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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불안의 시대 Part 1 젠더전쟁 chapter 1 젠더갈등의 실체 01 이대남의 불안 02 유리바닥과 설거지론 03 독박병역과 여성징병제 04 확증편향과 질소과자 chapter 2 오해와 진실 01 성범죄와 성인지 감수성 02 흉악범죄와 자살 03 임금격차와 여성할당제 04 성평등과 여성가족부 chapter 3 정치권의 놀이 01 20대 GSGS론 02 가짜 페미니스트 03 이대남의 태동과 백래시 04 안산 사태와 언론 Part 2 세대전쟁 chapter 4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01 민주당의 경제관 02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 전쟁 03 부동산 실패와 LH로남불 04 코인과 주식, 그리고 명품 chapter 5 불공정과 내로남불 01 민주당의 공정관 02 기간제 교사와 인국공 사태 03 조국 사태와 586세대 04 생계형 공정 chapter 6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01 민주당과 민족주의 02 북한과 일본, 통일 03 PC(Political Correctness)와 자유주의 04 난민과 동성혼 Epilogue 변화의 바람 기획자의 변 ‘청년정치혁명 시리즈’를 시작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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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대남의 불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젠더갈등이 이대남과 이대녀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대남과 이대녀 모두 성별에 앞서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똑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빼앗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작 가장 큰 기득권을 거머쥔 ‘갑’은 기성세대 어른들, 특히 정치권의 기득권 남성들이다. 을과 을의 갈등에서 웃는 건 갑뿐이다.
--- p.24 나쁜 건 함께 통나무를 짊어지는 양옆의 전우가 아니다. 통나무를 떠넘기고 거드름이나 피우며 관망하는 기득권층이다. 따라서 갈등의 구도부터 뒤집어야 한다. 젠더갈등은 이대남과 이대녀의 대결이 아니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불안을 부추기는 기득권 남성과 청년세대 전체의 대결이다. --- p.26 586세대의 20대를 떠올려 보자. 누구보다 피 끓는 20대를 보낸 그들이다. 지금까지도 20대 당시 학생운동의 경험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고, 그 토대로 기득권을 획득한 게 586세대라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정작 기성세대가 된 지금은 어떤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과거의 거울(지금의 20대)을 보며 자아비판을 자행하고 있다. 그렇게 그들이 젊을 적 비판했던 기성세대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 p.105 문재인 정부의 민주당은 의심할 여지 없는 ‘가해자’였다. 나아가 진보세력을 자처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해온 강성지지층들의 추악한 민낯은, 사회적 약자와 기득권이 절대로 함께할 수 없다는 가설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들 스스로 공범임을 자백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박 전 시장 사건 직후 민주당에 대한 여성의 지지율은 10% 이상 폭락했다. 한편 박 전 시장 자살로 성사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대녀의 15%가 기타 정당에 표를 던졌다는 사실 역시 변화의 발로였다. 기득권 연장을 위해 페미니즘을 이용해온 민주당은 그렇게 청년 남녀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청년들이 보고 겪은 586세대 부모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586세대 역시 촛불 밑에서 공부하고 꼭두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며 천천히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올랐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어떤가. 그저 자포자기 심정이다. 왜? 그런 평범한 삶에 대한 꿈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 p.170 문재인 정부의 공정은 ‘거짓말’이었다. (중략) 공정을 표방한 정책들 역시 갈라치기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을의 것을 뺏어다 을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을과 을의 싸움으로 비화된 게 바로 기간제 교사와 인국공 사태였다. 을과 을이 다투는 사이, 그들은 스펙을 나눠 가지며 자기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냈고 황제휴가 등 온갖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 p.182 PC는 우리말로 ‘정치적 올바름(이하 ‘PC’)’이다. 인종·민족·성·언어·종교 등을 표현할 때 편견이나 차별이 개입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 또는 운동을 뜻한다. 이때 ‘표현’이란 말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나 문구가 될 수도 있다. 더하게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신체적 특성 등도 표현의 범위에 포함된다. 말은 참 좋다.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차별받을 여지가 있는 한두 가지의 약점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만 해도 그렇다. 국민 전체가 황인종이며, 비주류다. 그러니 서로 차별하지 말자는 선언은 나 자신을 위한 선언이기도 하다. ---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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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이대남이 말하는 젠더전쟁과 세대전쟁의 실체
