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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폭풍우, 베르메르 시대의 사랑
러브레터, 마음속의 폭풍우 - 네덜란드 편지 주제 장르화 거울에 비친 속마음 - 베르메르의 「음악 수업」 아찔한 유혹의 한 모금 - ‘포도주 마시는 여인’ 장르화 돌아봐 주오, 사랑하는 이여 -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연애와 유희, 로코코 시대의 사랑 욕망의 심리적 움직임 - 프라고나르의 「그네」 에로틱한 사랑의 게임 -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 춤과 사랑의 대화 - 와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목가적 이상향 속의 연애 유희 - 부셰의 파스토랄 회화 정략결혼과 로코코의 장미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최고의 여성 - 마담 드 퐁파두르의 ‘벨 사방트’ 초상화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 - 마담 드 퐁파두르의 삶과 사랑 왕비의 조건 - 비제 르브룅의 「슈미즈 차림의 마리 앙투아네트」 여성 화가로 산다는 것 - 비제 르브룅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신화 속 사랑의 원형들 사랑의 천형, 질투와 의심 -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그림들 무모한 사랑의 말로 - ‘갈라테아’ 그림과 눈먼 큐피드 동성애와 브로맨스 - ‘히아킨토스’와 ‘가니메데’ 그림들 두 가지 사랑의 승리 - 부샤르동의 ‘큐피드’와 르무안의 ‘헤라클레스’ 일상 예찬, 네덜란드 황금시대 장르화 로코코의 살롱 문화와 패션화 참고 문헌 도판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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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빠져 드는(falling in love)’ 것 …… 느닷없이 닥쳐오는 것이기에 맘대로 되지 않고, 오로지 겪어 내야 하는 수동태의 ‘사건’이다.”--- p.7 「머리말」
“17~18세기의 유럽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공간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시기의 사랑이 우리 시대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눈멀었다’ 혹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표현이 동서고금을 망라해 통용되듯 말이다. ‘눈멂’은 철학이 과학과 함께 얽혀 발달했던 당대 주요 화두 중 하나이며, ‘눈먼 사랑’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p.8 「머리말」 이 시대(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창작이 대체로 시학에 기초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 속 그림’들 또한 대단히 시적이다. 폭풍우 치는 바다나 지도처럼 그녀가 있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낯선 차원의 공간이 틈입해 들어와 있거나, 창이나 빈 벽과 같은 사물 자체가 텅 빈 눈으로 편지 읽는 여인의 마음을 되돌려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창이며 허공이며 빈 벽들이 편지의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p.20 그림의 모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으며 화가가 그에 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진주 귀고리 소녀」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이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그림이 기이할 정도로 이미지의 본성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갖거나 표상하는 것은 사실은 그 대상의 부재를 그리는 것이다. 이미지는 언제나 부재의 기억이며 잃고 마는 시선이다. 즉 상실을 경험한 후에야 이미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혹은 가진 적이 없기에 상실할 수도 없는 그러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미지는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휘발되어 버리는 슬픔의 이름이다.--- pp.63-64 화사한 매력과 부박(浮薄)함에 한순간 매혹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무의미함을 곱씹는 허무주의적인 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어떤 대상에 열정적으로 미혹당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매혹과 경이를 잃게 된다면 삶은 곧바로 각화해 굳은 외피로 덮일 것이다. 「그네」에서 우리는 “가장 매혹적인 것은 다름 아닌 매혹당한 시선이다”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p.83 눈먼 정념만큼 개인의 정체성에 위협이 되는 것은 없다. 사랑의 우연성과 눈먼 선택에 대한 유비라는 점에서, 「까막잡기 놀이」는 한 발 잘못 내디딜 경우 운명적으로 좌초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놀이의 형태로 보여 준다. 충동적, 정념적 사랑은 근본적으로 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듯 본능과 기회에 좌우되는 충동적 사랑을 게임을 통해 놀이의 규칙, 즉 이성과 선택의 통제하에 놓기를 원했던 것이다. 놀이에는 이러한 사고가 스며들어 있다.--- p.90 와토의 그림에는 18세기 지성과 예의를 상징하는 ‘대화의 이념’이 깃들어 있다. ……마치 파트너를 바꿔 가며 춤을 추듯 예의 바른 대화를 건네는 태도는 18세기의 문학과 수많은 계몽적 지성을 낳은 살롱의 정신을 반영한다.--- p.103 목동과 목녀를 그린 부셰의 목가적 회화는 영원히 상실된 자연에 대한 귀족사회의 향수와, 자연과의 화합을 꿈꾸며 이상향을 지향하던 당시 상류사회의 사교적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p.115 이들[마담 드 퐁파두르, 마담 드 맹트농, 마담 드 몽테스팡 등등]은 당대 최고로 손꼽히던 미인들이자 온갖 재능을 갖춘 지적인 여성들로서 예외 없이 인문학을 비롯해 예술과 건축의 훌륭한 메세나이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정부(후궁)였지만 그녀들의 지위는 확고했다. 