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새로 쓰는 원균 이야기
개정증보판
원종섭
북랩 2022.05.31.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서문(序文) 4

임진왜란 전야 그리고 임진, 정유 해전(海戰)의 이해 16
- 전쟁 전야 조선에 무슨 일이… 19
- 임진왜란 해전과 전공(戰功) 분석 23
- 임진왜란, 정유재란 중요 해전 목록 27

제1부 『징비록』에서 시작된 원균 죽이기와 이순신 영웅 만들기

1. 『징비록』 속 수군 관련 내용 34
- 강화(講和) 편의 유성룡 34
- 『징비록』의 사실 확인 문제 35
- 거제도 승전 기록 36
- 지나친 이순신 치장 39
- 이순신의 하옥 41
- 칠천량 패전 43
- 이순신의 최후 –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50
- 4편의 추가 기사 54

2. 신립(申砬)이나 이일(李鎰) 등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56
- 신립(申砬)에 대하여 56
- 이일 등에 관한 평가 60

3. 『징비록』을 쓰는 유성룡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66

4. 유성룡과 『징비록』 평가의 일면 73

제2부 영웅 원균(元均)의 진실

1. 원균과 이순신에 관련하여 간과된 사실 82

2. 두 사람의 가정과 성장 과정 86

3. 옥포 해전과 몰래 올린 단독 장계 89
- 옥포 해전 89
- 이순신 혼자 올린 승전 장계(狀啓) 91

4. 칠천량 패전과 원균의 전사(戰死) 97
- 전황(戰況) 97
- 벌집 같은 왜성(倭城)을 뚫고 106
- 너무나 의아하고 왜곡된 원균의 마지막 모습 113
- 허균(許筠)이 남긴 시(詩) - 바로 백성의 마음 120

5. 회한에 빠진 조선 조정 124

6. 원균은 전쟁을 피하지도, 이순신을 시기 · 모함하지도 않았다 129
- 영웅 만들기에 악역이 필요했나? 129
- 원균은 겁쟁이인가? 131
- 시기와 전공을 가로챈 것은 원균이 아니라 이순신이 아닌가? 138
- 이순신이 파직, 하옥된 진짜 이유 141

제3부 이순신 영웅 만들기

1. 역사를 왜곡한 기록들 146
- 당시 조정의 상황과 당파 싸움 148
- 『징비록(懲毖錄)』 150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155
- 『난중일기』 160
-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 162
*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165

2. 이순신 영웅 만들기에 집착하는 사람들 166
- 유성룡 167
- 이식(李植)이 역사를 왜곡해야 했던 사유 168
- 영, 정조 시대 171
- 건국 초기 이승만 대통령 174
- 이순신에 열광하는 박정희 대통령 174

3. 의도적인 훼손이 의심되는 기록 177

4. 역사에서 사라진 두 해전 182
- 원균이 홀로 지킨 경상도 바다 182
- 이순신의 부산 앞바다 패전 187

제4부 경상우수영과 한산도 가는 길

1. 훼손되고 숨겨진 우수영으로 가는 길 192
2. 경상우수영 지(址) 오아포(烏兒浦) 198
3. 방치된 7진 성곽과 5개 왜성 터 203
4. 강화 회담 중 허송세월한 조정과 이순신이 자신도 죽이고 칠천량 패전도… 212
5. 전쟁이 없었던 통제영(統制營) 218
6. 한산 대첩은 원균의 견내량 대첩 225

제5부 글을 마무리하며

1. 임진 해전의 진정한 영웅 원균(元均) 234
2. 원균 바로보기, 올바른 역사적 평가 252
3. 이순신이 원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정묘·병자호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262

특집 지면: 개전 초 이순신은 왜 원균의 참전 요청을 다섯 번이나 거부했을까? 264

부록
1. 임진왜란, 정유재란 연표(年表) 272
2. 임금이 원균(元均)에게 내린 선무 일등공신 교지 274
3. 치제문 278
4. 원균 행장(行狀) 280

참고문헌 295

저자 소개 1

해방되던 해에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삼성에 공채로 입사하여 CEO를 거친 전문 경영자였으니 글 쓰는 일이나 역사,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업에서 물러나 성균관 대학에서 유학을 공부하고 중소기업과 농촌에 가 농민들과 함께 농협 사업을 했다. 고향 신문에 논설과 칼럼을 쓰기도 했으며 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우리 원주 원가(原州 元家)는 어려서부터 원균의 악평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받고 그 트라우마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금도 임진왜란 이야기나 이순신 관련 보도나 드라마, 책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혈압이 오른다. 원균에 대한 이
해방되던 해에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삼성에 공채로 입사하여 CEO를 거친 전문 경영자였으니 글 쓰는 일이나 역사,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업에서 물러나 성균관 대학에서 유학을 공부하고 중소기업과 농촌에 가 농민들과 함께 농협 사업을 했다. 고향 신문에 논설과 칼럼을 쓰기도 했으며 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우리 원주 원가(原州 元家)는 어려서부터 원균의 악평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받고 그 트라우마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금도 임진왜란 이야기나 이순신 관련 보도나 드라마, 책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혈압이 오른다. 원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나온다면 얼마나 험담을 할까 하며….

