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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제1부 괴편지: 신영복의 비석괴편지: 신영복의 비석3인의 회동민주제 對 군주제신부의 훈장탐문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었다4인 4색신영복이 쓴 제호: 우붕잡억지셴린의 반사反思우민끼의 ‘10월 민주항쟁정신’사이공의 흰옷과 하얀 아오자이제2부 벌교, 만절필동, 토착왜구벌교순수한 자유주의자부역자중국몽북한식 역사공정신영복주의자부산대의 10 · 16지역사회문제자료연구실필사筆寫만세, 만세, 자유여!회고김하기의 증언단서사람 사는 세상만절필동과 토착왜구제3부 고백: 반제청년동맹부림사건: 주사파와 볼세비즘역모의 님들께남도주체사상연구회6 · 25의 기억: 유시민과 조정래와 최송죽비석 타도 투쟁고백: 반제청년동맹윤한봉의 충격10 · 26의 회상: 박정희와 김재규부산 좌익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전前 근대를 위한 전사戰士독립좌파를 말하다꿈속의 외침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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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터져라 독재타도를 외쳤던 부마항쟁, 그로부터 42년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이제는 이야기되어야 할 진실부마항쟁에 참여해 두 번의 옥살이를 한 작가가몸속에 박혀 있던 가시를 뽑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다큐소설개인적 체험으로 말한다면 ‘나의 현대사’는 1979년 10월 16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부산대 학생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독재타도”를 외쳤다. 이 시위는 부산·마산의 시민항쟁으로 번졌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2019년, 이날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지난 세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자주 있다. 행운보다는 불행이 더 많았다. 무명의 용사가 민주화를 외치면서 ‘역사’에 도전했던 후과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내가 겪은 삶은 신산했다. 부마항쟁으로 두 번의 옥살이를 했는데 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 내 몸속에 가시가 박힌 것은 그 후였다. 나는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 원인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젊은 날 부산의 반제청년동맹에 관계했다. 조직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다.이 글은 내 몸에 박힌 가시를 뽑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나는 누구를 원망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고 성찰하고자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착안한 것은 다큐소설적 방법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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