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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사상
‘다시 붓질’ 겸애의 순간들_섬진팔경 양장
송만규
거름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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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강의 사상》을 펼치면서: 낮은 곳에서 자유를 찾는 강물

蟾津1景_붕어섬

신선이 살 것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1 붉은 땅의 고랑에 돋은 새 기운
2 ‘외앗날’의 지느러미 하나라도 소실되지 않기를…

蟾津2景_구담

구담(龜潭) 구담(九潭),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

1 섬진강에 붓을 담그다
2 지난 삶을 돌아본다

蟾津3景_장구목

섬진강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곳

1 붓을 다시 움켜쥐다
2 화풍도 달라지는구나

蟾津4景_사성암

지리산과 섬진강을 두루두루 조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곳

1 새처럼 날아올라 세상을 부감(俯瞰)하다
2 맑은 품성은 강을, 강직한 성정은 산을 닮은 사람들

蟾津5景_왕시루봉

섬진강을 가장 높은 위치에서 멀고 길게 볼 수 있다

1 밤낮 구분 없이 몇 번이고 오르내린 이유
2 오늘의 선비정신은 무어냐

蟾津6景_평사리

들녘이다! 섬진강 육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

1 목마른 넓은 들이 물 먹는 소리
2 너른 들판을 온전히 보고 싶어 발걸음이 바쁘다

蟾津7景_송림공원

천연기념물 제445호 ‘하동송림(河東松林)’

1 수목(樹木)의 군자, 소나무
2 나의 ‘세한삼우(歲寒三友)’

蟾津8景_무동산

가장 가까이에서 넓고 긴 섬진강을 보여주는 옹골찬 매력

1 새 세상이 펼쳐지는, 강가의 아침
2 강, 물의 품성을 받아, 오늘도 붓을 담근다!

추천평_
송만규의 섬진강 팔경과 겸애(兼愛) 정신_윤범모
섬진강, 경관의 경계를 넘어서_조은정

저자 소개1

1955년 전북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 이어졌다. 1993년에 <이 바닥에 입술을 대고>라는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를 계기로 붓을 잡고 창작에 집중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장장 21m, 24m 등에 이르는 긴 그림 <새벽강>, <언 강> 등을 발표하였으며 섬진강 물길을 수없이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이 건네는 메시지를 한지와 수
1955년 전북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 이어졌다.
1993년에 <이 바닥에 입술을 대고>라는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를 계기로 붓을 잡고 창작에 집중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장장 21m, 24m 등에 이르는 긴 그림 <새벽강>, <언 강> 등을 발표하였으며 섬진강 물길을 수없이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이 건네는 메시지를 한지와 수묵으로 담아냈다.
20여 차례의 국내외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물과 강, 인간과의 호흡이라는 화두로 여러 강물을 따라 사색하며 또 다른 강물에 붓을 적시고 있다.
현재는 ‘한국묵자연구회’를 맡으면서 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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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300*210*28mm
ISBN13
9788934004127

책 속으로

가을, 동트는 새벽녘의 여명을 품은 옥정호는 그야말로 승경이다. 작은 섬을 둘러싸고 시간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상상 밖의 볼거리가 펼쳐진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변화무쌍한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외앗날의 지느러미 하나라도 소실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장자(莊子)의 ‘조탁복박(彫琢復朴)’이란 말이 호수 위에 어른거린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거나 수식(修飾)하지 말고 본래의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며 참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던가.
--- 섬진1경 「붕어섬」

그날, 나는 강물이 검어질 때까지 다시 걸었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곳, 구담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구불거리는 곡선의 물줄기는 느리고 자유롭다. 그래서 섬진강이고 또한 그것들은 내 그림의 밑천이 되어 왔다.
--- 섬진2경 「구담」

새벽에 강을 찾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장구목까지 4km가량은 섬진강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곳이라고 이곳을 아는 이들이 입을 모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이 길에 잦아들수록 사람들 속에서만 활동하고 사유했던 것에 대한 변화가 일고 있다. 또한 그 속에서 받았던 상흔들이 강바람과 물결에 씻기어 나가기 시작하나 보다.
--- 섬진3경 「장구목」

사성암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에 세운 작은 규모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고찰이다. 원효, 의상, 도선, 진각국사, 이렇게 네 명의 고승이 수도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 섬진4경 「사성암」

섬진강은 혼자가 아니다.
높고 낮은 산들과 더불어 흐르고 있다. 그중 지리산이 품고 있는 남원, 구례, 하동을 싸안고 흐른다.
산이 산으로만, 물이 물로만 느껴지는 내공은 어떤 것일까. 그러나 지리산은 그냥 저버릴 수 없는 통한의 세월을 안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현대사…. 그래서 표현이 불편했을 때 이곳을 묵묵히 오르면서 그 고통의 멍에를 함께하고자 했다.
--- 섬진5경 「왕시루봉」

