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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
1부 6.25 전쟁과 부산 011 1. 부산이 대한민국을 구했다! 022 2. 6.25 전쟁이 만든 100만 도시 030 3. 전시 부산에서 피어난 자유사상 040 4. 중국은 항미원조전쟁, 조선은 조국해방전쟁, 한국은? 046 5. 영화 〈국제시장〉: 전쟁의 트라우마 055 6. 시대를 바꾼 노래 ‘전우가’ 065 7. 유엔묘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만 없다! 072 8. 임시수도 부산의 경제 〉〉〉 이호철의 『소시민』을 중심으로 2부 10.16을 말한다 089 9. 1979년 10월 16일 111 10. 운동권 중심 사관과 역사 왜곡 124 11. 가짜에 휘둘리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133 12. 10.16부마민주항쟁로 지정 축하 연설 136 13. 부산대 10.16 기념일 제정 경축 공연에서 한 인사말 139 14. 10.16 부마항쟁과 대선소주 143 15. 10.26의 회상: 박정희와 김재규 3부 부산의 운동과 정치 177 16. 남조선민족해방전선과 부마항쟁 183 17. 부산양서협동조합과 비밀서클 190 18. 베트남전쟁의 기억과 부산 202 19. 김영삼·노무현·문재인 〉〉〉 부산 출신 대통령의 좌우 분립 210 20. 문재인은 신영복주의자? 4부 부산의 정체성을 찾아서 225 21. 경부성장축과 부산의 몰락 234 22. 부산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243 23. 엑스포 너머의 부산 251 24. 10.16 부마항쟁기념관이 없다! 260 25. 신경림 시인의 성찰로부터 배운다 266 26. 독립 좌파와 자유주의 278 주석 284 추천의 글 |
정광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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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자유사상은 남북의 체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일 뿐 아니라 경제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까지 나아갔다. 이호철은 일생을 자유로서의 통일, 자유로서의 경제발전을 지지하는 사상을 견지했다. 이호철은 요산문학상 수상식에서 “부산은 제2의 고향이자 내 문 학의 뿌리”라고 말했다. 이호철의 자유사상은 그 발원지가 전시 부산이었다.
--- p.39 덕수는 전시 피난 이후 1960년대, 1970년대에 이르는 고난의 시대를 살아남았다. 덕수는 최소한 고난에 굴하지 않았다. 한 개인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 p.54 김영찬은 전시에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소시민을 ‘속물’로 규정했다. 작가가 묘사했듯이 “어떤 수단이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은 문제적인 상황이었는데, 전시라는 여건을 고려하면 불가피했거나 혹은 적합적인 행동 양식일 수도 있었다. 평론가들과는 달리 전시를 체험한 소설가 이호철은 소시민의 경제운동을 일면 긍정했다. --- p.83 1979년 10월 16일 아침, 나는 뜬눈으로 새벽을 보냈다. 우암동 집을 나서 부산대학교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9시였다. 금정산 산자락의 새벽벌은 푸르렀다. 운동장 위의 대학 본관 건물이 옅은 아침 햇살 아래서 하얀 서기(瑞氣)를 발하고 있었다. 새벽벌의 아침은 조용히 빛났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소지한 검은색의 가방 속에는 시국 선언문 300장이 들어 있었다. --- p.89 김선미 씨는 부산상대생의 시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연좌시위가 시작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 어설픈 역사 왜곡이다. --- p.117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은 역사의 주체, 사람의 운동을 기념하는 것이다. 부마항쟁 기념식은 어찌 된 셈인지 부마항쟁 주역들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 p.130 노무현 대통령이 부마항쟁을 말하면서 10.16을 특별히 언급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을 한다면서 10.16을 지우는데 앞장서는 자들이 일부 존재한다. 그들은 10.16을 말하면 펄쩍 뛰면서 왜 10.16을 말하느냐고 따진다. 그들에게는 부마항쟁의 역사성과 구체성이란 안중에도 없다. 이런 후진 풍토에서 대선주조가 10.16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상표를 소주병에 붙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p.142 이후락의 발상에는 북한 정치체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박정희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두 번 다 99.9%였다. 사실상 100%나 다를 바가 없는 숫자다. 득표율을 놓고 본다면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김일성의 유일체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 p.173 차성환은 부산 양서협동조합의 핵심 인물이었고, 부산 양협에서 배양한 인자가 부마항쟁에 적극 관여했다고 한다면, 남민전이 부마항쟁의 하나의 배후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78 유교적 전통이 있는 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비슷한 처지의 다른 나라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김일성의 금수산 궁전이 떠올랐다. 거대한 김일성 동상 아래서 참배객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90도로 절을 한다. 바딘 광장에는 거대한 동상은 없다. 호찌민은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호 아저씨로 존경받고 있지만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이것은 C와 H 두 친구를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다. --- p.201 김영삼과 노무현·문재인을 좌우로 나누는 선은 북한 문제였다. 김영삼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에 입각한 민주통일론을 견지했다. 노무현·문재인은 북한의 체제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소극적이었다. 통일 방안에서도 북측의 연방제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 p.209 경부성장축은 한국경제의 수도권 중심의 위계적 성장체제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부축은 한국 경제성장의 중심축인데도 그 중심축의 한 거점인 부산은 왜 몰락했는가? 경부성장축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경부축은 위계적이었다. 말하자면 서울 중심적 혹은 수도권 중심적 구조였다는 것이다. 부산은 서울로부터 규정되는 하부에 불과했다. 