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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읽어두기, 그날 거기 그리고 여기 그 나무는 이미 그냥 와 있다는 말 지하철 환승은 어렵다 도대체 모기 팔자 패랭이꽃 하얀나비 오솔길 그 새 늑대 같은 2부 고흐가 고갱을 만났을 때 벤치의 혼자 비 내리는 저녁 같은데 섬 계몽주의의 말 살아 있는 시인의 사회 이제는 이름을 바꿀 때 식탁법 가상적인 너무도 가상적인 아침의 발견 3부 숨지는 옷 그날 뒤로, 밤마다 노란 텐트 관에 든다 숟가락 두 개 콩밭에서의 죽음 불효 나뭇잎들 평행 이동 거울이 없다 나무로 되돌아간 피노키오 23.5 사주 풀이 하루살이 시편 4부 읽는 버릇 어느 날의 일기는 강의 받아쓰기 오늘도 책 읽는 그대에게 어떤 시도 혼자 쓸 수 없는 시 묵화 아닐까 주어도 목적어도 생략하고 말은 많지 않았지만 일 거짓말 또는 진실 숨바꼭질 여기 나는 거기 내가 아니다 말의 나날들 즐거운 오타 5부 그날 영화 한 편이 끝났다 어느 친구의 죽음 물망초 동행 같은 뒤돌아보니 머나먼 북소리 듣는다는 것 장미 상태 물의 개성을 보라 구원의 앞과 뒤 인생 파도로 서성이는 바다 6부 슬픔에게 어쨌건 이유는 있어 혹성 탈출 모래시계 빈 어느 마라톤 주자의 고백 메멘토 모리? 질문의 일기 물의 풍경 어디에도 없는 너 언어물리학의 시공간 백일 바람 바람 미리 쓴 시 해설 그 여름 한 철, 시한부 죽음에 관한 보고서 이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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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한 철, 시한부 죽음으로 노래한 삶의 시
박인식의 다섯 번째 시집 『내 죽음, 그 뒤』가 출간되었다. 바위 절벽에서 죽음 판정을 받은 이후, 시한부 죽음을 체험하며 건져낸 죽음과 삶에 대한 사유가 72편의 시에 촘촘히 담겼다. 앞선 시집들에서 소설가이자 시인, 산악인, 미술평론가로 살아온 그의 다양한 ‘삶’의 내력이 시로 쓰였다면, 이번 시집은 ‘내 죽음, 그 뒤’라는 하나의 주제로 짜여 있다. 바위 절벽에서 추락사의 위기를 겪은 뒤 “거기 삶은 끝나고 죽음의 여기로 건너”간 시인이 내내 ‘거기’와 ‘여기’를 진자 운동하며 자신이 “아직 죽어 있다는 죽음의 거짓말” 속에서 받아쓴 “죽음일기”(「시인의 말」)인 셈이다. 죽음을 미리 경험하고 죽음에 사로잡힌 시인은 시간과 공간, 시와 소설, 모든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써 내려간다. 시인이 죽음에 대한 사유에 더욱 골몰하게 된 것은 삶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썩은 가문비나무가 쏜 단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공개처형당한 그 이튿날, 어머니가 “빨간 할미꽃 허리 말아 누운 요양원으로”(〈패랭이꽃〉), “꽃의 시간에서 낙엽의 허공으로”(〈평행 이동〉)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에 영영 머무르지 않는다. 천천히 삶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어머니의 곁에서 삶과 죽음을 통합해내고, 결국 삶을 노래한다. 마침내 “거기”와 “여기”(〈읽어두기, 그날 거기 그리고 여기〉)로 분리되었던 시공간과 “지하철”과 “지상철”(〈지하철 환승은 어렵다〉)로 분리되었던 죽음의 자리와 삶의 자리를 이어놓는 기적을 연출해내고야 마는 것이다(이경호, 해설). 시인은 그가 죽었던 자리에서 앳된 새 생명을 만나 “영혼의 울음”을 나누고 “돌고 도는 삶과 죽음의 비밀을 / 이해하지 못한 것은 // 아무것도 없었”(〈백일〉)노라 노래한 그날 이후, 어느 가을바람 부는 때에 “여름 한 철 시한부 죽음도 마감”하기로 한다. 그는 “살기 위해 페루로 가서 죽어야겠”(〈바람 바람〉)다며 스스로 죽음에서 걸어 나왔다. “그 여름 한 철, 죽음으로 / 영원”(〈미리 쓴 시〉)했던 시인은 이제 죽음이 미리 쓴 시를 뒤로 하고, 미처 다 쓰지 못한 삶의 시를 쓰며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