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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프롤로그: 부산에 탱크가 들어왔다고? 1부 불씨 유신의 심장, 그늘진 도시 10월 15일, 실패한 거사 D-1: 우암동 다락방의 잉크 냄새 10월 16일: 자유라는 두 글자 2부 격랑 거리의 함성 유신 7주년, 유신을 심판하다 부산에 비상계엄 선포 불길은 마산으로 권력의 시선과 항쟁의 실체 괴물의 탄생: 전두환, 부산에 오다 세계의 눈, 부산으로 향하다 3부 유신정권 붕괴와 그 후 10월 26일: 궁정동의 총성, 부산에서 울리다 열흘, 청년이 역사가 되다 역사 전쟁: 누가 역사를 지우는가 10·16 기념관이 없다! 에필로그: 아직 끝나지 않은 열흘, 제정화의 시간 부록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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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월 16일 아침, 필자는 밤새 만든 선언문 200매가 든 책가 방을 들고 결전의 장소인 부산상대 건물 앞 벤치로 향했다. 오전 9시, 유유히 정문을 통과했다. 다행히 별다른 검문은 없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 벤치에 앉아 동지 박준석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계획을 가다듬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부산대는 ‘데모하지 않는 대학’으로 유명했기에, 단순히 유인물을 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떻게 학생들을 실제 행동으로 이끌어 낼 것인가?
--- p.36 작가 이병주가 말한 것처럼, 당시는 ‘긴급의 시대’였다. 박정희의 1인 독재를 위해 헌법 위에 군림했던 유신체제. 이에 저항하는 지식인과 학생들은 긴급조치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투옥되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필자는 왜 이 ‘긴급의 시대’에 맞서기로 결심했을까? --- p.43 동래경찰서 앞을 지키던 경찰들은 압도적인 기세로 달려오는 거대한 청년들의 물결 앞에서 순간 얼어붙었다. 이것은 더 이상 통제 가능한 시위가 아니었다. 억눌렸던 시대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여, 독재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혁명의 시작이었다. --- p.58 학생들은 4~5시간 동안 부산의 주요 도로를 달리며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차량 탑승객과 시민들에게 반유신 시위의 시작을 직접 알렸다. 멈춰 선 버스 안에서, 상점 안에서, 그리고 길 위에서 시민들은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생생한 함성과 결연한 표정을 목격했다. 이는 어떤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보다도 강력하고 진실된 메시지였다. 학생들은 걷는 내내 살아 있는 선언문이었고, 움직이는 횃불이었다. --- p.63 연행자 기록이 보여 주는 부산항쟁의 얼굴은 명확하다. 그것은 대학생과 잡급직·공원·노동·무직 등 저변의 근로 청년층의 10대 후반과 20대 청년들이 학력에 상관없이 함께 거리로 나선, 젊은 세대의 저항이었다. --- p.129 부마항쟁의 주체에 대한 질문은 ‘학생’에서 ‘도시 하층민’(임미리)으로, 다시 ‘복합적 동기의 개인’(차성환)으로 심화되었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두 집단을 모두 포괄하는 ‘청년혁명’이라는 거시적 관점으로 수렴된다. 낮의 ‘청년Ⅰ(학생)’과 밤의 ‘청년Ⅱ(근로 청년)’는 비록 계급적 지향에서 일부 불균질성을 가졌을지라도, 유신체제 타도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한 ‘하나의 세대’였다. --- p.145 부마항쟁이 10·26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어 18년간 이어지던 박정희 독재를 무너뜨린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이 부마항쟁이 갖는 가장 큰 역사적 의미다. --- p.179 불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연대했던 청년들의 정신은 오늘날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적인 가치가 되어야 한다. 부마항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가 결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수많은 시민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소중한 가치임을 배우게 된다. --- p.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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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바꾼 역사,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
부마항쟁을 다시 읽는다는 것의 의미 『열흘의 혁명』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시작된 부마항쟁을 단순한 민주화 사건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청년혁명’의 출발점으로 재조명하는 책이다. 저자 정광민은 항쟁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던 당사자로서, 교과서 속 몇 줄로 요약된 부마항쟁을 다시 현재의 시선으로 복원한다. 이 책은 ‘박정희 사망으로 끝난 사건’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넘어, 유신체제가 어떻게 붕괴의 균열을 드러냈고, 그 여파가 5·18과 6월항쟁으로 이어졌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특히 저자는 부마항쟁을 과거에 박제된 기억이 아닌, 오늘의 민주주의를 묻는 현재진행형의 질문으로 끌어올린다. 『열흘의 혁명』은 역사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되묻는 정치적·윤리적 텍스트다. 현장에서 다시 쓴 부마항쟁의 서사 『열흘의 혁명』의 가장 큰 강점은 ‘현장성’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의 거리감 있는 서술이 아니라, 실제로 항쟁을 준비하고 실행했던 청년의 시선에서 사건을 복원하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부산 시내에 탱크가 진입하던 장면은, 국가 폭력이 일상으로 침투하는 순간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독자를 단숨에 1979년으로 데려간다. 이후 부산대학교 캠퍼스에서 시작된 작은 결단, 실패로 끝난 10월 15일의 시도, 그리고 우암동 다락방에서 밤을 새워 선언문을 찍어 내던 장면들은 혁명이 결코 거창한 계획에서만 시작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항쟁의 전개 과정을 시간순으로 촘촘히 따라가면서도, YH 사건, 김영삼 의원직 제명, 경제 위기와 같은 구조적 배경을 함께 짚는다. 이를 통해 부마항쟁이 특정 정치 사건에 대한 일회적 분노가 아니라, 억압과 불평등이 누적된 사회 구조에 대한 폭발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특히 저자가 직접 작성했던 ‘폐정개혁안’의 분석을 통해 당시 학생들의 요구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체제 자체를 향하고 있었음을 밝혀내는 대목은 도서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청년혁명’으로 읽는 한국 민주주의 『열흘의 혁명』은 부마항쟁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첫 장’으로 재배치한다. 저자는 부마항쟁을 제1의 청년혁명으로 규정하며, 5·18 광주와 1987년 6월항쟁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해석한다. 이 관점은 민주화의 역사를 특정 지역이나 사건의 성취로 축소하지 않고, 세대를 이어 반복되어 온 청년들의 선택과 희생의 역사로 확장시킨는 것과 같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부마 세대’가 이후 부산 지역 시민운동과 정치 지형에 남긴 흔적을 짚어내는 부분이다. 항쟁의 경험이 개인의 기억으로 소멸되지 않고, 인권 변호사 노무현과 시민운동의 성장, 나아가 한국 정치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지역사와 현대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또한 부마항쟁이 여전히 충분히 기념되지 못하고, 기억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한다. ‘기념관이 없다’는 문제 제기는 단순한 시설 논의를 넘어, 우리가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역사를 지워 왔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열흘의 혁명』은 과거를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현재를 흔드는 책이다. 저자는 부마항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한 번의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시민에게 보내는 정치적 성찰의 메시지다. 다시 퇴행의 문턱에 선 듯한 지금, 『열흘의 혁명』은 묻는다. 우리는 불의 앞에서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 역사의 앞줄로 나설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도록 독자를 끈질기게 붙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