초상화와 조건만 보고 결정했던 첫 번째 정식 결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군주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져 선택한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pp.128-129 왕비는 국가 영토의 상징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인 출신이었다.(족외혼 전통에 따라 대개 이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나라 왕의 동반자이자 ‘상징적 영토’, 즉 국토 자체가 되어야 하는 이방인 출신의 왕비의 지위란 복잡한 것이었다.--- p.147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 비극적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운명적으로 어긋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혹은 사랑의 성취가 그대로 참담한 비극이 되어 버리는, 성과 사랑이 곤궁에 빠져 교착되어 버리는 기이하고 알 수 없는 섹슈얼리티의 장소를 지시한다.--- p.189 큐피드의 활은 잘 알려진 것처럼 황금 화살촉과 납 화살촉에 의해 정념 혹은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이다. 큐피드의 화살은 마치 다트처럼 마음을 관통하는 성애적인 시선의 일견(glance)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녁을 겨냥한 화살촉은 마음을 관통하는 동시에 상처를 낸다. 그러나 연인에게 그 아픔은 오히려 피할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p.198 신화와 문학과 그림은 자유로운 해석을 열어 두는 마지막 공간--- p.203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교차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인다. 사물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그 형체를 잃게 만든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대상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분별할 수 있다.--- p.215 히아킨토스와 가니메데 그림에서 보이는 동성애는…… 육체로만 한정되지 않는 관계, 죽음을 넘어 영혼 자체, 영혼의 진동으로 맺어진 동성 관계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히아킨토스와 가니메데 주제의 그림은 모두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필연적 죽음으로 끝나는 슬픈 사랑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한 강렬한 사랑, 브로맨스의 진한 우애는 때때로 인간적 한계 너머의 삶을 보여 준다.--- p.217 모든 신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난꾸러기 사춘기 소년. 그(큐피드)가 날리는 화살에는 이유가 없으며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화살을 맞은 자는 자신도 모르게 불가항력적인 힘에 복종하게 되고 그 욕망의 힘 앞에서 이성과 판단력은 무력화된다.--- p.224 부샤르동이 조각한 큐피드의 눈은 대단히 독특하다. ‘눈먼 큐피드’ 도상에서처럼 눈을 가리지는 않았으나, 개별자를 초월해 영원을 응시하는 조각상의 관례에 따라 동공 없는 텅 빈 응시를 드러낸다.……미소 짓는 텅 빈 눈이 나타내는 ‘눈멂’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 타자에 대한 무관심을 지시한다. 그는 아무렇게나 화살을 날리며 자신이 어떤 열망과 고통을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눈멀어 있다. ‘눈멂’은 또한 큐피드의 자기 충족성을 나타낸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시선을 돌리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내면으로 침잠해 있다.--- p.225 헤라클레스의 (선악을 가르고 적을 때려잡는) 곤봉과 사자 가죽은 그의 난폭함과 폭력성을 함축한다. 큐피드는 산적에게나 어울림직한 이 투박한 몽둥이를 날렵한 사랑의 활로 깎아 낸다. 이는 마치 육중하고 어두운 바로크로부터 천상의 나래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로코코적 에스프리 그 자체를 보여 주는 듯하다.--- p.233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는 내외부 공간이 인물의 위치와 시선을 경유하여, 특히 창과 문을 경유하여 다른 공간으로 상호 이행되거나, 혹은 인물의 내면이 바깥 공간의 분위기를 통해 조명되는 경향이 있다. 즉 내부 공간은 외부로, 바깥 공간은 인물의 내면으로 침투하듯 열려 있는 것이다. …… 17세기 장르화의 공간은……겉보기로는 알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외부 환경 묘사를 통해 짐작하도록 한다. 즉 관람자가 그림을 볼 때 그림 속 인물이 주변 공간에 마음을 내어 놓듯 관람자도 공간에 침윤하여 그 또는 그녀에게 동화되고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pp.243-244 ……사냥, 게임, 춤, 우아하고 애교 넘치는 문자 그대로 ‘갈랑트리(galanterie)’한 실내 연회와 실외의 대화 장면, 재치 있는 교태(coquettrie)와 뒤섞인 감미로운 연애를 그렸다. 이런 그림에는 17세기 바로크라든지 19세기 신고전주의의 그림에서 보이는 명백한 도덕적 훈계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의 삶은 세련된 놀이와 사교로 소진되는 것처럼 보인다. …… 가벼우나 경박하지 않고 초연하면서도 정중한, 우아함이 깃든 당당한 모습은 엘리트 계층이 그들 자신을 보고자 하는 방식이었다. --- p.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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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남녀상열지사를 엿보다!
