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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이진우
푸른숲 200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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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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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67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1842744

책 속으로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은 구체적 삶 속에서 인간이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를 찾아간다. 다양한 현상들의 유희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지주를 발견하고, 감성으로 채색된 다양한 목소리들 속에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이성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정당화하는 철학, 그것이 바로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이다. 그것은 문제의 단서를 포착하는 예민한 감수성과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는 예술적 창조성으로 무장하고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차이의 소멸에서 현대인의 세계 이해에 관한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가짜의 대량 출현으로 말미암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작품이 현재 있는 장소와 시간이 복제기술의 발전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의 일회성과 유일성이 상실된다 예술작품을 진짜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시간적 일회성과 공간적 유일성이다.

모나리자가 하나밖에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어제 보고 또 오늘 볼 수 있으며, 파리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지금 이곳 대구에서도 볼 수 있겠는가? 모든 복제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지던 시절에는 원본이 위조된 모든 모사품에 대해 전적인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복제가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븐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사진기술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들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다. 재생 수단이 목판에서 활자를 거쳐 영상으로 옮겨오면서 우리는 사물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예술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08

니체는 현대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믿음의 노예가 된 반문화적 사회라고 질타한다. 또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사회가 '철저하게 노예적으로 행동하면서도 '노예'라는 말을 두려워할 정도로 기피하는 사회'라고 꼬집는다. 현대인은 인권이니 또는 인권 존엄이니 하는 추상적인 권리를 가지고 실제의 노예 상태를 위장하는 자기 기만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니체는 서양의 합리주의와 민주주의는 같은 토대 위에서 동일한 필연성을 가지고 발전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합리주의가 개별적이고 현실적인 것의 차이를 무시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논리를 토대로 하듯이,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평등화'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논리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것은 없다'고 니체는 단언한다.

--- p.131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저자가 디지털시대 철학의 새 좌표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현대사회의 세 가지 철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우리 삶 전반에 일어난 급격한 지각변동 핵심은 디지털이다. 이진우 교수는 디지털로 야기된 사회문화적 지각변동을 철학, 또는 인문학의 영역에서 문제의 핵심을 사유하고 있다.

그는 먼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학계뿐만 아니라 철학 분야의 지형도까지 바꿔놓고 있는 상황으로 진단한다. 철학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은 이념적 중심의 해체와 다양한 문제들의 표출로 서술한다. 이전의 철학이 보편적 이념과 사상을 연구했다면, 오늘의 철학은 급격한 사회변동이 빚어낸 문제들의 의미를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지각변동의 특징은 중심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의 '중심'이 없다는 것이 현대의 철학적 '문제'이기에 지금의 철학적 조류는 대개 다양한 문제들의 지형도를 그림으로써 사회문화적 지각변동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 이를 철학의 과제로 제출한다. 그는 다음의 세 가지 지각변동의 방향에 따라 철학적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정보화'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의미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인터넷(Inter-net)은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망'(net)을 가능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미 있는 구체적 관계의 '사이'(inter)를 파괴한다. 인터넷은 인간상호간의 관계를 넘어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까지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가상현실, 미디어,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이런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다.

변화의 방향을 올바르게 감지하고 시대적 특성을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화시대라는 개념의 의미를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 정보화시대는 글자 그대로 정보기술의 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은 어떤 점에서 점진적이지 않고 혁명적인가? 정보화시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은 왜 계몽주의적 현대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될 수 없는가? 정보화 시대가 창출하는 삶과 인간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아마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신뢰'가 고대를 상징하고, '통제'가 계몽주의적 현대를 대변하였다면, '불안'은 후기산업사회의 탈현대적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시대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려오는 정보의 양에 불안해하고, 동시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통제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불안해한다. 아직도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지적인 촉수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인간의 복지를 실현할 것이라 믿어왔던 지식이 이제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지식에 의한 불안?' 그렇다. 많이 알면 알수록 안정되었던 시대가 현대라고 한다면, '많이 알면 알수록 불안해지는 시대'가 바로 정보화 시대이다. 베이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대에서 안다는 것은 곧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정보지식은 구원인가, 굴레인가〉 중에서, 본문 53쪽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인간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는 기술적 현대인들이 외부적 환경만을 지배하고 식민지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육체를 식민지화하고, 이제 막 의식과 무의식에까지 지배의 손을 뻗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역설을 확인한다. 현대인은 물질에 대해 정신을 절대화하였지만, 이러한 정신의 절대화는 정신마저 물질화 함으로써 결국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디지털 정보시대에도 '인간의 문제'가 여전히 하나의 물음표로 남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역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치 정신과 의식을 순수하게 고양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오히려 정신과 의식의 물질화를 발견하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시대의 인문학에 주어진 과제이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의미'를 규명하는 성찰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컴퓨터와 사이보그의 출현을 인간의 종말로 해석하는 극단적 기술비관주의에 빠질 필요도 없으며,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자유공간이 무한히 발전할 것이라는 천박한 기술낙관주의에 직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멀티미디어시대의 정신과 육체〉 중에서, 본문 64∼68쪽.

둘째, '생명공학'은 환경오염 및 생태계의 파괴와 함께 시작된 생명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심화시킨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그 지배영역을 외면적 자연으로부터 내면적 생명에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 생태학적 문제가 윤리의 대상을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자연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듯이 유전자조작 및 생명복제 기술은 '생명'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는 환경윤리, 의료윤리, 생명사상의 밑바탕에는 인간실존의 의미에 대한 불확실성이 짙게 깔려 있다.

우리가 인간의 실존 자체를 기술의 진보라는 도박의 담보로 잡힐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 수 있으며, 또 어떤 기술이 인간의 실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 실존의 두 번째 전제조건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윤리이다.

기술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라면, 윤리는 인간 자신에 대한 통제이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발전시킬 수밖에 없는 기술이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바로 환경 윤리이다. 기술과 윤리가 인간 실존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듯이, 환경 윤리의 이면은 바로 기술 윤리이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연을 주목하라〉 중에서, 본문 100쪽.

셋째, '세계화'는 세계를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변화시킨 후기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대항할 수 있는 이념적 대안을 모색하도록 한다. 세계화는 국가와 민족간의 장벽을 낮추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빈부의 격차, 남북갈등, 문명의 충돌과 같은 부작용을 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논리만이 지배하는 '세계시장'의 문제점을 이성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세계 시민 사회'가 요구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세계 시민 사회가 궁극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생의 이념을 추구한다면, 문화다원주의는 앞으로 경제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도 깊이 성찰될 것이다.

문명화과정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통제가 외부에서 내면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전개되던 투쟁은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간다. …… 우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권력이 덜 강제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문명의 압박에서 오는 심리적 과부하와 정신적 불안,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개인의 행위를 획일화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 이것이 야만을 극복했다고 착각하는 20세기 문명이 만들어놓은 야만이다. 〈문명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본문 50쪽.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은 디지털시대 철학, 더 나아가 인문학이 어떻게 시대와 호흡하고 대화해야 하는가를 제기한 단행본이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디지털시대의 학문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 영역은 인문학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시대가 변한 것처럼 철학도 변하고 있다. '철학의 오늘'이 위기라는 딱지를 떨쳐버리려면, 철학은 항상 '오늘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 나는 코앞에 있고 발 밑에 놓여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웃이 오늘날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개념적으로 해명함으로써, 나는 오랫동안 철학과 현실을 갈라놓았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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