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한용운 작품집
님의 침묵 (외)
종합출판범우 2022.06.10.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책소개

목차

발간사 · 3
일러두기 · 7

님의 침묵 ― 11
군말 | 님의 침묵 | 이별은 미의 창조 | 알 수 없어요 | 나는 잊고자 | 가지 마셔요 | 고적한 밤 | 나의 길 | 꿈 깨고서 | 예술가 | 이별 | 길이 막혀 | 자유 정조 | 하나가 되어 주셔요 | 나룻배와 행인 | 차라리 | 나의 노래 | 당신이 아니더면 | 잠 없는 꿈 | 생명 | 사랑의 측량 | 진주 | 슬픔의 삼매 | 의심하지 마셔요 | 당신은 | 행복 | 착인 | 밤은 고요하고 | 비밀 | 사랑의 존재 | 꿈과 근심 | 포도주 | 비방 | 「?」 | 님의 손길 | 해당화 | 당신을 보았습니다 | 비 | 복종 | 참아주셔요 | 어느 것이 참이냐 | 정천한해 | 첫 키스 | 선사의 설법 | 그를 보내며 | 금강산 | 님의 얼굴 | 심은 버들 |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 참말인가요 | 꽃이 먼저 알아 | 찬송 |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 후회 | 사랑하는 까닭 | 당신의 편지 | 거짓 이별 | 꿈이라면 | 달을 보며 | 인과율 | 잠꼬대 | 계월향에게 | 만족 | 반비례 | 눈물 | 어디라도 | 떠날 때의 님의 얼굴 | 최초의 님 | 두견새 | 나의 꿈 | 우는 때 | 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 | 수의 비밀 | 사랑의 불 | ‘사랑’을 사랑하여요 | 버리지 아니하면 | 당신 가신 때 | 술 | 당신의 마음 | 여름밤이 길어요 | 명상 | 칠석 | 생의 예술 | 꽃싸움 | 거문고 탈 때 | 오셔요 | 쾌락 | 고대 | 사랑의 끝판 | 독자에게

그 밖의 만해 시편들 ― 115
심 | 산거 | 산골물 | 비바람 | 강배 | 산촌의 여름저녁 | 해촌의 석양 | 반월과소녀 | 모순 | 천일 | 일출 | 낙화 | 일경초 | 성탄 | 세모 | 쥐 | 파리 | 모기 | 달님 | 농의 소조 | 산너머 언니

만해 시조들 ― 139
심우장 | 남아 | 무궁화 심고자 | 우리 님 | 사랑 | 선경 | 선우에게 | 직업부인 | 표아 | 조춘 | 춘조 | 춘주 | 추야몽 | 추야단 | 추화 | 코스모스 | 한강에서 | 계어 | 성공 | 무제

