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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 논설문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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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국신문
서문_5

제4권

제38호
_
13
/
제41호
_
16
/
제44호
_
19
/
제61호
_
22
/
제62호
_
25
/
제63호
_
28
/
제64호
_
31
/
제66호
_
34
/
제71호
_
37
/
제73호
_
40
/
제75호
_
42
/
제77호
_
45
/
제78호
_
48
/
제80호
_
51
/
제81호
_
55
/
제83호
_
58
/
제84호
_
61
/
제88호
_
64
/
제89호
_
66
/
제96호
_
69
/
제97호
_
72
/
제98호
_
75
/
제100호
_
78
/
제109호
_
81
/
제110호
_
84
/
제111호
_
87
/
제114호
_
90
/
제118호
_
91
/
제123호
_
94
/
제124호
_
97
/
제125호
_
100
/
제126호
_
103
/

제5권

제32호
_
109
/
제33호
_
111
/
제34호
_
114
/
제35호
_
117
/
제36호
_
120
/
제37호
_
124
/
제38호
_
127
/
제39호
_
130
/
제40호
_
134
/
제47호
_
138
/
제62호
_
141
/
제64호
_
145
/
제65호
_
148
/
제83호
_
151
/
제92호
_
155
/
제93호
_
158
/
제97호
_
161
/
제98호
_
164
/
제99호
_
167
/
제101호
_
170
/
제102호
_
173
/
제103호
_
176
/
제106호
_
179
/
제112호
_
182
/
제119호
_
185
/
제127호
_
188
/
제133호
_
191
/
제135호
_
194
/
제153호
_
197
/
제156호
_
201
/
제161호
_
204
/
제162호
_
207
/
제163호
_
210
/
제164호
_
213
/
제168호
_
216
/
제174호
_
220
/
제182호
_
223
/
제188호
_
226
/
제189호
_
229
/
제190호
_
232
/
제191호
_
235
/
제192호
_
238
/
제193호
_
241
/
제201호
_
244
/
제202호
_
247
/
제203호
_
250
/
제204호
_
253
/
제210호
_
256
/
제212호
_
259
/
제213호
_
262
/
제218호
_
265
/
제226호
_
268
/
제239호
_
271
/
제240호
_
274
/
제243호
_
276
/
제245호
_
278
/
제246호
_
281
/
제247호
_
284
/
제248호
_
287
/
제249호
_
290
/
제250호
_
293
/
제251호
_
296
/
제252호
_
299
/
제260호
_
302
/
제261호
_
305
/
제262호
_
307
/
제263호
_
310
/
제265호
_
312
/
제266호
_
315
/
제267호
_
318
/
제268호
_
321
/
제269호
_
324
/
제270호
_
327
/
제271호
_
330
/
제288호
_
333
/
제294호
_
336
/
제296호
_
339
/
제297호
_
342

제298호
_
345

제6권

제9호
_
351
/
제10호
_
355
/
제11호
_
359
/
제13호
_
362
/
제15호
_
365
/
제20호
_
368
/
제22호
_
371
/
제24호
_
374
/
제25호
_
377
/
제28호
_
380
/
제29호
_
383
/
제30호
_
386
/
제32호
_
389
/
제33호
_
392
/
제35호
_
395
/
제38호
_
398
/
제39호
_
401
/
제40호
_
404
/
제41호
_
407
/
제42호
_
410
/
제43호
_
413
/
제44호
_
417
/
제45호
_
420
/
제46호
_
423
/
제52호
_
426
/
제76호
_
429
/
제77호
_
433
/
제78호
_
436
/
제108호
_
440
/
제109호
_
442
/
제116호
_
445
/
제126호
_
448
/
제143호
_
451
/

