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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1부 괴편지: 신영복의 비석 괴편지: 신영복의 비석 3인의 회동 민주제 對 군주제 신부의 훈장 탐문 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었다 4인 4색 신영복이 쓴 제호: 우붕잡억 지셴린의 반사反思 우민끼의 ‘10월 민주항쟁정신’ 사이공의 흰옷과 하얀 아오자이 제2부 벌교, 만절필동, 토착왜구 벌교 순수한 자유주의자 부역자 중국몽 북한식 역사공정 신영복주의자 부산대의 10 · 16 지역사회문제자료연구실 필사筆寫 만세, 만세, 자유여! 회고 김하기의 증언 단서 사람 사는 세상 만절필동과 토착왜구 제3부 고백: 반제청년동맹 부림사건: 주사파와 볼세비즘 역모의 님들께 남도주체사상연구회 6 · 25의 기억: 유시민과 조정래와 최송죽 비석 타도 투쟁 고백: 반제청년동맹 윤한봉의 충격 10 · 26의 회상: 박정희와 김재규 부산 좌익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전前 근대를 위한 전사戰士 독립좌파를 말하다 꿈속의 외침 미주 |
정광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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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신새벽이란 무엇일까. 신영복은 생전에 10 · 16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10 · 16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는데 말이야.”
--- p.13 “『사이공의 흰옷』은 한국적인 문맥에서 개작된 것이었다. 주인공 프엉이 반미구국투쟁에 나서는 조직적인 출발점은 청년동맹(공산청년단) 가입이었다! 『사이공의 흰옷』은 부산 좌익의 새로운 출현을 알리는 ‘역사적’인 출판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야기를 마친다.” --- p.98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들, 일터에서 경제를 일군 근로자와 기업가들, 민주화를 외친 시민 · 학생들, K 컬처의 문화예술인들이 만들어 낸 정체성입니다. 자유롭고 개성적이고 끼 많은 한국인들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한국의 새로운 정체성이 그들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좌우도 없습니다.” --- p.235 “조국전쟁은 북한에서 일으킨 전쟁이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조국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생겼습니까. 이제는 명백하게 알고 있습니다. 6 · 25는 북한이 일으킨 전쟁입니다.” --- p.253 “정말 이상한 것은 박정희에 대해서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면서도 김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악의 화신이라면 김일성은 어떨까. 독재라는 면에서 김일성은 박정희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나쁜 독재자가 아니었던가. 어째서 박정희는 물어뜯듯이 하면서도 김일성의 과오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고 있는가 말이다.” --- p.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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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터져라 독재타도를 외쳤던 부마항쟁, 그로부터 42년
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이제는 이야기되어야 할 진실 부마항쟁에 참여해 두 번의 옥살이를 한 작가가 몸속에 박혀 있던 가시를 뽑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다큐소설 개인적 체험으로 말한다면 ‘나의 현대사’는 1979년 10월 16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부산대 학생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독재타도”를 외쳤다. 이 시위는 부산·마산의 시민항쟁으로 번졌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2019년, 이날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자주 있다. 행운보다는 불행이 더 많았다. 무명의 용사가 민주화를 외치면서 ‘역사’에 도전했던 후과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가 겪은 삶은 신산했다. 부마항쟁으로 두 번의 옥살이를 했는데 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 내 몸속에 가시가 박힌 것은 그 후였다. 나는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 원인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젊은 날 부산의 반제청년동맹에 관계했다. 조직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다. 이 글은 내 몸에 박힌 가시를 뽑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나는 누구를 원망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고 성찰하고자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착안한 것은 다큐소설적 방법이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