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그림의 새로운 시작
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희망읽기 2022.03.30.
가격
20,000
10 18,000
YES포인트?
1,0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이론 : 문명 전환과 그림의 새로운 시작

1장 문명 전환의 향방, 사물화 대 인격화
2장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3장 지각의 생태학과 미적 미메시스
4장 안정기의 예술과 이행기의 예술
5장 민중미술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미학

2부 전시 :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 전제 :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 기획 과정의 난점과 의의

1장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

1층 :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최진욱, 〈괴물, 언어, 재난공동체의 기호들-삼부작 중 오른쪽〉
김경주, 〈새들은 무등의 새벽을 깨우고〉
유연복, 〈고래의 꿈〉
이명복, 〈곶자왈(제주의 숲)〉
박진화, 〈어느 날〉
이종구, 〈감자밭-해남 농부들〉

2층 :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박영균, 〈오후4시의 완벽한 여름햇빛〉
박은태, 〈철골-여보세요〉
이윤엽, 〈밤에 출근하는 사람〉
김태헌, 〈‘주차방해물’ 연작〉
황세준, 〈무대〉
김지원, 〈맨드라미〉와 〈인물화〉
민정기, 〈구보의 이발2〉와 〈구보의 이발3〉
이선일, 〈그 너머의 풍경II〉
신학철, 〈젊은 날〉
정정엽, 〈방탄할메〉

3층 :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
김영진, 〈승자독식〉
주재환, 〈유전무죄 무전유죄〉
김천일, 〈용광로〉
김정헌, 〈산업화의 꿈〉과 〈산업화의 말로에 나는 소리〉
이태호, 〈종을 6번 울려주세요-무명 산재 사망 노동자를 위한 비〉
김재홍, 〈거인의 잠-장막〉
임옥상, 〈4·3레퀴엠〉
박흥순, 〈쇠똥구리〉
박불똥, 〈돈월이비해피〉

에필로그
심광현, 〈천년의 은행나무〉, 〈느티나무 숲(화양)〉, 〈폭우 속의 인왕산〉, 〈방학동의 아침〉

2장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의 서사지도

나가며

미주
작가약력
참고문헌

저자 소개 2

공저심광현

관심작가 알림신청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과 미래교육준비단장 및 UAT연구소 소장 역임. 『문화/과학』편집인, 한국문화연구학회 회장, 영화인회의/문화연대/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스크린쿼터문화연대/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 역임. 저서로는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2020),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2014),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2009), 『흥한민국』(2005), 『프랙탈』(2005) 등 다수가 있음. 영화 관련 주요 논문으로 「지각의 생태학과 운동-이미지와 내러티브의 영화적 순환」(2021), 「영화적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과 미래교육준비단장 및 UAT연구소 소장 역임. 『문화/과학』편집인, 한국문화연구학회 회장, 영화인회의/문화연대/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스크린쿼터문화연대/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 역임.
저서로는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2020),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2014),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2009), 『흥한민국』(2005), 『프랙탈』(2005) 등 다수가 있음. 영화 관련 주요 논문으로 「지각의 생태학과 운동-이미지와 내러티브의 영화적 순환」(2021),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2017), 「인지과학과 이미지의 문화정치」(2013), 「제3세대 인지과학과 시네마: 자본주의 매트릭스 vs 대안적 매트릭스」(2011),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과 인지과학의 공진화를 위한 시론」(2010), 「‘한국/영화’의 미학적 특정성에 대한 단상: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중심으로」(2003), 「영화연구의 탈근대 문화정치적 과제와 전망」(2001) 등이 있음.
영화 제작/기획 관련해서 《갑자기 불꽃처럼》 연출부(이장호 감독, 현진영화사, 1978-1979),《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기획/자문(이재용 감독, 영화사 봄, 2001), 《상처입은 용》 기획개발리서치 총괄(CJ엔터테인먼트, 2005) 경력이 있음.

심광현의 다른 상품

공저유진화

관심작가 알림신청
 
일상, 문학, 예술, 삶의 철학을 소소한 이야기로 어우르는 글을 쓰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산에 가기, 미소의 순간 등을 좋아한다. 저서에는 『그림의 새로운 시작 : 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심광현·유진화, 희망읽기, 2022), 『대중의 철학이 된 영화』(심광현·유진화, 희망읽기, 2021),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 문명 전환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심광현·유진화, 희망읽기, 2020)가 있다.

