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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신채호의 역사 주체 인식과 민족주의 제1장 들어가는 말: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세계화’와 한국 사회 제2장 제국주의의 세계화 시대를 살다간 신채호 제1절 국권 상실기 신채호의 항일 투쟁 의식 제2절 국권 상실 이후 직접 항일 무장 투쟁과 역사 연구 강화 제3장 신채호의 현실 인식과 민족주의 인식 제1절 신채호의 ‘제국주의 세계’ 현실 인식 제2절 신채호의 ‘제국주의 세계’의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 제4장 신채호의 민족 문제 인식과 역사 주체 인식 제1절 신채호의 민족주의와 민족 문제 인식 제2절 신채호의 역사 인식과 역사 주체로서의 민족 제2부 신채호의 근대적 주체 인식과 사회혁명론 제1장 들어가는 말: 신채호와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혁명’ 제2장 1910년 한국병합 이전 신채호의 궤적에 드러난 근대적 개혁의식 제1절 성균관 박사의 장래를 포기한 신채호의 근대적 개혁 의지 제2절 신민회 참가를 통한 ‘공화국’의 정치혁명 지향성 정립 제3장 1919년 3·1운동을 통해 근대적 주체로 재인식된 신채호의 민중 제1절 공화국 건설의 주체로 규정된 ‘신국민’과 ‘국민적 영웅’ 제2절 3·1운동을 통해 근대적 혁명의 주체로 재인식된 민중 제4장 1923년 의열단선언과 함께 발전한 신채호의 사회혁명론 제1절 ‘조선혁명선언’과 신채호의 민중 직접혁명론 제2절 무정부주의자가 된 신채호의 사회혁명론 제3부 신채호의 근대적 민족주의와 국가 건설론 제1장 들어가는 말: 근대 민족주의와 민족국가 제2장 1910년 병합 이전 신민회에 참가하며 정립된 신채호의 민족·국가관 제1절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개혁적 국권 회복 방안 모색 제2절 신민회 참가를 통해 정립된 근대적 민족·국가 인식 제3장1919년 3·1운동을 통해 정립된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현실 제1절 ‘대동단결 선언’의 국민주권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공화국 이상 제2절 정치 지도세력과 국가적 정부 조직에 대한 회의 제4장 1923년 국민대표회의 결렬과 의열단선언 이래 국가 인식의 변화 제1절 국민대표회의의 결렬과 의열단 선언문으로 변화된 국가 인식 제2절 포기할 수 없었던 민족과 민족의 해방 맺음말 연보 참고 문헌 주석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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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는 가장 먼저 전통적인 중화사상에서 벗어나 한국인·한민족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한민족이 주체가 된 한국 역사(通史) 체계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럼으로써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민족주의를 정립하는 바탕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가 한국 역사를 연구한 것은 일본이 한국사(朝鮮史)를 일본사의 체계 속에 끼워 넣어 한국인을 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이자 이등 국민으로 격하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 p.7~8 신채호는 민족을 단위로 통합된 민족국가가 하나의 주체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제국주의 근대 국제관계에서 국권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민족주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민족이 민족주의로 하나로 단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리하여 서양 근대 민족국가처럼 될 수 있는 근대적인 사회혁명과 정치혁명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 p.181 신채호는 현실의 근대 국제관계를 직시하고 자신과 대자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실상을 파악하고 직면하였다. 그리하여 근대 국제관계의 주체인 근대 민족국가로 한국이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 p.199 신채호가 수용한 무정부주의의 핵심은 이미 있는 국가체제를 변혁하여 다 같이 자유롭게 잘 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다. 다 같이 자유롭게 잘 살아야 하는 대상이자 주체는 민중 개개인이었고, 민중 개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신채호가 지향한 무정부주의였다. 무정부주의자가 된 신채호에게 그 이전 단계에서 그가 제창했던 민중이 직접 독립을 위하여 일으키는 정치혁명은 민중이 민중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동하는 무정부주의 사회혁명으로 전화되었다. --- p.240 신채호는 임시의정원 전원위원과 임시의정원 의원직을 즉각 사퇴하였다. 이승만과 이승만을 지지한 안창호를 반민족적 지도자라고 극렬히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결별하였다. 그리고 신채호는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의 외교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점진적인 준비론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직접적인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전개하였다. --- p.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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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 통합에 앞장선 실천적 지식인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주권이 인민에게 있는 근대 민족국가를 전제로 설정된 것이었다. 여기서 각 민족 구성원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자 자율적인 존재로서 민족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채호의 민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그가 무정부주의혁명을 선언하고 무정부주의자가 되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견지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각 민족 구성원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실천 운동으로서 무정부주의운동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한 논의가 구시대적인 유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민족 통합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산이라는 사실을 재고하고, 한국 민족주의와 국가 통합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