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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I II III IV 해설 지은이에 대해 루이지 피란델로 연보 옮긴이에 대해 |
Luigi Pirand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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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로네 : 여러분, 그 죄에 대해서 이 친구는 지금 자기 배역의 대사들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네요. 자 그나저나 이제 봅시다, 새벽녘이 가까워지고 있군요, 어제저녁 제가 여러분께 약속드렸지요. 여러분을 위해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리겠다고. 여러분이 돌아가서 〈바뀐 아들 이야기〉를 공연할 수 있는 장소에 관한 건데, 정말로 우리랑 함께 여기 남고 싶지 않으시다면요. 그래서 알아 두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대한 결혼식 파티가 열립니다. 산의 거인족이라 불리는 두 가족의 결합이죠.
백작 : (그는 작다. 따라서 당황한 채 한 팔을 들어 올리며) 거인족요? 코트로네 : 진짜로 거인들은 아니고요, 백작님. 그렇게들 불러요. 키가 크고 힘이 세고 체격이 좋은 데다 가까이 있는 산에 살고들 있어서요. 저는 여러분이 그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을 소개하길 제안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동행할게요. 그자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하거든요. 저 위에서 그들이 시작했던 작업, 지속적인 체력 단련, 그리고 발굴, 기초 공사, 산의 저수지를 위한 물줄기 추정, 공장과 길 건설, 농작물 경작과 같은 거대한 사업의 온갖 모험과 위험에 대항해야만 했던 용기, 이러한 것들이 단지 그들의 근육을 거대하게 개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 마음까지도 거칠고 야만스럽게 만들어 버렸지요. 그러나 승리에 부푼 그자들은, 자신들을 다룰 핸들을 쉽게 내줍니다. 자부심에 적당히 아부해 맞춰 주면 곧바로 그들을 부드럽고 유순해지도록 만들 수 있죠. 그런 건 내게 맡기도록 하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할 일을 생각하세요. 내가 여러분을 산 위로 우마 디 도르니오와 레오파르도 다르치파의 결혼식에 데리고 가는 건 문제도 아니에요. 우리는 많은 돈을 요구할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돈을 많이 요구할수록 그 사람들에겐 우리의 제안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테니까요. 그러나 지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다른 거예요. 당신들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공연을 할 겁니까? --- p.126~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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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스웨덴 한림원은 “대담하고 독창적으로 희곡과 무대 예술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 루이지 피란델로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피란델로는 유작 〈산의 거인족〉에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로부터 이어져 온 연극적 고민, 나아가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다시 한번 자신만의 독창적인 무대 예술로 승화한다.
피란델로의 신화극 〈산의 거인족〉이 창작되던 때 이탈리아는 파시즘이 모든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1923∼1943). 예술도 파시즘의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아방가르드 경향이 패배해 물러나면서 예술은 점점 더 카타르시스적·신화적·상징적 요소에 기대게 되었다. 게다가 피란델로의 작품들은 당시 연극을 질식시킬 위험 소지가 있던 영화와도 비교되는 처지에 놓인다. 피란델로는 소통과 메시지를 단념하면서 꿈과 환영을 보호하고 대중과 분리시키는 세계로 물러나느냐 아니면 대중 관객의 저속함에 적응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관객과 재정 부족으로 피란델로는 1928년 로마 예술극장 감독직을 그만두며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다. 피란델로의 유작 〈산의 거인족〉은 평생 예술의 형식에 대한 실험을 지속했던 피란델로가 말년에 파시스트 시대를 살면서 당대의 예술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 속에 예술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성찰하고 조명한 결과물이다. 〈산의 거인족〉 배경이 되는 공간은 예술이 패배한, 엄밀히 말해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공간을 상징한다. 또한 물질과 정신의 투쟁에서 정신이 패배한 곳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 탓도 아니라는 것이 피란델로의 결론이다. 피란델로는 〈산의 거인족〉에 예술을 이해 못하는 거친 자들을 향한 경멸이나 모욕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소통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성찰의 고백을 담아냈다. 피란델로는 오히려 순간적이고 말초적인 즐거움만 좇는 대중을 탓하고 비난하기보다 오히려 관객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작품을 이해하라고 밀어붙이는 예술가들을 ‘예술에 광적인 자들’이라고 부른다. 피란델로는 〈산의 거인족〉에서 소통에 실패한 ‘예술에 광적인 자들’과 ‘생활에 광적인 자들’의 화해를 모색하며 미래의 평화를 꿈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