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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회룡포 신두리 해안사구 오이도 등대 삼길포항 노적봉 삼학도 오천항 월내항 방파제 격포 천리포 풍천장어 제2부정암루 솥바위 노도의 밤 선몽대 죽호정 황토현 내소사 우리들의 제삿날 백조일손지묘 북촌리 그녀의 무명천 대할망의 눈물 다랑쉬굴 제3부빌뱅이 언덕 성주사지 통영 시락국 거미 인간 절개지 사초 풀 눈사람 쪽방촌 산책 소멸에 깃들다 장의사 애도하는 시간이 오면 우리는 둥굴레 차 끓이는 저녁 제4부체 게바라를 읽는 겨울밤 93파키라 여인 95계단의 문법 97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 99모서리가 둥글어지는 시간 101나의 서정시는 103내가 모르는 너의 슬픔은 105허리 107환절기 109우리 동네 백옥 세탁소 111그의 휴대폰 113혁명과 은둔 저자 산문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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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진실성 없는 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시가 뭐 별거겠니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게 시겠지하루 세 끼 잘 챙겨 먹고 술 좀 줄여라시도 먼저 사람이 있고 그 다음인 거지뭐 별거겠니(중략)부처님 말씀처럼알아듣게 써 봐라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게 쓴다면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지나뭇잎 하나에도 말씀을 전하는 게풀 한 포기에도 가슴을 얹어 두는 거그게 시가 아니겠니뭐 시가 별거겠어다 사람 사는 일이지― 「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부분) 4·3 때 희생된 사람들이 같은 부락의 사람들일 때에는 제삿날도 모두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사야 지내는 시간이 거의 일정하니깐 한 마을에서 일제히 축문이 읽혀지고 향이 타오른다는 것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 땅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아버지들의 제삿날이 모두 한 날인 우리 마을에선상차림을 할 수 있는 밥상도 소각 때 불타고 없어져병든 큰형님이 하루 종일 가슴으로 낫을 갈아 제상을 깎았어요어둠도 밀려와 흐느끼다 가는지 군데군데 저녁의 냄새를 뱉어놓는 자시(子時)가 되면먼 산의 그림자는 자꾸 달빛을 갉아 먹고송진 내음 어슴푸레 풍기는 제상 위에는묵 한 모 마른 생선 세 마리그 옆엔 고사리 무나물 한 접시그래도 흰 쌀밥을 고봉 높게 진설하면기나긴 울음들은 어디로 또 흘러들어 가는지많고 많던 눈물들도 모두 소각되는 것 같았어요뚝뚝 눈물을 훔치고 나서면거의 한날한시에 교향곡처럼 울리는 곡소리가 우리들 귓가를 아프게 저며 왔어요 ― 「우리들의 제삿날」 (부분) 혁명을 외치던 대학 시절의 친구들이 하나 둘 자본주의의 틀 안으로 정착해 갈 때 남는 것은 역시 변함없는 자본의 논리였어요. 저도 역시 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강했죠. 생존은 그 어떤 실존보다도 선행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제가 질주해 간 80년대의 틀 속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지금은 오히려 이해 안 되는 시절이잖아요. 나의 이익과 관계없는 여러 사람들의 공익과 이념을 위해 헌신한다는 게 지금의 논리론 이해가 안 되죠. 그 정신적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무작정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혼자 여행을 다니며 많은 생각들을 해 보게 됐어요어제는정치꾼이 된 옛 친구를 만났지그는 한때 귀족 노조가 되어 버린 회사에서가슴에 이마에 띠를 두르고한세상을 함성으로 채워 나갔었지칠흑같이 보이지 않는 세상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삼 년에도세상은 그 어떤 변명조차도 내어놓지 않았네 정치꾼이 된 어제의 동지들도귀족 노조가 된 후배도재벌의 뒤를 닦는 변호사 선배도고문 후유증으로 여태까지 노모가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친구도사실은 독재가 그리웠던 어르신도잘 먹고 잘살게만 해 주면 그만인 민족도 여전히 건재한 친일파 후손도그보다 더 건재한 발포 책임자도어쩌지 않고 어쩔 생각도 없는 대다수도실은 있지도 않았던 이념도있어도 소용없는 법도전설 속에서나 나왔던 민주와 민중도 ―「혁명과 은둔」(부분) 장소와 지역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시는 사실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감성에 기초한 사유가 대부분인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해 왔어요. 