 안 지냐」 중에서 졸업작품을 찍기 전, 학교에서 찍으라고 하니까 찍는 거 말고, 남들처럼 그냥 영화가 좋아서 찍는 영화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방학 때 아는 배우 오빠에게 연락해 영화를 찍자고 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하나둘 배우를 모으고, 우리 집에 모여 촬영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한 영화다. (…) 여기 전광판에 태리 씨가 있다. 태리 씨는 그 영화에 출연한 여자배우였다. 연기를 막 시작할 즈음 나와 만났고, 1년 후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캐스팅된 태리 씨는 각종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고, 그 영화로 칸까지 갔다. 그리고, 태리 씨의 ‘감독님’이었던 나는 2년이 지난 후에야 ‘관광객’의 신분으로 칸에 왔다. --- p.94~95, 「005 프랑스: 칸 영화제 가서 칸한테 두드려 맞았다」 중에서 이렇게 소소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사탕이 수백 개나 있는 사탕 가게에서 굳이 누룽지 사탕 하나만 먹어볼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차표를 알아봐서, 파리에 한 번 갔다 올까 싶다. 가까이에 이탈리아도 있고 스위스도 있다. 괜한 욕심인가. 이번 여행에서 나의 목표는 칸 영화제에 가는 것이었고, 개막식에 갔다오고 나니 목표가 없어졌다. 나는 한풀 꺾여 있다. 그래도 오늘 박물관에 영화관에, 문화생활을 하고 나니 조금 생기가 돈다. --- p.114, 「007 프랑스: 프랑스에서 평범하게 영화관에 간다면」 중에서 30대 초반과 중반은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나’가 ‘새로운 나’로 변하는 시기인 것 같다. 원래는 머리숱이 풍성해서 심지어 머리카락이 무거웠던 내가 이제는 휑한 정수리에 검은콩 두유를 먹는 나로 변했다.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이런 식으로 40대가 된다면 그때는 상태가 심각할 것이다. 삭발은 아무래도 힘들겠지. 가발을 써야 할까. 가발도 안 쓰고 삭발도 안 하면 너무 우스꽝스러울까. 만약 애인이 생긴다면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탈모 고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대머리를 만나면 될까. --- p.195, 「014 한국: 나는 그냥 우울하고 게으른 뚱땡이일 뿐인데」 중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결국 영화를 버렸다. 헤어지자고 한 건 나지만 사실상 내가 차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영화랑은 끝을 냈다. 감독이었던 나는 작가가 되었다. 감독으로는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작가로는 일단 돈을 벌 수 있었다. (…) 나는 첫사랑을 못 쓰겠다. 시라면 모를까 글로는 그를 적지 못 하겠다. 그는 왜 자기에게 책을 보냈냐고 묻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물어봤다면 나는 ‘네가 내 첫사랑이니까’ 라는 대답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냥 책을 받아줘서 고마웠다. 그는 지방에 내려가 있다고 했다. - 거기서 뭐 해? - 비행기 몰아. 그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다. - 보통 근황 얘기할 때 비행기 몬다고는 안 하잖아. - 작가라고도 안 하지. 나는 폭죽이 되어 터지고 싶었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쌩쌩 맞고 싶었다. 버스에서 뛰어내려 들판을 달리다 굴러떨어지고 싶었다. --- p.268~272, 「019 한국: 서른셋, 첫사랑에게 연락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 중에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나 되게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내 인생 반짝이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 프랑스에서 쓴 글을 꺼내 읽었다. 달력을 보니 벌써 2년 전이었다. 2년 전의 나는 이런 하루를 보냈구나. 나는 프랑스에 있었구나. 2년 후의 오늘은 이렇구나.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된 글이다. 오늘이 불행해서 가장 행복했던 오늘을 찾아냈다. 2년 전과 2년 후를 번갈아 비교해보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려고 했다. --- p.388, 「027 한국: 여행은 불행해서 떠나는 거잖아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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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쯤은 칸 영화제를 보러 갑니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31세,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고, 처음으로 천만 원 단위의 돈이 생겼다.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진로를 변경했고, 9개월간 보조 작가로 참여했던 드라마가 종영되면서 메인 작가님을 따라 미국을 다녀오고 혼자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기로 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걸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세계에서 하루 숙박비가 가장 비싼 도시라는 프랑스의 ‘칸’ 바로 옆에 있는 마을 ‘앙티베’에서 한 달 동안 살았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 2년이 지났다. 살던 집도 그대로, 직장은 여전히 없고, 오히려 코로나가 기승이다. 여전히 뚱뚱하고, 여전히 가난하며, 여전히 미래가 막막하다. 그래도 가끔은 친구들과 얘기하며, “나 그때 밀라 요보비치 봤어, 칸 영화제 가서 영화 〈공작〉을 보고 배우 황정민도 봤지”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2년 전 프랑스에 있던 서른한 살의 ‘나’와 2년 후 한국에 있는 서른세 살의 ‘나’의 교환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이 기록은 2년 후 서른다섯의 ‘나’가 챙겨야 할 계산서이기도 하다. 프랑스 한달살기 하며 아무것도 안 한 이야기 작가는 프랑스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했다고 표현하지만, 글은 은근 재미있다. 밤의 프랑스 해변에서 영화를 보고, 칸 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난 R 아저씨를 또 만나게 되고, 옆방 친구 인도 아가씨와의 대화, 누드 비치에서 물놀이를 하는 일상이 그리 평범한 일상은 또 아닌 것이다. 나중에 팔고 올 생각으로 중고 자전거를 샀지만 언덕이 많아 자주 타지도 못하고, 심지어 출국 전날 가게에서 안 받아줘서 팔지도 못했다. 너무 아무것도 안 했나 싶어 하루는 도자기를 만들고, 하루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 수업도 들었다. 인종차별도 당해봤고,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분명 벼룩이 있었을) 호텔방에서 자는 경험도 했다. 그러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 친구와 부모와 나라에 대한 생각, 사람과 예의에 대한 생각을 하고 글로 썼다. 작가는 “해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건 아주 작은 귀걸이 하나를 다는 일”이라고 말한다. 머리카락에 다 가려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가끔 사람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길 때 갑자기 나타나 반짝거리는 그런 작은 귀걸이. 사람들은 놀라고 나는 조금 쑥스러워지는 그런 빛나는 귀걸이. ‘프랑스’ 라는 단어와 ‘한달살기’ 라는 단어는 썩 잘 어울린다. 둘다 낭만적이다. 여기에 빛나는 작은 귀걸이까지 얻었다. 행복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불행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일단 지금의 불행에서 벗어나는 게 시급하다. 일단 떠나자. 귀에 걸리는 반짝반짝 작은 귀걸이는 덤이다. 프랑스에서 한 달 동안 살며 외워온 유일한 말은 “라디시옹 실부플레(계산서 주세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