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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옛 선인들과의 수다를 통해 그들이 지금 우리들에게 보내는 시그널,
지혜의 메시지에 귀 기울러 보자. Part 1. 나라와 백성을 위한 촛불이 되다 백전무패, 불멸의 이름이 된 이순신 조선 문명의 꽃을 피운, 발명왕 장영실 삼국 통일의 주역, 김유신과 김춘추 화약의 아버지, 최무선 「동의보감」의 저자 구암 허준 조선 최고의 학자, 다산 정약용 농업강국의 씨를 뿌린, 고무신박사 우장춘 20세기 현대 이론물리학의 금자탑을 세운 이휘소 박사 한국 최초의 여성경제학사, 최영숙 ‘한국의 파브르’, 나비박사 석주명 Part 2.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원한 2인자 왕이었으나, 왕이 되지 못한 광해군 아비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삼봉 정도전이 꿈꾸었던 성리학적 이상세계 Part 3. 예(藝)와 애(愛)에 살다 조선의 예인(藝人), 황진이 사대부가(家)의 여인으로서 예(藝)를 행한다는 것은,신사임당 VS 허난설헌 모던보이, 작가 이상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여성인권운동의 선구자, 나혜석 작가 겸 승려 김일엽의 행복과 불행의 갈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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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칼을 다루고 사람의 목을 베는 살벌한 전쟁터의 장수이지만, 내 본모습은 인자하고 다정다감한 선비요. 사대부가 사람이라면 기본적 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충효정신과 글과 시에도 능했으며, 정의롭고 용감함을 두루두루 겸비했는데, 그 모든 게 어머니의 영향에서 비롯 된 것이오. 늘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 순신이고 싶었소. 늙어가 는 모습, 다쳐서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불효라고 생각했소. 그래 서 어머니를 뵈러 갈 때에는 새치를 깔끔히 정리하고 용모단정한 모 습으로 갔소. 아, 요즘처럼 염색약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먹물을 바르고 갈 것을 그랬나보오. 껄껄.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내가 조정 대신들의 모함을 받아 의금부에 하옥되어 모진 고초 를 겪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오. 임진왜란 중에 난 두 명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소. 내 어머니와 내 아들 면이. 그게 지금도 가슴에 뜨겁고 아픈 화상자국으로 남았소. --- p.17
거북선이 처음 바다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그러니 까 5월 29일 사천 해전이었습니다. 육지전투에서는 왜군 말발굽에 한양 지나 개성까지 함락된 날이었소. 거북선을 처음 본 왜군들은 무 슨 괴물을 본 것처럼 오금을 저리고 아연실색했소. 내가 고안하여 군 관 나대용 등 부하들과 함께 만든 것이지만 정말 멋지게 잘 만들었소.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이지요. 거북선이 첫 사천 해전을 비롯해 참전 때마다 돌격전선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했소. 그 어떤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견고해서 적군의 배가 감히 거북선을 쓰러뜨리지를 못했소. … 즉 거북선은 보통 판옥선과 달리 갑판 윗부분까지 완전히 덮개를 씌워서 방호력 측면에서 훨씬 강력하고 우수했소. 덮개를 씌웠을 때 방어뿐만 아니라, 아군의 움직임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장점이 있소. 다시 말해서 적군이 아군에게 조준 사격을 가하려 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찌 하겠소. 적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고 우왕좌왕하게 만들기 딱 좋소. --- p.28~29 내가 주력함대를 이끌고 노량에 나가 물러가는 적의 함대에 맹공을 퍼부어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놓았소. 조선 수군의 맹렬한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적군들은 많은 사상자가 났소. 거의 전멸상태였소. 짓밟힌 조선인들 을 대신한 내 복수는 그리 다한 셈이오. 그것이 하늘이 내린 나 이순신의 마지막 소임이었던 것 같소. 선두에 나서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퇴각하는 왜군이 쏜 유탄이 심장 가까이를 관통했소. 의식이 차츰 흐려짐을 느꼈으나, 나는 내 죽음을 병사들에게, 특히 적에게 알려져 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소. 왜군이 두려워하는 건 조선이 아니고, 나 이순신이 있는 조선의 수군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부 하한테,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소. 내 죽음을 안 병사들은 모두 슬퍼하며 울음을 터뜨렸으나, 내 뜻을 정확히 파악한 현명한 이문욱 장군이 주위 사람들의 곡을 그치게 하고, 옷으로 내 시신을 가려 눈에 띄지 않게 하였소. 그리고 힘차게 북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 싸울 것 을 독려하였소. 결과는 대승이었소. 나는 이승을 떠나면서도 흐뭇하였소. 내가 맡은 소임은 그걸로 다한 거요. --- p.53~54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진 집안끼리 혼인관계로 엮이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지 요. 