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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조지아 오키프 하산 하자즈 루이즈 부르주아 클레멘타인 헌터 버네사 벨과 덩컨 그랜트 도널드 저드 클로드 모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리 크래스너과 잭슨 폴록 파울라 모더존베커 빈센트 반 고흐 자리아 포먼 장미셸 바스키아 앙리 마티스 집으로 멀리사의 이야기 케이트의 이야기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선별한 참고 자료 |
Melissa Wyse
Kate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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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가 살았던 어수선한 집은 무언가를 환기하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집 중에서 부르주아의 집만큼 사람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은 곳은 없었다. 질문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경탄과 희망의 숨결을 속삭였다. 이 집은 우리 안에 있는, 집이 취할 수 있는 급진적 감각을 포착하는 것만 같다. 관습을 거스르는 표현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노래하는 것만 같다. 부르주아의 집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 p.49 「루이즈 부르주아」 중에서 집의 절반만 보존해둠으로써 헌터가 겪은 일의 진실이 상당 부분 생략돼버린다. 그녀가 요리했던 부엌, 동네 아이들에게 팔려고 만든 아이스바를 넣어두었던 냉동고, 집에 수돗물이 들어왔고 현대적인 기기들이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이는 헌터가 인생에서 겪은 시대적 현실을 흐릿하게 만들고 그녀의 경험이 지닌 특수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헌터의 경력과 인생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어렴풋해지고, 복잡한 부분들은 얼버무려진다. 복원된 대농장 저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지역에서, 노골적이면서 은밀한 방식으로 인종차별이 계속 일어나는 나라에서, 헌터의 해체된 집은 우리가 역사를 말하는 방식과 역사에서 생략해버린 것이 지닌 많은 문제에 공감하게 해준다. --- p.62 「클레멘타인 헌터」 중에서 집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벨과 그랜트에게는 가정 공간의 이미지를 바꾸는 수단이었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좀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집을 재창안하고 되찾았던 것이다. 전통적 가정생활의 경험에서 배제된 삶을 살았던 가족으로서, 벨과 그랜트는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일 수 있을지 재정의하는 작업을 했다. 그들은 가정 공간을 전적으로 새롭게 경험하는 방법을 그려냈다. --- p.74 「버네사 벨과 덩컨 그랜트」 중에서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생각할 때면, 그곳에서 색채와 공간에 잠긴 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집은 미적인 선택이 그저 장식이 아니라 경험일 수도 있으며 실내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형성할 수 있다는 내 통찰과 궤를 같이한다. 모네의 실내는 자신의 예술에 담긴 내용이나 스타일을 채택하진 않았지만, 색채가 주는 효과에 대한 드높은 인식을 공유한다. 예술작품을 걸어놓은 벽과 색을 칠한 벽이 교차하여 포화 상태가 된 이 방들에서 모네는 화가로서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어떤 본질적인 감각을 다시 연결했다. 이와 동시에 그가 베풀었던 저녁 만찬, 그리고 판화와 그림을 건 벽은 좀더 폭넓은 공동체와 원칙 속에 위치한 그의 자리를 확인해주었다. --- p.100 「클로드 모네」 중에서 폴록이 죽은 여름 이후에 그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크래스너를 생각할 때면 서정적인 춤이 떠오른다. 크래스너의 그림은 삶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담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분법이 대체로 그렇듯이, 슬픔과 기쁨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스프링스에서 보낸 세월 동안 크래스너는 물건을 옮겨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집처럼, 삶의 여러 단계를 지나면서 집이 우리를 담아내는 방식처럼, 썰물이 되어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부드럽게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 p.130 「리 크래스너와 잭슨 폴록」 중에서 이 책에 실린 일부 예술가들의 집은, 우리가 그 안으로 직접 발을 들여 생전 그대로 놓여 있는 접시와 화장실 용품 같은 것들을 보면서 창문으로 빛이 어떻게 투과되는지, 가구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벽에 미술작품을 어떻게 걸어두었는지 혹은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다. 바스키아의 경우 남은 것은 건물 바깥쪽뿐이다. 키 큰 아치형 창문과 거리는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것도 그대로다. 그의 집을 가로질러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예술. --- p.180~181 「장미셸 바스키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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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상실, 재건의 갈림길에서
예술가들의 유산을 기리는 방법 예술가들의 집은 그들이 공간과 관계를 맺으며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벌이는 현장이다. 예술가들은 화폭을 넘어 집이라는 공간에서 재료를 탐색하거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기도 하고, 다양한 미학적 발상들을 적용해본다. 저마다 집 안에서의 가정생활을 즐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간의 한정된 역할에 저항하며 자신의 미적 개념에 부합하도록 집을 장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예술가들이 세상을 떠났어도 집이 보존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예술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집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생전에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된 경우도 있지만, 과거 예술가가 살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모해버린 공간들도 있다. 또는 건물이 허물어졌거나 다른 소유주에게로 넘어갔거나 개조된 까닭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예술가들의 거주 환경과 예술이 서로 얽혀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모습을 탐색하면서, 많은 예술가들의 집이 소실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예술가와 유색인 예술가가 소유했던 집이 소실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노예의 딸로 태어나 평생을 대농장의 일꾼으로 살았던 클레멘타인 헌터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생을 마칠 때까지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헌터가 살았던 대농장에 딸린 집은 절반만 보존되었을 뿐 나머지는 해체되어 농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런 모습에 대해 지은이들은 헌터의 예술 경력과 인생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어렴풋해지고 진실의 상당 부분이 생략되어버렸음을 지적한다. 또 그라피티아트로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장미셸 바스키아는 그의 짧은 생애 대부분을 뉴욕 소호에서 살았고,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레이트존스가에 위치한 앤디 워홀 소유의 건물에서 생활했다. 바스키아가 죽은 후 이 건물은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뀌었는데, 바스키아를 기리는 그라피티로 가득한 건물의 외벽만이 이곳이 바스키아의 집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바스키아의 경우처럼 예술가가 살던 집에서 남은 것이 오직 건물의 외피뿐이라면 미술계가 그 예술가를 더 깊이 연구할 기회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예술가들의 집은 대부분 지은이가 직접 방문해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기록한 것이다. 보존되지 않았거나 소실되어 그 내부를 확인할 수 없을 경우 다양한 자료를 참고했다. 책을 쓰기 위해 조사하고 글을 다듬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지은이는 “예술가들의 집을 잃는 것은 예술가들의 삶, 그들의 창작 경험과 접속할 수단을 잃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예술가와 창조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공간의 보존 여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이들 예술가의 유산을 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하는 희망의 목소리를 전한다. 예술가의 공간 속 분위기와 영혼까지 전달하는 아름다운 그림들 집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들이 사진으로 그 모습을 전달할 때, 이 책은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멋진 실내 공간을 찍은 사진들이 그저 사람들의 소비 욕구와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쓰이는 까닭에, 이 책에 실린 따뜻한 그림들은 더 특별하고 소중해 보인다. 그림 작가 역시 직접 예술가의 집을 방문해 공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고, 소실되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은 남아 있는 시각자료를 참조해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그림으로 묘사했다. 때로는 공간의 세세한 부분을 단순화하거나 강조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예술가의 성향과 습관까지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을 포착했다. 이렇게 완성한 그림들은 마치 예술가의 공간 속 분위기와 사물들의 영혼까지 전달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은 예술가의 집들은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을 가치를 담고 있다. 인스턴트 이미지와 가벼운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책은 예술가의 집에 잠시 머무르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