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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21세기 문명 전환의 열쇠, 인간혁명
서론: 전 지구적 다중위기와 이행기의 나비 효과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 1장 인공지능자본주의의 역설과 성년기 인류의 과제 1절 인공지능자본주의의 역설과 내파 2절 사회 발전의 두 모형과 인간 개념의 표류 3절 다중위기 속의 기회, 성년기 인류의 과제 2장 역사지리-인지생태학과 인간혁명의 시대 4절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분석 5절 인간혁명의 개념 정의 6절 사회구성체, 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3장 뇌 기능의 인지생태학적 모형 7절 뇌 기능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 8절 뇌 기능의 시공간적 다중스케일 분석 9절 뇌의 다기능적 원환의 철학적 함의 10절 의식의 탄생과 무의식의 역할 4장 주체양식의 철학적 모형 11절 시몽동 철학의 인지생태학적 해석 12절 칸트 철학의 인지생태학적 해석 13절 스피노자 철학과 칸트 철학의 인지생태학적 연결 14절 자유-평등-연대의 철학적-?인지생태학적 순환 모형 15절 형식지와 암묵지의 순환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 전문: 협력의 네트워크 ‘빛나는 날’ 1장 몸의 자유 ST1. 신호 101. 수직적인 최고의 삶에서 수평적인 최적의 삶으로 ST2. 용기 102. 몸에 내재한 타나토스 일깨우기 ST3. 빛 ST4. 반전 ST5. 다름 103. 우연한 마주침과 반전의 마법 ST6. 생명력 ST7. 연관 104. 상품들의 연관에서 생명의 연관으로 ST8. 협력 105. 진화의 제3 원리 ST9. 역경 ST10. 변화 106. 생명의 역동적 균형 ST11. 유토피아 ST12. 충전 107. 비움과 채움의 반복과 무의식적 선택 ST13. 대상 ST14. 이치 108. 의식적 선택과 자연의 윤리 2장 공간의 감정 ST15. 부러움 109. 협력의 가치 ST16. 영원 ST17. 생존 110. 욕구의 피라미드를 타원의 상호작용으로 ST18. 전환 ST19. 연상 111. 물리적-정신적 시공간의 재배치 ST20. 여행 ST21. 연기 112. 소원성취라는 ‘가족적 유사성’ ST22. 비움 ST23. 시간표 113. 공간의 패러다임 전환과 시간의 경제 ST24. 생동 ST25. 환상 114. 생태문화도시를 향한 고차의식의 레비 비행 ST26. 기다림 ST27. 웃음 115. 민주적 협력가족과 웃음의 네트워크 ST28. 자연 116. 공감과 반감의 역동적 네트워크 3장 관계의 흥 ST29. 애정 ST30. 거울 117. 사랑의 재입력 고리와 에로스의 성장통 ST31. 평등 ST32. 창조 ST33. 활동 118. 다차원적 미메시스와 지각-행동 고리의 재충전 ST34. 세대 119. 수직적?적대적 세대 관계에서 수평적?협력적 세대 관계로 ST35. 우연 ST36. 언어 120. 필연의 담론에서 우연한 마주침의 대화로 ST37. 노력 ST38. 기쁨 121. 반성적 취미로 확장된 기쁨의 회로 ST39. 성찰 ST40. 인격 122. 성찰적 인격으로 매개된 간주관적 자유의 네트워크 ST41. 모방 ST42. 감동 123. 미메시스로 퍼져나가는 감동의 동심원 4장 마음의 축제 ST43. 마음 124. 마음의 능력들의 전방위 네트워크 ST44. 감각 125. 특수감각과 내장감각을 매개하는 체성감각 ST45. 오성 126. 개념을 통한 보편성의 사고 ST46. 욕망 127. 요구와 욕구의 변증법 ST47.이성 128.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실천이성 ST48. 감정 129. 자기와 비자기의 상호작용의 감성적 균형 조절?경보 장치 ST49. 판단력 130. 마음의 능력들 전체의 역동적 균형 ST50. 이야기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 1장 인간혁명의 항해술 1절 주체양식의 복잡계 네트워크 2절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의 일반 모형 3절 시공간의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재배치 2장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의 선순환 경로 찾기 4절 사회구성체의 다중스케일 분석과 이행 과정 설계 5절 생산양식?주체양식?통치양식?생활양식의 선순환 회로 6절 지식순환 협력교육, 일상생활의 실험, 어소시에이션의 정치 결론: 인공지능 매트릭스 대 인간혁명의 매트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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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가 야기한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의 균열”(맑스)이 임계점에 이르고 있는 오늘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간 활동의 변화가 사회 환경 및 자연환경의 변화와 선순환 할 수 있도록 혁명적 실천의 새로운 틀을 세워야 한다. 그람시는 인간을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의 총체”,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요소들과 대중적이고 객관적 · 물질적 요소들이 결합된 역사적 블록”으로 재정의 하고, “관계들의 일반적 체계인 외부 세계를 변형시킨다는 것은 스스로를 활성화하고 계발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향상’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람시의 이런 생각을 맑스와 다시 연결하면, 인간혁명이란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가 선순환 하는 방향으로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를 추구하는 혁명적 실천]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p.9 2. 인간혁명 없는 사회혁명은 맹목적이고, 사회혁명 없는 인간혁명은 공허하다. 나아가 사회혁명과 인간혁명의 선순환 관계는 다시 자연의 질서와 선순환 해야 한다. --- p.10 3. 지식순환의 두 유형을 구분해야 한다. 자본축적을 위한 [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폐쇄회로]와 개인?사회?자연의 공진화를 촉진할 [비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개방회로]가 그것이다. 과학기술과 민주적 대중정치의 공진화를 위해서는 이런 구분을 통해 전자를 비판하고 후자를 확대하는 철학적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가치중립적 외피를 쓰고 자본에 예속된 폐쇄적 지식순환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이 그것이다 --- p.23 4. 인간의 [뇌 신체지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손과 입술이다. 인간은 직립으로 자유로워진 손과 입술을 사용해 도구를 제작하고 언어를 발명해 문명을 건설했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손-도구] 사용(생산과 폭력)과 [입술-언어] 사용(담론과 대화) 방식에 다음과 같이 유례없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앞으로는 과거보다 [손-도구] 사용의 사회적 비중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때 남아도는 자유에너지를 [입술-언어]의 사용에 쓸 수 있다......[손-도구]의 사용은 생산적 활동만이 아니라 파괴적 활동(폭력과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입술-언어]의 사용도 협력?연대?진실의 소통만이 아니라 경쟁?분열?거짓의 확산에 악용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측면을 억제하고 전자의 측면을 활성화하는 [지식순환의 철학]과 제대로 연결된다면 기술적 활동과 인격적 대화를 융합한 창조적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 p.29~30 5. 모두의 뇌에 잠재된 다중지능적 스토리텔링 역량을 소수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두는 것은 각자의 주권을 소수 정치가들에게 위임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귀족제로 전락한 오늘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내일의 실질적 민주주의로 전환하려면 각자가 자신의 주권을 일상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주권의 일상적 행사를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사회 시스템의 구조와 작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공유하면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이모저모를 다각도로 평가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일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평균 1만 명의 시민들로 제한되었지만 직접민주주의가 활성화되었던 고전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에서 수사학과 변증론이 발달하고, 원형극장에서 연극적 스토리텔링이 활성화되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 p.31~32 6. 제럴드 에덜먼이 체계적으로 해명했듯이 뇌를 매개로 한 환경과 생명체의 상호작용은 다윈의 진화론과 그 원리가 같다. 다윈은 [자연선택]과 [변이]라는 간단한 개념을 이용해 환경과 생명체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진화 과정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식물은 [체성선택]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물질과 에너지를 선별, 흡수, 변형, 배설하면서 진화해 왔다. 동물은 여기에 뇌의 [뉴런집단선택]을 추가해 지각과 행동의 연결고리를 넓혔다. 반면 포유류 세계의 돌연변이인 직립을 통해 [손]과 [입술]이 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도구 제작의 기술적 선택]과 소통과 협력의 발전을 촉진하는 [언어선택]의 새 지평을 개척해 왔다. 인간의 뇌는 [체성선택 x 뉴런집단선택 x 기술적 선택 x 언어선택]이라는 [다차원적 선택]을 통해 환경의 변화와 자기의 변화를 동시에 추진할 자유의 역량을 확장해 온 것이다. --- p.146 7. [사회적 뇌]의 기능을 발휘하는 두 영역이 있다. 하나는 뇌섬엽이다. 뇌섬엽은 전두엽-측두엽-두정엽으로 덮여 있어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대뇌피질의 안쪽 부위다. 대뇌피질이 외측고랑을 중심으로 접혀 들어가면서 생성된 뇌섬엽은 대체로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좁은 역삼각형 형태다. 가장 긴 축삭 때문에 뇌의 모든 부분과 잘 연결되는 방추뉴런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뇌섬엽은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제반 상황을 뇌가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관여하며 자신을 인식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일을 경험하기 전에 미리 예상하는 능력과도 관련된다. 다른 하나는 주로 전운동영역과 기타 주요 부위에 포진한 거울뉴런이다. 이 뉴런은 다른 생명체나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가늠하는 독특한 기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부모의 눈짓과 표정을 보면서 공감하거나 그들의 생각을 자기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두 뉴런집단들의 협력으로 뇌와 뇌의 소통을 촉진하는 [사회적 뇌]가 발달하게 된다. --- p.155~156 8. 함께 미로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문득 웃음이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웃음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은 출구를 향해 나아가니까요. 그들은 다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희망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미로를 빠져나갔죠. 인간에게는 더러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멋진 웃음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 p.396 9. 불평등은 ‘전체’와 ‘부분’이 결코 만날 수 없는 외로운 삭제일 뿐입니다. 불평등을 행하는 자는 우주와 나 자신까지의 총합에서 자꾸만 무엇인가를 삭제하려는 자입니다. 누군가의 힘, 누군가의 존엄성, 누군가의 사랑,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생명 등……. 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삭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분’을 함부로, 자꾸만 삭제시키면 ‘전체’도 서서히 결핍되어 풍요로운 연결 고리들이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누군가와 함께 존재하려면 수직적인 위계를 위한 ‘삭제’가 아니라 수평적인 평등을 위한 ‘수정’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탄생과 죽음이 아닌, 그 사이의 삶뿐이니까요. 그것만이 우리가 자연스럽게 삶을 받고 또 주는, 이유이며 보람이 아닐까요? --- p.418 10. 대안사회로의 이행의 과제에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생산과정의 민주화]라는 과제만이 아니라 [통치양식의 민주화와 생활양식과 ?주체양식의 생태적-?민주적 재구성]이 핵심 의제로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국내외에서(영국 노동당, 미국의 버니 샌더스, 한국 정의당 등에서) 부분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 담론도 그간 분리되어 온 통치양식의 민주화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새롭게 결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도 아직까지는 생산수단의 사회화 의제를 앞세우는데 반해 생산과정의 민주화라는 의제는 뒷전에, 또 통치양식의 민주화를 앞세우는데 반해 생활양식과 ?주체양식의 생태적-?민주적 재구성이라는 의제는 뒷전에 남겨 놓고 있다. --- p.638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철학이란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고, 칸트에 의하면 [세계지식과 자기 변화의 실천적 지혜를 통합]하는 것이고,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추상적 일반화를 통한 자기교정 능력]이며, 푸코에 의하면 [자기배려와 자기변혁의 테크놀로지]다. 