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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 문 1
1. 들어가는 말 3 2. 무예에 대한 인식 10 제2장 아시아의 문명을 연 한민족 13 제1절 인류의 시작 15 1. 단군 이전의 역사개요 15 2. 단군과 그 시대성에 관한 문제 17 1) 인류역사의 시작과 최초 전쟁에 관한 문헌 17 2) 단군과 그 이전의 역사 28 3. 우리문화의 약술略述 37 4. 동이족이 중국문화의 시원 39 5. 동이족의 문화 흔적 43 1) 침술과 경락 43 2) 용과 여의주 44 3) 우주인, 우주선은 존재한다. 45 4) 인간의 여의주 48 5) 하느님 49 6.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57 7. 역사의 기록 60 제2절 고대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 64 1. 중국의 시원은 동이족 64 2. 조선 역사의 정설 69 3. 문화콘텐츠의 확대해석 73 4. 한자는 한국어 76 5. 지구의 단전 동방예의지국 81 1) 동방예의지국 81 2) 지구의 단전 한반도 93 3) 우리는 천손민족 99 6. 동북공정과 한복 105 7. 중국 속의 삼국과 고려 107 8. 중국의 역사와 우리와의 관련 113 9. 금사金史와 청사靑史는 우리 역사의 편린 115 10. 우리민족이 지닌 발군의 수성능력 129 제3절 백제의 전쟁사 편린 136 1. 백제의 강역 136 2. 백제와 일본 백강전투 141 3. 백제의 흔적, 일본 내의 조선식 산성 149 4. 잊혀진 땅 백제 22담로의 비밀 155 제4절 코벨의 부여기마족과 왜 이야기 164 1. 부여기마족과 왜 164 2. 일본 내 분국설 167 3. 분국들의 기록 흔적 179 4. 대성동 고분과 코벨 183 제5절 가야 전쟁사의 편린 189 1. 가야 고분의 특징 189 2. 가야의 여전사女戰士와 수박 191 3. 일본 무사들의 할복과 일본에 전해진 가야의 순장풍습 198 4. 고조선 문화의 일본 전래와 일본의 삼종신기(三種神技) 204 제6절 일본 속의 한국문화 207 1.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倭와의 관계 207 2. 일본 속의 백제 213 3. 한국인의 고유문화 214 4. 일본의 시작 218 5. 신황기神皇紀 222 6. 일본 국민성의 형성에 대한 배경 224 제3장 고대 한국무예의 중국과 일본에 전래 237 제1절 고대 한국무예의 중국과 일본 전래설 편린 239 1. 중국과 일본에 퍼져 있는 한국무예의 흔적 239 2. 한국무예가 중국 무술에 영향을 미친 편린 240 3. 한국 무예의 일본 전래설 246 제2절 택견 고대사 개론 252 제3절 당수의 중국 기원설에 대한 재논의 256 1. 들어가기 256 2. 선행연구에 대한 재논의 259 3. 오키나와와 삼별초의 관련성 263 4. 오키나와와 한국문화의 유사성 273 5. 당수(가라테)의 명칭에 대한 재논의 281 6. 맺음말 290 제4절 삼별초의 오키나와 가라테 기원설 293 1. 들어가는 말 293 2. 유구왕국에 이식한 삼별초의 무예 303 1) 『유구무비지琉球武備誌』의 탐구 303 2) 『유구무비지琉球武備誌』에 나타난 고려高麗의 이두문자吏讀文字 308 3) 『유구무비지琉球武備誌』에 나타난 고려高麗의 수박手搏 310 4) 『유구무비지』에 등장하는 인물의 용모 313 5) 『유구무비지』의 동작 해석 319 6) 『유구무비지琉球武備誌』와 택견의 동작 비교 321 3. 맺는말 375 4. 수박의 발생시기와 주변국에 끼친 영향 380 제4장 고무예 택견 기운의 비밀 385 1. 들어가는 말 387 2. 기운을 모으는 법(縮氣) 390 1) 소주천 수련과정 395 2) 좌식坐息 400 3) 수련자의 필히 참조사항 402 4) 운 기 404 5) 집중의 의미 405 6) 심마心魔 406 7) 내관반청법 418 8) 가늘고, 길고, 깊게 421 9) 심 법心法 423 10) 기운용 425 11) 기공과 춤 425 12) 기운용과 심력心力 428 13) 기운용 요령 430 14) 파장 운기 433 3. 택견의 기운을 쓰는 흔적 436 4. 관념법觀念法 443 5. 약 공藥功 448 6. 내력을 키우는 법 451 7. 맺음말 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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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고대사에 대해 쓰려하다 보니 워낙 자료가 적어서 한국사에 대해 좀 더 면밀히 관심을 지니고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
택견은 고려시기에 수박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고, 이 수박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아 항전하던 시기 끝 무렵 삼별초를 따라 오키나와로 이전된 심정적 여러 자료가 있었으나 후에 찾아낸 결정적인 자료는 전통적인 상투를 한 머리 모양에 우리 복장을 한 모습의 그림이 그려진 『유구 무비지』라는 책이 오키나와에서 발견되었고 또 여기에 나열한 수법이나 표기들이 중국의 『기효신서』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비지』에는 조선세법이 수록되어 있으며 『무비지』 권경 내에는 이두식 표기 ‘가자架子’가 가감 없이 그대로 실려 있어서 우리의 무예가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가자’에 대한 해석을 두고 무학武學에서 구결口訣은 해석에 필연적인 한계가 있다 하였으되 직역도 불가한 것이 관례라 하여 ‘가자(架子)’를 달리 해석하지 않고 그냥 쓰고 있다. 그러나 이두표기를 이해하면 오히려 쉽게 해석된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 고려어의 한자 차음표기로 ‘두왈말斗曰抹’·‘궁왈활弓曰活’·‘백왈온百曰溫’·‘산왈매山曰每’ 등이 있다. 