유진화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2쪽 | 170*240*20mm
ISBN13
9791197205132

책 속으로

80년대 민중미술은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하기도 했다.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 작가들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민중미술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해주는 디딤돌이 되었다. 주재환의 〈몬드리안 호텔〉(1980), 김정헌의 〈냉장고에 뭐 시원한 거 없나〉(1984) 같은 작품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 미술사적인 평가보다 오늘의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런 작업들이 오늘의 문명 전환의 분기점에서 환기시켜주는 ‘그림-이야기의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가치’다. 손으로 그리는 행위에 내재한 역동적인 감성적 활력과 현대미술의 권위와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 비판적 지성을 언어의 유희를 통해 자유롭게 연결하는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역량이 그것이다.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이란 이런 작가들이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풍부한 역량들을 명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결합해 보자는 것이다. (…)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는 것이다.
--- p.12~13

에세이 「이야기꾼」(1936)에서 벤야민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이야기꾼이자 소설가였던 레스코프가 당시에는 사라진 이런 이야기의 전통과 현대 소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이야기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집약했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꾼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자신의 경험의 발판들을 마치 사다리를 오르내리듯이 자유자재로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아래로는 지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이르고 위로는 구름에까지 닿아있는 이 사다리는 집단적 경험의 이미지다. 이 집단적 경험에는 개인적 경험의 가장 깊은 충격인 죽음조차도 아무런 충격이나 장애가 되지 않는다.”(벤야민1, 447쪽)

이런 이야기꾼은 미술이나 문학, 영화와 연극 같은 장르적 틀에 구애 받지 않고, 개인의 내면이나 사회제도나 지구생태계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자연과학적인 지식의 권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알기 쉽고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폭력과 고난 앞에서도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다성적이고 민중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오늘날 이런 성격의 이야기가 리얼리즘적인 그림과 새롭게 결합한다면 1차의식과 고차의식의 순환을 활성화하여 개체발생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계통발생의 다중지능 네트워크가 연결-선순환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그림-이야기를 실천해온 전문 작가들과 화려한 영상콘텐츠와 각종 게임에 친숙한 오늘의 관객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이 비대칭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일종의 ‘이야기꾼-작가’라 할 필자의 아내 유진화의 ‘그림-이야기’를 매개로 이 간극을 좁혀보고자 한다.
--- p.14~15

화가 주재환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생태주의 운동의 오랜 슬로건을 “우주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는 더 큰 화두로 확장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기도 힘든데 우주적으로 사고하자니! 하루하루를 보내기 바쁜 일상의 차원에서 보면 너무 거창한 요구다. 하지만 ‘인터넷, 우주, 친환경 에너지’를 창업 이념으로 내세우며 ‘스페이스 X’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얘기가 아니다. 물론 전자와 후자의 사고와 행동의 방향과 성격은 상반된 것이다. 하지만 공간적 범주의 확장은 비슷해 보인다. 이 범주적 유사성은 이제 인류 문명이 중대한 분기점에 이르렀음을 함축하고 있다. ‘우주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일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 p.22

그런데 ‘발등의 불’도 못 끄면서 어떻게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거나 “우주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놀랍게도 우리 자신, 바로 우리의 뇌에서 찾을 수 있다. [생명=환경 x 생명체]라는 정의는 ‘뇌는 환경의 변화와 몸의 변화의 상호작용을 매개하고 조율하는 장치’라는 21세기 뇌과학-인지생태학의 발견과 일치한다. 뇌 자체가 환경과 생명체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생명의 신호를 감지하여 응답하는 장치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생명에서 환경을 제외하거나 생명체와 환경을 분리시켜온 사물화 과정은 약동하는 생명의 신호 감지와 반응이라는 뇌의 기능을 불구화시켜온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간의 흐름을 역전시켜 뇌 기능의 바른 이해와 사용을 통해 환경 변화와 생명체 변화의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성화한다면 지역적-지구적 차원에서 환경과 생명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촉진해 죽어가는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는 역발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 p.26

이런 비유를 사용하면 뇌의 인지생태학적 이해의 기초는 기초문법을 연습하는 것과 유사하다. 뇌에 잠재된 비언어적-언어적 의사소통의 역량의 기본 구조와 기능을 알고 이를 활용해 자기의 몸과 비자기 환경 간의 역동적 연결을 연습하고, 사물화와 인격화의 연결 방식을 바꾸고, 생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일상적으로 체화하는 연습이다. 쉽게 말하면, 모두가 따로따로 사용하고 있는 손-도구의 짝패를 눈-그림의 짝패와 재결합하는 기초적인 연습이 그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이 책의 2장과 3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이 책의 1장 제목이 ‘문명 전환과 그림의 새로운 시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그림과 이야기란 무엇인가? 그림과 이야기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림과 이야기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 p. 27

