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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베이비 드라이버」에 대한 단상, 그 일렁임
플레이리스트 문화의 탄생 플레이리스트라는 소리 세계 플레이리스트가 만드는 일상적 음악 경험의 변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주체 가만히 듣기만 하는 예의 바른 존재, 감상자 미디어의 음악적 관여 감상자의 몸 둘러 입는 음악 참고 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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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플랫폼의 플레이리스트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 세계에서는 개별 곡, 개별 앨범보다 플레이리스트가, 음악가보다 이를 편집하고 소개하는 큐레이터가 더 큰 권력을 가진다. 플랫폼과 큐레이터는 과거 음반의 소개 글이나 아트워크가 하던 일을 훨씬 적극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수행하며 소비자의 감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맥락과 서사를 새로이 부여하며 완전히 다른 경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활기찬 아침의 음악’, ‘퇴근길의 칠 아웃’ 같은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는 감상자의 미학적 판단에 꽤 많이, 혹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 p.21 과거 믹스테이프가 만든 이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면, 플레이리스트는 이용자 일상 속 순간에 개입하며 기분과 감정을 주입한다. --- p.22 플레이리스트 세계는 감상자에게 자연적 환경, 즉 사유의 장, 지각의 장이 된다. 이 안에서 감상자는 따로 떨어져 관망하는 존재가 아닌 그 세계의 일부가 된다. 지각은 감상자의 육체로 매개되며 무의식을 수반한다. 즉 지각의 주체는 ‘체험하는 자아’다. --- p.39 오늘날의 플레이리스트 감상은 상태나 상황을 규정짓는 하나의 가상 공간을 선택하는 행위, 즉 ‘수동성’을 구축하기 위한 ‘능동적 행위’라는 점에서 다른 결을 지닌다. --- p.87 이용자들은 저마다 느끼는 매혹적인 소리 세계 안에서 낯선 이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거나 환상의 풍경을 누리는 한편, 이들의 직접적인 경험은 점점 더 대체되고 본질적인 변화는 거부된다. 즉 실제적 공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아름다운 소리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연결성’과 ‘단절감’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니고 있다. --- p.124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하는 동안 감상자는 과거의 기억, 현재적 감각, 상상의 차원이 뒤섞인 채로, 여기-몸과 이미지-몸을 통해 새로운 시간성 및 공간성을 체험한다. --- p.125 오늘날의 음악 작품은 고정적 대상이 아닌 열린 텍스트로 인식하는 게 자연스럽다. 미디어 자체와 그것을 이용하는 수용자들이 심미적으로 의미 있는 소리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 p.147 음악 평론가들은 자신의 일을 완전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십수 년쯤 반복하고 있는 베토벤 교향곡 연주 리뷰는 복원이 어려운 휴지통에 넣는 편이 좋겠다. 작곡가의 생애와 작곡 배경을 친절하게 반복할 게 아니라 곡이 연주 혹은 녹음된 공간의 조건, 감상자가 처한 환경을 고려하며 젊은 연주자의 몸을 통과한 음악 조각들을 새로이 관찰해야 한다. --- p.149 음악은 점점 감정과 느낌, 정서, 분위기, 촉각을 자극하는 무언가로 그 모습과 개념을 바꾸고 있다. 하나의 예로 시티 팝이나 앰비언트 뮤직, 라운지 음악 같은 특정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장르를 들 수 있다. 이는 음계나 조성 같은 음의 체계, 작품의 형식이나 구조 등 내재적 요소에 따라 장르를 구분하고 특징을 규정짓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 p.149-150 리스트를 플레이하는 건 음악만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이제 극장에 찾아가 잘 차려진 한 끼 식사 같은 영화를 관람하는 대신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차린 뷔페를 펼쳐 두고 자신의 감각을 깨우곤 한다. 조금 전 확인한 왓챠의 메인 화면은 ‘안타까운’ ‘잔잔한’이라는 해시태그 키워드로 각기 다른 리스트를 제공한다. --- p.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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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 입는 음악, 그 너머
저자는 음악이 “점점 감정과 느낌, 정서, 분위기, 촉각을 자극하는 무언가로 그 모습과 개념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하며 “음악의 이러한 변화에 따라 감상자들은 음악 감상 행위를 마치 어떤 ‘상태’나 ‘기분’이라는 외투를 둘러 입듯 그렇게 여기며 즐기게 됐다”고 말한다. 능동성과 수동성을 함께 지닌 플레이리스트는 우리의 일상을 점점 더 많은 정보와 소리에 내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현대적 의미의 음악 감상이란 그저 데이터베이스처럼 쌓여 있는 것들을 똑같이 반복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가? 작곡가 한 명이 특정 방식으로 써낸 음악 작품은 과연 절대적인가? 음악 평론이란 지금 이대로의 방식 그대로 유효한가?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음악이라는 비물질적 세계에서 어떠한 감각을 누리고 싶어 할까? 상품으로서 음악의 단위는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가? 현대 음악 산업은 무엇을 보고 듣고 고려하고 있을까? 그리고 너무 원론적이라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현대적 의미에서 음악이란 무엇일까.” ‘플레이리스트’는 이러한 질문을 바라볼 하나의 렌즈이자, 음악 분야를 넘어 현재의 기술/매체 환경이 우리와 맺는 관계를 조망할 하나의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 영화를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는 물론 패션, 음식 등 모든 일상 영역에서 우리는 플레이리스트와 맞닥뜨린다. 이는 우리의 지각 경험을 재구성하고, 나아가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는 내용 자체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경험하는 소리 세계, 나아가 지각 세계에 수동적으로 침묵하는 대신 그 과정을 의식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