-‘남자가 되지 못한’ 이대남과 ‘어른이 되지 못한’ 이십대 남녀 -젠더전쟁은 ‘을’과 ‘을’의 싸움 -정치권의 기성세대는 젠더갈등을 부추겨 이대남을 정치 세력화에 이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먹고사니즘’부터 실패했다. 체감 청년실업률은 30%에 육박한 상황이며, 직업교육조차 포기한 ‘니트족’은 25%에 달하고,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 청년’도 3%를 넘었다. 8년간 빚이 2배 가까이 늘어 순자산은 35%가 감소했는데, 설상가상 서울의 집값은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 책은 청년들이 마주한 2021년 대한민국의 현실이자, 문재인 정부가 받아든 청년 정책 ‘성적표’다. 한마디로 이대남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한민국 ‘젠더갈등’과 ‘세대갈등’의 현주소를 말한다. 젠더전쟁의 패배로 ‘남자’가 될 기회를 잃어버린 이대남과 세대전쟁의 패배로 ‘어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청년 모두의 이야기이다. Part 1 젠더전쟁 필자 박민영이 말하는 젠더갈등은 기득권층의 정치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가부장제 과도기에서 이대남은 남성성을 상실하고 권리 없는 의무만이 지워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기성세대 남성은 자신들이 가부장제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이대남의 불안에 공감하지 못했다. 저자가 겪은 정치권 역시 이대남의 표를 얻기 위해 그들을 이용했을 뿐, 그들의 절박함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었다.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남자가 되지 못한’ 이대남은 철저히 고립되었다. 그러나 젠더갈등은 이대남과 이대녀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대남과 이대녀 모두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회적 약자이며,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은 ‘을’과 ‘을’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젠더갈등은 질소과자처럼 20%의 진실에 80%의 확대·재생산이 가미된 것이며,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은 ‘오징어게임’처럼 불공정한 을들의 싸움이다. 이 갈등에서 웃는 것은 갑, 기득권 정치세력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여성 친화적 정책은 이대남을 고립시키면서도 이대녀조차 만족시키지 못했고, ‘자칭 페미니스트’였던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문이 일었음에도 그를 두둔하는 세력은 스스로가 ‘가짜 페미니스트’임을 입증했다. 결국, 젠더갈등은 정치권의 권력다툼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Part 2 세대전쟁 필자는 세대전쟁 역시 비판적 시각으로 그 이면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기득권이 진짜 평등을 지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시장의 원리를 부정하고 정부의 역량을 과신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 주도성장’을 이끌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모두 을에 불과하기에 이는 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4년간 늘어난 거라곤 공공부문 일자리가 전부였고,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세금으로 지탱해야 하는 건 바로 우리 청년세대다. 당장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식 세대’이다. 같은 일자리를 두고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청년일 때 투쟁했던 586세는,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청년세대를 괄시한다. 586세대는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며, 1인1표제라는 구도 안에서 표로서 기득권을 지닌다. 청년들이 세대전쟁에서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동산 실패와 LH로남불은 정책이 아닌 ‘정치의 실패’였고, 꿈도 희망도 없는 시대에 청년들은 많은 걸 ‘포기’해야만 했다. 문재인 정부가 말한 공정은 원칙도 절차도 없는 기득권의 공정이었고, 민주당은 북한 친화 정책을 펼치며 일본에만 큰소리치는 ‘방구석 여포’에 불과했다. ‘자칭’ PC(정치적 올바름)주의자들은 포용이 아닌 배척을 일삼고, 불편함을 다시 불편함으로 이끄는 악순환을 낳았다. 필자 박민영은 이대남 당사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이제는 기득권층이 된 586세대의 허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다. 자칫 이대남의 감정적 토로로 비추어질 수 있는 글에 논리가 더해지며 주장이 되었다. 그는 단순히 이대남이 겪고 있는 불안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십대 남녀가 겪고 있는 문제가 조작된 것임을 고발한다. 기성세대의 입을 통해 왜곡되거나 와전된 것이 아닌, 청년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낸다는 데 시사점을 가진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치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으며, 이기적이거나 감정적인 것도 아니다. 기성세대가 그 논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는 갈등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파괴하고, 정치의 모순을 직시하는 시선은 불편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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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의 절규가 세상에 닿을 수 있도록, 그들의 기개가 양껏 펼쳐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창구가 되길 희망한다. 그런데 여기, 절규하는 젊은이가 있다.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난제들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청년 당사자로서 그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젊은이가 있다. 이 책에서는 전쟁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서로 상대방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본다.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는 다른 별 화성(?)에서 온 청년세대의 당사자성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외침으로 시작된 이 청년의 목소리가 청년세대 전체의 정치혁명을 위한 거대한 울림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민상기 (〈원코리아 4.0 혁신포럼〉 공동대표, 전 건국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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