그림이 들려주는 사랑의 내밀한 속성과 연애 풍속도 네이버 캐스트 ‘서양미술의 걸작’ 화제작 1 걸작으로 보는 인류의 영원한 화두 ‘사랑’ 『사랑의 그림』은 제목 그대로 인류의 영원한 화두 ‘사랑’을 테마로 서양 미술의 걸작들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짝을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고 거의 모든 TV 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사랑을 부르짖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은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사사롭고 세속적인 욕망이기에 복잡 미묘한 인간의 속내가 표출되기 마련이고 거기에서 외면할 수 없는 공감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서양미술의 걸작’에 실린 연재물 중 사랑이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글과 그림을 선별해 다듬고 보완하여 탄생했다. 베르메르 등이 활약한 17세기 황금시기의 네덜란드 장르화들과, 부셰와 프라고나르 등이 대표하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당대의 연애 풍속과 사랑의 내밀한 속성을 살펴본다. 저자는 도상해석학 등의 미술사적 해석은 물론, 시를 비롯한 당시 문학 작품과 연극, 시대상과 대중 풍속을 다각도로 끌어들여 미술사에 문외한인 독자와 관람자들도 즐겨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무엇보다 사랑의 감미로움과 절박함, 욕망의 심리적 움직임과 엇박자, 사랑의 맹목성과 연애의 기교 등을 섬세하게 포착해 독자와 교감의 진폭을 넓혔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걸작이나 명화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의 가치가 화려한 회화적 테크닉이나 물질적 값어치, 희귀함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울림과 공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2 달콤한 매혹과 사랑의 순간들 - 네덜란드 장르화와 로코코의 연애와 놀이 그림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와 18세기 로코코 시대는 유럽 서구에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서양 미술의 주요 주제였던 역사나 종교 같은 거대 서사에서 벗어나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이 그림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무역 발달과 신교의 영향으로 다른 유럽보다 일찍 시민문화가 꽃피었고 가정 중심의 일상생활을 다룬 ‘장르화’가 유행했다. 베르메르를 중심으로 메추, 테르보르흐 등의 작품을 살펴보는 1장의 키워드는 네덜란드 장르화의 독특한 형식인 ‘그림 속 그림’이다. 벽에 걸린 풍경화나 다른 그림, 지도, 거울이나 창에 비친 상, 때로는 빈 벽이나 허공, 창과 문을 통해 보이는 외부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그림 속 그림’은 매우 시적이고 미묘한 방식으로 그림의 주 장면에 대해 보조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속내를 비추는 ‘그림 속 그림’을 “화면 속에 다른 차원이 틈입할 여지를 주는 ‘구멍 뚫린’ 그림”으로 설명한다. 창가 모퉁이에 한두 명의 인물을 배치한 실내 장면들은 언뜻 온화하고 고요해 보이지만 ‘그림 속 그림’을 통해 그림에는 폭풍처럼 격렬한 감정의 동요, 유혹의 위태로움과 욕망의 긴장감 등이 부여된다. ‘그림 속 그림’이 의미는 바는 엠블렘 같은 문헌 자료나 도상 해석, 서구의 문학 전통, 시대 풍속 등을 근거로 파악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해석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음악에 비유되는 은근하고 미묘한 교감, 알 듯 말 듯한 모호함은 네덜란드 장르화의 매력이자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예쁨, 우아함, 조화로움을 표방한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시대는 계몽주의와 함께 개인의식이 싹트고 자유연애 사상이 유행하면서 사랑, 연회, 신화 같은 주제들이 미술사 전면에 부상한 시기였다. 야외에서 남녀가 어울려 유희하는 와토의 ‘페트 갈랑트’ 회화나 부셰의 ‘파스토랄’ 회화는 인물들의 세련된 복장에서 보듯 상류사회의 사교적 삶을 반영하지만 여기에는 자연과의 화합, 소박하고 평등한 이상적 삶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부셰의 애제자이며 가장 로코코적인 화가로 꼽히는 프라고나르는 「그네」를 비롯해 경쾌하고 감각적인 쾌락과 환희, 한순간 압도되는 매혹의 순간 등을 포착한 놀이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기에는 뜻하지 않게 빠져드는 사랑의 우연성(또는 세상살이의 우연성)을 놀이의 규칙을 통해 통제하고 훈련해 보려는 당시 세계관이 담겨 있다. 