물론 기하학적 원근법의 헤게모니는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회화와 건축의 등장에 따라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원근법의 해체가 사물화의 해체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모더니즘 미술의 평면화-추상화 양식은 19세기보다 더 극단적으로 격자화되고 초고층화된 현대 도시의 사물화 과정과 짝을 이루면서 인격화에서 더 멀어지고, 생명의 신호 자체를 삭제하거나 왜곡하는 ‘장식-기호’나 ‘기호-상품’으로 변해왔을 따름이다.
오늘날 이런 경향은 ‘테크노-아트’라는 명분을 내세워 다양한 유형의 위력적인 ‘기계-기호’의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대중의 일상적인 시각 경험과 전문가의 창작물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세웠다. 이런 장벽들을 허물고 양자 간의 시각적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생명-기호’에서 출발한 ‘그림-기호’의 역사적 변화를 좀 더 근본적인 시각, 즉 역사지리적인 환경의 변화와 인간 몸의 변화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뇌의 인지생태학적인 구조와 기능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p.29

인간 뇌에는 지각과 행동 고리 사이에 감정, 충동, 성찰, 상상력과 같은 다양한 중간 고리들이 다차원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여기에 무한한 해석 가능성을 함축한 기호학적 네트워크가 결합되면서 우리는 원하든 아니든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 타인들, 다른 생명체들과 다층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대화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 때 말하는 대화는 바흐친이 『말의 미학』에서 말했듯이 문자나 숫자만이 아니라 눈으로, 손으로, 입술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온몸으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다.

“인간의 진정한 삶에 유일하게 적절한 언어적 표현 형식은 완결되지 않는 대화이다. 삶은 본성상 대화적이다.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묻고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고 동의하고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이 대화에 인간은 삶 전부를 가지고 참여한다. 눈으로, 입술로, 손으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온몸으로, 행동으로, 그는 이 대화에 참여한다. 그는 자신의 전체를 말 속에 집어 넣으며 이 말은 인간 삶의 대화적인 직조물 속으로, 세계적인 심포지엄 속으로 들어간다.”(바흐친3, 454쪽)

이 대화적인 세계적 심포지엄은 단일한 의미로 확정되지 않는다. 다성음악의 복잡한 화음처럼 중층적인 콘트라스트들로 가득 찬 크고 작은 파도들이 충돌하면서 만드는 역동적인 인지생태-기호학적 리듬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 p.37

비생명의 힘들이 우리를 땅 끝으로 조금씩 몰아가고 있는 지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황토밭에 서서 기쁨에 겨운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는 9명의 농부들이 몹시 친근하고, 반갑고, 부럽기까지 한 이유. (이종구의 〈감자밭-해남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 중)
--- p.120

무대를 올려다보기만 하던 사람들을 무대 위로 전위시키는 무빙 카메라의 풍경 (…)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소중한 무대는 삶이라는 무대이며, 그 무대에서 밝히는 한 줌의 불빛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불씨로 타오르고 있음을 (…) (황세준의 〈무대〉에 대한 이야기 중)
--- p.132

징하게 몸과 마음을 부비며 체화되는 질곡과 해학의 리듬. 그것으로 주름이 굽이치고, 몸뚱이가 휘어지면서 날아오는 총알도 막아내는 것일까? (…) 끄떡없는 몸뻬를 걸쳤으니 양머리를 흔들며 어디 춤 한번 추어 볼까나? (정정엽의 〈방탄할메〉에 대한 이야기 중)
--- p.142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작은 종 하나가 그 먼 곳을 찾아온 누군가의 손에 의해 청아하게 울릴 때, 세상은 잠시 깊은 숨소리 같은 노래를 부른다. 죽은 자들을 위한 산 자들의 노래일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산 자들을 위한 죽은 자들의 노랫소리일지도. (이태호의 설치물 〈종을 6번 울려주세요-무명산재사망노동자를 위한 비〉에 대한 이야기 중)

--- p.154

출판사 리뷰

80년대 민중미술은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기도 했다.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 작가들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민중미술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는 디딤돌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작가가 그 특징을 잘 구현했는지를 따지는 미술사적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오늘의 문명 전환의 분기점이 환기시키는 ‘그림-이야기의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가치’.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행위에 내재한 역동적인 감성적 활력, 현대미술의 권위와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 비판적 지성, 이를 자유로운 언어의 유희로 연결하는 다중지능 네트워크 역량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은 무엇일까?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고 민중미술 작가들이 수십 년간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을 명시적으로 새롭게 결합하자는 선언이다. 이는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그림으로 펼침으로써 개인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의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혁명적 전환을 뜻한다.

