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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의 그림자
광란의 사회학을 위하여 양장
삼인 201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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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서문

제1장 비생산적 삶
제2장 사회적 신성
제3장 우주의 결합
제4장 광란, 사교성의 인자
제5장 결합자 바쿠스
제6장 대수롭지 않은 혼돈

서곡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1

미셸 마페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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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Maffesoli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 1944~). 질베르 뒤랑과 줄리앙 프로인트의 제자인 마페졸리는 현재 파리5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현대사회에서의 공동체적 사회관계, 상상계, 일상생활 등에 관해 연구해오고 있다. 게오르크 짐멜, 알프레드 쉬츠, 장-마리 기요 등을 자신의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는 그는 현상학적 사회학, 이해사회학의 발전을 계속해서 자극해왔다. 1982년부터 파리5대학 내의 CEAQ 연구소를 이끌면서 여러 고전적인 학자를 소개하는 한편, 젊은 연구자들이 신선하고 다양한 주제에 관해 연구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막스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 1944~). 질베르 뒤랑과 줄리앙 프로인트의 제자인 마페졸리는 현재 파리5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현대사회에서의 공동체적 사회관계, 상상계, 일상생활 등에 관해 연구해오고 있다. 게오르크 짐멜, 알프레드 쉬츠, 장-마리 기요 등을 자신의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는 그는 현상학적 사회학, 이해사회학의 발전을 계속해서 자극해왔다. 1982년부터 파리5대학 내의 CEAQ 연구소를 이끌면서 여러 고전적인 학자를 소개하는 한편, 젊은 연구자들이 신선하고 다양한 주제에 관해 연구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막스 셸러, 벤야민, 크라카우어, 바타유 등을 중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자연과 문화, 미학적 공동체, 사회적 에로티시즘 등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전체주의적 폭력』(1979), 『현재의 정복.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위하여』(1979), 『디오니소스의 그림자. 축제의 사회학을 위하여』(1982), 『일상적 지식. 이해사회학 개요』(1985), 『부족의 시대. 대중 사회에서의 개인주의의 몰락』(1988), 『외양의 공동(空洞)에서. 미학의 윤리를 위하여』(1990), 『감성적 이성 예찬』(1996), 『노마디즘』(1997), 『영원한 순간. 포스트모던 사회로의 비극의 귀환』(2000), 『삶의 리듬. 포스트모던 감성에 대한 변주』(2004), 『세계의 재신비화. 우리 시대의 윤리』(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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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훈
마페졸리 교수의 지도로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한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과 한국언론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디지털기술과 문화산업』, 『디지털시대의 방송정책』, 『한국인의 일상문화』(공저), 『일상 속의 한국문화』(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현대를 생각한다』(공역) 등이 있다. 논문으로 「일상성 연구와 인식론적 대안을 위하여」, 「발터 벤야민의 미학: 일상성과의 인식론적 교감에 관한 소고」, 「신자유주의시대의 방송정책: 한국과 프랑스의 미디어법을 중심으로」,「신자유주의와 공공영역의 변화」, “Du pouvoir de reseaux au plaisir de la creation de contenus”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0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544g | 153*224*20mm
ISBN13
9788964360682

책 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한 번 사용해 보자. 즉 마치 개인주의가 기진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것 역시 ‘아주 피곤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가정에서 출발한다.(제1장)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개인과 사회적 개인에 대한 강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가장 본원적인 것, 좀 더 보편적으로 말해서 ‘함께 하는 존재’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뒤몽(Louis Dumont)은 사회학의 고유한 특성은 ‘전체론(holisme)’이라고 지적한 바 가 있다. 그러므로 이 ‘전체’를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뒤르켐(Emile Durkheim)이 사용한 용어를 역으로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계적 유대(19세기 말에 절정에 달한)가 표현되고 있는 장소인 사회적인 것을 뛰어넘어서 우리는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우주와의 관계, 타인과 맺어지는 관계와 일치하는 유기적 연대에 연결된 사교성(socialite)을 주시하고자 한다.--- p.16 「서문」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육체, 즉 생산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육체가 관능적인 육체에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해방이라는 전통적인 도식 속에서 일어나는 폭동일까? 우리는 오히려 모든 사회적 구조화 속에서 은밀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보고 있으며, 그 힘은 종종 어느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높은 파도처럼 우리가 저항할 수 없도록 덮쳐 버린다. 자, 이것이 바로 야심에 찬 계획이다. 즉 민중의 ‘소비(depense)’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독하고 거만한 아방가르드, 예술가, 천재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 사회적 몸체의 총체성 속에서 모세 혈관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현재를 즐김(le carpe diem)은 거대한 대중적 가치가 되고 거역할 수 없는 것이 된다.--- p.44 「제1장 비생산적인 삶」

