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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주의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루이지 피란델로 연보 옮긴이에 대해 |
Luigi Pirand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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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돌포 : 그러니까, 우리한테 어떤 장면들을 준비해 보라든가 어떤 장면들을 공연하라고 제시해 준다든가 하는 게 전혀 없다고. 있긴 있지, 무슨 소린지 알아? 형식은 있어, 그런데 내용이 없다고! ?그래서 우린 엔리코 4세의 진짜 비밀 고문들보다 상황이 더 나빠. 왜냐면, 그래, 이거야, 아무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연기하라고 맡기지 않았다는 거지. 그 친구들은 적어도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그 친구들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표현했고, 때문에 표현하는 대로 행동이 나타난 거니까. 즉 그 친구들이 표현한 건 어떤 역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생 그대로라고. 요컨대 내가 알기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자기들 이익을 챙기고, 관직을 팔아먹고 했던 그자들 인생 말이야. 한편 우린 여기서, 이 멋진 궁정 안에서, 그자들처럼 그렇게 옷을 차려입고 있긴 해… ?뭔가 해 보려고? 아니 전혀 안 해… 넌 마치 벽에 걸린 꼭두각시 같아, 꼭두각시는 누군가가 집어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주고 몇 마디 말을 하게 만들 때까지 그저 기다릴 뿐이야.
--- pp.18-19 란돌포 : 아, 설명해 줄게, 잘 들어 봐! 내 생각이 맞을 거라고 믿는데. 그 사람한테 저것들은 이미지야. 이미지, 마치… 그래 그거, 마치 거울이 도로 내비치는 이미지들 같은 거, 알겠어? 지금 그 사람은 바로 저기 저 그림을 (엔리코 4세의 초상화를 가리킨다.) 표현하고 있어, 그 사람은 지금 이 왕실에서, 저 모습대로 살아 있는 거야. 이 왕실 역시 그 시대 모습이어야 하니까 분명 그 시대 스타일로 되어 있고. 뭐가 그리 놀랍니? 사람들이 너를 거울 앞에 세워 놓으면, 넌 살아 있는 바로 지금 네 모습을, 하지만 이렇게 옛날 의상 차림으로 있는 네 모습을 보지 않겠니? 자, 그러니까 저기에 마치 두 개의 거울이 있는 것과 같아, 그 두 개의 거울이 살아 있는 이미지들을 비쳐 주는 거지, 여기 이 세상 한가운데로. 염려 마, 이제 눈으로 보게 될 테니까, 우리랑 지내면서 알게 될 거야,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소생하는지! --- pp.22-23 엔리코 4세 : 바로 그거야! 진짜처럼! 그렇게 해야만 진실이 더 이상 놀림거리가 되지 않아! --- p.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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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스웨덴 한림원은 “대담하고 독창적으로 희곡과 무대 예술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 루이지 피란델로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엔리코 4세』는 피란델로의 대담함과 독창성이 발휘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피란델로는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 복잡한 플롯의 메타 연극을 선보인 이후 이 작품에서 다시 한번 ‘연극’이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엔리코 4세’는 과거 어느 때, 가장행렬 도중 불의의 사고로 말에서 떨어진 뒤로 정신을 잃는다. 그는 자신이 진짜 ‘엔리코 4세’라 믿고 있다. 누이는 그가 충격받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그의 헛된 믿음을 지켜 주기로 한다. 그와 알고 지냈던 측근들은 중세 역사에 등장하는 엔리코 4세의 정적, 신하, 연인을 연기하며 그의 병세를 예의주시한다. 그렇게 무려 20여 년이 흐른다. 엔리코 4세의 시간이 중세 어느 때에 멈춰 있는 사이 현실의 시간은 모든 걸 바꿔 놓는다. 자신을 청년이라고 믿고 있는 엔리코의 머리색도 하얗게 세었다. 이미지와 인식의 간극이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엔리코에겐 이 모든 거짓을 알아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중세시대 궁정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무대 뒤편에 떡하니 걸린 현대식 유화 초상이 본체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을 대신해 엔리코 4세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비춰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엔리코 4세는 치료를 명분으로 자행된 철저한 기만 속에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다.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은 엔리코 4세의 남다름이었다. 그는 생각하는 것도, 사는 방식도, 사랑을 표현하는 법도 남들과 달랐고,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척당했다. 가장행렬에서의 사고로 정신을 잃은 뒤로 사람들은 더 노골적으로 그를 비난하고 배척했다. 피란델로는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 이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인간들의 비극적 현실을 다시 한번 주제로 삼는다. 〈엔리코 4세〉에서는 모든 인물이 현실에서 벗어나 주어진 상황에 맞게 의상을 갖춰 입고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한다. 피란델로의 극에는 이처럼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자주 등장한다. 무대 위 세계를 허상이라고 한다면, 피란델로는 무대에서 허상의 허상을 재현한 셈이다. 이를 통해 피란델로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은 무대요, 우리 모두는 배우”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에 동조하면서, 그것이 삶에 대한 정확하고 날카로운 통찰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주어진 역할을 고정된 이미지에 따라 연기하며 살아가야 한다. ‘차이와 가변성’에 대한 몰이해로 서로 고통을 주고받아야 하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은 피란델로의 단골 주제였다. 〈엔리코 4세〉는 피란델로의 이러한 인식론적 사유가 잘 드러난 작품들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