마음의 능력들에 대한 각자의 성찰과 삶의 경험을 활용해 자기 변화를 모색해 온 이런 철학적 탐구들을 이제까지 살펴본 인지생태학적 지식들과 결합해 재해석하면 철학적 실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할 수 있다: 철학적 실천이란 [뇌의 신체지도]와 상응하는 [정신적 항해 지도]를 만들어, 자연적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환경의 격랑 속을 항해하는 [주체양식]이라는 배를 스스로 수선(교정)하면서 삶의 항해술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환경을 일정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다층적인 환경의 변화와 상호작용하는 자기변혁의 실천적 테크놀로지]다. 쉽게 말하면, 세계관의 변화와 인생관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자기 교정의 테크놀로지이다. --- p.196 함께 미로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문득 웃음이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웃음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은 출구를 향해 나아가니까요. 그들은 다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희망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미로를 빠져나갔죠. 인간에게는 더러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멋진 웃음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 p.396 자신이 변화시킬 대상의 동적인 궤적과 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한 채 자신과 사회와 자연이 맺는 동적 관계를 온전히 인식하거나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지생태학적 관점에서 우리 몸이 [무의식적인 뇌의 신체지도]를 통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듯이 우리 마음도 [무의식적인 정치적 인식지도]를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인식지도를 공유할 것인가가 사회적 변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 pp.651~62 오늘의 세계는 무기적 환경과 유기적인 생명체, 인공적인 사물들과 사람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들의 그물망으로 덮여 있다. 현대의 학문과 기술이 [네트워크] 또는 [초연결]을 키워드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 자체가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가변적 역량을 지닌 특수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등잔 밑이 어둡다’). 인공지능자본주의의 부상으로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된다. 이에 맞서 이 책에서는 지식의 통섭과 순환을 통해 개인에게 내재한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사회적 뇌의 잠재력을 해명하는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을 구축해 인간혁명에 기초한 사회혁명의 복잡한 경로를 규명했다. 이 경로를 통해 개인들의 미시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정치적인 다중스케일 네트워크 간의 다차원적 마주침이 활성화된다면, 원자 내부의 역동적 구조를 규명한 양자역학을 통해 현대의 과학기술이 원자력/정보기술/인공지능의 신세계를 개척한 것처럼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연합을 통해 문명 전환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 pp.672~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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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읽기〉는 학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를 순환시킴으로써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적극적 소통과 협력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로 설립된 독립출판사다. 이런 취지를 살린 책을 장시간 준비해 온 〈희망읽기〉가 2020년 11월 28일 발행 예정인 첫 번째 단행본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이다. 이 책은 강한 인공지능에 의해 양극화가 극심해질 2020년대 후반까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SF영화들이 예고해 온 디스토피아적 이중세계화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랫동안 예술/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지식들의 통섭/순환을 연구하고, 실천해 온 경험을 토대로 8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한 심광현 교수는 이런 위험에 맞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생산자/주권자/생활인/자유인으로서 잠재력을 창조적으로 발휘해 〈인공지능+자본주의〉를 〈인간혁명+대안사회〉로 변화시켜 나가는 〈반폭력적인 문명 전환 과정〉의 과학적·철학적·일상적·사회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담대하지만 시의적절한 이 책은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 이라는 부제를 통해 그 청사진을 일상 속에서 구체화하는 실천의 길도 명확하게 열어 준다. 지식인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가 오랜 시간 협력하며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의 계주라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시뮬레이션하면서 혼돈의 시기를 다함께 이겨낼 ‘나비 효과’를 향해 나아간다. 분리되어 있는 제반 지식들의 통섭은 물론 지식인들의 전문적 형식지와 대중들의 일상적 암묵지 간의 적극적 순환으로 문명 전환의 경로를 탐색한 전례 없는 사고 실험의 이 흥미진진한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자. 이 책은 역사지리적-인지생태학적-철학적 분석들이 교차되는 복잡한 작업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다층적인 개념적 관계들을 도표로 압축하고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환경과 몸과 뇌와 마음 간의 다층적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적 시각화〉 방법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지식들 간의 통섭과 순환 및 그 철학적 함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철학적 시각화〉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결된 오늘의 세계는 정보와 지식의 부족이 아닌 과잉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통시적인 문자 텍스트와 공시적인 이미지를 대립적으로 간주하는 관행은 이 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갈등,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소통 부재를 지속시키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과학적/?철학적 시각화 방법은 이런 난점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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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겨레 2020년 11월 27일 게재
자연-사회 환경의 복합 위기 극복하려면 김진철 기자 기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발생했다. 이미 양극화와 노동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던 터다.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복합 위기는 가장 심대한 문명사적 위기라 할 만하다. 는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며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에 따른 ‘인공지능자본주의’라는 전대미문의 쓰나미가 닥쳐올 것을 우려한다. 이는 더욱 극심한 자본주의의 폐해로 이어지고 ‘디스토피아적 이중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이론)는 “기술혁명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혁명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결합이 근본적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혁명에 대한 찬반 논란을 넘어서 기술혁명과 대안적 생산관계의 새로운 결합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선 변화의 주체인 사회구성원(생산자/주권자/생활인/자유인)의 잠재적 역량이 창조적으로 발휘되어야하는데, 뇌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철학적 지혜를 연결함으로써, 원자적 개인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파악해온 기존 인간관을 혁명적 인간관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심 교수의 주장이다. 이것이 곧 ‘인간혁명’이며 이를 통해서만 ‘사회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은 이런 문제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구성됐다. 1부에서는 인간혁명 시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선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역사지리학과 인지생태학은 물론 마르크스와 알튀세르, 푸코가 동원된다. 2부가 특히 독특하다. 개인의 실존적 분투를 직접 책 안에서 행한다는 차원에서, 50가지 가상의 이야기(스토리텔링)를 도입한다. 일상생활의 변화를 탐색하는, 즉 일상혁명의 이야기 꾸러미는 심 교수의 전업주부 아내인 유진화씨가 지었다. 여기에 심 교수는 철학적 해석을 덧붙였다. 3부는 인간혁명이 사회혁명으로 연결되는 경로를 제시하고, 사회혁명의 미결 과제와 혁명적 실천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2-2. 참세상 2020년 12월 2일 자연의봉기에무력한인간,혁명의지도를다시그리자 [새책] 심광현·유진화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서평 이득재(대구카톨릭 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심광현 선생이 얼마 전 모 회의에서 새 책이 나올 거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심광현 선생으로부터 서평 부탁을 이메일로 받고 나서 메일을 읽지 않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나서야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아마도 이 방대한 책에 대한 서평을 필자에게 부탁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심광현 선생의 책 제목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희망읽기, 2020)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말대로 8년여에 걸친 작업의 결과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 시절 계간지 [문화과학]이 창간된 1991년부터 이루어진 사고의 중첩의 최종판인 것처럼 보였다. 선생의 저작을 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1999년에 나온 『문화사회를 위하여』를 위시하여 『프랙탈』, 『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흥한민국』,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등의 저작에 대한 선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왜 지금 나올 책 제목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일 수밖에 없는지 일반인들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지본론』만 하더라도 그 책의 분량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6배 이상이라고 하지만 심광현 선생이 그동안 지었던 책의 분량 또한 그에 버금가거나 초과할 듯하다. 따라서 당초부터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에 대한 서평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원고지 10매 내외로 소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서평 부탁에 대하여 필자가 과문하다거나 하면서 핑계를 대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응했을 뿐이니 독자들의 양해를 구할 뿐이다. 지나고 보니 선생이 『지배양식과 주체형식』(백의 1994)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본서는 그 연장선 위에 있을 듯하다. 부제가 ‘주체양식과 생산양식의 변증법’으로 되어 있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문화과학사 2014)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이 계열에 씨줄로 연결된 책들을 보면 선생이 끊임없이 ‘이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나올 책에서는 그 공백들이 촘촘하게 메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형식이 주체양식으로 더 나아가 개인구성체로 변화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선생의 본서에는 [문화과학]에서 제기했던 ‘생태적인 문화사회’ 담론이 날줄로 배선되어 있고 이 또한 자유로운(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개인들의 연합론으로 변화 발전해 있다. 