우리 두 사람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삼국을 통일해 당나라나 왜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력한 신라를 만드는 것이었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친구 김춘추의 대단한 정치적 배경과 탁월한 외교 능력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나 김유신의 막강한 군사적 힘의 결합이 필요했소.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게 바로 삼국통일이오. 우리 누구도 둘이 아닌,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소. --- p.67 무릇 인간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 국가 역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법, 제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저 혼자 살 수 없 듯이 홀로 존재하는 섬 같은 국가도 없소. 그러므로 정치를 하든, 장사를 하든, 무얼 하든 간에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사람을 보는 안목 도 중요하오.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 체 지나쳤더라면 삼국통일은 역 사상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사람을 함부로 내치지 않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믿고 함께 가는 것. 뜻이 같은 사람끼리 힘을 합한다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후대 분들도 기억했으면 하오. --- p.72~73 나는 필시 한다면 하는 사람이오. 좌절이나 포기 따위는 내 사전에 없었소. 내 나는 필시 한다면 하는 사람이오. 좌절이나 포기 따위는 내 사전에 없었소. 내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은 1377년(우왕 3년) 10월이 었소. 지겹도록 거듭된 내 청에 우왕이 감복하여 화약 제조 및 화통 도감 설치를 허락하였소. 그 때의 기쁨이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소. 솔직히 그동안 화약 제조에 번번이 실패했소. 이유인 즉 재료배합 비율이 안맞았던 거오. 하지만 나는 꼭 성공하리란 확신이 있었고, 실패에 굴하지 않았소. 먼저 나는 화약제조 비법을 알고자 벽란도에 자주 드나드는, 원나라 출신의 염초장인 이원과 가까이 지냈소. 물론 국가 기밀인지라, 그 자도 비법을 순순히 알려주지는 않았지. 같은 마을에 살면서 요리조리 꼬드겨도 보고 자주 어울렸더니, 그도 내 애국심에 탄복해 어느 날엔가 비로소 보따리를 풀더군. 그리하여 나는 화약의 국산화를 실현하게 된 거오. --- p.78 고국에서 난 역적의 아들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더럽고 재수없는 조센징(조선인)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절망뿐이었어요. 아버지가 비명횡사하고 나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까닭에 일본인 어머니는 나를 잠시 고아 원에 맡겼는데 이지메(왕따)를 혹독하게 당했습니다. 원생들 사이에서 는 물론이거니와, 선생들조차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나를 때리고 나무 랐습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요. 하지만 나는 내 운명에 굴복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힘이 없지만, 내 기어코 훌륭한 사람이 되 어 너희들한테 복수하겠다며 이를 악물었지요. 생전에 내가 이런 말을 자주 입에 담곤 했는데, 길가의 민들레는 무수한 발길질에 짓밟혀도 꽃을 피우지요. --- p.104 ‘남이 아는 것은 나도 알아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남 도 몰라야 한다.’입니다. 얼핏 내가 자존심도 세고 마치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질투심 많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남이 알아낸 것을 뒤쫓아 가는 연구가 아니라, 스스로 물 리학의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선구자적인 과학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오. 남이 차린 밥상에 수저만 올려놓는 건 재미도 없고, 학자로 서 매너도 아니오. --- p.118 . 송도고보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지나 치게 성격이 쾌활해 친구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소. 머리는 나쁘지 않았으나 공부는 뒷전이었지. 한 때 기타만큼은 내가 조선 최고라 생각해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 었으나, 어느 날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세고비아의 기타연주를 듣고 그만 무너져버렸어요. 내가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에 버금가는 연 주를 할 자신이 없더라고. 그런 연주를 못할 바에 기타를 붙들고 있 는들 아무 의미가 없잖소. 그래서 그 길로 기타를 부숴버리고 다시는 기타 근처에도 안갔지요. 송도고보 2학년 말, 성적표를 받았는데 진짜 내가 꼴찌였소. 내 뒤에 아무도 없더라고. 빨간색 표시가 된 낙제과목도 여러 개 있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합디다. 이런 식이면 나는 아무것 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어요. 그 날부터 방학에도 집 에 안가고 하숙방에서 밤낮으로 공부에 전념했어요. 한번 손에 잡은 건 반드시 끝을 보는 외골수 성미라서. --- p.134 그렇지. 사람을 볼 줄 몰랐던 내 인사참사였소. 이이첨을 임금인 나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로 키운 것이오. 그걸 깨달은 내 가 할 수 있는 게 뭐였겠소. 