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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 춤추는 돌탑 ● 왕의 다리 2 ● 눈꽃 바람 ● 명주의 세력가 ● 괴소문 3 ● 금성에서 만난 이름들 ● 수로 부인을 납치한 자들 ● 명주에 온 무월랑 ● 구출작전 4 ● 전서구 ● 약속 ● 연화봉 부처 바위 ● 그리움이 된 함박눈 5 ● 울금정화 공방 ● 거래 ● 사라진 편지 ● 용의 꼬리 ● 벽을 넘어서 6 ● 봉인 ● 그 여자의 꿈 소설에 대한 역사적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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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천지였다. 연화 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섰던 김주원은 그 시각 동굴에 감금되어 있었다. 김주원이 검은 복면을 쓴 자들에게 급습을 당한 것은 그들 일행이 막 알천을 건너려고 할 때였다. 장대비로 바뀌긴 했으나 그때만 해도 충분히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주원이 선두의 호위무사와 함께 다리에 들어서는 순간 자객들이 다리 밑에서 솟구쳐 올라 김주원을 공격했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또 다른 자객들이 다리 입구를 막아섰다. 미리 계획한 듯 퇴로까지 차단한 것이다.
--- 「1부 왕의 다리」 중에서 “어머니, 왜 여자는 모전을 짜야 하는 걸까요?” “왜긴. 몰라서 물어?” “예, 정말 모르겠습니다.” 연화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면서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모전을 짜는 것도 옷을 짓고 수를 놓는 것처럼 여자가 잘 할 수 있는 여자의 일이니 여자가 하는 것이지.” 연화는 어머니의 그런 말들이 정말 싫었다. 모전 짜던 것을 흔들어 보이며 시위하듯 항변했다. …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수도 놓고, 모전도 짜고 관심을 가져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런다고 없던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연화는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좋았다. 활쏘기도 정말 잘했다. 연화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어머니가 기겁하며 싫어하는 것들이라 문제였다. --- 「2부 괴소문」 중에서 수로 부인 납치사건으로 명주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명주 관아의 수사팀과 별도로 고영우가 이끄는 조사팀은 작은 어촌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탐문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닷새가 지나도록 범인의 꼬리조차 잡지 못했다. … 신라왕이 직접 사건 해결 지시를 내린 순간 수로 부인 납치사건은 나라의 중요한 사건으로 급부상했다. 그것은 사건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모든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었다. “이리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겠나.” “왕명을 받들어 수로 부인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네, 무월랑.” --- 「3부 명주에 온 무월랑」 중에서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핑계를 둘러대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무월랑은 무슨 마음으로 용연사까지 굳이 찾아와 연화를 만나려고 했는지 자기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만나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고 할까. 아니,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무월랑은 복잡한 심내를 감추려고 말을 하면 할수록 귀밑까지 홧홧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 「4부 약속」 중에서 “어머나 신기해라. 저 돌탑은 그대로 남아 있네.” 홍겨울이 장대비에도 무너지지 않고 부처 바위 옆에 남아 있는 돌탑 하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에 ‘정화’라고 새겨져 있어. 장대비에 쓸려가지 않는 것도 신기한데 글자도 그대로 남아 있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연화가 달려갔다. “이건, 이건….” 글자가 새겨진 돌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연화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난가을 무월랑과 함께 만든 그 돌탑이었다. 다른 돌탑들이 장대비에 모두 무너져 내렸는데도 무월랑과 둘이 쌓은 그 돌탑만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 「5부 사라진 편지」 중에서 돌아가는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고영우는 고개를 내밀고 남자들의 동태를 엿보았다. 세상에, 그놈이었다. 목덜미에 용 문신을 한 자. 금성의 동 시장에서 뒤쫓아 가다 놓친 바로 그놈이었다. 그렇다면… 이 동굴이 하슬라의 용의 은신처라는 것인데…, 고영우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동안 명주에서 기를 쓰고 그자들을 추적했으나 종적이 묘연해 그 꼬리조차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데… 폭우 때문에 우연히 찾아 들어간 바위틈에서 놈들의 은신처를 본 것이다. … 연화는 손가락을 들어 혼인 반지를 노을에 비춰보았다. 가락지가 노을빛을 받아 반짝반짝 황금빛으로 빛났다. ‘고맙습니다. 무월랑을 돌아오게 해주셔서.’ 연화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돌탑을 빙빙 돌았다. 무월랑도 연화를 따라서 탑돌이를 했다. 