사회 체계가 안정된 시기의 예술은, 지배적인 생산관계의 재생산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고통을 카타르시스로 순화함으로써 제도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창작의 내용과 표현이 원자화된 개인들의 단성적인 독백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오늘과 같은 문명사적 ‘이행기의 예술’은, 시스템이 요동쳐 발생하는 공백 속에서 자유로워진 개인들을 사회적 개인들로 연결한다. 흩어진 개인들을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이로써 창작의 내용과 표현은 대화적, 다성적, 민중적인 성격을 취하게 된다.
오래 전 동굴벽화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동안 민중, 그림, 이야기, 세상은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했다. 이 책은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기를 맞아 이 네 가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해 보자고 제안한다. 한때 첫발을 내딛었다가 한동안 소강상태에 머물렀던 서사-화, 그림-이야기, 이야기-그림, 세계-그림의 새로운 시작이 그것이다.

책의 1부에서는 문명 전환을 위한 복잡한 과제를 그림-이야기의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풀 수 있는지를 기호학적이고 인지생태학적 관점에서 해명한다. 그리고 안정기의 사유/예술과 이행기의 사유/예술이라는 문제틀을 제시하면서 후자의 이론적 근거를 바흐친과 더불어 70~80년대 김윤수의 리얼리즘 미학과 민중미술운동에서 새롭게 발굴한다. 이런 점에서 책의 1부는 미술이론 또는 미술철학에 해당한다. 반면 책의 2부는 이런 관점을 오늘의 시점에서 구현한 26명 작가들의 46점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회 〈그림의 새로운 시작〉의 기획 및 각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꾼-작가 유진화의 해설과 전시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심광현의 평론으로 구성된다.

각 페이지마다 작품 이미지와 유진화의 작품 해설이 짝을 이루는 각각의 그림-이야기는 마치 26개의 신(scene)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반면 심광현의 평론은 이를 11개 시퀀스(sequence), 3개 막(act)의 형식으로 연결한 하나의 서사지도다. 3개의 막은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이라는 전시회의 3개 소주제에 해당한다. 저자들은 출품 작가들의 ‘서사-화’, 이야기꾼-작가의 그림-이야기, 전시 기획자가 몽타주한 서사지도가 관객들에게 잠재된 다양한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경험을 일깨워 코로나19를 계기로 증폭된 세 가지 생태계의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레시안 보도( 2022년 3월 30일, 프레시안 books )

서평_『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심광현,유진화가 지은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가 출간되었다. 책 출간과 함께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전도 3월 1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삼육빌딩에서 열렸다. 책을 살피고 전시를 읽는다.

#0. 파미르 고원
이 책은 유라시아를 사슴뿔(生角)로 크게 틔우고, 장구의 궁편과 채편을 휘모리로 몰아가듯 좌뇌(左腦)와 우뇌(右腦)를 뒤흔들어 뇌들보(腦梁)의 불꽃을 일으켜야 잘 읽힌다. 유라시아를 가르는 파미르 고원이 한반도 신화의 한 수원지라는 것을 기억하자. 파미르 고원이 또한 유라시아의 뇌들보이므로. 그가 [그림-1]로 제시한 “4가지 실존양식의 좌표 속에 위치한 개인구성체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10쪽)는 맑스(좌뇌/궁편)와 칸트(우뇌/채편)의 두 편이 어긋매끼면서 직관-판단력-감정-정동-신체가 뇌들보에서 증폭되는 구조다. 좌우가 돌돌 이어 꼬이면서 환빛(神明)의 회오리로 내리 솟구치는 꼴이랄까! 내릴 때는 생활양식/자연적 미메시스(스피노자, 프로이트)로 드러나고, 솟을 때는 통치양식/사회적 미메시스(알튀세르, 푸코)로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철학적 전통에서 ‘내림’은 공자의 유학에 가깝고, ‘솟음’은 노자의 도학에 가깝다. 공자의 인의예지는 사실 통치양식이 아니라 생활양식이고, 노자의 무위적 성인(聖人)은 통치학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생활양식의 보편성은 정치학으로 넓어지고, 성인의 통치학은 ‘스스로의 깨달음’이라는 생활수행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공자는 죽을 때까지 ‘(인간)사회’를 놓지 않았고, 노자 또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자연(만물)’을 놓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사유구조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책은 유라시아 반대편의 사유구조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과 예술을 되묻는다.