또한 연애와 사랑이 유혹과 거리두기를 전략적으로 구사해야 하는 사회적 게임임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사랑에 대한 그림은 또한 여성에 관한 담화이기도 하다. 근심 어린 얼굴로 편지를 읽는 네덜란드의 주부, 포도주 한 모금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아가씨, 두 남자의 사랑의 받는 님프, 질투에 사로잡혀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아내 등 여러 여성이 등장하지만 저자는 역사 속에 실재했던 여인들에게 각별히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녀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 구속, 특히 사랑이 아니라 조건에 좌우되던 정략결혼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녀들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유를 꿈꾸었고 그것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실현했다. 왕의 정부였으나 침실의 파트너로 남지 않고 왕의 실질적인 비이자 조력자로서 로코코 시대 패션과 예술을 선도한 마담 드 퐁파두르, 이와 대조적으로 왕비라는 지위에 갇혀 타국 땅에서 숨 막히는 결혼생활을 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마리 앙투아네트, 변변치 못한 남편과의 결혼으로 눈부신 재능을 썩힐 수도 있었으나 철저한 훈련과 자기 절제로 왕비의 공식 초상화가 자리에까지 오른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이 그러하다. 한편 화가들은 신화의 한 장면을 택해 파란만장하고 강렬한(때로는 에로틱한) 연애담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 걸쳐 소개되는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아키스와 갈라테아, 아폴로와 히아킨토스,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은 운명적 또는 인간적 결함으로 초래된 파국이나 좌절을 통해 비극적 사랑의 원형을 보여 주는 동시에 또한 극한의 고통 끝에서 얻는 ‘승리’를 경축한다. 3 ‘시선’을 품은 그림과 ‘눈먼’ 사랑의 속성 최초의 사실적 초상화는 고대 코린토스의 한 소녀가 멀리 떠나는 연인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동굴 벽에 드리운 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린 것에서 창안되었다고 한다. 눈앞에 없는, 또는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대상이나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그림(또는 이미지)은 이와 같이 애초에 ‘사랑’을 품고 있었다. 이미지의 이러한 본성은 베르메르의 대표작이자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까만 배경 속으로 곧 사라져 버릴 듯한 소녀의 이미지에서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갖거나 표상하는 것은 사실은 그 대상의 부재를 그리는 것”이며 “이미지는 언제나 부재의 기억이며 잃고 마는 시선”임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시선’과 ‘바라봄’에 관한 것이며 ‘시선’에 대상을 향한 욕망이 깃들어 있음은 프라고나르 「그네」의 그림이 주문된 배경이나 남과 여의 배치 등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사랑은 역설적으로 ‘눈먼’ 것이기도 하다. ‘사랑에 눈멀다’ 혹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표현이 동서고금을 망라해 통용되듯 사랑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고 바보가 되는 ‘눈멂’은 사랑의 본질적 속성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파가 미친 사람의 뇌파와 비슷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사실이라고 한다. 베르텔리의 판화, ‘큐피드의 교육’이라고도 불리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눈먼 큐피드」, 눈을 가리고 상대를 더듬어 찾는 놀이를 그린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에서는 욕망 앞에 이성과 판단력이 마비되는 ‘눈먼’ 사랑의 속성을 보여 주는 그림들이다. 철학이 과학과 함께 얽혀 발달했던 18세기에는 이러한 ‘눈멂’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루소는 사랑에 눈먼 그 눈이 더 올바르게 본다면서 통제되지 않은 정념과 열정이 주는 쾌락과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러나 폴리페모스와 갈라테아 신화에서 보듯 정념적 사랑이 수반하는 공격성은 기술과 훈육을 필요로 한다. 유혹의 기술만큼이나 절제와 거리두기의 기술 또한 중요한 것이다(요즘 표현으로는 ‘밀고 당기기’). 로코코 시대는 물론 우리 시대에도 사랑과 연애가 “언어적 사회적 기교를 필요로 하는” 까다롭고 미묘한 게임에 비유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