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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잠수함
불타는 마을 도둑으로 몰리다 벽란도에 가다 마침내 화약을 만들다 고향을 찾아가다 꿈의 소중함을 깨닫다 고려 말의 무기 과학자 최무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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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리네 가족은 진해의 해군 기지로 잠수함을 구경하러 간다. 불꽃놀이를 기대했던 채리에게 최무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최무선함'은 따분하기만 하다. 해군 아저씨의 설명을 듣다 말고 혼자 빠져 나온 채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잠수함 안으로 들어간다. 으리으리한 내부에 놀라는 채리에게 잠수함이 말을 건넨다. 자신을 '꿈꾸는 잠수함'이라 소개하는 잠수함은 채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고려 시대, 바닷가 마을은 왜구로 몸살을 앓았다. 최무선이 살던 원기리 마을은 첩첩산중이었지만 왜구의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 왜구는 마을도 사람들도 모두 짓밟아 버렸다. 친구 영수의 죽음 앞에서 최무선은 벼슬길을 포기하고 대신 새로운 꿈을 품는다. 바로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몇 해 뒤, 군기감의 기술자가 된 최무선은 화약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다들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다. 하지만 염초 제조법을 몰라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원나라의 염초 기술자인 이원이 벽란도에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최무선은 당장 그를 찾아간다. 화약 제조에 매달리는 최무선의 열정에 감동한 이원은 그에게 제조법을 알려 주고, 결국 화약 만들기에 성공한다. 화약 제조를 시작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왜구를 물리치려면 화약과 같이 쓸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는 최무선의 주장 또한 곧장 받아들여져 화통도감이 설치된다. 이곳에서 최무선은 쉰 가지가 넘는 신식 무기들을 만들었다. 1380년 8월, 왜선이 진포 앞바다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을 때, 고려 군사들은 새로운 무기로 왜구들을 소탕한다. 고려의 화포 앞에 500척의 왜선은 꼼짝달싹 못하고, 한 척도 남김 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1389년, 고려는 대마도 정벌에 나선다. 화포와 주화로 무장한 고려군은 왜구들을 일망타진하고, 대마도로 끌려갔던 고려인들은 무사히 부산항으로 돌아온다. 꿈꾸는 잠수함의 이야기를 듣고 채리는 꿈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동생 승재는 채리를 보고 반가움에 울먹이며, 채리가 만난 최무선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 준다. 채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동생의 손을 꼭 잡는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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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개발의 꿈을 이룬 최무선
강한 고려를 만들다! 고려 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왜구들은 여간 큰 골칫거리가 아니었어요. 왜구가 휩쓸고 간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사람들은 죽거나 끌려가야만 했지요. 난리를 피해 마을 뒷산 동굴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합니다. 새 무기를 만들어 왜구들을 꼭 꺾고야 말겠다고 말이지요. 그 소년이 바로 최무선입니다. 고려 시대, 첨단 무기라 일컫는 화약을 만들어 내고, 화포와 주화 등의 신식 무기를 탄생시킨 주인공, 최무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아요. 자랑스러운 고려의 무기 과학자, 최무선 고려 시대 때만해도 화약은 첨단 무기였다. 당시 화약을 만들어 쓰고 있는 나라는 중국 원나라뿐이었다. 하지만 원나라는 고려에게 그 비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 고려 사람들은 화약 제조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단지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최무선은 달랐다. 그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책을 연구하고, 갖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결국 화약 제조에 성공한다. 이로써 고려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화약 제조 기술을 지닌 나라가 되었다. '역사스페셜 작가들이 쓴 이야기 한국사' 27편 ≪최무선과 진포대첩≫은 열과 성을 다하여 화약 제조에 몸바쳤던 최무선의 삶을 담았다. 최무선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큰 꿈을 품는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위한 노력의 결과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생하게 전해 줄 것이다. 왜구의 침입으로 고통 받았던 고려 시대 고려 시대는 원나라(몽골)와 이민족의 침입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최무선이 활약한 당시는 바다를 건너온 왜구들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는데, 한 해에 서른여섯 차례나 고려를 침범할 정도였다. 틈만 나면 고려를 침입한 왜구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갔다. 최무선이 태어난 원기리(경북 영천) 마을은 바닷가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내륙이었는데도, 왜구들의 침입을 받아야 했다. 오늘날 영천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떠났다가, 고향에서 다시 살기 위해 쌓아 둔 옛 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무선은 이런 왜구들을 물리치기 위해 밤낮없이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조선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화통도감의 놀라운 기술! 최무선은 화약이 제대로 실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화약을 실을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화통도감을 만들어 신식 무기를 개발해 냈다. 바로 이곳, 화통도감에서 그의 창의성은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구리와 주석, 아연을 합금해서 만든 새로운 화포를 만들었다. 화약이 거침없이 폭발해도 거뜬히 견뎌 내는 놀라운 무기였다. 또 일종의 로켓 무기인 주화를 비롯하여 쉰 가지가 넘는 신식 무기를 개발해 냈다. 이렇게 최무선이 만든 화약 무기는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져 더욱 발전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화통도감은 없어졌지만, 화통도감이 가지고 있던 기술들은 그대로 남았다. 최무선이 무기에 얽힌 모든 사실들을 꼼꼼히 정리하여 아들 최해산한테 물려준 덕분이었다. 그의 아들 최해산은 세종 때 벼슬길에 올라 화약과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