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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 항칠 할매의 그림 이야기
〈2020 봄·여름〉 밑그림 연습: 코로나가 오고 할매는 화분과 나비를 그린다 〈2020 가을·겨울〉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장안사 가을을 종이에 담다 〈2021 겨울·봄〉 집중할 때 열리는 세계: 꿈에서 본 풍경을 그리다 〈2021 여름·가을〉 일상의 즐거움을 더해: 칠불사 계곡, 그리고 청사포 소나무 후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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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린 소나무를 보고 나는 단박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건 그림이 아니고 바느질이야. 바느질만 70년을 해왔으니, 그 노동의 흔적이 무의식에 들어 있다가 저렇게 소나무 한 잎 한 잎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야. 맞아. 그 노동의 세월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우리 어머니들은 고난의 세월을 저렇게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온 거다.
--- p.6 마음속에도 빛이 있기에 외부의 빛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 둘이 만나는 현장에서 색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색채라는 것도 공생과 조화의 산물이다. 어떤 페친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그림이란 보는 사람의 느낌과 그리는 사람의 마음의 만남이 아닙니까. --- p.8 노모는 코로나 때문에 절간에도 못 가고 방콕하자니 힘들다. 미술 교사인 여동생이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사다 주고 베란다에 있는 화분 등 이거저거 그려보라고 한 모양이다. 아흔에 시작한 예술가의 길. 그 첫 작품! 페친분들이 다정한 댓글들을 달아주시는데, 자세히 보니 그 하나하나가 생생한 짧은 해설이다. --- p.14 일렁일렁 흔들거리며 살아 있는 것들. 연꽃을 그리다 마음에 안 들었고 그러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그건 연꽃이 아니야! 해서 깜짝 놀라 일어나 순식간에 그렸다고. --- p.49 청사포와 그 주민들을 지켜왔던 300년 넘은 푸른 소나무. 주민들은 배 타고 나간 이들의 안전을 빌고 또 빌었을 테지. 노모는 조금 감동한 눈치다. 소나무 이파리 하나하나가 살아온 나날들로 보이는 모양이다. --- p.65 꼬맹이 때 친가에 가면 친인척분들이 대개는 키가 작고 피부도 검은 편이었다. 외가에 가면 키도 훤칠하고 피부도 뽀얗고 왠지 인심들도 좋아 보였다. 왜 이런 차이가? 한참 후에야 아, 그렇지 하고 깨달았으니. 쌀밥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희기 마련이고, 보리 잡곡을 먹으면 까무잡잡할 수밖에. 어떤 유물론자 왈. 먹는 거 그게 바로 그 사람이다. 세끼만 먹으면 왕인데, 왜 그리들 욕심을 내는지. --- p.95 도피의 삶은 당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그림책은 코로나라는 인생 역경의 한고비를 넘어간 어떤 할머니의 삶을 증언하는 기록인 셈이다. 막내의 전언에 의하면, 노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면서 나를 위해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나를 위해 뭔가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 p.122-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