#1. 삼위일체
이 책은 삼위일체론을 제시한다. ‘개인 구성체의 위기’, ‘사회구성체의 위기’, ‘자연구성체의 위기’의 삼위기(三危機)가 하나로 몰려들어 땅구술(地球)을 극심한 혼란 속에 빠뜨렸다는 것.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로의 개념정립이 옳다며 ‘삼위일체 트라이앵글’을 그들이 판단한 가장 현실적인 난제로 제시한다. 이 난제를 뒤집어엎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 그들은 삼위기 그물코에 잇대어 미학-문명사-자본-예술학-인지생태학-이야기의 그물을 짓는다. 그물과 그물코의 중층적 알고리즘에서 그들은 하나의 대안을 뽑아낸다. 그 대안은 러시아 철학자 바흐친이 역설한 ‘대화적-다성적-민중적’ 이야기와 소설의 전통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소리나 한글 가사체(춘향전, 용담유사와 같은 이야기체 글), 굿의 본풀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은 ‘창조적 굿짓’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민중적 현실의 고치에서 뽑아낸 이야기가 짓고 일으키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손-그림과 입술-이야기의 사용을 재결합하는 것이다. 이 오래된 방법의 재사용 장점은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하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복잡한 기술과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13쪽)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침놀’을 향한 미학의 파고듦이다! 삼위일체를 부수고 ‘다시 개벽’의 세계를 열기 위한 이들의 계획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실천이 문제일 뿐!

#2. 부활
스무 살이 되던 1987년과 그 이듬해 88년,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타 올랐던 그 두 해 어디쯤에서 평론은 시작되었다. 민중미술 작품을 보고 그들의 작가론을 읽고 그 시대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면서 평론의 맛을 익혔다. 때마침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번졌고 이쪽저쪽의 갈림길로 미끄러지듯 몰려가는 예술가들을 보았다. 정치에 빗대어 미술의 민주화(민중미술)와 미술의 자유화(미술시장)가 서로 맞섰다. 미술비평연구회(미비연)도 그 무렵 발족했다. 미비연은 평론의 정치성을 줏대로 내세운 최초의 비평그룹이었다. 민중미술 평론도 그 무렵 가장 첨예한 담론을 쏟아냈다. 비판적 리얼리즘, 민중적 리얼리즘, 당파적 리얼리즘이 날 선 대립각을 세웠고, 그 경향성에 따라 활동이 갈렸다. 참으로 그 시대는 이론의 시대였다. 미비연의 출현으로 한국현대미술은 본격적인 평론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들은 모더니즘 비평과 맞장뜨며 민중미술에서 미학의 정치성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하면서 ‘전투적 아방가르드 미술운동’(70쪽)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술을 시각예술 장르로 재정의하고,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시각예술의 혁명성을 넓히고자 했다. 그런 민중미학의 확장적 개념으로 대중문화의 이면을 파고든 것은 선구적 작업이었다. 당시 서울미술관 기획실장을 지낸 심광현의 평론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맑시즘과 후기구조주의를 무기로 미비연의 맨 앞자리에서 칼 같은 글쓰기를 수행했다. 사회현실의 논점을 파고들었고, 예술정치성의 세목을 판독하면서 민중미술 진영의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따져 물었다. 그는 진영 내부의 날카로운 논객이었다. 1990년의 시대령(時代嶺)을 넘을 때 그는 ‘90년대 미술담론’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민중미술 담론이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의 [민중미술 15년 : 1980-1994](1994)전이 열리자, 문화이론가로 길을 바꾸었다. 이 책에는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12쪽)하면서 “(그림과 이야기)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13쪽) 민중미술에의 오마주가 깊게 깔려 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의 부활을 기획하는 중이다.