결론적으로 본서는 각각 많은 노드들(본서에 나오는 많은 철학자 혹은 이론가들)이 배치된 채 씨줄과 날줄이 조우하면서 생산양식 - 주체양식 - 통치양식 - 생활양식의 네트워크에 의한 미래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을 종합적으로 드러낸 책이다. {개인, 사회, 자연}의 집합 구성에서 한국 사회는 그동안 이 삼자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사회구성체 논의는 집합의 두 원소를 배제한 채 이루어진 것뿐이었다. 그래서 선생은 사회구성체에 다소 낯설 수 있는 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개념을 구성하여 종합하려고 한 것이다. 개인구성체 또한 선생이 [문화과학]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할 때 강조하던 ‘자기통치성의 철학’과 맥락이 닿아 있다. 이것을 선생은 인지과학적인 논의와 연결된 1부만이 아니라 2, 3부에서도 반복적 차이 방식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선생이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한 핵심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만 갇힌 채 인간혁명을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이제껏 실패하고 만 변혁/혁명이론에 대한 반성이고 그 반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기왕의 생산양식론에 통치양식, 주체양식과 생활양식(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개념들을 네트워크화여 대안사회론의 전모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의 전문과 서론에서 지적되듯이 오늘날 인류가 꿈꾸었던 혁명은 인간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실현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압할 수는 있겠으나 ‘자본주의의 독’에 맞서 결연히 일어난 ‘자연의 봉기’ 앞에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인간주체는 무력하기만 했다.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차를 정지시킨 것은 인간도 이념도 아니었다. 인류가 노동의 문제, 페미니즘의 문제, 생태문제 앞에서, 착취/수탈과 억압과 차별을 목도하면서도 변혁의 일격을 가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이 먼저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생의 말대로 인류는 아직 성인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혁명적 봉기가 실패하고 자본주의와 종교가 강화되면 다시 새로운 혁명적 봉기가 일어났지만 인류는 악순환에 갇힌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20세기에 일어난 인간혁명 없는 사회혁명에 그 원인이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과학적 방법인 하향법에 익숙해 상향법에 전혀 주목하지 못한 탓이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선생이 말하고 있듯이 1부, 3부가 하향의 구조를 취한다면 2부는 생활양식,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간혁명이 사회혁명으로 상승 조우하는 상향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방법과 경제학을 필두로 하는 사회과학의 방법이 동일하게 하향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마르크스의 주장을 전면 수정 발전시킨 것이다. 마르크스가 초기에 주목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인간혁명론으로 발전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서술방식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한 걸음씩 나가는 상향법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상향법 식으로 2부부터 읽으면 좋다. 비교적 단순하고 쉬우며 스토리텔링처럼 몸으로 즉각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부터 읽는 것이 책 읽기 요령 아니던가. 게다가 이 책만이 아니라 선생의 다른 책들에서도 나타나는 많은 다이어그램들에 주목하면 좋을 듯하다. 가령 본서 630 쪽에 나오는 다이어그램은 상향과 하향을 아우르는 선생의 종합적 사고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본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며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서평을 마치자. 본서에 문명 전환을 위한 과제가 제시되어 있지만, 과연 인류는 문명 전환을 위한 항해에 나설 수 있는가? 그리하여 과연 인류는 성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 자본의 창세기가 시작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자본은 윤회 전생해 오던 중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났다. 당신은 혁명의 지도를 찾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리고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중인가? 2-3. 프레시안 2020년 12월 3일 21세기 문명전환의열쇠, 인간혁명 프레시안books서평[인간혁명에서사회혁명까지] 홍세화(장발장은행장) “오늘날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간격은 인공지능-GNR 혁명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늘의 인류는, 생산관계의 전면적 조정이 없을 경우 마치 자본 주도의 과학기술혁명에 사회시스템과 인간을 꿰어 맞추는 일종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놓이는 것과 같은 새로운 폭력적 재조정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책은 경제적 팽창과 과학기술 발전의 환한 불빛에 가려진 어두운 사각지대에 내재한 이런 문제상황의 심각성을 조명하고자 했다. 1부는 인간에 관한 다양한 지식들을 통섭하고 순환시켜 [주체양식]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철학적 항해 지도를 제시했다. 2부는 [생활양식]의 재구성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만들어 나가는 일상혁명의 실천적 항해술을 일곱 세대와 네티즌들이 만드는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제시했다. 이제부터는(마지막 3부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반폭력적 재조정]의 방식으로 과학기술혁명과 인간혁명, 일상혁명과 사회혁명 간의 선순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탐색하려 한다.“(597쪽) 누구였던가, “노예들의 반란은 성공하기 어려운데, 설령 성공하더라도 주인만 바뀔 뿐 노예들의 처지는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 이가. 여기 ‘노예’의 자리에 ‘인민’이라고 써도 인간의 역사는 틀리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인민은 아직 지배와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인 사회는 아직 이상에 머물러있다. 가령 ‘반지배주의자’를 뜻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모두 패배했다. ‘인류의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태어났기 때문일까,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마오쩌둥)”의 강력한 힘 앞에서 아나키스트들의 ‘반지배’ ‘반폭력’ ‘평화’는 무기력했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거칠게 은유컨대, 오른손에 칼을 쥔 자와 왼 손에 칼을 쥔 자 사이에서 스스로 칼을 내던진 자의 운명과도 같았다. 국가폭력에 맞선 ‘대항폭력’은, 성공했던 실패했든 과정에서 결과까지 폭력을 수반하여 폭력의 악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나오미 울프).”는 말은 아직까지 인민혁명에도 적용되지 않았다. “인간혁명 없는 사회혁명은 맹목적이고 사회혁명 없는 인간혁명은 공허하다.”(10쪽) “과거 혁명에서는 전위적 혁명정당이 수직적 방식으로 대중들을 지휘하고 동원하면서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상부구조, 이데올로기적·문화적 상부구조의 해체와 재구성에 필요한 복잡한 지식생산을 [독점] 관리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강제력과 대중들의 동의 및 자발적 참여가 선순환하는 현실적인 고리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헤게모니 없이(혹은 출발 시에만 짧게 유지되었다가) 오직 강제력만을 행사하는 제한된 조건(전쟁 상황) 속에서만 혁명이 유지되다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되었다.”(89쪽)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간에게서보다 차라리 자연에게서 희망의 단초를 보아왔다. 인간에게서 지배, 착취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은 거의 실패하는데, 설령 성공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지배와 착취가 자리를 잡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비관적 전망을 갖고 있었던 반면에,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앞에서는 탐욕적이고 오만한 인간도 결국 두 손을 들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배와 착취에 맞서 저항하는 인간에게 생명과 안락함에 대한 협박을 통해 굴종과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왔고 성공해왔다. 자연은 그런 협박에 굴종하는 대신 죽음으로써 인간에게 응답한다. 만약 지배, 착취당하는 인간이 자연처럼 생명 위협에 굴종하는 대신 생명을 스스로 버린다고 가정하면 지배와 착취는 설자리가 없다. 지배, 착취의 대상이 죽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자연에게서 희망을 근거를 보는 것은 이 점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비관적 희망이었다. 지금까지 자연을 마음껏 정복, 지배, 착취해왔지만, 온갖 재주를 부리는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은 결코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소리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이다. 그리하여, 기후 위기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고, 사스, 메르스를 거쳐 코비드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자연의 반격, 곧 자연의 죽음은 곧 인간 모두의 죽음이니, 탐욕과 오만의 지배자, 정복자, 착취자들도 결국 두 손을 들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였다. 마침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그 모순을 전가할 지역을 지구상에서는 모두 소진시킨 세계체제라고 한다면, 막다른 길에 마주친 인간이 지금까지의 탐욕과 오만을 뛰어넘는 성찰과 모색, 그리고 실천을 통하여 자연에 자발적으로 순응함으로써 생태 공동체의 길을 가지 않을까 라는... 하지만 나는 역시 슈퍼 부자를 알지 못하는, 평생 가난하게 산 자였다. [특이점이 온다]! 인공지능기술의 선두 주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15년 전에 쓴 책에서 21세기의 새로운 기술 변화와 맞물린 삶의 변화의 장기 추세를 이렇게 예측했다. “특이점을 통해 우리는 생물학적 몸과 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것이다.”(53쪽) 이른바 GNR 혁명이다. “유전공학--]나노기술--]로봇공학 순으로 발전하다가 세 가지 융복합이 가속화돼 2040년 즈음 인간 통제를 벗어난 특이점에 이른다”(53쪽)는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어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면, 자연의 역습 정도는 쉽게 극복하리라고 자신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도 질문을 던진다. 1) 사회적 노동의 대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경우 대중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2) 신체적-정신적 역량이 고도로 증강되고 수명이 크게 연장된 [초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다움의 의미와 가치를 훌쩍 뛰어넘은 [증강인간]의 등장이 예고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트랜스 휴먼이 호모사피엔스와 공존하게 되면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3) 커즈와일이 2040년 전후로 예측한 [특이점]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0년이다. GNR 기술에 대한 민주적인 사회적 통제 시스템을 확립할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여지는 특이점이 가까워질수록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2020년과 2040년의 중간지점인 2030년 전후를 [임계점]으로 잡는 것이 안전과 위험의 경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53~54쪽) 마침내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가 소설 속 얘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인간이 극소수 슈퍼 엘리트와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소마’를 배급받아 생명을 이어갈 뿐인 하류인간들로 나누어진다는 유발 하라리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를 비롯한 대자연의 위엄 또는 위험 앞에서 결국 겸손해지고 성찰함으로써 생태공동체의 길을 모색하리라는 나의 어설픈 기대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오만 앞에서 다시 물음표를 찍게 되었다. 