궁왈활弓曰活에서 ‘활’의 한자는 ‘활活’이다 또한 ‘사왈활삭射曰活索’이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거슬러 가다보면 우리 무예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무비문武備門 창법가?法歌에 설인귀薛仁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설인귀가 고구려 정벌을 나가서 무예서가 있는 것을 알고 마가창馬家?의 문서를 얻었다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 있다. 설인귀를 ‘친부親父’라 칭한 것을 보면 안동도경략이었던 설눌薛訥이 쓴 것으로 보인다. 설인귀薛仁貴는 고구려 사람이다. 즉 무비문에 나온 마가창은 고구려 창법이다. 비록 한정된 자료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설정을 통해 이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고자 했다.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몇 내용이 있으나 차차 풀어서 설명하기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르치는 역사의 많은 부분은 과거 우리나라와 각축을 하며 살았던 중국조차도 소홀히 하지 않고 꼭 동이전과 동이열전에 필히 기재를 하였는데 그런 과거는 어디로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대부분의 역사가 한반도 내에 쪼그라들어 과거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새로이 하게 되고 도처에 진실 된 우리역사를 언급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민족은 그리 전쟁을 즐겨하지 않지만 도전해오는 외적의 침입에 방어하는 능력만은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중국의 수·당과 같은 대군의 침입을 여러 번 버텨냈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인 몽골군을 맞이하여 30년 동안 6차례나 침입했으나 정복하지 못했다. 몽골과 강화講和가 되어도 삼별초군三別抄軍은 진도와 제주도로 이동하면서 투항하지 않고 항쟁을 계속했다. 몽골은 제4대 홀필열忽必烈 시대에 송宋나라를 정복하고 인도印度를 제외한 아시아 대부분과 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이 건설되기에 이른다. 동서의 사가들은 몽골제에 대해 전무후무한 대제국이라 칭해 왔다. 이런 대제국大帝國에 대해 고려가 능히 그 침략에 맞서고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몽골군을 맞아 싸운 고려군은 최우崔瑀 일가를 중심으로 한 무신武臣들이다. 그런데 그 무신들이 물러나고 문관들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몽골에 화和를 청하니 홀필열忽必烈이 놀라면서 “천의天意”라고 말했다. 당시 몽골은 고려를 무력으로는 굴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 몽골의 왕녀를 고려 충열왕忠烈王에게 출가시키는 우호정책을 취했다. 고려는 실제로 자주독립을 보전한 역사였다. 『신원사열전新元史列傳』(第146 高麗)을 보면 몽골 황제 홀필열忽必烈이 “천하에 군신君臣, 민중, 사직社稷을 그대로 보전한 나라는 오직 고려뿐이라”고 말했다. 몽골의 입장에서 고려는 경이적인 나라였다. 모든 면에서 몽골의 상대가 아니고 왕조까지 항복했는데도 30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저항했다. 역사적으로도 전쟁에 패한 나라가 공주를 시집보낸다거나 볼모로 보내지만, 몽골은 이러한 사례가 뒤집힌 것이다. 항복의 조건도 몽골이 고려의 주권과 풍속을 고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불개토풍不改土風의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현재 무예사武藝史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필히 고어古語에 관심을 기울여 다른 나라 어휘 속에 살아남은 이두 문자나 고어를 찾아내어 우리 무예사를 일부나마 복원하여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으나 최소한의 노력을 통해 전문가들과 어느 정도 대화는 나눌 수 있어야 학문 간의 통섭通涉이 이루어질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들여다보게 되면 중국과 일본의 용어 속에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용어들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무예도 문화여서 나라 간에 주고받는 것이 적지 않은데 특히 일본에 의한 강점기와 이후에 그 내용을 답습한 식민사학자들의 노력으로 한없이 쪼그라드는 바람에 무심코 지냈지만, 그들 속에는 아직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미 지난 일들을 새삼 밝힌다고 찬란했던 과거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그들의 과거를 덮으려고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 내용은 기존의 있는 자료를 가감 없이 인용하려고 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납득이 가능한 내용을 터무니없는 주장을 앞세워 호도하는 일들은 바로잡는 게 바른 일이라 본다. 