강은 이 넓은 들이 목마를 때마다 촉촉이 적셔 주곤 했을 것이다. 농부는 갈라진 논바닥에서 물 쭉쭉 빨아들이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았을까. 얼마나 강물에 고마워했을까.
--- 섬진6경 「평사리」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는 소나무의 고결한 절개를 선비에 비유한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 나무다. 그 앞에서 오늘의 선비정신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잠시 눈을 감아 본다.
--- 섬진7경 「송림공원」

메마른 논밭에, 강가 언덕의 억새를 적셔 주고 밭 메는 어머니의 갈증을 달래 준다. 날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아버지의 삽을 씻어 주고 흘러간다. 높은 곳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간다.
또 다른 지천(枝川)들과 함께 더 많은 곳을 적시고 강을 이룬다. 그렇게 두루두루 더트며 서두르지 않고 이른 곳 여기, 광양 무동산 아래에서 폭넓고 격조 있는 강, 강다운 강을 이루었다.

--- 섬진8경「무동산」

출판사 리뷰

출간의의

① 섬진강 8장면을 사계절 총 32개의 대형 화폭으로 그려내다
역사의 강, 호남의 젖줄인 섬진강 전체를 그려낸 최초의 대서사화라 할 만하다


섬진강 600리 길을 “언젠가, 온몸이 아리도록 매서운 꽃샘추위를 안고 섬진강 강변을 종일토록 헤맸습니다. 나의 삶, 나의 존재라는 새삼스러운 화두를 잡고 물길 따라 걸어 다녔습니다.” 작가에게는 추운 날 더운 날, 궂은 날도 없었습니다. 새벽의 강 풍경을 보려고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산을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했습니다. “강 언저리에 잠시 머무르려고 했던 것이 어느덧 25년 동안 강물에 붓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르내리며 깨닫습니다. “작고 가느다란 도랑의 물은 구담, 장구목을 지나며 이 도랑, 저 계곡에서 모여드는 물줄기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 힘차게 흐릅니다. 강물은 이곳저곳, 이 일 저 일에 구시렁거리지 않고 묵묵히 기웃거립니다. 메마른 곳, 목마른 사람은 적셔 주고, 있어야 할 곳이라면 잠시 머물다가 기꺼이 섬세하게 배려하며 낮은 곳으로 만 흐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섬진강을 부감하기 위해 오르내려야 했던 지리산, 작가는 또 다른 역사의식과 감흥을 불러내며 섬진강과 하나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저 아래로 굽이굽이 길게 늘어진 강줄기를 보러 오릅니다. 구름이나 안개가 산 아래를 가리지 않은 시간에 도착하려고 서두릅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고요하던 대기가 요동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남부 능선을 오르면 평사리 들녘이 광활하게 펼쳐집니다. 광양 무동산에도 수없이 올라봅니다.”

“계절마다 산기슭에서 산꼭대기로 오르내리며 가슴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유난히 남아 있는 여덟 곳에 집중하였습니다. 섬진팔경의 사계절이 그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 매듭을 짓고 싶었습니다.”

② 송만규 화백, 이제 그를 ‘강의 사상가’라 부르자

‘강의 사상’이라니! 작은 물 한 방울을 발견하기란 작가가 아니면 힘든 일일 것이다. 무심히 흘러가는 물줄기 속에 수많은 방울방울이 모여 있고, 다시 모여 강물이 되고 바다로 흘러들어 대해를 이루어가는 ‘물의 길’은 작가에게 지금까지의 화폭을 바꿀 만큼 큰 깨우침을 주었고, 잠시 머뭇거리던 붓이 ‘다시 붓질’을 시작하였으니 가히 개벽이라 할 것이다. ‘물의 길(水之道)’이 ‘인간의 길(人之道)’이어야 하고 ‘세상의 길(天地之道)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갔으니 그 물이란 게 참으로 가상하다.

이 책은 단순 풍경과 개인의 고통을 넘어, 현실과 시대의 과제상황으로 돌아온 내력이 ‘강의 사상’으로 체화된 작가의 깊고 따뜻한 시선이 머물렀던 곳을 통해 물을 따라 강을 따라 유유하게 구도의 발걸음이 되어간 과정이다. 독자는 ‘스스로 그러한’자연에 한 몸을 묻은 작가의 젊은 날처럼 격하지만 각은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도 듣고 생명의 물이 전하는 깊은 자각의 차랑한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현재 한국묵자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묵자 사상의 핵심인 겸애(兼愛)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대동사회’를 일컫는다. 젊은 날 미술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혈투는 어느 날 섬진강의 작은 물방울을 발견하며 삶과 그림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다시 붓질’이라 표현한다.