일단의 과격한 행위나 특수한 형태의 퇴폐 속에 전체성에 이르려는, 그리고 거기에 통합되려는 배려가 존재한다. 사드의 모든 방식은 그러한 것을 증명해 준다. 동성애 역시 확실하게 유형화된 성을 넘어서는 한 방식이다. 종종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동성애는 행위들을 뒤엎으면서 정상적 상태의 행위들을 재생산해 낸다. 때로는 동성애가 좀 더 미묘하게 비웃음을 자아내며, 그렇게 함으로서 속물적인 도덕성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소돔의 120일” 동안 셀링의 성에서 거행된 결혼식, 혹은 거세된 가수 소포로스(Soporos)와의 연애와 결혼 같은 것은 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이 이끌어 내는 광란은 규범에 대한 파격이 죽음과 삶을 역동적인 전체성으로 만들어 주는 우주적 환희의 징후임을 잘 보여 준다. 단지 인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계를 넘어설 때, 우리는 각 개인을 축소된 우주로, 즉 소유하고 이용하고 남용하는 소우주로 만들면서 인류학적인 한계에 도달하고 또한 경험하는 것이다.--- p.109 「제3장 우주의 결합」

이러한 집단적 흥분의 순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이끌어 내는 분열이다. 질서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든 항상 유일한 것, 하나의 가치, 하나의 중심 극을 기초로 작용하고 있음에 비해, 무질서의 분출은 서로 연결된 중추적인 축, 다차원적인 것, 가치들의 다원성으로 이어진다. 고삐 풀린 열정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회 구조화 속에 은폐되어 있는 요소들에 호소하기 때문에 통제하기에는 힘이 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열정은 파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겉으로 드러난 무질서는 추상적인 단일 가치에 대해 건축적 구조, 유기적인 위계, 구체적인 기능을 대립시키기 때문에 강한 생식력을 갖는다. 의례가 그 같은 모습을 가장 명쾌하게 보여 주는 표현이 될 것이다. 사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제어되지 않은 의례의 표현 속에서라도 가치가 역전된 모습은 완벽하게 체계화되어 있다. 비록 그것이 기존의 질서에 비하여 덜 명시적이고 혹은 완전히 비논리적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나름대로 지켜야 할 규칙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 p.173 「제4장 광란, 사교성의 인자」

출판사 리뷰

시대의 지배자 프로메테우스에 대항하는 디오니소스의 그림자

미셸 마페졸리는 그간 여러 저서를 통해 포스트모더니티를 잘 특징짓는 것은 윤리와 미학 간의 연결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공유되는 감정, 혹은 집합적 감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회적 연결(에토스)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인식론적 의미에서 광란은 바로 이러한 에토스이다. 따라서 마페졸리는 광란성 속에서 아방가르드나 예술적 방랑자 같은 몇몇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떤 사소함을 보고자 하기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재등장하고 있는 사회적 삶의 본질적 요인들을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지적 전통 속에 각인되어 온 것이다. 그 전통은 초현실주의자들은 물론 조르주 바타유나 미셸 푸코, 장 보드리야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경험과 열정, 그리고 공통적인 감정을 통합하는 전체적이며 총체적인 시각이다. 마페졸리는 여기서 폭넓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직시한다. 즉, 세상을 지배하고 변화시키려는 프로메테우스적인 태도를 버리고 ‘명상’을 통해 세상에 스스로 동화하려는 것이다. 미학의 유행이나 생태적 시각, 정치적인 은둔, 육체에 대한 숭배 등은 모두 이 같은 명상이 지속적으로 부침을 거듭하는 과정이다.
“광란성”이 어떤 이들에게는 문명사회에서 점진적으로 없어진 야만스러운 착오와 관계된 문제라고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소설이나 시적 허구 속에서나 용인될 수 있는 환상적 몽상일 수도 있다. 광란성에 어떤 사회적 효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마페졸리는 “광란성” 속에서 모든 사교성의 본질적인 구조 중 하나를 찾아냄으로써 광란성의 효율성에 관해 역설하고 사회적 몸체에는 언제나 생명을 부여하는 정념의 논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 전체를 통해 제기하는 질문은, ‘성실한 프로메테우스가 천하고 상스러운 디오니소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적 광란으로 표출되는 민중의 힘