부산 몰락의 주요한 요인은 수도권 일극 집중에 있다. --- p.227 전체적으로 본다면 부산은 보수우파 성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산을 단색적인 보수우파 도시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보·좌파를 지지하는 시민이 상당수 존재한다. --- p.242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 중 부마항쟁만 기념관이 없다. --- p.253 신경림은 루마니아의 태양 차우셰스쿠의 동체가 사회주의혁명의 아버지 레닌의 모가지가 땅에 떨어져 민중의 발에 짓밟히던 날 나는 무엇을 했던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묻는다. 신경림은 북한과 쿠바의 참혹한 가난과 굶주린 어린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체 게바라가 산마루에서 총대를 베고 누워 바라보던 별이 아직 반짝이고 있을까, 묻는다. --- p.264 이들은 기성 사회와의 지배적 담론과는 다른 가치 지향을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드러냈다. 독립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독립 좌파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중국의 문인·지식인은 성찰을 통해 개인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진화적인 사회의 출현을 열망했다. --- p.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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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해방 이후 부산의 현대사를 주요 사건별로 정리한 것이다. 1부는 〈6.25 전쟁과 부산〉이라는 타이틀로 6.25 전쟁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부산은 품이 넓은 도시다.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은 피난 도시가 되었다. 부산은 임시수도도 받아들였고 피난민도 받아들였고 갈 곳 없는 기업도 받아들였다. 전쟁 중 부산은 작은 공화국이었다. 이북도 서울도 전라도도 경상도도 충청도도 강원도도 제주도도 있었다. 좌파도 있었고 우파도 있었다.
작은 공화국에서 반짝이며 용솟음친 것은 자유였다. 소설가 이호철의 자유사상이 발원한 곳은 다름 아닌 전시의 부산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자유의 깃발 아래 뭉쳤고 수많은 학도병이 몸을 던져 부산교두보 전투에 임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었다.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충신 중 충신이었다. 부산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다. 부산은 전쟁이 남긴 부(負)의 유산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해방 직후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가 전쟁통에 100만 대도시로 부풀었다. 부산은 어떻든 이런 인구를 부양하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전쟁 이후 부산은 먹고사는 문제, 주택문제, 물 문제, 전기문제, 도시환경 문제 등 여러 문제가 폭증했다. 중앙정부나 부산시 당국은 문제 해결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주체는 자유로운 개인들이었다. 김 씨나 천안 색시 그리고 광석이 아저씨는 죽을 둥 살 둥 맨몸들로 날고뛰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이호철은 서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작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전시의 상향적 경제 운동이 그 원형이었다고 평한다. 2부는 〈10.16을 말한다〉이다. 작가는 10.16 부마항쟁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는“1979년 10월 16일”이라는 글에서 부마항쟁 발생사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운동권 중심 사관과 역사 왜곡”은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10.16 발생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를 규명했다. “가짜에 휘둘리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가짜 사진, 동영상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부마항쟁 기념식 문제를 다루었다. “10.26의 회상: 박정희와 김재규”는 부마항쟁 당사자로서 10.26을 돌아본 글이다. 3부는 〈부산의 운동과 정치〉를 다루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과 부마항쟁”은 부산 출신 남민전 조직원이 당시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남민전과 부마항쟁의 관련성을 추적하면서 문제를 제기한 글이다. “부산양서협동조합과 비밀서클”은 양협의 설립 취지와 다른 사회주의 의식화 운동이 비밀리에 진행된 사실을 밝혀낸 글이다. “베트남전쟁의 기억과 부산”은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념탑 건립 운동, 부산 운동권의 『사이공의 흰옷』출판, 작가의 하노이 방문기를 각각 언급하면서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얼마나 상이한 것인가를 조명했다. “김영삼·노무현·문재인: 부산 출신 대통령의 좌우 분립”은 북한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 김영삼은 자유?우파, 노무현?문재인은 진보?좌파 정치가로 분립되었다고 평가한 글이다. “문재인은 신영복주의자?”는 『시월, 청년이 온다』는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신영복주의는 상충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4부는 〈부산의 정체성을 찾아서〉이다. “경부성장축과 부산의 몰락”은 수도권 일극 중심 체제 하에서 부산경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논하면서 부산의 활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탐문하고 있다. “부산은 보수인가 진보인가”는 여러 논자가 제기한 부산=보수도시 논쟁을 다룬 글이다. 작가는 부산은 보수가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단색적인 보수도시로 규정하는 것은 부산을 잘못 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밖에도 엑스포 유치운동의 문제점, 10.16 부마항쟁 기념관이 없다는 문제, 신경림 시인의 성찰, 독립 좌파를 언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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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사가 국가기념일로까지 지정되기는 했지만, 그 결과는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평범한 수많은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행사나 기념이 아니라 당시 소위 주역들의 잔치로 끝나고 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말 그대로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행사위주의 기념식으로는 민주정신의 가치를 일상화시켜낼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정광민의 『부산에서 본 현대사 -부산시민의 자유주의 역사 탐문』은 우리에게 모두의 자성을 위한 매개로 다가선다.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