저자 소개 2

李承晩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 현대사에 획을 그은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요, 정치가의 면모를 갖춘 그는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중 하나로, 프린스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재임 당시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었는데 이때 그는 국가의 존립과 자유를 지켜냈고 전쟁 후에는 국가의 재건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 현대사에 획을 그은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요, 정치가의 면모를 갖춘 그는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중 하나로, 프린스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재임 당시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었는데 이때 그는 국가의 존립과 자유를 지켜냈고 전쟁 후에는 국가의 재건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정치적 억압이나 선거 조작 같은 논란이 4·19혁명으로 비화되자 그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떠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남. 1878(3세) 서울 남대문 교외 염동으로 이사. 1885(10세) 서울 도동으로 이사. 도동서당에서 이후 10년간 유학 공부. 1887(12세)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 1894(19세) 11월 배재학당 입학. 1896(21세) 협성회 조직, 협성회보 주필. 1897(22세) 7월 배재학당 졸업. 1898(23세) [매일신문], [제국신문] 창간, 주필 및 논설 담당. 1899(24세) 1월 9일 고종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 수감됨. 1904(29세) 2.19~6.29. [독립정신] 저술. 1904(29세) 8월 9일 특사로 출옥, 11.4. 사절로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으로 출국. 1910(35세) 7월 18일 프린스턴대학 졸업(박사). 학위논문: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통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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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서울상대 경제학과 졸업 / 1980년 비봉출판사 설립 199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전) / 1996년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전) 저서 및 역서 孟子/ 충무공 이순신 전서(4권) /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신채호) 삼국연의(8권) / 독립정신(이승만) / 우남 이승만 漢詩集(일명 替役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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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152*224*30mm
ISBN13
9788937604881

출판사 리뷰

* 협성회 회보의 발간

1896년 11월 서재필은 협성회를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찬반 토론을 훈련시켰는데, 이승만은 이 협성회의 창립멤버였다. 1897년 7월 8일 배재학당을 졸업한 이승만은 이 협성회를 학교 밖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1897년 12월 상순 배재학당의 학생회인 협성회 제29회 공개토론회에서 회보 발간을 결정하고, 이듬해 1월 1일 학교 구내에서 창간하였다. 창간시 신문을 전담한 회보장(會報長)은 양홍묵(梁弘默), 주필에는 이승만이 취임하였다. 신문의 구성은 4면으로, 1면에는 논설을 싣고, 다음에는 국내의 소식(내보)과 외국의 소식(외보), 잡보와 협회의 소식, 그리고 짧은 광고를 실었다.

최종호가 되는 제14호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논설을 게재하였는데, 논설에서는 학문의 필요성, 자기직분에 충실할 것, 아동교육의 중요성, 매관매직과 탐관오리의 격퇴 등을 주장하였다. 1898년 3월 19일에 주간지를 일간으로 발간하기로 결정하고, 4월 9일부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의 발간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협성회회보]의 발간에는 처음부터 순 한글로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문자 생활을 한자 중심으로 하던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의 이승만의 사회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한자를 모르던 대중들을 위한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원래 한자말을 괄호 안에 되살렸는데, 한자말을 이해하는 것이 문장의 뜻을 명쾌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신문의 발간

1898년 3월 19일에 협성회 통상회 석상에서 주보로 발행되던 신문을 일간으로 변경한다는 방침이 결의된 후, 1898년 4월 9일에 제1호가 발행되었는데, [내외국 시세 형편과 국민에 유조한 말과 실제의 소문을 많이 기재할 터이니, 목적도 극히 중대하거니와 우리 회원이 일심 애국하는 지극한 충성의 간담을] 보아 달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발간되기 시작한 [매일신문]은 유영석 사장, 최정식 기자 등과 함께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일간신문이 되었다. 그러나 석 달 후인 7월 9일부터 회사 경영진 내에 금전 문제로 알력이 생기고, 본사에서 쓰던 활판을 주인이 가져가는 바람에 신문이 일시 정지되기에 이르렀다. 이때에 사장 유영석, 기자 최정식, 주필 이승만 등이 해임당하고, 7월 19일부터 새로 구성된 경영진에 의해 새로 발간되었으나 1899년 4월 4일자로 종간되었다. [매일신문]은 그 구성과 내용이 [협성회회보]와 거의 같았으나 발행이 주간이 아니라 일간이라는 점만 달랐다.