#3. 아시아
시각문화, 문화연구, 문화공학, 예술과 과학기술, 인지과학, 문화정치, 기술-사회 공진화, 신경과학-윤리학의 공진화, 맑스코뮤날레, 인간혁명, 사회혁명…. 예술 어귀의 안팎을 넘나들고 문화과학을 가로지르며 마르크스 이론가 심광현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들이다. [표-5]의 “축적 순환 주기 및 국면변화와 상응하는 근현대 사유의 계보학”(60쪽)에 밝혀 놓았듯이 그는 자본/제국의 헤게모니에 따라 철학적 계보학을 분류한다 : 네델란드 헤게모니(1618~1789), 영국 헤게모니(1789~1929), 미국 헤게모니(1929~2008?10), 새로운 이행기(2017~ ). 각 헤게모니의 국면에서 a(이행기)의 20세기는 프로이트, 베르그송, 후설, 존듀이, 화이트헤드, 레닌, 그람시, 벤야민, 비트겐슈타인이 있고, b(실물팽창)의 20세기는 바슐라르, 하이데거, 라캉이 있으며, c(국면전환)의 20세기는 H.르페브르, G.베이트슨,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시몽동이, 그리고 d(금융팽창)의 20세기는 들뢰즈, 푸코, 데리다, 그 외 가타리, 바디우, 발리바르, 랑시에르, 네그리, 고진 등이 있다. 이 사유의 계보학에 남북중앙아시아,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철학자는 없다. 왜 이 대륙의 철학자는 이곳에 없는 것일까? 아시아 한반도에 발 딛고 유럽(유라시아 좌뇌)의 지식체계로 전환의 알고리즘을 짜고 있는 이 영민한 이론가는 21세기 이행기의 예술적 잠재력을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성장의 계기로 제시한 “애니미즘→신화적 인식→종교적 인식→과학적 인식→예술적 인식”에 주목한다(62쪽). 그는 “과거의 모든 이행기란 곧 인류가 유년기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단절적-불연속적인 성장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과 지구생태계 및 사회생태계의 환경 전체와 전면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단계, 즉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자기 인식’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성장’과 그의 ‘인식 단계’로서의 ‘일방향 화살표(→)’는 다소 갸우뚱거림이 있다. 그가 64쪽과 65쪽에서 밝히고 있듯이 “원자화된 개인들이 사회적 개인들로 재탄생하고, 흩어진 개인들을 다시금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로서”를 말하는 부분과,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경향적으로 발전해 온 수많은 민중들의 대화적-다성적-해방적 목소리의 반복적인 표현으로 수렴된다(물론 이 반복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들뢰즈가 강조했듯이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이다)”라고 한 부분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예술창조의 다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에서 다소 무색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해석이 아니라 창조를 생각해 보라. 창조는 해석보다 더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카오스가 아닌가(64~65쪽). 카오스-플랙탈을 오가는 그의 이론은 아주 흥미롭게도 다분히 아시아적이다. 그의 『흥한민국』(2005)은 ‘사유의 계보학’이 ‘심광현’이라는 한 한국인의 사유체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유라시아의 우뇌인 아시아는 21세기로 깊숙이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화두일 수 있다.

#4. 민중적 리얼리즘
2021년 12월 심광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민중미술계 1세대 평론가인 원동석(1938~2017), 최민(1944~2018), 박용숙(1935~2018), 김윤수(1936~2018) 선생이 작고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성완경(1944~2022) 선생의 부음(訃音)이 전해졌다. 성완경은 1980년대 초반 「한국 현대미술의 빗나간 궤적」을 발표하며 1970년대 백색 모노크롬의 시대를 간단없이 뛰어넘는 ‘발언의 현실’을 도전적으로 제시했다. 미학적 실천을 밀고 간 그의 비평은 담대했다. 그는 또 미비연의 탄생을 주도했다. 그런 성완경의 부음과 심광현의 퇴직은 민중미술 비평이 ‘역사화’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림의 새로운 시작]전과 같은 이름의 책을 보고 읽었다. 그런데 심광현은 이들 1세대의 비평 유산을 다시 읽기하며 ‘역사화’와 ‘현재화’를 나누지 않고 ‘이행기’의 관점으로 두 과제를 이어 붙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김윤수다. ‘김윤수 리얼리즘 미학의 재조명’(76쪽)을 위해 유고집을 촘촘히 읽는다. 그가 인용한 ‘예술의 건강성’에 대한 김윤수의 평론 : “건강한 예술, 예술에서의 건강성의 추구는 첫째 예술적 종합을 형상화하는 일과, 둘째 그것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리는 일,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한 예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80쪽) 심광현은 김윤수가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린다”고 강조함으로써 예술이 “몽상을 따라간다”고 말했던 프로이트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해석했다(81쪽). 현실적 모순을 그리는 극복의 꿈. 여기에 심광현과 유진화가 더하려는 것은 관객과의 다성적 쌍방향 대화를 촉진하는 ‘민중미술의 새로운 실천’이다. “‘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서는 ‘민중미술2.0’의 개화”, “이야기-그림과 그림-이야기의 쌍방향 대화의 촉진”, “수많은 장벽에 막힌 개인들의 무의식적 소원-성취(인간과 인간,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을 재결합하는 에로스의 소원-성취)를 다양한 미학적 형식을 통해 연결해 줄 효과적인 사회적 통로”(101쪽). 바로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민중적 리얼리즘’이리라.

