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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 Sweeney-Ba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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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환자 옆에 앉아 그의 맥박을 짚는다. 45도. 곧 죽을 것이다. 모두 죽겠지. 숨 쉬어, 어맨더. 기사단이 곧 출동할 거야. 이 모든 일을 나 혼자 처리해야 하지는 않을 거야. 통솔권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방역복을 입은 전문가가 와서 모든 것을 처리하고, 나를 집으로 보내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마저 잊게 해줄 것이다.
경상치료부의 문이 좌우로 활짝 열리고 수간호사가 들어온다. “앰뷸런스로 네 사람이 더 도착했어요. 두 사람은 이틀 전에, 나머지 둘은 어제 왔었어요.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상상한 가장 끔찍한 악몽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p.36~37 “엄마, 엄마. 엄마 왜 그래?” 시어도어가 복도로 나와, 자신이 상심했을 때 내가 해주듯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아름다운 아들의 눈을 마주 보자,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코끝에서 뚝뚝 떨어진다. 아이의 얼굴은 걱정을 형상화한 그림 같다. 나는 코를 훔친다.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하고, 그것은 곧 내게서 그를 떼어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내 삶에서 사랑은 거리를 둔 채 표현되어야 하나 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저리 가라는 손짓으로 시어도어를 거실로 돌려보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뿐이다. --- p.105 이 싸움은 내가 이길 것이다. 그는 나에게 바이러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는 한, 나는 그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그를 죽일 수 있는 존재다. (중략) “여긴 내 집이야.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나는 바이러스가 있고 아들도 바이러스가 있어. 내가 곁에서 숨을 쉬면 쉬는 만큼, 너는 병이 옮아 죽을 거야. 날 건드려도 너는 병이 옮아 죽을 거고. 나를 찔러서 피를 보면, 그때도 너는 병이 옮아 죽겠지.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 (중략) 마침내 그가 돌아서고, 몇 차례 부스럭대며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나더니 다행히도 곧이어 뒷문이 쾅 닫힌다. 나는 복도에 서서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쉰다. 머지않아 슬며시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 자신을 이토록 힘 있는 존재로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명 남자들은 이런 기분을 수시로 느끼고는 했을 것이다. 그저 내 몸이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겁에 질려 달아나게 할 수 있다니. --- p.161~162 나도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더라면. 만약 지금 이 순간 내가 지나온 삶의 어느 시점으로든 돌아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나는 그의 마지막 순간으로 돌아가 그의 손을 잡을 것이다. 나는 마커스의 아내가 했던 것을 할 것이다. 그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줄 것이다. 앤서니는 완전히 홀로 죽었다. 위로하고 잡아주고 안심시키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이야기해줄 사람 하나 없이. 그는 홀로 죽었고 나는 결코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리비의 한 손이 내 손안으로 살며시 미끄러져 들어오고 다른 손이 내 머리를 감싸 자기 어깨에 올려놓는 것이 느껴진다. 나만큼이나 드러내놓고 울고 있는 여자들이 곳곳에 있는, 여자들로 가득한 갤러리 한복판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진다. --- p.377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발화되는 방식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혹자는 남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오직 남성만이 역병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정중히 그 견해에 반대한다. 여성들은 대부분 남겨진 사람들이다. 삶이 산산조각 난 채로 남겨진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여성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을 하고,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주일에 엿새를 일하며, 사별의 고통을 짊어진 채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한 세계에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 역시 변화했다. --- p.460~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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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응급의 어맨더가 남성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아차리며 시작된다. 0번 환자를 진료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사이에 영국 전역에서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어맨더는 소리 높여 “제발 집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라고 호소하지만 이미 바이러스는 일파만파 퍼진 후였다. 치사율 90%.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으며 치료가 불가능한 이 병을 사람들은 ‘남성대역병(Great Male Plague)’이라 부른다.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한 WHO(세계보건기구)는 마침내 팬데믹을 선언하고, ‘항공교통규제협약’이 발효되며 항공기 운항도 전면 중단된다. 