미셸 마페졸리의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또 다른, 그러나 타당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마페졸리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서도 디오니소스적인 집단적 광란, 성적 방탕, 폭력성, 탐닉, 비도덕주의가 만들어 내는 ‘미쳐 돌아가는’ 부분이 항상 존재했고, 또 새롭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산성과 효율성, 유일신 숭배가 지배하는 역사적 시대와 비교해서 그는 “시적이며 에로틱한 시대, 사랑하는 육체의 시대, 그리고 그 주위로 사교성이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숨겨져 있고 부수적인 시대가 존재한다”라고 지적하고 이 과정을 은밀한 중심성(centralite souterraine)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동시에 일상에서 겉으로 순간순간 드러나는 힘이고 움직임이며 함께하는 힘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나 집합적으로나 그림자의 부분과 “어두운 순간”은 광란성 속에서 받아들여진다. 이성의 옆에 광기가 자리 잡고 있으며, 논리적인 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과 연결되면서 총체적인 균형이 강화된다.
인간이 “그 자신을 넘어서서 흥분한다”는 사실은 집단의 “삶의 수준”을 강화하며, 그것은 거의 의도적으로 집단적 방탕 생활 속에서 작용한다. 따라서 이 방탕한 생활을 구성하고 준비하는 모든 행위나 미세한 상황은 우리가 더는 그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는, 사회의 상상적인 것의 구조적 요소들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살고자 하는 욕구는 종종 아노미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행위와 태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마페졸리는 살고 싶어 하는 존재 속에서 비도덕주의의 역동성을 읽어 낸다. 이 역동성은 도덕이 아닌 윤리의 모습이다. 이 윤리는 당위, 즉 ‘어떻게 해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 같은 것이 만들어 내는 딱딱하고, 생기 없고, 고착화되는 강제적 유형의 모든 것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을 결정화하고 있고 이 사회에 내재하는 것이 바로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성이라고 본다. 이러한 광란성 속에서 마페졸리는 분위기, 공통적 감정의 격렬함, 잉여, 넘쳐남의 필요성(과잉의 필요성)이 지배하는 감정의 문화가 분출되는 것에 주목하면서, 바로 이 감정의 문화를 통해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인 것의 변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많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전국을 뒤덮은 붉은악마 응원이나, 이제는 길거리 투쟁의 한 문화로 자리 잡은 촛불 시위는 우리가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겪은 혁명이나 민주화 투쟁과는 또 다른 형태의 상징적 행위다. 예전에는 인권, 자유, 민주화라는 숭고하고 엄숙한 목표가 있었다면, 촛불 시위, 붉은악마 응원은 종종 과도하고 격렬하게 분출됨으로써 감정의 문화가 어떻게 정치와 결합될 수 있고 새로운 정치의 모습으로 나타날 지를 잘 보여 주는 예다. 누가 주도하지도 않고 누구의 통제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감시, 통제, 억압은 또 다른 폭발을 야기한다. 이것이 민중적 일상의 힘이다. 이제 ‘통치’, ‘지배’와 관련된 모든 권력과 권력 관계는 사라져야 할 시기가 왔다. 그것은 우리 사회 민중의 힘이며, 기존의 정치 권력, 정당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힘이다. 일반인들, ‘특질 없는 사람들’의 ‘들끓음’(뒤르켐), 폭발, 즉 디오니소스적 광란이야말로 일상의 유토피아에 인해 일어나고, 또 일상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 그것이 “조직 틈새의 자유 찾기”가 되었건, 혹은 “사회적 호흡”이 되었건, 이 폭발은 결국 조직의 결합과 파열의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타락해 가는 세계의 결과로서 어떠한 역사적 시기에 지배적이었던 가치가 소멸하고, 또 소멸한 가치가 다시 지배적인 것이 되는 자리바꿈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일련의 가치가 지닌 효력이 목까지 차오르고 피로해졌을 시기에 다른 역동적인 법칙에 자리를 내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마페졸리가 이 책의 결론을 “서곡”이라 이름 붙인 것은 그 때문이다. 종언이라는 것은 없다. 언제나 결과는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의 서곡이 된다. 로마 제국의 문화가 정점에 달해 팍스 로마나를 외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로마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많은 예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즉 마페졸리는 이 책에서 역사는 나선적이며, 합리적 추상화가 승리하는 추세에 있을 때 그래서 한 사회가 어떤 이들의 소유물이 됐을 때 우리는 그 사회의 폭발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현상 분석을 통해 보여 주었다. 상상을 해 보자. 스프링이 압력을 받아 최대한으로 수축되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 오르는 모습을. 그것은 순환하는 역사의 모습이며, 바로 생명력으로 충만한 “삶의 도약”(베르그송)의 원형적 과정이다. 지금 이 시대의 지배자 프로메테우스에 맞서 대항하는 디오니소스의 등 뒤로 넓게 퍼져 나가고 있는 그림자는 이제 ‘전복’의 징조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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