#5. 옹알이
이 책의 2부 1장은 작가 유진화의 그림 읽기의 이야기다(109~167쪽). 그가 이야기꾼으로 나설 때는 작가의 옷도, 평론의 의식도 내려놓았다. 그는 관객이 아무 정보 없이 작품 앞에 설 때처럼 그 자신의 눈과 앎으로만 이야기를 풀었다. 예술가의 이력도, 그 이력의 내력담이 작품주제로 파고들어 줄기차게 이어가는 어떤 함의도 따지지 않았다. 문맥은 오롯이 그가 읽어낸 글의 줄기를 따라 이어졌다. 그러므로 어떤 글은 싱싱하고 어떤 글은 들뜨고 어떤 글은 달라붙지 않고 어떤 글은 어이없고 어떤 글은 소름 돋았다. 가령, 박은태의 [철골-여보세요]를 풀어서 “노란 안전모를 쓴 건설 관계자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현장에서 급히 걸음을 옮기며 여보세요!를 외치고 있는 이유. 그 이유를 헤아려 보기 위해 그림의 풍경 속을 다시 더듬어 본다. 분주함 대신 정갈함. 꽉 참 대신 휑함. 현장으로부터 멀고 높은 시선. 그림자와 관. 침대와 선물 꾸러미. 그런데 이런 것들로 유추한 추리의 세상 속에서 문든 뿌연 먼지가 인다. 혹시 철골을 턱없이 모자라게 사용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끔찍하고 참혹했다. 이야기는 그림과 아귀가 딱 맞아서 울렸으므로. 그의 글들은 글마다 그 속에서 조금씩은 싱싱했고, 조금씩은 무거웠고, 조금씩은 놀라웠으며, 조금씩은 아귀가 맞아서 시원했다. 물론 이론적이거나 주제만 너무 파고들거나 지식 정보에 기댄 경우도 적잖았으나, 어쩌면 바로 그런 읽기의 방식이야말로 ‘비평의 옹알이’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6. 뱀발(蛇足)
책의 부제인 “문명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를 위해 좀 더 과거를 되짚어야 한다면 민중신학과 실천문학일 것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이후 교회 내부의 신학은 바깥으로 나와서 제 몫을 갖지 못한 민중들과 해우했다. 그 무렵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가 발족했다. 1975년 민중신학의 이름으로 ‘민중’이 누구인가를 물었고,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조우했다. 1960년대 후반 문학평론가 조동일은 민족미학과 관련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1970년대 민족문학의 씨알이었고 그것은 문화 전반으로 파고들었다. 1970년대 후반 민중미술 소집단들이 숨을 고르며 결성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학습한 것은 김지하의 「현실동인 제1선언」이었다. 여기에는 고구려 벽화는 물론 고려 불화, 조선 민화에 대한 이론적 회오리가 여러 방식으로 솟아오른다. 영화적 문법과 다른 고구려 벽화, 고려불화의 몽타주론은 1980년대 걸개그림의 주 형식이 되었다. ‘민중 메시아’는 광주와 서울의 민중미술가들이 ‘신명’에 기초해 길어 올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실체였다. 당시 청년 예술가들이 깊게 탐독한 책들은 송건호 외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마루쿠제의 『위대한 거부』와 『이성과 혁명』, 전미카엘의 『노동자의 길잡이』, 린다H.존스의 『제3세계의 인권운동』,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P.프레이리의 『페다고지』, N.C.C.의 『산업선교는 왜 문제시 되는가』,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브리이덴시타인의 『인간화』, 염무웅의 『민중시대의 문학』,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장일조의 『사회운동이념사』, 우인기의 『건국전야의 비화』, 김응삼의 『오늘의 민족노선』, 김윤환 외의 『한국노동문제의 구조』등이다.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이 책들은 판금도서였다. 민중미술의 첫 샘은 여러 뿌리의 물줄기가 이어 붙어서 솟구친 것이다. 깃발, 걸개, 만장, 플래카드, 벽보, 전단지, 신문, 슬라이드, 이야기그림 등 전시장 바깥의 민중미술은 현장성을 앞세웠다. 시각매체 미디어의 변화에 대응한 동시대 ‘바깥미학’은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고분벽화, 불화, 민화의 불연속적 시간성의 몽타주는? 집회시위의 다성적 목소리를 크게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은? 공동체 신명의 아우라를 심어낼 수 있는 미학적 실천은?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처럼 사건의 혁명성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의제는?