인류의 절반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세계 곳곳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난다. 각국 정부는 무너지는 사회 질서를 바로잡으려 하고 기업들도 조직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안타깝게도 고위직 대부분은 남성이다. 이제 폐허가 된 세상을 재건하는 것은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여성들은 백신을 개발하고 사회적 혼란을 진정시키며 무너진 경제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종말인가?” 인류 최대의 위기, 생존을 위한 투쟁의 기록! 전염병의 가능성을 제기한 의사 어맨더, 남자만 질병에 걸리는 유전적 이유를 규명하려는 병리학자 엘리자베스, 백신 개발에 나선 바이러스학자 리사, 국가 질서 유지를 위해 정년퇴임도 미룬 던, 이 모든 일을 기록한 인류학자 캐서린…. 《엔드 오브 맨》은 세상의 절반을 앗아간 바이러스에 맞서 공백의 세상을 새롭게 일궈내는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0명이 넘는 주요 인물이 등장함에도 한 명 한 명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채택한 ‘다중 시점’덕택이다. 작가는 일방적인 전개가 가져다주는 속도감을 포기하고 이들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각각의 캐릭터에 주관적인 목소리를 부여한다. 그리고 독자는 다양한 아픔을 한데 그러모아 하나의 객관적 세계를 구성하는 ‘능동적 독서’를 하게 된다. 《엔드 오브 맨》이 단순한 독서를 넘어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는 까닭이다. 가장 사실적인 팬데믹 소설, 혼란의 중심과 그 이후를 담다.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죽지 못한 여자’를 뜻하는 이 말은 남편의 죽음을 맞닥뜨린 여성에게 죄책감을 강요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될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엔드 오브 맨》의 ‘남겨진 여성들’은 미망인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오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성들은 백신 개발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조직 고위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의견을 묵살해버린 (운좋게 살아남은) 남자 상사를 해고하기도 한다.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기를 꿈꾸며, 더러는 정치인이 되어 선거에 출마한다. 약자의 자리를 벗어나 야망을 실현하는 여성들. 작가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가 팬데믹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 이상으로 포스트 팬데믹을 현실감 넘치게 그리는 데에도 힘을 쏟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여성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발화되는 방식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은 남겨진 사람들이다. 삶이 산산조각 난 채로 남겨진 사람들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한 세계에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 역시 변화했다. _461페이지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치사율은 서로 반비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종인 ‘오미크론’이 유난히 전염성이 높았던 것도 낮은 치사율 때문이다. 반면, ‘남성대역병’은 치사율이 90%에 육박함에도 극도로 높은 전염성을 보인다. 소설 속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성별을 결정하는 23번째 염색체(XX, XY) 형질의 차이가 바로 남성이 죽는 이유임을 규명해낸다. 여성들이 바이러스에 따른 증상 없이 바이러스를 옮기기만 하는, 이른바 ‘무증상 보균자’로 활동하는 것. 작은 염색체 하나로 인해 누군가는 안전하고 누군가는 위험하다. 사회 전반에 내재된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단숨에 전복된 것이다. 여성 혐오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21세기, 저자는 백래시가 만연한 오늘의 세상에 SF의 문법으로 반격을 가한다. 남자들은 여성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하고, 여성이 없는 외딴곳으로 도망치기까지 한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역병 환자로 규정되며 가정에서 손쉽게 배제되는 사례도 등장한다. 이처럼 힘의 우위가 뒤바뀐 모습은 현실 속 고질적인 병폐와 대조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현실의 불가해성과 가상 세계의 개연성이 뒤섞일 때 SF는 현실을 향한 강력한 비판으로 기능하는 법. 지금 이 시대 가장 유효한 SF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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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와 P. D. 제임스의 『사람의 아이들』 이후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SF를 기다려왔다. 설득력 넘치면서도 생생한, 거대한 우화이자 도발적인 스릴러. 고전은 이렇게 쓰인다. - A. J. 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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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공포가 손에 잡힐 듯하다. 코로나19 이전에 쓰였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 이언 랜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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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지적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 폴라 호킨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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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상상력과 깊이 있는 통찰이 만나다. - 제시카 무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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