* 제국신문의 발간

1898년 8월 10일 이종일과 함께 [제국신문]을 창간하였다. 신문 제명을 제국이라 한 것은“이 신문이 우리 대황제 폐하의 당당한 대한국 백성에게 속한 신문”이라 함인데,“동양 반도국 사천여년 사기에 처음 되는 경사라, 우리가 이같이 경축하는 뜻을 천추에 기념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국 두 글자로 신문 제목을 삼았다”고 밝히면서“본사 주의인즉 신문을 아무쪼록 널리 전파하여 국가개명에 만분지일이라도 도움이 될까”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매일신문]에서는“근일에 [제국신문]이 새로 났는데 우리 매일신문과는 도무지 상관이 없으니 혹 신문 보시는 군자들이 제국신문을 매일신문으로 그릇 아실 듯하기로 자에 광고”한다는 광고문을 게재하였다.

1899년 1월 9일 수감되어 징역형을 살기 전에는 그의 생각이 입헌 군주제를 옹호하고 있었으므로, 8월부터 12월 말까지의 그의 논설과 관보, 외국통신, 전보 등도 그에 맞추어 작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정세는 대한문과 종로 거리에 연일 시위군중이 데모를 벌이고, 이에 맞추어 보부상 패들이 반대 시위를 하는 등의 형편이었으므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연말을 앞두고는 중추원에서 박영효 씨와 서재필 씨를 천거하는 문제로 의관 삼십 명이 가하다 하여 추천하였는데, 이에 대해 윗선에서는 크게 노하여 의장 등과 몇 의관을 면관하라고 하고 이승만 등에게도 체포를 명하였다. 이리하여 이승만은 제국신문의 논설도 쓰지 못하고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 태평양잡지와 태평양주보

[태평양잡지]와 [태평양주보] 등의 발간은 하와이 정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와이로 건너간 이승만은 하와이 군도를 방문하여 교포들의 생활상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대책을 수립하였으며, 하와이 교민들의 계몽과 한국 독립을 위한 자주독립 정신의 고취를 위하여 잡지의 창간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2월에 하와이에 도착한 그는 그해 9월부터 [태평양잡지]를 창간하였다.

그러나 [태평양잡지]는 1913년 9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18년 동안 출판되었으나 1915년부터 1922년까지, 그리고 1926년부터 1929년까지의 기간에는 잡지의 복사본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발행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1913년부터 1914년까지의 잡지는 거의 모두 이승만이 사장과 주필을 겸하여 개인 잡지마냥 혼자서 원고 작성과 편집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1920년대에는 다른 주필들이 주로 집필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 3월호로 속간된 이후 5월호부터는 집필자를 밝히는 편집체제로 바뀌었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주로 이승만이 직접 집필하였던 1913년과 1914년의 글들이 취합되었다.

창간호인 1913년 9월호가 없어서 잡지의 창간 목적과 취지 등을 볼 수 없으나, 11월호부터 보건데, 잡지의 주요 내용들은 주로 국내, 국외의 사항들과 국내의 정치, 사회, 문화 등으로 당시 하와이 한인들의 독립 자주 의식과 계몽에 필요한 사항들을 다루었다. 당시에 개통된 파나마 운하와 뉴욕의 지상세계, 필리핀과 중국의 내정과 독립 자주, 발칸 반도와 청국 북경의 소문 등은 모두 당시의 조선과 관련된 제3세계 문제를 다룬 글들이다.

특히 하멜의 일기는 당시까지 조선에서는 전혀 미지의 글이었던 것을 이승만이 처음으로 번역한 것으로, 이 책이 후에 국내에서 발간되게 된 것은 이승만이 번역하여 태평양잡지에 연재한 것을 국내의 다른 필자들이 보고서 재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양잡지]는 1930년대에 들어와서 동지회를 대신하는 [태평양주보]로 바뀌고, 그 경영도 완전히 동지회 대표들에게로 넘어갔다. 그 대신 이승만은 이제 잡지의 발간이란 일상의 업무로부터 해방되어 [일본의 가면을 벗기다(Japan Inside Out)]라는 책의 집필과 대한 독립운동을 위한 직접적인 일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태평양주보에 게재된 이승만의 논설은 그런 가운데 이승만이 직접 쓴 일부 논설문을 전부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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