만해 힌시 ― 155
추운 계절에 옷이 없어(歲寒衣不到戱作) | 활짝 갬(新晴) | 차가운 비가 내리는 세모에(暮歲寒雨有感) | 행자(雲水) | 홀로 읊다(獨吟) | 맑고 찬 추위(?寒) | 나그네 회포(旅壞) | 즐거움(自樂) | 홀로 거닐며(孤遊) | 병들어 시름하며(病愁) | 뜻 맞는 벗과 함께(與映湖和尙訪乳雲和尙乘夜同歸) | 영호화상의 시에 부쳐(次映湖和尙) | 병든 벗을 생각하며(乳雲和尙病臥甚又添鄕愁) | 고향 생각(思鄕) | 백화암을 찾아서(訪白華庵) | 고기잡이의 뱃노래(巴陵漁父棹歌) | 송청암에게(贈宋淸巖) | 학명 선사에게(養眞庵臨發贈鶴鳴禪伯) | 양진암 풍경(養眞庵) | 이별의 시(贈別) | 어느 학생에게(寄學生) | 비온 뒤의 범어사(梵魚寺雨後述懷) | 병을 앓고 나서(仙巖寺病後作) | 어느 일본 절의 추억(曹洞宗大學校別院) | 옛 뜻(古意) | 매미 소리를 듣고(東京旅館聽蟬) | 가을 비(秋雨) | 가을 새벽(秋曉) | 향로암(香爐庵卽事) | 다듬이 소리(砧聲) | 높은 데 올라서(登高) | 달밤(玩月) | 달을 보며(見月) | 달이 돋으려 할 때(月欲生) | 달이 처음 뜰 때(月初生) | 달이 중천에 떠오르니(月方中) | 달은 이울고(月欲落) | 등불그림자(詠燈影) | 병상에서(病監後園) | 기러기(詠雁) | 벚꽃(見櫻花有感) | 빗속에 홀로 읊조리다(雨中獨吟) | 회포를 읊음(懷吟) | 영산포의 배 안에서(榮山浦舟中) | 구암폭포(龜巖瀑) | 매화 예찬(又古人梅題下不作五古余有好奇心試吟) | 한가함을 읊음(吟閑) | 한가한 노래(閑吟) | 번민(自悶) | 새벽(曉日) | 새벽 경치(曉景) | 청정한 노래(淸吟) | 눈 내린 새벽(雪曉) | 동지(冬至) | 본 대로 느낀 대로·1(卽事) | 본 대로 느낀 대로·2(卽事) | 본 대로 느낀 대로·3(卽事) | 본 대로 느낀 대로·4(卽事) | 본 대로 느낀 대로·5(卽事) | 무제·1(無題) | 무제·2(無題) | 홀로 있는 밤(獨夜 二首) | 구곡령을 지나며(過九曲嶺) | 규방의 한(春閨怨) | 한가히 노닐며(閒遊) | 나비(胡蝶) | 매화 꽃잎(觀落梅花有感) | 봄꿈(春夢) | 번민을 풀다(遺悶) | 산골집 흥취(山家逸興) | 개인 날(吟晴) | 산의 대낮(山晝) | 구암사의 초가을(龜岩寺初秋) | 가을 밤비(秋夜雨) | 회포(述懷) | 선방 뒤뜰에 올라(登禪房後園) | 9월 9일(重陽) | 들길을 걸으며(野行) | 가을 밤에 빗소리를 듣고(秋夜聽雨有感) | 한강(漢江) | 피리 소리 흐르는데(漁笛) | 먼 생각(遠思) | 창가를 스치는 비바람(獨窓風雨) | 시 쓰는 버릇 쓴웃음 짓다(自笑詩癖) | 옛뜻(古意) | 산가의 새벽(山家曉月) | 눈꽃(內院庵有牧丹樹古枝受雪如花因吟) | 문틈 사이로 본 세월(備風雪閉內外戶窓黑看書戱作) | 홀로 앉아(獨坐) | 눈 오는 밤 그림을 보고(雪夜看畵宥感) | 눈 그친 후에(雪夜漫吟) | 추운 적막(寒寂) | 의심이 씻은 듯 풀리다(悟道頌) | 피란 길(避亂途中滯雨有感) | 옥중의 감회(獄中感懷) | 출정 군인 아내의 한(征婦怨) | 가을 느낌(秋懷) | 눈 오는 밤(雪夜) | 앵무새만도 못한 몸(一日與隣房通話爲看守竊聽雙手被輕縛二分間卽吟) | 안중근 의사를 기림(安海州) | 매천 황현을 기림(黃梅泉) | 맑은 새벽(晴曉) | 영호 화상(贈映湖和尙述未嘗見) | 오세암에서 쓰는 편지(自京歸五歲庵贈朴漢永) | 도반을 기리는 노래·1(京城逢映湖錦峰兩伯同吟) | 도반을 기리는 노래·2(與映湖乳雲兩伯夜吟) | 도반을 기리는 노래·3(釋王寺逢映湖乳雲兩和尙作) | 도반을 기리는 노래·4(與映湖錦峰兩伯作―在宗務院) | 금봉 선사(與錦峰伯夜吟) | 옛 벗에게 주는 글(贈古友禪話) | 완호 학사와 헤어지며(別玩豪學士) | 선비의 죽음을 조상함(代萬化和尙挽林鄕長) | 구암사에서 본 풍경(龜巖寺與安淸巖兄弟共吟) | 지광 선사에게 답함(和智光伯―遺以詩文故答) | 아사다 교수에게 답함(和淺田敎授―淺田斧山遺以參禪詩故以此答) | 남형우에게 주는 시(贈南亨祐) | 계초 선생 축하함(謹賀啓礎先生쓱辰) | 영호 화상의 시에 부쳐(次映湖和尙) | 매천의 시에 부쳐(留仙巖寺次梅泉韻) | 매화를 노래함(讀風雅先子用東坡韻賦梅花用其韻賦梅花) | 화엄사 산보(華嚴寺散步) | 오세암(五歲庵) | 증상사(增上寺) | 약사암 가는 길(藥師庵途中) | 양진암의 봄(養眞庵餞春) | 향로암 야경(香爐庵夜吟) | 쌍계루(雙溪樓) | 향적봉 풍경(次映湖和尙香積韻) | 고향 생각(思鄕) | 비오는 날의 고향 생각(思夜聽雨) | 고향을 생각하는 괴로움(思鄕苦) | 닛코로 가는 길(日光道中) | 닛코의 호수(日光南湖) | 미야지마의 배 안에서(宮島舟中) | 시모노세키의 배 안에서(馬關舟中) | 병든 몸(病吟) | 회갑날의 즉흥(周甲日卽興―一九三九. 七. 十二 於淸凉寺) | 신문이 폐간되다(新聞廢刊)

조선독립의 서 ― 307

만해, 《님의 침묵》을 다시 읽는다 | 김재홍 ― 323
만해 시 감상 몇 편 | 김재홍 ― 347
님의 침묵 | 알 수 없어요 | 당신을 보았습니다 | 나룻배와 행인 | 복종 | 후회 | 사랑하는 까닭 | 옥중감회 | 사랑의 끝판

해설 | 만해 문학연구 어디까지 왔나 ― 371
작가 연보 · 395
연구 논문 · 398

저자 소개2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한용운의 다른 상품

1947년 충남 천안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충북대학교, 인하대학교,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2년 경희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정년 연장 명예교수로 퇴직하였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196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인론, 작품론 등의 실제비평 및 문학사와 문학이론 연구 분야에서 독자적인 학문적 영역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현대 시인 연구 1, 2, 3』
1947년 충남 천안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충북대학교, 인하대학교,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2년 경희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정년 연장 명예교수로 퇴직하였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196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인론, 작품론 등의 실제비평 및 문학사와 문학이론 연구 분야에서 독자적인 학문적 영역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현대 시인 연구 1, 2, 3』, 『카프시인 비평』, 『한국 현대 시인 비판』, 『한국 현대시의 사적 탐구』, 『현대시와 삶의 진실』, 『생명·사랑·평등의 시학 탐구』, 『한국 현대시 시어사전』을 비롯한 40여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이외에도 국내 최장수 시전문지 계간 『시와시학』과 한국현대시박물관을 창간 및 설립, 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상임대표와 만해학술원장 등을 역임하며 시의 대중화 작업 및 인문정신의 실천적 활동을 주도했다. [제1회 녹원문학상], [제33회 현대문학상], [제1회 편운문학상], [김환태문학상], [후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문학상], [만해대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김재홍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22쪽 | 153*225*30mm
ISBN13
9788963654287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13,500
1 1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