조은정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이 고뇌어린 과정을 이렇게 평했다. “21m 길이의 〈새벽 강〉과 24m 길이의 〈언 강〉은‘단숨에 미친 듯이’ 그려냈던 것인데 ‘지난한 세월을 담아 피 토하듯 매달려 그린 것’이라고 자평한다. 이 간단한 몇 마디에 우리 모두 경험한 사회였고 세월이었지만 이른바 미술운동을 한 그가 치렀을 혹독한 세월이 어떤 것이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작가는 섬진강의 풍경을 잡아내기 위해 산을 오르기 전에 그에 깃들어 사는 사람과 자연의 생명에 눈길을 먼저 돌린다. “정읍댁과 할매들이 툇마루에서 무릎 세우고 옹기종기 얼굴 마주하며 웃는 소리가 너 나 구분 없이 한 줄기로 흐르는 물소리와 어우러져 평화롭기만 하다.” “이른 봄 시린 손을 불어가며 걷다 보면 논두렁 사이로 가녀리게, 조용히, 아주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 능선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물이다. 갓 돌 지난 사내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와 같다. 새 생명, 희망의 소리다!”

작가의 사유는 노자의 상선약수나 예수의 부활을 생각하며 강물의 덕성과 물의 근원을 깨닫는다. 낮게 더 낮게 자신을 낮추며 강을 만나는 작가의 몸과 마음은 어느덧 강물과 하나가 되어 간다. “벗이 있어 좋고, 동이 술통 옆에 두고 달빛 아우르니 신명은 잔을 가볍게 비운다. 두 다리 쭉 뻗으면 발등 위를 스치며 흐르는 물살의 느낌도 부드러운 애무처럼 흐뭇하고!” 강에서 놀고 있는 작가를 상상해 보라. 이미 그는 자유자재한 상태다.

강물과 합일한 작가는 이제 충만한 기운으로 화폭을 마주하게 되었다. “강물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강, 물의 진정성을 지닌 품성이 있기에 오늘도 붓을 담근다!” 그의 ‘다시 붓질’이 시작된 것인데 앞으로 달려가는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이 그려진다. “여기 강가의 사람들이 흘린 서러움과 눈물, 절망까지 모두 받아 안고 바다가 보이는 광양만으로 간다.”

작가가 앞으로 그려낼 역사와 사상으로서의 강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始原)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세상(大同世上)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왕시루봉은 섬진강을 젖줄 삼아 말없이 자양분을 나르고 있다. 백두대간을 적시며 더 높은 곳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리라.”

“화가로서 강물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죠.”

송만규화백은 어떻게 ‘강의 화가’ ‘강의 사상가’가 되었는가?