이이첨에게 더이상 힘을 실어주지 않는 거였소. 그 자의 날개를 꺾고자 모반신고가 들어와도 무시하고, 역모 신고가 들어와도 콧방귀를 꾸다 보니, 정작 내 왕좌에 바람구멍 숭숭 뚫리는 것도 몰랐지. 그래서 인조반정이 터진 거요. --- p.147~148 우리 아버지 영조에 대해 한가지 더 말하고 싶 소. 본래 자식을, 그것도 하나뿐인 외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일 만큼 잔인하고 몰인정한 괴물 같은 사람은 아니었소. 권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노친네가 다혈질인 듯 보이지만, 내면은 상당히 차갑고 철두 철미한 성격이었소. 캐묻기 좋아하고 아주 깐깐하고, 치밀한 성격이었지. 자기 안의 엄청난 콤플렉스를 어쩌지를 못해 사람을 절대로 믿지 못했고, 항상 시험하셨소. 아들인 나조차 온전히 믿지 않고, 효심 과 충심을 시시때때로 시험하셨지.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선위 쇼’ 였소. --- p.159 출세의 길이 눈에 보이던 중 갑작스러운 공민왕의 죽음은 내게 시련의 시작이었소. 개혁파였던 나는 그때부터 권문세족들의 눈엣가시였고, 팔도 각 지를 돌며 유배 및 유랑생활을 해야 했소. 유배 생활 중, 어느 날 들 녘에서 한 늙은 농부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관리들이 국가의 안 위와 민생의 평안과 고통, 풍속의 좋고 나쁨에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녹봉만 축낸다며 한탄했소. 시골 늙은이의 질책은 백성을 위하는 길 이 진정 어떤 것인지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소. 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쳤던 민본사상은 절대 허울만 그럴듯한 명분이 아니었 소.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내 이 두 눈으로 목격한 실제경험에서 우 러나온 진정성이 담보된 것이었지. 그 때부터 나는 내가 백성들을 위 해 달라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소. 정치적 시련? 쳇, 그까짓 건 아무 것도 아니었소. 대장부의 큰 야망이 그깟 걸로 꺾이지는 않소. 나는 무쇠처럼 더욱 단단하고 강해졌소. 내 뒤에는 백성들이 있었으니까. --- p.174 비록 신분 피라미드상 맨 아랫부분에 속하는 천한 기녀 신분이었지만 저는 제 삶을 당시 여인들의 인생과는 달리, 아주 주체 적으로 살아나갔습니다. 글을 익혔고, 시와 음악, 풍류 등 예를 즐겼 습니다.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저 하고 싶은 건 모두 자유롭게 도전 하며 사랑하며 후회없이 원없이 살았습니다. 왕비의 삶이, 정승 부인의 삶이 저보다 자유로웠겠습니까? 기녀였기에, 기존의 질서 어딘가 에 속하기를 거부했기에 자유를 얻은 것이지요. 생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다른 걸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 p.205~206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빨리 세상을 살았습니다. 30년 후에, 아니 20년 후에 태어났더라면 그도 나도 어쩜 덜 불행했을지도. 너무 일찍 피운 꽃은 꽃샘바람에 하르르 지듯이 말입니다. 조금 늦게 왔더라면 세상에 ‘사의 찬미’보다 더 멋진 선물을 남겼을 지도.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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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위인들과의 수다의 성을 쌓을 분들을 초대합니다.
학창 시절 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느낀 점이 바로 ‘재미없어’, ‘지루해’ 였을 것이다. 똑같은 스타일, 똑같은 플롯, 똑같은 결말. 위인인 건 맞지만, 그들은 모두 신화적 인물에 가까웠다. 이 책은 한국의 역사 위인들의 그 시절의 소문과 진상들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낸 가상 역사 소설이다. 교과적인 역사적인 사실을 넘어서 작가적인 관점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그 시대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마음을 풀어내 재미를 더한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고 공감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수시로 해도 자신의 실수와 오판을 바로잡아 긍정적인 길로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귀감과 모범이 되는 실수투성이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살다보면 누군가의 조언과 충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일은 안 풀리고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그걸 묵묵히 들어줄 사람은 주위에 단 한사람도 없고 혼자서 깊은 고민으로 끙끙댈 때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인생숙제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럴 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정약용 같은 멘토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황진이 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밤새 수다를 떨고 싶다고.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이 완성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의 속도 시원하게 뻥 뚫리고, 지혜로운 그들의 가르침도 덤으로 얻어가고, 세상 혼자란 외로움도 털어내시기를 바란다. 그들이 보내는 시그널에 귀를 기울여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