과연 누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진단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2020년 봄 [코로나19 팬데믹]은 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지체되고 있던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혁명을 사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극적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생산수단의 사유화)의 구조적 변화(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없다면 이 기술혁명은 20세기 후반의 정보혁명보다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와 자산/소득/문화의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다. 극소수 부자에게는 부와 권력과 영생(트랜스휴먼)을 제공하는 유토피아, 대다수 민중에게는 좀비와 같은 삶을 강제하는 디스토피아로 분기하는 이중세계화의 길이 전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11쪽) ‘자연의 역습’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면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실상 그것이 인간다운 길이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설령 자연이 우리의 우군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관건은 민주주의 역량에 있다고 할 때, 19세기 반동적 보수주의자 조제프 드 매스트르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는 말에 담긴 ‘수준’을 높이기에는 남은 시간은 절망적으로 짧은 게 아닐까. 저자의 “경제적 토대와 문화정치적 상부구조 전체를 구조적으로 변혁하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사회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혁명의 지속은 물론 그 본격적인 시작을 위해서도 대중들의 주체적 역량의 혁명적 변화, 바로 인간혁명이 요구된다”(11쪽)는 말을 승인할 때 더욱 그렇다. 아무리 “이행기의 나비 효과”(43쪽)를 기대한다고 해도, 이 짧은 시간에 그람시가 강조했고 이 책의 저자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가령 인민들의 정신 속에 ‘가짜 의식’을 주입할 목적을 가진 문화적 헤게모니 수단들인 학교, 정당, 교회, 매스 미디어 등을 능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우리는 무엇을 갖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저자가 갖지 않았을 리 없다. 읽기에 버거울 만큼 두툼한 책 가득 담긴 저자의 지적 탐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알랭 바디우의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에 대한 사유”의 끝없는 정진이라고나 할까. 저자는 변혁의 가능성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는다. 2016-17년의 촛불시위를 ‘촛불항쟁’이라고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과거 사회혁명들을 삼켜버렸던 [폭력과 대항폭력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의 문명화(에티엔 발리바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세계혁명을 위해서는 ‘모든 낡은 찌꺼기를 떨쳐버리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할 능력을 몸에 갖출 수 있는’ 광범위한 인간변혁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바가 그것이다. 150여 년 전에 예견했던 이런 변혁이 이제야 가능하게 된 것은 그동안 ‘생산력의 세계적 발전과 함께 비로소 인간의 보편적 교류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12~13쪽) 그리하여 “철학은 프롤레타리아한테서 물질적 무기를 찾고,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에서 정신적 무기를 찾는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오늘 적용한 것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이다. 분리되어 있는 제반 지식들의 통섭은 물론 지식인들의 전문적 ‘형식지’와 대중들의 일상적 ‘암묵지’ 간의 적극적 순환으로 문명 전환의 경로를 탐색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장점으로 일상혁명 스토리텔링(2부)을 꼽을 수 있는데, 지식인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가 솔선수범한 전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 사이의 순환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이끌어가자는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경쟁과 소외로 인한 자기 연민과 한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신, 일상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친절하게 일깨우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서 하루하루 명랑함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배려이다.”( 282쪽)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책 제목이 스스로 말하듯 이 책은 담대하다. 비록 “우리 부부는 이런 작업을 할 만하다고 공인 받은 권위 있는 사상가나 전문적인 뇌신경과학자가 아니며 검증된 스토리텔러도 아니”(44쪽)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교육의 전면적 개혁의 필요성은 물론, 진보정당의 구성원 다수가 [비상근 정치인]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등 책 곳곳에서 세력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에 나선 저자의 지적 탐험과 스토리텔링에 많은 이들이 귀기울여 이 도저한 혁명의 여정에 동참하기 바란다. “이렇게 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생활인이자 철학자로, 교육자이자 정치가로 거듭나는 과정만이 위로부터의 인공지능혁명을 반폭력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최초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혁명적 실천의 행위자-주체로 우뚝 서는 성년기 인류의 당당한 모습이다. 힘들더라도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유년기로 퇴행하거나 사춘기에 머물 것인가 그 선택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각자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각자의 오늘의 선택이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내일을 결정할 것임을 잊지 말자.”(667쪽) (덧붙임 :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하되 좀 더 쉽게 쓰고 분량을 줄인 책을 출판해 줄 것을 저자와 출판사에게 기대한다. 출판사 [희망읽기]가 스스로 표방하고 있듯이 “학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를 순환시킴으로써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적극적 소통과 협력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2-4. 레디앙 2020년 12월 6일 서평 박영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단 HK교수, 철학) 오늘날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기술-산업적인 변화와 도시-문화적인 변화는 급속하게 일어나는 반면 그런 변화가 향하는 방향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네 삶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수행할 수 있는 참조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인류세-자본세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양산되는 담론 자체가 현실의 변화를 좇아가기도 벅찬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대학이 그만큼 파편화되고 상품화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유는 현실에 관한 지식-정보들만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보는, 일정한 머무름과 천착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정보의 홍수에 휘말리면 사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많은 정보 속에서도 거리를 두고, 사유의 ‘고독한’ 자리를 고수하면서 물길의 맥과 흐름을 집고 그것이 보여주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문명 전환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심광현 · 유진화)은 바로 그런 사유를 하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참조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고 쉽게 현재의 상태 및 미래의 변화를 추적하고 자신의 판단 및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유가 어려운 것은 우리네 삶이 어렵기 때문이며 글이 어려운 것은 사유의 참조지점을 제공하는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글은 그것을 이끌어가는 생각이 짧고 우리네 복잡한 삶을 재단하고 일면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도 읽기 쉽거나 친절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그것은 삶과 사유 모두에서 극도의 충실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도 그만큼의 충실성을 견지해야 하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라는 텍스트는 두 가지 충실성의 산물처럼 보인다. 하나는 오래전부터 예술-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사이에서의 통섭과 순환을 연구해 온 저자 자신의 지적 성실성과 『문화/과학』, ‘문화연대’, ‘맑스코뮤날레’ 등에서의 지적 소통 및 ‘지식순환협동조합’에서 대중적인 지식 순환과 교육 실험을 몸소 실천해 온 실천적 성실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상을 함께 온 부부가 지난 8년 동안 공동 작업을 통해서 학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 사이의 긴장과 갈등, 상호 소통을 통해 만든 사랑의 충실성이다.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과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는 지식인 남편이 쓰고,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은 전업주부인 아내가 썼다. 1부에서 남편이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의 추상과 개념들로부터 개인의 암묵지로 하강해 내려오며 2부에서 아내는 50개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몸의 자유로부터 시작해 관계의 역동적 흥을 연결함으로써 흩어진 마음의 능력들을 연결하는 시간-리듬분석을 수행함으로써 다시 상승하며 3부에서는 이들 개인적 암묵지를 사회적 형식지로, 지식 순환을 만들어감으로써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라는 철학적 실천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렇기에 1-2-3부로 이어지는 글의 여정 또한, 이런 두 사람의 독특성을 따라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둘’이 여전히 하나가 아니라 둘로 존재하면서도 ‘공통의 무엇(encommun)’을 만들어가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오히려 진리의 공정에 참여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랑을 ‘최소한의 코뮤니즘’이라고 정의한 알랭 바디우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뮤니즘(communism)은 ‘코뮌(commune)’+‘이즘(ism)’으로, ‘코뮌’이라는 이름 위에 존재하는 이념적 형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코뮌은 몸(body)과 몸 사이에서 나누는 정동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세기 동안 코뮤니즘을 대표했던 맑스주의조차 여기서 다시 길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맑스의 이름으로, 2년마다 열리는 학술문화의 장이자 축제이고자 했던 ‘맑스코뮤날레’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책의 필자를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지만 나 또한 길을 잃었고 사람들은 각자 암중모색했다. ‘맑스’라는 거대담론은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무너졌고, ‘탈’ 또는 ‘후기’란 뜻을 가진 ‘포스트(post)’의 다원성과 해체의 시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오류와 실패가 있었고 더딘 걸음이었지만 한국 맑스주의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이런 진전을 대표하는 성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의 맑스주의자들이 암중모색을 하면서 사유의 참조대상이 되었던 것은 알뛰세, 그람시뿐만 아니라 발리바르나 네그리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스피노자-맑스주의였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도 이런 사유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들 사유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이들의 철학적 사유를 단순히 소개하고 텍스트를 ‘정전(connon)’으로 만들거나 이를 가지고 현실을 해석하는데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이들의 사유 궤적에서 “생산양식-주체양식-통치양식-생활양식의 선순환 회로”라는 길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아니다. 