심광현과 유진화의 책과 전시는 이제야말로 민중미술을 다시 읽기하면서 새로 질문하고 새로 모색하고 새로 역사화해야 한다고 따진다. 그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위대한 미술이 먼지에 쌓여 잊히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을까? 미술시장의 급성장과 K-미술의 급부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지나쳐 온 민중미술에 대해 다시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 미술에 우리 미술의 ‘동시대성’이 웅숭깊게 뿌리박혀 있을지 모르잖은가!
- 김종길 (미술평론가)

추천평

[‘생태적 회화’의 시작]

이 책은 한 화가의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30여 년 전에, 좁은 무대만을 문제삼는 모더니즘과 넓은 바깥세상만을 문제 삼는 리얼리즘에 의문을 품으며, 극장 자체와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겠노라고 '그림의 시작'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동안 지구생태계의 위기와 양극화로 인한 사회생태계의 위기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인간생태계의 분열마저 겪으며 떠밀려 나가기만 했다. 이러한 문명의 이행기에는 역사지리적 환경 변화에 대한 인지생태학적인 작용과 반작용의 변증법을 살펴봐야 한다고 저자는 자세한 설명과 다이어그램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명의 이행기야말로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정치, 사회,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며, 현재 '과학의 세기'라고 지칭하는 20세기, 21세기 다음으로 '예술적 자기인식'의 세기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실증적 사례와 이론을 통해 전하면서, 지금이 '그림의 새로운 시작'을 할 때라고 강조한다.

미술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미술시장(아트페어 미술)이 극도로 상업주의에 물들어 '일러스트 페어'와 다를 바 없다고 한탄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 일목요연한 설명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해주고 있다.(39-40쪽) 그것을 읽으면서 이 책은 미술대학에서 교재로 써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에서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굳이 실기 시간의 앞부분을 할애해 강독했는데, 그림이 감각과 연결되는 부분을 해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술 이론서들은 저널리즘적인 미술사와 더불어 작가와 저자 개인의 미학적 태도가 전부인데 반해, '감각의 논리'는 실제 그림의 이론서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미술전반의 향방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겐 이미 40년 전에 '민중미술'이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있었다. 민중미술의 주 특징인 그림-이야기가 대안적인 문명 전환의 주요한 실천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이란 이런 작가들이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풍부한 역량들을 명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결합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꾼 유진화가 연결자로서 등장한다. 이미 2020년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2021년 『대중의 철학이 된 영화』에서 가정주부이자, 필자의 아내로서-'암묵지'의 참가자로서-무겁고, 맵싸한 글맛을 선사했던 유진화는 작가 26명의 작품 하나 하나에 이번에는 유려한 문장으로 뜻 깊은- 최초의 관객 참여자로서 -'미술담론'에 참여한다.
예술의 상품화가 가속화 되면서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전반에서 인간의 창작 기능의 상당 부분이 배제되기 시작하고 있다."(63쪽)고 책에 나오는데, 나는 '배제'라는 단어가 특히 눈에 꽂혔다. 현재 작가들은 전시를 하든, 안 하든, 실제로 배제 되는 경험을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하고있다. 작가 자신이 배제 되든, 작품이 배제 되든 말할 나위없이 씁쓸한 경험이다. 8-90년대 혁혁한 민중미술 비평가였다가, 한예종 영상이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계의 가장 진보적인 학자로 맹활약을 해온 심광현은 한번도 문화현장을 떠난 적이 없지만, 25년 만에 다시 미술평론가로 돌아온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역사 지리-인지생태학과 다중지능 네트워크가 배제의 굴레를 쓰고 있는 현대미술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가 크다. 나는 최근에 개인전에 출품할 그림들을 끝내고, 담담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은 후, 새로 작은 그림 하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림의 제목이 [먼 곳으로부터]이다. 이 그림을 시작하며 여태까지 사로잡혀 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개념적 회화’를 넘어 심광현이 노상 강조하고 있었던-이 책에서도 줄곧 얘기하는-‘생태적 회화’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역사적 시공간을 가로 질러 역사지리-생태적 깨달음의 바람을 가슴으로 맞는 그런 기분을 주었는데, 20여 년 전, 경복궁 근정전 앞에 관광객과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인 가운데, 나의 어린 두 딸이 눈앞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 최진욱 (화가)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18,000
1 1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