작가의 눈길은 범인과 다른가 보다. 그가 처음 섬진강을 찾았을 때 본 것은 작은 물 한 방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리산을 끼고 도는 섬진강가에 서식하는 사람과 뭇 생명을 생각한다. 역사의 현장으로서 지리산과 섬진강을 불러내는 일 또한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 날 미술운동을 하며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갈망에 애태워야 했던 작가는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해 찾았던 섬진강이었다. 그런 그에게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작은 물 한 방울이 계단식 논두렁 사이로 흘러 조그만 물줄기가 되고, 그 물줄기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도랑을 이루고 강물이 되고 계곡이 되는 것을 보았다. 화가의 감성은 그 강물에 가 닿았다. 소리 없이, 말없이 묵묵히 흐르는 강물처럼 작가는 묵언의 사유를 시작한다.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는가?” 현장을 강으로 옮겨도 되는가? 무엇을 다시 그릴 수 있는가? 작가는 무려 25년 동안을 섬진강을 맴돌며 작업의 결과들을 만들어 간다. 아픈 역사의 기억을 틈틈이 불러내며 사람과 세상사에 간섭하기도 한다. 자연과 생명의 아픔에 공감하며 바른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갈망에 목이 타기도 한다. 욕심 없이 나누어 주고, 살리고, 베푸는 넉넉한 강이 되기를 욕망한다. 작가의 그림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25년 동안의 구도의 길을 같이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작가의 그림과 글은 절실해서 당장 섬진강으로 달려가 걷고 강물에 발을 담그고 그 곁에 깃든 사람을 만나 얘기하고 싶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윤범모는 이런 작가의 심정을 대변한다. “‘현장’을 섬진강으로 옮기고 나서 송만규의 눈을 자극한 것은 무엇일까. 크게는 자연이라고 대답해야 맞겠지만, 자연하면 의미가 너무 크다. 자연도 어떤 자연? 화가의 눈길을 오랫동안 잡아끈 것은 바로 물, 물이었다. 그것도 강물과 같은 거대한 덩치가 아닌 왜소한 물방울이었다. 계단식 논에서, 혹은 조그만 도랑에서, 몇 낱의 개체로 흐르는 물방울, 그 물방울에 화가의 감성은 흡입하여 들어갔다. 덩치가 작은 물방울은 오순도순 손잡고 흐르면서 노래를 불렀다. 소리를 내는 물방울의 무리들. 하지만 이들도 거대한 강물의 하나로 바뀌면 묵언 수행자가 된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화가는 강가에서 작업하면서, 특히 새벽 강가를 산책하면서, 물방울과 강물 사이의 색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산과 산은 서로 만나 계곡을 만들고, 계곡은 물의 길을 만들어 준다. 물은 메마른 곳을 적셔 주면서 낮은 곳으로만 흘러간다. 베풀어 주면서 낮은 데로만 흐르는 물.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相)을 고집하지 않는다. 바다에 모인 강물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물처럼만 살 수 있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누가 말했는가. 상선약수(上善若水). 물과 같은 존재로 살 수 있다면, 그곳은 바로 천국이고 극락이지 않을까. 게다가 물은 만물의 근원이지 않은가. 송만규의 섬진팔경에서 묵자 사상의 하나인 겸애 정신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이는 과외의 안복이리라. 화가는 섬진강에서 묵자의 사상을 체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바로 섬진팔경의 원천이다. 지금 섬진강에 가고 싶다.”

작가는 이제 600리 섬진강을 떠나 자기를 버린 작은 물방울들이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세상(大同世上)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을 바란다. 백두대간을 적시며 더 높은 곳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리라고 그 자신 섬진강이 되어 섬진강의 말을 대신한다. 그의 ‘다시 붓질’은 이미 다른 강에 붓을 적시고 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섬진강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강에 깃들어 사는 사람과 생명들의 살림살이를 살피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강의 덕성과 품성이 무엇인지를 작가의 고심을 대신하여 지금 여기를 살아가면서 ‘물의 삶’을 자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돌아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물의 삶’이 곧 사람과 생명의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추천평

송만규의 섬진강 팔경과 겸애(兼愛) 정신

섬진강 물줄기를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장소, 거기가 지리산 왕시루봉(해발 1,212m)이다. 송만규는 이 섬진강을 제대로 보기 위해 구례 방면에서 새벽에 올라 해 뜨기 직전의 섬진강을 ‘음미’한다. 강물은 해 뜨기 직전에 봐야 그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자신만의 풍경을 위해 이렇듯 고단한 품을 팔아야 한다. 자연과 합일되는 과정은 일정 부분의 고행을 필요로 한다. 현장에서 얻은 실경, 그 진경 정신은 소중하다. 그러니까 송만규식 해석에 의한 섬진강 풍경인 것이다. 해석 없는 작품은 심심하다. 독자적 해석의 화법은 그만큼 작품의 수준을 높여 준다. 섬진강 사계를 담은 화면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섬진강, 경관의 경계를 넘어서

그는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할 때부터 섬진강 산책을 시작한다. 운무(雲霧) 가득한 공간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기에 이마에 랜턴을 달고 길을 밝혀야 한 걸음이라도 옮길 수 있다. 헌데 온갖 새소리와 강물 소리가 무한의 공간 안에 그득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성의 확인, 그것은 시각예술인 그림을 넘어선 지점의 것에 탐닉하게 하는 욕망에 불을 지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고요하지만 불같은 욕망의 아이러니한 상황은 작가인 이상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끝없는 갈망의 세계일 것이다. 그 무한의 갈증을 강물에서 발견한 것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그가 만나고 그려낸 강은 지도 위의 지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공간이라고 지칭해야 할 것이다. 삶의 구석을 담은 그의 섬진강은 동시대성을 갖는다. 화면 안에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그곳에는 길이 있고, 징검다리가 있으며,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 자연과 마을의 유기적 관계는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겸손함의 결과이고, 그래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본분을 다하는 민초의 건강한 삶의 상징이 되고 오랜 세월 연연한 역사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동시대성으로서의 시간 그 자체의 기록이 된다. 그 시간은 계절로 분절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장면으로 압축된다.
- 조은정(미술사학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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