이 책의 성과는 맑스가 이미 예견한 경로를 따라 ‘인공지능+자본주의’를 ‘인간혁명+대안사회’의 물질적 조건의 창출로 규정하고,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반폭력적인 문명 전환 과정’에 관한 과학적·철학적·일상적·사회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뇌신경과학과 21세기의 인지생태학, 자유-평등-연대의 가치를 규명해 온 철학적 통찰(스피노자, 칸트, 그람시, 벤야민, 시몽동)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연결함으로써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라는 맑스의 테제를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으로 발전시킨다. 둘째, 이 책은 뇌신경과학에 의해 해명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뇌의 신체지도’에 상응하는 ‘마음의 항해 지도’로 약도화하고, “자본순환의 폐쇄회로/기술적 통섭”에 맞서 “지식순환의 개방회로/수평적 통섭”을 제시함으로써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발전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로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역동적 신진대사의 과정”과 “개인(자아)-자연(이드)-사회(초자아)의 동적 관계의 창조적 과정이 교차하는 역동적 다중지능 네트워크”라는 문명 전환의 주체화 양식을 제안하고 있다. 셋째, 인간혁명의 이론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과 주체양식의 혁명”으로, 인간혁명의 실천을 “생활양식의 혁명”으로 정의함으로써 오늘날 르페브르가 열어놓은 공간학적 사유를 흡수해 거시와 미시세계를 통합하고, 이를 다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는 확장이라는 관점 속에서 적-녹-보라 연대 및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맑스주의적 전망을 놓치지 않고 “자연-노동-젠더 간의 공진화”를 촉진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지구적 공유)”, “생산력의 생태문화적 재구성”, “사회생활과 일상생활 전반의 민주화”를 통해 “각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세계화〉”라는 코뮤니즘으로의 이행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는 지구적이면서 총체적이고 거시-미시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철학만이 아니라 인지심리학, 뇌신경학, 지리학, 정치학, 미학 등 인문-사회-예술-자연과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지식-정보의 홍수에 빠져 있는 듯이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들이 그러하듯이 지식-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사유의 고독한 자리를 잃지 않는다면 이 책은 독자들이 현재 일어나는 변화 및 현상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를 넘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사유하는 데 충분한 참조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이라는 창을 들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몰려오는 자본의 물결에 희망을 잃고, ‘냉소적 태도’를 자신의 지적-정신적 우월감처럼 내보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함께 미로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문득 웃음이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웃음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은 출구를 향해 나아가니까요. 그들은 다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희망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미로를 빠져나갔죠. 인간에게는 더러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멋진 웃음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396쪽) 2-5. 문화과학 104호(2020년 겨울호, 12월 1일 발간) 혁명적 실천의 항해술: : 심광현·유진화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하승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듯, 21세기 들어 인수공통감염병의 발병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코로나19를 초래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해 기존의 동물 서식지가 무분별하게 침탈당했고, 그 결과 인간과 동물이 접촉하는 기회와 빈도가 증가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여 인수공통감염병의 출현을 초래한 것이다. 이에 우리의 미래 세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에 감염되거나, 단지 살아남기 위해 사생결단의 투쟁을 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측면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어쩌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우리를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생태 및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발생시킨 결과이므로, 자본주의야말로 신종 감염병 출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코로나19는 재난자본주의의 성격이 그러하듯 인공지능 자본주의를 촉진한다. 곧 재난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코로나19를 바라볼 때, 국가와 자본은 이전의 질서에서 자유롭게 밀어붙일 수 없었던 일들을 감염병이 도래된 상황을 통해 보다 과감하게 시도할 것이고, 이에 따라 심각한 노동 위기와 사회적 양극화가 초래될 공산이 매우 커졌다. 이러한 문명사적 위기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청된다. 심광현과 유진화가 공동 저술한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문명 전환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이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은 오늘날의 ‘인류세-자본세’의 위기 및 노동의 위기를 초래한 인공지능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해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혁명”으로 전환시켜나가는 문명 전환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내용은 현존하는 인공지능 자본주의 체계를 넘어 새로운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생산적인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심광현이 저술한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과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는 과학과 철학 개념을 주로 다루며, 유진화가 저술한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은 유진화가 50개의 이야기를 만들고 1부와 3부의 저자가 철학적 해석과 설명을 덧붙인다. 특히 2부는 일상의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에세이를 교차시킴으로써 일상생활의 변혁을 도모하는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다음에서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책의 주된 문제제기를 집중해서 부각하고자 한다. 인간혁명=사회혁명 저자들은 우리가 지금껏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만 주목했을 뿐, 인간의 활동이 어떻게 자연과 환경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았다고 진단하면서,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인간 활동의 변혁을 ‘인간혁명’으로 명명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 명칭은, 19세기 맑스와 20세기 그람시로부터 그 의미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들은 ‘인간혁명’ 개념을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가 선순환하는 방향으로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를 추구하는 혁명적 실천”(9)으로 정의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의 환경적 변화(사회혁명) 못지않게 인간 활동의 혁명적 변화(인간혁명) 역시 중요해진다. 지금까지의 혁명은 오직 사회적 환경 변화에만 집중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20세기에 발생했던 사회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이 책은 맑스의 「포이에르바흐 테제 3」에 기대어 환경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의 일치를 추구한다. 동시에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 변화의 일치를 지식의 ‘수평적 통섭’을 통해 모색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 질서에 바탕한 대안사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산포되어 있는 지식들을 통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통섭된 명시적 지식들이 다시 일상적 경험의 암묵적 지식들과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복잡한 회로를 규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회로의 모색이 바로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100-101)이 된다. 환경 변화와 인간 활동 변화의 일치와 더불어 저자는 세계가 물적-인적-정보적 교류의 복잡한 그물망으로 구성되고 특히 뇌신경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 두뇌의 뉴런 연결망의 복잡다단한 회로가 밝혀진 오늘날에 이르러 인간혁명=사회혁명을 실천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보고,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개인-사회-자연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문명 질서를 제안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지구가 처한 위기가 자연 생태계의 위기, 사회 생태계의 위기, 인간생태계의 위기로 특징지어진다면, 이러한 3중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곧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생산과정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자연과의 공진화,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포함한 인간해방과 긴밀히 결합되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한 것이다. 이에 새로운 문명질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다.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지구적 공유), 생산력의 생태문화적 재구성, 그리고 사회생활과 일상생활 전반의 민주화를 통해 각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세계화’라는 코즈모폴리턴 문명”(13)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사회-자연의 선순환 고리 코로나19 팬데믹을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로 규정하는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 등의 생태 및 환경 위기가 지구 환경의 ‘물리적 교란’을 지시하는 반면,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증가 및 확산은 ‘생태적 교란’을 증거한다. 이러한 교란 상황이 초래된 것은 그동안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을 소수가 독점 및 사유화하고 이를 ‘수직적인 사회적 관계’로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 이래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의 균열이 가속화되고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개인적·사회적 면역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계 환경을 착취와 수탈의 방향으로 몰고 가는 자본의 폐쇄적 순환회로를 멈추고,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공진화를 촉진할 생태문화사회적인 개방회로로 대체하는 광범위한 혁명적 변화”(17)를 제시한다. 