은퇴 이후에는 시간을 내어 여러 자료와 서적 등을 뒤지며 공부하게 되었고 임진왜란 관련 장소와 원균 장군의 흔적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동안 잘못 평가된 원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로잡고 정확한 논점과 사실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저서로는 『해암잡기』와 『알기 쉽게 정리한 우리 조상 이야기』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42g | 152*225*20mm
ISBN13
9791168363434

책 속으로

원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9년 전(1583년)에 이미 거제 현령을 지낸 바 있다. 임진 해전의 중요한 승전 요인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다도해의 복잡한 지리와 물길과 물때를 잘 활용한 것이라 볼 때 이미 현령을 지낸 원균에게는 전쟁터가 손바닥 보듯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는 이순신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왜적을 찾아내 닥치는 대로 무찔렀다. 당파작전으로 격파하고 화포로 불태워 적선 10척을 불태웠다고 이순신의 『임진장초』와 『선조실록』에도 남아 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도 “경상우수사 원균이 적을 많이 잡았으니 승리의 함성을 크게 떨치었다.”고 쓰고 있으며, 개전 초 원균이 세평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싸워 제해권을 어느 정도 장악한 것을 말해주는 것은 선조가 그해 4월 27일, 선전관 조명(趙銘)을 통해 보낸 이순신의 참전독촉 유서(諭書)인 명흥원균합세 공적유서(命興元均合勢 功賊諭書)를 보면 입증이 된다.
“원균의 장계를 보니 여러 포구의 수군을 거느리고 나가 형세를 뽐내어 적을 격멸할 계획이니 그대는 원균과 합세하여 적을 평정하라.”

이 장계의 내용에서 보면 이미 원균은 개전 초에서부터 상당한 전과와 자신을 가지고 적을 격멸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해상 장악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어서 벌어지는 옥포 해전 등 연이은 해전에서 모든 계획이나 전투 장악도 원균의 경상우수영이 쥐고 수행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징비록』이나 그 후 많은 기록들은 임진 해전의 승리가 모두 이순신 개인의 공인 양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최초의 임진 해전으로 전해지는 옥포 해전에서도 원균의 활약은 눈부시다.
옥포 전양(前洋)에서 왜적을 발견한 원균은 선봉에 서서 적의 장선(將船)이 있는 중앙을 향하여 북을 높이 울리며 돌진해 나간다. 그는 옥포 만호 이운용과 영등포 만호 우치적을 앞세우고 지금까지 초기 해전의 경험으로 당파작전으로 적을 닥치는 대로 깨트려 버렸다. 중앙이 무너지자 적장이 탄 배를 노획하고, 적장 하시바 지쿠젠노가미(羽柴筑前守)의 목을 베고 금부채, 금병풍 등 노획물까지 거두어 원균은 대승을 이끈다.

임진왜란을 통틀어 몇 번의 해전(海戰)이 있었는지도 정확지가 않다. 글을 쓰는 자에 따라서 그 목적에 맞추어 늘이기도, 줄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난중일기』에도 없는 해전이 덕수 이씨의 영웅전 『선조수정실록』에는 임진 해전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순신의 맹신도들이 글을 쓰면 일본군이 도주해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것도 해전으로 기록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여하튼 원균은 선조 27년(1594년) 11월에 충청병마사로 전임하기까지 이순신과 대부분의 해전을 함께 치르며 왜적을 물리치고 남해를 지켜낸다. 이 모든 전투가 원균의 관할인 경상도 바다에서 이루어졌고, 거제도 서쪽으로 왜의 수군은 한 발도 나가지를 못하였다.

원균은 늘 그랬듯이 자신이 지키는 바다라는 책임감과 무인의 천성으로 늘 앞장서서 돌격하고 선등하여 왜의 수군을 깨부수었다. 이런 원균이 있는 전쟁터에는 훗날 7대와 10대 통제사를 역임한 이운용과 우치적이 좌우에 늘 함께 있었다.

임진 해전의 최대 승전이라는 한산대첩을 살펴보면, 왜의 수군을 물살이 빠른 견내량을 통하여 넓은 바다로 끌어내 학익진을 펼칠 수 있게 유인한 것이 바로 원균이 이운용과 우치적을 이끌고 선봉에서 유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식(李植), 『선조수정실록』으로 이순신을 영웅으로 치장하고 원균을 악장으로 만든 그 이식이 원균 휘하의 용장이었던 이운용의 비문(碑文)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 한산대첩에서 원균의 공을 설명하고 있다.

“7월에 적선 수백 척이 견내량을 건너려 했다. 그 병세(兵勢)가 아주 강했다. 공은 다른 장수에게 묘책을 주어서 거짓으로 달아나는 체하면서 적선들을 외양으로 끌어내었다. 적이 외양에 나오자 급히 뱃머리를 돌려 사방에서 들이치니, 포화는 바다를 진동하고 급기야 적선은 거의 모두 분멸되었다.”
물론 비문에서도 원균이 철저히 배제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공을 가릴 수는 없다. 경상우수영의 장령들이 선봉에 없었다면 과연 임진 해전의 위대한 승리가 가능했을까?

--- p.237~239

리뷰/한줄평1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2.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3,500
1 1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