여기 많은 내용들은 우리 민족에게는 당연한 일들이어서 특별히 주장한다는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어느 날부터 주변국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여, 오히려 우리 민족의 정체성까지도 심각하게 훼손하고, 우리 자신도 의문을 지니게 할 정도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콤플렉스가 아니고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반 주장도 하지 않은 내용들이 그토록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우리 문화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다. 본서에서 한·중·일 관계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한 앞부분은 우리 문화가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에 앞서 그간 외세문화에 치여 우리의 소중한 부분들을 잊고 있었다는 것과 그들에 의해 그릇된 인식이 심어진 부분들이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결코 자기비하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어서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의 역사자료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도 없는 일본학자들의 주장이 공공연히 통용되고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그대로 수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의 그간 행태로 보아 남의 나라 역사에 대해 시시콜콜 떠든다는 것은 간섭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높이고 우리나라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분명한데도 그것을 의심 없이 수용하려는 강단사학계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그 근거들은 역사학자로서 터무니없거나 전혀 근거가 없는데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태도는 장차 역사학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계기 뿐 아니라 후대에 오랫동안 질타를 받을 것이다. 러시아 고대사 세미나 중 유 엠 부찐은 다음과 같이 일침을 날렸다.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는데 한국인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는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이다.” 그의 저서 『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나라 역사학자도 아닌 러시아 역사학자의 입에서 들어야 하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는 있었으나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는데 위서僞書 많기로는 지나 같은 나라는 없다고도 하였다. 아울러 우리나라 책은 각 씨족의 족보 가운데 그 조상의 일을 위조한 것 이외에는 그다지 진위의 변별에 애쓸 필요가 없으며 근래에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이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위작으로 치부하는 행태도 없지 않다. 이를 위시한 내용들은 다 자체만으로도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데 구태여 위작이니 위서로 폄하하려함은 그들의 그릇이 너무 옹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게 한다. 역사학을 실증주의의 입장으로 해석하고,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증주의라 할지라도 기존의 자료를 무조건 수용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나 집단이 만들어 놓은 일정한 틀 안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집단 무의식에 빠져 핵심을 간과하고 뿌리 한 토막을 부여잡고 그것만이 모든 것인 양 나머지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게 되면 이전 왕조의 많은 부분은 부정되는데 이국異國의 역사는 더할 나위 없다. 사서史書를 기록하는 입장도 기록자의 입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하물며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역사는 더할 나위 없다. 역사에 있어 이러한 갭은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만 그나마 충분한 자료가 있다면 다행이나 없다면 쉽지 않다. 그래서 역사학에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빠진 퍼즐을 맞추려는 시도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왜 중요하냐면 지엽말단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경향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여러 사람들의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편적인 내용을 부각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무예武藝’는 문화의 한 분야로서 인류의 문명 발달과 함께 발전한 신체문화이며, 더불어 다양한 인문적 가치를 지닌 무형의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본서는 무예인문학 관점에서 문사철文史哲이라는 틀에서 문화라는 광의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였다. 