저는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특성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보다 나은 삶과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보편적 가치를 투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왔어요. 목포 등지의 호남 지역에서 발효와 겸손의 이미지를, 부산 월내항 등의 영남 지역에서 연대와 공존의 의미를 형상화해 보는 것이죠. 이번 시집에서는 ‘장소성’이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시의 의미 지평을 넓혀 보고자 했어요. 그 속에는 유배나 의병의 소재가 있고 방랑과 성장이 있으며 고독과 은일, 생태 환경과 역사가 자리 잡고 있어요. 사내가 제방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본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에도 버거운지 바다도 가끔씩 말을 걸어온다 어떨 때는 자신의 족적을 남기려는 듯 사내 주변에 한창 머무는 때도 있었다 바다도 작은 가슴으로 한세월을 버틸까 먼저 세상 떠난 아내의 음성이 모래사장으로 가끔씩 기어나온다 무정한 사람, 슬리퍼 하나 사서 내일은 아내의 산소에 가야겠다고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게에서 흥정을 하는 아낙의 그림자 위로 아내의 환영이 멀리서 장맛비로 밀려오고 있었다 사내는 눈물을 훔치다 말고 바다가 전해 주는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그래, 이젠 일어나야지 내 생애에 가장 빛나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자, 집으로 걸어가는 사내의 등 뒤로 수평선이 아득히 출렁이고 있었다― 「월내항」 (부분) 모든 존재들이 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서서히 늙어 간다는 것이겠죠. 제가 사랑하는 대상의 늙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다는 것만큼 슬프지만 아름다운 일도 없다고 봅니다. 구세상의 끝에서 그대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오늘의 수평선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넓은 하늘로 필사의 각오를 하고 바닷새 떼들 날아가지만 새롭게 버려야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에 절반은 뭍에 가두고 나머지 반은 빗장을 열어 둔 채로 그대를 받아들입니다 전에는 허공을 향하여 내 안에서 타오르는 소중한 것들을 무조건 내놓았지만 정작 셈을 하고 미래의 손익 분기점을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그 무엇을 원하지도 않았으니 당장에라도 달라질 건 없을 것입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태풍도 점차 사그라든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나니 이제 마음 놓고 시선은 저 능선 위에 떠 있는 별들에게도 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내린 폭우로 이것저것 쓸려갔을 지상에서의 걱정도 저만큼 쌓여 있을 테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또 해가 떠오르듯이 남부럽지 않을 것들도 서서히 내어놓을 것입니다 시선을 거두는 곳에 새로운 항로를 묻고 그대에게 보내는 기호에 민감하듯 부름에 응하는 것들에게는 마음에 꺼지지 않을 오롯한 등불 하나 계속 켜두겠습니다 그러다 하늘에서 임종을 고하는 별똥별 하나라도 떨어지면 폭풍우 속에서도 떨고 있을 그대를 살피는 일 또한 잠시도 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 「오이도 등대」(전문)‘시인의 말’에서 내 시는 “내 시가 / 그대의 허물어진 뒷모습을 감쌀 수만 있다면/그리하여 그대에게 온기 가득한 손을 내밀 수만 있다면 / 이제 팔십의 고개를 넘어가고 계신 /나의 영원한 늙어가는 옛 애인인 /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친다.”고 헌사했듯이 이 시집의 첫 제목은 『나의 늙어가는 옛 애인에게』로 어머니에 대한 헌정시였지만, 마지막에 이 제목의 시가 이 시집에서 제외되면서 『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로 결정했다. "내 시는 고독한 식민지의 애국가그대에게 바치는 이 세상의 마지막 헌사차마 말하지 못했던 고백쯤 될까내게 온 모든 것들은 이제 낡아 가고 조금씩 늙어 간다내 시가 그대의 허물어진 뒷모습을 감쌀 수만 있다면그리하여 그대에게 온기 가득한 손을 내밀 수만 있다면 이제 팔십의 고개를 넘어가고 계신 나의 영원한늙어가는 옛 애인인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친다."2021년 봄에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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