이에 덧붙여 사회적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작업이 중요한 까닭은, 20세기의 혁명이 보여주듯이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폭력과 이에 저항하는 혁명세력의 대항폭력 사이에 벌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저자는 발리바르에 기대어 모든 종류의 폭력을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반폭력’의 관점에서 ‘혁명의 문명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혁명의 문명화’는 “대중들의 광범위한 동의와 능동적 참여를 통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제반 폭력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산과정의 민주화를 함께 성취하는 혁명적 헤게모니의 확대 재생산 과정”(89-90)으로 이해된다. 곧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경제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의미할 뿐 아니라 생산과정의 민주화와도 긴밀히 연동된다. 덧붙여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문화적 생산수단 일반의 사회화를 위한 협력교육”(90)이라는 관점에서도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그동안 형성된 지식인과 대중의 분열과 간극을 넘어 지식인과 대중의 협력교육을 통한 전문적인 ‘형식지’와 일상적인 ‘암묵지’의 선순환 고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자연 생태계와 더불어 저자는 사회 생태계의 문제를 탐색하는데, 500여 년 동안 지속된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인공지능의 도래와 함께 전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1부 1장). 이는 문명의 전환에 상응할 정도로 큰 변화에 해당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전환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지속되는’ 디스토피아의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대안적 생산관계로 전환’하는 유토피아의 측면이다. 인공지능과 ‘축출’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는 ‘지대’가 초과이윤의 원천이 되는 특징을 띤다(59-60). 인공지능과 자본주의의 결합이 촉진될수록 봉건적 생산양식과 같은 이전 시대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과학과 자본의 결연관계’”를 벗어나 “‘과학기술과 민주적 대중정치의 공진화’”(33)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변환은 개인 각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역량을 활성화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지식순환의 유형도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자본의 축적과 순환을 조장하고 촉진하는 “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폐쇄회로”와 “비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개방회로”(23)가 바로 그것이다. 비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개방회로를 해법으로 추구하는 이 책은, 17세기의 스피노자, 18세기의 칸트, 19세기의 맑스, 그리고 20세기의 시몽동을 끌어들이면서 대안적 지식순환의 철학적 모형을 찾는다. 지금까지 자연 생태계와 사회 생태계의 문제를 일별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의 문제를 살펴볼 차례다. 1부 1장 2절에서 저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이 문제를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는 인간을 본질적 속성으로 정의하는 대신,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축적되고 보존되는 다양한 역량들이 환경의 변화와 어떻게 연동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역량들이 맑스가 말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로 어떻게 접속될 것인지 탐색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이 문제를 상론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단적으로 이러한 담론들은 ‘사회적 관계’를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단지 네트워크나 창발성 같은 수사를 사용한다고 해서 급진적인 이론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시급한 과제는 (비)인간/자연의 연결망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와 접속하고 또 탈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이 주도하는 수직적 사회로부터 사회적 협력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수평적 사회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을 외재적 관계로만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 간의 신진대사 과정으로 살펴보는 것이고, 이와 동시에 개인을 개인-사회-자연의 선순환 과정으로 변혁시킬 행위주체로 재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설정에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이원론적 구도로 파악하지 않고 능산적 자연이라는 하나의 실체에 내속한 두 가지 속성(사유와 연장)의 특정한 연결방식으로 파악한 스피노자와,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가 혁명적 실천임을 강조한 맑스의 관점(「포이에르바흐 테제 3」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개인은 사회와 유리된 파편화되고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 개인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게 되는 “멱집합적인 역동적 존재”로 이해된다. 개인의 잠재력과 사회적 변혁이 선순환하면,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경우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혁명”의 가능성이다. 뇌 기능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 이 책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인-사회-자연의 동적 관계를 뇌과학의 문제틀을 통해 살펴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책이 다른 연구들과 전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뇌는 개인의 신체와 환경 간의 역동적 상호 작용을 매개하는 “복잡계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주체 양식’의 문제와 직결된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현대 뇌과학의 여러 성과들을 결합하여 뇌 기능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 구조의 모형’을 제시하고(1부 3장), 특히 비언어적 1차 의식과 고차 의식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규명함으로써, 뇌가 인간-사회-자연의 역동적 그물망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저자는 뇌를 매개로 한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 작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원리가 동일하다는 에덜먼의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다윈은 ‘자연 선택’과 ‘변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 작용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식물은 ‘체성 선택’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다종다양한 물질과 에너지를 흡수, 변형, 배설해오면서 진화해왔다. 동물은 여기에 뇌의 ‘뉴런 집단 선택’을 추가하면서 감각 운동 고리를 증진시켜왔다. 특히 인간은 손과 입술을 발전시켜서 ‘도구 제작의 기술적 선택’과 ‘언어 선택’의 범위를 넓혀왔다. 요약하면, 인간의 뇌는 ‘체성 선택’ ‘뉴런 집단 선택’ ‘도구 제작의 기술적 선택’ ‘언어 선택’이라는 다차원적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동시에 추진해온 셈이다(1부 3장 7절). 덧붙여 ‘다중 스케일’의 관점에서 뇌 기능의 회로는 다음의 세 가지 스케일로 구성된다. “① 미시 스케일: 천 억 개가 넘는 뉴런(신경세포)들의 복잡한 연결망으로 구성된 신경생리학적 회로, ② 중간 스케일: 지각-행동 고리의 일반적 회로, ③ 거시 스케일: 어포던스(affodance)-미메시스(mimesis)-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의 순환”이며, 우리가 일상적인 차원에서 경험하는 인지생태학적 발달회로”(163) . 이 중 거시 스케일을 풀어 설명하면, 어포던스는 제임스 제롬 깁슨이 만든 신조어로 외부 환경이 안겨다 주는 행동 유도 기회를 말하는데 긍정적 어포던스와 부정적 어포던스로 나뉜다. 물, 공기, 대지 등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환경 자원들이 긍정적 어포던스이고, 환경오염 등이 부정적 어포던스에 해당한다. 어포던스에는 자연적 어포던스 뿐만 아니라 사물과 같은 인공적 어포던스도 포함한다. 오토포이에시스는 “자기 생산의 역량의 총체”를 뜻하는데, 스피노자의 “욕망=코나투스(contatus, 자기 보존을 위한 노력)”에 상응한다. 마지막으로 미메시스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몸의 변화의 상호 작용을 매개하는 일련의 능력들을 지시한다(165-166). 이렇듯 인간의 두뇌는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의 방식으로 다종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두뇌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환경이 제공하는 정보를 추상적 패턴화 작업을 통해 정리하며, 동일한 이유에서 우리의 마음 역시 뇌가 그리는 추상적 패턴을 좀 더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저자는 뇌 기능의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철학적 실천과 연결 짓는다. 여기서 철학적 실천이란 “‘뇌의 신체 지도’와 상응하는 ‘정신적 항해 지도’”를 그리는 실천이고, 이를 통해 “다층적인 환경의 변화와 상호 작용 하는 자기변혁의 실천적 테크놀로지”(196)를 의미한다. 이렇듯 저자의 주된 초점은 뇌 구조에 관한 생리학적 이해를 향하기보다는, 뇌 기능의 이해를 통한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주조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이런 모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 칸트, 맑스, 프로이트, 벤야민, 시몽동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환경의 변화와 몸과 마음의 변화를 규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므로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가시화하는 작업은 이러한 철학적 전통을 계승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 문제는 1부의 4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규명된다. 1부 4장은 3장에서 제시한 ‘뇌 기능의 인지생태학적 모형’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사용하는 마음의 능력들(감각, 욕구, 감정, 욕망, 오성, 이성, 판단력, 상상력 등)과 연계하여 분석한다. 이 중에서도 칸트는 중요한 참조점이 되는데, 저자는 자기, 타자, 자연의 선순환 고리를 사유했던 칸트의 질문이 동시대 뇌과학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칸트가 제기했던 문제를 ‘피드포워드(상행) 과정’과 ‘피드백(하행) 과정’의 문제로 재구성한다. 피드포워드 과정은 “미시적 뉴런 집단들이 만드는 국지적인(로컬한) 카오스적 진동들이 합쳐지면서 거시적이고 전체적인(글로벌한) 연결망”으로 조직되는 과정이다. 반면에 피드백 과정은 이러한 “거시적 연결망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미시적인 뉴런 집단들의 활동 패턴을 다스리는”(233) 과정이다.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구성할 때 중요한 것은, 전후뇌·좌우뇌·삼부뇌의 기능들이 미시와 거시를 지속적으로 왕복하며 순환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데 있다. 이어서 저자는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생활양식의 일상적 변혁’과 연동시킨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지식의 생산은 ‘분절화된 형식적 지식’과 ‘비분절화된 암묵적 지식’의 결합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은 이러한 결합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이라는 것은 기존의 결합양식과 차별화된 ‘형식지’와 ‘암묵지’의 새로운 결합 메커니즘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중심 주제인 인간혁명과 사회혁명 간의 선순환 고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형식지의 유형과 배치를 변화시키는 일”과 “기존의 암묵지를 대안적 암묵지로 바꾸는 일”(278)이 동시에 실천되어야만 한다. 네 가지 실존양식: 생산양식, 통치양식, 주체 양식, 생활양식 저자는 1부 2장 5절에서 생산양식, 통치양식, 주체 양식, 생활양식 등의 기본 범주를 제시한다. 주지하듯, 생산양식이 생산력(생산수단+노동력)과 생산수단(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과정의 통제 방식)의 결합양식을 지시한다면, 생활양식은 “생활력(사회적 생산력에 조응하는 개인적 생활력)과 생활관계(생활수단의 소유와 생활과정의 통제 방식)의 결합양식”(131-132)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 통치양식이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결합양식을 뜻한다면, 주체 양식은 “마음의 습관(억압적 국가장치의 생산양식의 재생산과 통치 기능에 조응하는 개인적 마음의 패턴)과 마음의 능력(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이데올로기적 재생산과 통치 기능에 조응하는 개인적 마음의 재생산과 통치 방식)의 결합양식”(132)으로 정의된다. 