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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손톱 2부 병적인 욕구 3부 미지의 법칙 참고 자료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Laura van den Berg
엄일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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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돌아온 것들과 사투하는
‘최후의 여자’ 클레어의 기기묘묘 쿠바 여행기 “당신은 죽었어, 클레어는 생각했다. 어떻게 그걸 잊은 거야?” 12월의 어느 날, 클레어는 혼자서 쿠바 아바나에 도착한다. 공포영화 연구자였던 남편을 대신해 아바나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원래는 부부가 함께 올 예정이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클레어의 남편 리처드가 오 주 전에 뺑소니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클레어는 공항에서 택시를 탔지만 주소를 잘못 말하는 바람에 두 번이나 엉뚱한 호텔에 갔다가 세번째 시도에 겨우 예약한 호텔에 도착한다. 그래서 그곳을 ‘세번째 호텔’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녀는 남편이 고대했던 좀비 영화 〈레볼루시온 좀비〉의 개막 상영에 갈 생각이었지만, 영화관 앞에 다가서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클레어와 영화관 사이에 투명한 벽이 솟아오른 것처럼 한 발짝도 더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이다. 클레어는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아바나의 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승강기회사의 영업 사원으로서 평소에 출장을 수없이 다녔지만 목적 없이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은 거의 없어서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온다. 어느 박물관 앞에서 발견한, 소름 끼치도록 낯익은 남편의 얼굴로부터. 거리 위에서 죽은 남편과 마주친 순간, 그와 함께 땅속에 묻혀 있던 과거의 유령들이 일제히 깨어나 섬뜩한 눈빛으로 클레어를 돌아본다. 남편과의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겨진 갈등과 의문들, 그리고 애써 억눌렀던 후회와 죄책감. 이제 클레어는 남편을 찾아 생경한 도시를 헤매며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온갖 공포스러운 것들과 사투해야 한다. 남편의 공포영화 논문에 자주 등장했던 ‘최후의 여자(Final Girl)’, 목숨을 건 결전을 벌이고 끝내 살아남는 마지막 여성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 삶과 죽음이 전복된 곳, 끝없는 불확실의 심연 속으로 『세번째 호텔』은 공포물과 여행소설의 토대 위에서 두 장르의 규칙과 문법을 전복하는 방식으로 쓰인 작품이다. 먼저 이 소설을 지배하는 정서는 ‘공포’다. 낯선 장소에서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공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적 구조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세번째 호텔』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죽음’, 즉 중단된 삶이 아니라 ‘삶’, 즉 중단된 죽음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지 않은 것(the undead)이다. 오히려 남편이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세상은 슬픔의 영역일지언정 공포의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이 지닌 확실성이 파괴되어버린 곳, 규칙과 관습이 작동하지 않는 낯선 세상에서 주인공은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의 공포 속으로 추락한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클레어는 자신이 목격한 불가해한 현상의 답을 찾아 아바나의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양자물리학과 내세’라는 세미나를 강연하는 교수를 만나 죽음에 대해,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 교수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클레어의 편협한 시각을 지적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우주의 모든 가능성은 동시에 발생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너무 제한적이어서, 너무나도 제한된 존재라서, 우리의 의식이 그 모든 가능성을 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납작하게 눌러버리는데, 그게 이른바 생(生)이라는 겁니다.” 클레어는 교수의 말을 듣고 어쩌면 자신이 이곳에서 목격한 남편은 그녀가 알던 그 리처드가 아니라 ‘어떤 다른’ 리처드, 수많은 가능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존재하는 그녀 역시 그러한 가능성 중 하나가 아닐까? 그 순간 단일하고 고정된 주체로서의 자아는 무너져내린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긴 여정 끝에 진정한 자아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소설의 문법 또한 완전히 전복시킨다. 이제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클레어는 되살아난 남편에게 묻고 싶었던 단 하나의 질문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아바나에서 뭘 하고 있어?” 그리고 그녀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흰 상자 속 중첩된 가능성의 세계, 치밀한 사고실험으로서의 문학 클레어는 아바나로 오기 전, 병원에서 보낸 남편의 유품에서 작은 흰색 상자를 하나 발견한다. 모서리가 테이프로 봉해진 그 상자를 그녀는 끝내 열어보지 못하고 아바나까지 들고 와서 호텔방의 금고 안에 넣어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연상시키는 그 밀폐된 상자는 삶과 죽음이 중첩된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은유로서 소설 전체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세번째 호텔』은 독자를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작가는 섬세하고 능수능란한 솜씨로, 철저히 계산된 혼란을 빚어낸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어느 영화감독이 공포영화의 진정한 목표라고 말했던 것, “현실 세계에서 길을 안내하는 도구를 빼앗고, 그것을 다른 종류의 진실을 알려줄 나침반으로 대체하는” 일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로라 밴덴버그의 뒤틀린 우주에서, 일반적인 서사의 문법은 모두 힘을 잃지만 당신이 공포물 속에 있다면 명심해야 할 규칙 한 가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말 것,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위험은 당신의 등뒤에 바짝 다가와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