황금빛 노을이 골품의 벽을 넘어 둘의 어깨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 「5부 벽을 넘어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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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10, 신라본기 10, 원성왕 즉위년 기사에는 박연화의 아들 김주원이 알천의 다리를 건너지 못해 왕이 되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과연 그럴까? 기록에 감춰진 것은 무엇일까? 그 단서를 추적하다 보면 박연화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8세기 통일신라 시대 강릉지역 토호의 딸 박연화와 신라 왕족 무월랑 김유정은 지리적인 거리만큼 신분의 격차도 컸다. 엄격한 골품제의 나라 신라에서 명주 땅의 박연화는 무월랑과 어떻게 사랑의 결실을 맺은 걸까? 무월랑이 명주로 간 시기는 〈헌화가〉, 〈해가사〉의 주인공 수로부인이 명주로 가던 길에 납치된 때와 같은 시기다. 그 시대 명주 땅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왕권 강화에 반대하는 신라 귀족들의 저항과 권력투쟁, 왜국까지 오간 신라 해적. 유교적 질서가 뿌리내리면서 집 밖에서 집 안으로 제한된 1300년 전 여성의 삶. 박연화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시대와 싸우며 자신의 삶을 찾고, 사랑을 찾아갔을까? 새로운 시각, 새로운 해석으로 되살아나는 연화 낭자 이야기. 자신을 가둔 시대의 요구를 박차고 나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아가는 연화 낭자의 위대한 여정. 그리고 그 혁명에 불을 지핀 한 남자의 이야기!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1300년을 거슬러 우리 곁으로 되살아난다. 이 책의 역사적 사료 〈명주가〉와 관련된 전승 설화의 내용은 대체로 일치한다. 〈강릉김씨파보〉에 전하는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중엽 강원도 명주(지금의 강릉) 남대천(南大川) 남쪽 연화봉 밑에 서출지(書出池)라는 연못이 있고, 그 못가에 박연화(朴蓮花)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어 날마다 못가에 나와 고기에게 밥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내자 고기떼들은 연화의 발걸음 소리만 나도 물 위로 떠올라 모여들었다. 어느 봄날 하루는 연화가 못가에 나와 있으려니까 웬 서생이 자기를 보면서 못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나 그 서생이 한 장의 편지를 떨어뜨리고 가므로 이상히 여겨 주워 보니 그것은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한 내용이었다. 서생의 이름은 무월랑이었다. 다음날 답장을 썼는데, “부모가 계시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아무렇게 경거망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디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더욱 글공부에 힘써서 입신양명을 하시면 그때 부모의 승낙을 받아서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감동된 무월랑은 서울(경주)로 가 열심히 학문에 전념하고 있었다. 한편 연화의 집에서는 나이가 과년하므로 혼처를 정하고 오래지 않아 날을 받아 성례를 시키려 하였다. 그를 안 연화는 편지를 써 가지고 못가에 나와, “너희들은 오랫동안 내 손에 밥을 먹고 자라왔으니 내 간절한 사정을 서울로 간 뒤 한 장의 편지조차 없는 낭군에게 전해다오”라고 사람에게 말하듯 하면서 그 편지를 물 위에 던졌다. 그러자 그 중에 가장 큰 잉어가 편지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서울(경주)에 온 무월랑은 어느 날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사 와서 배를 갈랐다. 이상스럽게도 그 속에 편지 한 장이 있어 떼어보니 분명 연화가 자기에게 보낸 급한 사연이었다. 이를 보고 무월랑은 자기 부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그 길로 명주로 말을 달렸다. 명주에 도착하니 마침 새신랑이 문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급히 가로막고 연화의 부모를 불러 그들의 진실한 사랑 관계를 이야기하였다. 연화의 부모가 이르기를, “이 지극한 정성이야말로 진정 하늘까지 뜻이 통할만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새신랑을 보내고 무월랑을 맞아서 사위로 삼았다. _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명주가(溟州歌)” 中에서 한편 김주원과 박연화 사이에 태어난 아들 김주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는 신라 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로서 명주군왕으로 봉해졌다. 김주원은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의 5세손이라고 하며, 선덕왕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왕가의 혈족인 그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경주로 가는 중에 큰비가 내려 강을 건널 수 없어 회의에 참석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신하들은 하늘이 그를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 하여 김경신(후의 원성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김주원은 이듬해 선대로부터 인연이 있는 명주(지금의 강릉)로 와서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으로 봉해졌으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성왕은 그에게 통천에서 평해까지의 동해안 일대를 식읍(食邑: 공신에게 주는 땅)으로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