이처럼 책에서는 이 네 가지 실존양식이 인간과 환경의 (불)일치의 경로와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기본 범주로 제시된다. 저자는 네 가지 실존양식을 개인 구성체, 사회 구성체, 자연 구성체와 중첩하고 교차시킨다. 우선 사회 구성체와 개인 구성체 개념을 살펴보기로 하자. 맑스와 알튀세르가 ‘사회 구성체’를 정치, 경제, 문화, 법, 이데올로기 실천의 여러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으로 파악하였듯, 개인 역시 일관된 통일체가 아닌 “무의식과 의식, 몸과 마음의 여러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에 의해 갈등하는 가변적인 ‘개인 구성체’”(130)로 파악된다. 이는 단지 욕망하는 주체라는 측면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는 여러 심급들의 관계적 차원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 구성체가 생산양식과 통치양식으로 구성된다면, 개인 구성체는 주체 양식과 생활양식을 포함한다. 이 범주들은 서로가 서로를 조건 짓고 또 제약한다. 이를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생산양식은 통치양식에 “물질적 토대와 한계”를 제공하고, 통치양식은 생산양식에 대해 “재생산을 보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생활양식은 주체 양식에 “물질적 토대와 한계”를 부여하고, 주체 양식은 생활양식에 “재생산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131).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자연 구성체 개념도 새롭게 정식화한다. 기존의 자연 개념은 우주나 신의 섭리처럼 다소간 신비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거나 고정된 불변의 실체인 주어진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저자는 개인과 사회를 개인 구성체와 사회 구성체로 개념화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자연을 복잡하고 상이한 여러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에 의해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자연 구성체로 파악한다. 이는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을 전개하기 위한 기본 범주들에 해당한다. 저자는 맑스, 아리기, 하비의 이론에 기대어 노동과 자본의 지리적 이동이 불러일으키는 공간 변화가 역사적 궤적과 연결되는 방식, 즉 “환경의 역사적·지리적 변화의 구조적 리듬을 종합적으로 파악”(102)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 설정이 ‘역사지리’에 관련된다면, 그동안 쌓인 뇌신경 과학의 성과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모순적 상호 작용을 파악하는 과정이 ‘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에 연관된다. 가속화된 자본 축적의 역사지리적 리듬은 인지생태학적 위기와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 책에서 제시하는 환경 개념은 각별한 주의를 요청하는데, 그것은 역사지리와 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이 결합된 개념이다. 즉 환경은 이미 주어진 어떤 대상이기는커녕, “사회적 노동을 매개로 한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의 역사지리적 변화의 복잡한 과정”(114)으로 받아들여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은 기존의 비판적 사회과학 및 인지과학과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첫째, 오늘날의 비판적 사회과학은 공간 변화 리듬과 역사 변화 리듬을 교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뇌과학의 문제를 다루지 않음으로써 인간-사회-자연의 역동적 순환관계를 조망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주류 인지과학은 연구 대상을 기술적인 차원에 국한함으로써, 뇌가 인간, 도구, 대상, 환경이 결합하는 전체 회로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분석하는 것을 간과한다(115).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혁명=사회혁명이라는 이 책의 중심 테제, 즉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의 일치”(맑스)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를 ‘우발성의 유물론’에 입각해 마주치게 하고, 이러한 마주침을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혹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과 일상혁명 일관되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조한 저자들의 입장으로부터 큰 무리 없이 유추할 수 있듯, 스토리텔링에서도 저자들이 방점을 찍는 부분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단지 이야기(story)를 말하는 것(telling)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사회-자연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직면한 대중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시할 뿐 아니라, 그러한 문제 해결의 과정을 알기 쉬운 이야기의 형태로 풀어감으로써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경험 및 정서적 공감마저 견인해내는 과정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스토리텔링은 인간-사회-자연의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 일종의 지도를 그리는 행위와도 같다. 저자는 리쾨르의『시간과 이야기』 3부작(1982~85)을 열쇳말 삼아,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의 일반 모형’을 설계한다. 리쾨르가 설명한 ‘삼중의 미메시스’에 따르면, ‘미메시스 1’은 “현실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벌이는 복잡한 행위들 중에서 윤리적·정치적으로 모방할 가치가 있는 행위의 선택”(588)이다. ‘미메시스 2’는 미메시스 1을 바탕으로 작가가 변형해낸 인공적인 텍스트를 뜻한다. ‘미메시스 3’은 미메시스 2에 대한 수용자의 해석을 가리키며, 텍스트와 수용자가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뜻한다. 여기서 미메시스 2는 미메시스 3과의 관계 속에서 두 가지 갈래(미메시스 3-1과 미메시스 3-2)로 나뉜다. 미메시스 3-1이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와 연민에 기초한 감정의 카타르시스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사회 구성체의 특정한 모순과 갈등을 봉합한다면, 미메시스 3-2는 “미메시스 1을 감싼 이데올로기 내부에 일정한 내적 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데올로기를 ‘보고, 지각하고, 느끼게’하는 방식으로 미메시스 2라는 허구적 텍스트를 생산”하고, 그럼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기존의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맥락에서 2부에서는 일상을 변혁시키려는 대중의 실존적 투쟁을 ‘가상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형식을 통해 예시한다. 2부에서는 일상의 이야기 50가지가 펼쳐지는데,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유진화가 이야기를 만들고 1부와 3부의 저자인 심광현이 여기에 철학적 해석을 덧붙인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삶의 문제를 풀어내는 7명의 남녀노소는 7세 나나(여), 17세 오푸름(남), 27세 길유(여), 37세 한태양(남), 47세 남우누리(여), 57세 박범(남), 67세 양지애(여)이다. 2부 1장은 ‘몸의 자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와 싸워본 적이 없고 학교에서 지속적인 학교 폭력을 당하기만 하던 오푸름이 자유를 쟁취해나가는 과정(ST. 4), 갱년기 여성 남우누리가 자신의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삶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해나가는 과정(ST. 10), 몸이 아파 꼼짝없이 이틀 동안 누워 있다 우연히 경험하게 된 유토피아의 순간(ST. 11),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방황을 거듭하던 박범이 ‘비움과 채움의 반복’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ST. 12) 등이 바로 그것이다. 2부 2장부터는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예컨대 사기를 당해 여섯 식구의 터전이었던 42평 아파트를 잃고 21평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 상황(ST. 18)이 펼쳐진다.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2부 2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기예’를 실천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아파트 옥상을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하거나(ST. 20), 필요 없는 물건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더러는 일일 장터에서 팔기도 하면서, 아파트를 싹 비우는가 하면(ST. 22), 베란다에 공중전화 부스를 만들고 텃발을 만들어 일구기 시작한다(ST. 24). 아내와 사별한 후, 자식들과 연을 끊고 살아가는 박범은 가족들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짓고(ST. 26), 양지애 할머니는 고독한 지리산 산중에서 한글을 깨치고 노래를 부른다(ST. 28). ‘공간의 감정’이라는 제목이 붙은 2부 2장의 이야기들은 처음에는 협소하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기예’를 실천하다가, 점점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 간에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음을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인간과 주어진 자연 간의 외재적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생산하는 인간이 더 큰 생산자인 자연과 일치를 이루는 과정이다. 2부 3장은 사람들의 관계를 다룬다. 무인도에 표류한 인물들이 처음에 느꼈던 강렬한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고 협력과 연대를 실천하는 모습을 담은「세대」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세대관계를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만드는 우화로 이해될 수 있다(ST. 34). 이는 또한 필연과 우연의 렌즈를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기존의 필연적 질서를 쪼개어 새로운 우연들을 드러내고, 그러한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발명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는 ‘대화적 언어’를 필요로 한다. 대화적 언어는 쉽게 말해 각자의 고유한 내면의 세계를 타자들과 연결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ST. 38; ST. 40).「성찰」은 ‘대화적 언어’를 예시한 경우로서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을 알려준다(ST. 39). 그것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대립을 넘어서,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공존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지 일깨워주고, 그러한 과정이 ‘성찰’을 매개한 과정이라는 점을 밝힌다. ‘성찰’이라는 렌즈를 통해 모방 개념을 살펴보면, 이때의 모방은 외부적 환경을 모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환경과 마주하는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모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자연은 내 앞에 높인 외적 자연이 아니라,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자연이 된다(ST. 42). 2부 4장은 인지생태학의 관점에서 칸트의 이론을 예시화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1부에서 설명했던 인지생태학적 이론을 보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풀어낸다. 칸트가 말했던 여섯 가지 마음의 능력들(감각, 감정, 욕망, 오성, 이성, 판단력) 각각의 기능과 그 능력들의 관계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인지생태학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를 해명한다. 즉 저자는 인지생태학의 관점에서 칸트가 규명했던 능력들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감각, 감정, 욕망이 감성(비언어적 1차의식)을 구성한다면, 오성, 판단력, 이성이 지성(언어적 고차 의식)을 구성한다. 