과거 전쟁의 수단으로 무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반면 인류가 과학화와 첨단화 되면서 인류에게 있어서 무예라는 효용가치가 절하되고 대신에 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교육, 호신, 건강, 영화, 스포츠화 등 문화콘텐츠로서의 다양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무예를 전통적인 문사철文史哲 중심의 ‘인문학Humanities'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학문 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으로 인간의 삶을 사고하는 학문적인 탐구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분야로, 무예인문학은 문화, 역사, 철학뿐만 아니라 무예인으로서 참된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본 서는 택견의 인문학적 토대로 문화,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의 접근으로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택견 고대사뿐 만 아니라 철학, 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제고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즉 비체계적인 구전문화에서 체계적인 기록문화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려 하였다. 문화콘텐츠는 원천소스가 중요하다. 무예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증대로 인해 하나의 원천소스로 여러 기술을 부흥시키는 원소스 멀티유스(OSMU: One Source Multi-Use)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무예의 역사적 인문 가치와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보면,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한 영역인 역사연구는 단순히 ‘일어났던 일들’을 지칭하는 단어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특히, 무예의 역사적 인문 가치로 선사시대를 비롯해 삼국시대, 남북국 시대, 후삼국 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둘러싼 대외 관계, 근대 개항과 독립운동 등 다양한 소재를 무예의 인문학적 접근으로 무예사를 되돌아본다면 역사적 인문가치가 상승할 것이다. 무예의 역사적 인문 방향은 오늘날 국제화 시대 속에서 무예를 통한 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역설로 과거의 역사를 기저로 현재와 미래에 청소년들에게 무와 문의 중요성을 인문학적으로 풀어갈 필요성이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한반도가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한 국제 외교와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되살려 무예 역사인문의 가치를 더 높이는 시도를 제고해야 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영감을 주신 한당 선생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 선생님, 재야 사학자 농초 박문기 선생님과 한일관계에 오랜 세월을 바친 코벨 박사 그리고 여기에 다 적지 못한 많은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고대사의 단초를 마련해주신 박정진 교수님과 대한본국검예협회 임성묵 총재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송덕기 선생의 소중한 택견 기술을 택견사에 기록할 수 있도록 사진을 남겨주신 김수 총재님(Grandmaster Kim Soo)께 감사드리며, 그의 제자 Alberto Borjas Sabeom 사범님께도 감사드린다. 현암 송덕기 선생님의 위대태견 원전原典 『한국의 옛무예 태견 「위대편」, 「아래편」』과 『태견「원전 제작 비화」』에 태껸춤 등을 세상에 빛을 보게 해주신 김정윤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송덕기 선생님의 택견 원형의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하여 택견 고대사의 연구의 중요한 단초를 마련해주신 고용우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제현의 송덕기 선생님의 태껸의 명맥을 이어주시고 연구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이 저서가 출간하기까지 병고에도 택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해주신 권찬기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출판을 도와주신 도서출판 (주)글샘 이기철 대표님께도 감사드린다. ―머리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