감각-오성의 조합이 외부의 비자기(어포던스)를 인식하고, 욕망-이성의 조합이 내부의 자기(오토포이에시스)를 함양한다면, 감정-판단력의 조합은 미메시스 능력을 증진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마음의 능력들 중에서 이성이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자본의 축적 및 순환이 확산되면서, 전체를 사고하는 우뇌의 기능이 축소되고 부분적인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좌뇌의 기능이 확대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지 좌뇌에 바탕한 오성의 사용을 우뇌가 주도하는 이성의 사용으로 ‘대체’할 것이 아니라, 오성을 “이성의 관심 속에 ‘재배치’”(514)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상황이 그렇다면 외부 세계로부터 어포던스를 획득하는 것은 곧바로 자신의 오토포이에시스를 확장하는 수단이 되고, 같은 이유에서 오토포이에시스의 증가는 “자기 자신의 자유와 행복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와 행복의 증진을 함께 삶의 목적으로 삼는 윤리적 노력, 즉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521)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어포던스와 오토포이에시스의 선순환 관계가 중요한데, 저자는 삶의 인지생태학적 조건들이 파괴되는 오늘날과 같은 이행기에서는 개인 주체 스스로 오토포이에시스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마음의 능력들 사이에는 위계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마음은 중앙 집중적 위계 없이도, “각 요소들이 ‘목적이면서 교호적으로 수단이 되는’ 일종의 ‘자기조직적인 체계’”(537)다.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고 교류하게 하는 매개로서 판단력과 감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실천이성과 사변이성을 구별하듯, 판단력 역시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으로 구별된다. 규정적 판단력이 기존의 좌표 내에 사례를 위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면, 반성적 판단력은 좌표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고 그 좌표 속에 대상을 위치지우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을 구성하는 각각의 능력들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능력들 모두가 최적화된 연결을 이루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성찰”(542)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한 “이행기의 격랑을 헤쳐 나갈 인간혁명의 방법론(항해술)”(552)이 의미하는 바다. 나가며 3부는 지금까지 언급했던 모든 개념과 범주를 바탕으로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의 ‘선순환’의 경로와 궤적을 찾는다. 생산양식과 주체 양식을 접합한 ‘수평축’이 있는가 하면, 생활양식과 통치양식을 접합한 ‘수직축’이 다른 한편에 놓인다. 이처럼 수평축과 수직축이 교차되는 가운데, 저자는 “혁명적 실천의 새로운 지도”(604)를 그리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제도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어왔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미시정치의 슬로건도 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미시정치의 구호가 인간, 비인간, 사회, 자연, 환경이 맺고 있는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로서 사회적 개인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시야에서 지워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곤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와 비자기의 역동적 연결망을 확장하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연대’를 통해 자기와 비자기의 연결망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정치주체로서의 개인이 4분면에 위치한 이미 정해진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4분면 전체를 넘나들며 자기와 비자기의 역동적 결합을 조절해나가는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적인 존재”(653)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미 정해진 주체가 존재하고 그러한 주체들이 외재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비자기의 동적 관계를 선순환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주체가 구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저자가 힘주어 강조했던 네 가지 실존양식과 각 좌표면에 위치한 ‘대안사회’의 요소들은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표와 다이어그램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역사지리, 인지생태학, 철학적 분석들이 교차하는 복잡한 지식순환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각화’의 방법을 사용한다. 동시에 이 책의 전체 구성이 학문적·사회적 형식지와 개인적 암묵지의 선순환 구조에 조응하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1부가 학문적·사회적 형식지에서 개인적 암묵지의 방향으로 하강한다면, 2부는 1부와 달리 개인적 암묵지에서 학문적·사회적 형식지로 상승하는 구조를 취한다. 3부는 형식지와 암묵지가 서로 스며들어 인간혁명=사회혁명이 선순환하는 청사진을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이는 전술했던 어포던스-미메시스-오토포이에시스의 순환 구조와 상응한다. 이 책은 인간혁명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사회를 모색하기 위해 기존의 과학, 철학, 역사, 인문?사회과학 지식을 총망라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수많은 범주와 개념이 등장한다. 저자는 맑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전의 범주를 변형, 교차, 확장하면서 논의를 확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컨대 네 가지 실존양식은 개인 구성체, 사회 구성체, 자연 구성체와 겹쳐지고 교차되면서 유의미하게 재구성된다. 저자의 방대한 이론적 사유 앞에서 주눅이 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이 책을 살펴보면 이 책의 내용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풀이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쉽지만은 않지만, 조금의 인내심을 갖고 이 책을 살펴보면 저자가 설명한 철학적 매뉴얼과 청사진을 뒤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복잡한 개념들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 저자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저자는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여러 안내판을 세심하게 설치해놓았다. 다양한 다이어그램과 표를 동원하여 ‘시각화’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읽은 후, 기존의 협소한 지식 생산의 틀을 넘어 지식의 선순환 구조가 제시하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구성하는 각 장과 절마다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사유 행위를 통해 저자가 제시한 토픽들과 마주하고 씨름할 수 있도록 촘촘한 바탕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정치·경제적 수준에서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의 우연하고도 복잡한 ‘마주침’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철학적 분석의 방법론을 통해 살펴보는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새로운 문명 질서를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최적의 항해 지도를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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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과 차악의 권력만 교체되는 이 나라 정치집단에게 재앙이 되어버린 불평등 사회를 바꿔낼 의지도 실력도 없다는 명쾌한 진단이 두 작가에게 지칠 시간도 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8년의 집요함을 담은 역작을 통해 밝혀진 사회적인 뇌는 우리 삶속에서 진화하고 있을 저항의 DNA로 읽혔다. 한국사회 모순덩이들을 도려내고 더 나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마음속 항해지도를 공감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의 영역에 반기를 든 뇌 과학과 사회변혁 운동의 만남! 적(노동) 녹(생태) 보라(여성)가 하나의 뇌파를 타고 모두의 심장을 뛰게 할 문명 전환의 역동성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1700만 시민들의 가슴도 뛰게 할 거라 믿는다. 작가와의 첫 만남이 오래 남는다. 근로기준법마저 합법적으로 빼앗긴 1000만 노동자, 노동조합도 할 수 없는 1750만 노동자의 차별과 착취로 굴러가는 한국사회의 참담함을 듣고 “부끄럽다”고 탄식하며, 곧바로 사회적 뇌를 연결해 “문화예술인의 힘도 모우겠다”는 당사자 직접행동으로 나아가는 행동주의자였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담은 혁명 지침서가 아니고, 학문들을 연결한 논문도 아닌,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상식이 바탕이 된 역작은 그 자체로 작가가 살아온 삶이었다. 마지막 장을 넘길 즘 다큐, 영화, 소설의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전두엽을 때린다. 인간해방과 사회혁명을 위한 철학적 시선을 문명전환의 길로 올곧게 안내하는 대작!!! - 한상균 (‘권유하다’ 대표, 전-민주노총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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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현 교수의 새 책이 나오면 처음부터 꼼꼼히 읽는 편인데, 이번에 새로 나온책‘인간혁명에서사회혁명까지’는 2부‘유진화’의 글을 먼저 읽게 되었다.심광현 교수의 아내 유진화는 책 속에 전업주부라고 소개되었지만, 사실은 국문학과 출신으로 시집을 아직 출판하지 않은 시인이다. 그랬기에,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을 TV에서 보고,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인간에 대한 연구도 많으냐고”문득 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나긴 8년 간의 유례없는 부부 집필이 시작되었다. 생각해 보면 왜 인간에 대한 연구는 침팬지에 대한 연구만큼 없었던 것일까. 도서관을 꽉꽉 채운 그 많은 책들이 인간에 대한 연구가 막상 아닌 까닭은 심광현이 쓴 1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십 개의 그림에는 공통적으로 수많은 화살표가 등장하는데, 화살표는 연결되지 않은 사이를 연결한다.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이 인간을 주제로 역사적으로 번창하였으나, 최근의 인지과학이 인간의 마음과 자연을 연결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까지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맑스의 사회과학과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인간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었지만, 인간의 삶이‘인간에 대한 연구’차원에서 규명되지 못한 채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맑스도‘인간의 혁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프로이트는 사회혁명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규명은 이 두 가지의 연결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심광현 교수는 초기에 미술평론가로 활약하며 사회과학과 심리학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였는데, 수년 전부터 인지과학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인간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을 제인 구달이 침팬지에 대해 하듯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찰이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인간의 행복’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은 몸과 마음, 자연과 사회가 네 가지 쌍으로‘선순환’하여야만 얻어질 수 있다.‘나는 자연인이다’TV 프로에서 보듯, 인간의 행복은 역설적으로, 사회를 떠나서는 찾아질 수 없다. 자연 없이, 소년과 소녀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불안하기만 하다. 얼마전까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사회-마음’을 연결하는 인문학이‘인간에 대한 연구’의 반쪽도 안 되는 이유는‘자연-몸’,‘자연-마음’,‘사회-몸’을‘인지생태학’적으로 연결하는 문제를 의제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회의 혁명 없이 인간의 행복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오늘만 해도한쪽에서는 BTS에 열광하는데, 저쪽에서는 검찰 개혁에 광분하고,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미칠 지경이니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답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을‘암묵지’라고 한다. 도서관에 빡빡한 책들은 모든 답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이것을‘형식지’라고 한다. 심광현과‘유진화’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하고자 했다. - 최진욱 (추계예술대학 교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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