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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01 잃어버린 번영 성장과 번영 | 한계에 관한 문제 | 한계를 넘어 02 무책임의 시대 뿌리를 찾아 | 부채의 미로 | 내부의 적 | 생태부채 03 번영 다시 정의하기 부유함으로서의 번영 | 효용으로서의 번영 |자기실현 능력으로서의 번영 | 제한된 능력들 04 성장의 딜레마 자기실현 조건으로서의 부유함 | 소득과 기본 권리 |소득증가와 경제안정성 05 디커플링의 신화 상대 디커플링 | 절대 디커플링 | 성장의 셈법 | 가혹한 선택들 06 소비주의의 ‘철창’ 자본주의의 구조들 | 사회의 논리 | 신상품과 불안 07 케인스주의와 ‘녹색 뉴딜’ 성장 부양을 위한 선택들 | 녹색 뉴딜 |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 |‘녹색’ 회복의 가능성 | 재정회복 | 회복을 넘어서 08 생태거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의 토대 | ‘성장 동력’ 바꾸기 | 노동 나누기 |생태투자 | 생태거시경제학을 위한 기초 09 한계 안에서 번영하기 부끄럽지 않은 삶 | 대안 쾌락주의 | 구조 변화의 역할 10 번영을 위한 거버넌스 정부의 역할 |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 다양한 자본주의 |갈등하는 국가 11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이행 한계 설정하기 | 경제 모델 고치기 | 사회논리 변화시키기 |유토피아가 아니다 12 번영의 지속 번영의 전망 | 천덕꾸러기 경제? | 자본주의의 종말? |이제 때가 되었다 부록 1 부록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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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처럼 거침없이 질주하는 세계는 이미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 그들 모두가 OECD 국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풍요로움에 도달한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28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 규모가 2050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이상(1950년의 75배 이상)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금세기말에 가서는 현재의 경제 규모보다 40배 이상(1950년의 200배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29 대체 그러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단 말인가? 진정 그것이 지속가능한 공동의 번영을 이루는 데 신뢰할 만한 전망을 제공하는가?--- p.30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 경제가 비틀거리자(2008년 후반에 그 모습이 극적으로 나타났다) 정치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직장은 물론 집을 잃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침체의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그럼에도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정신이상자나 몽상가, 혁명주의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에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경제학자에게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에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저주이다.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한 생태계 안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이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답해야만 한다.--- pp.30-31 기존의 경제체제는 번영을 이루기 위해 경제성장에 매달려왔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높은 수입은 행복을 증진시키고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전 세계에 걸쳐 소득과 복지에 엄청난 격차가 지속되고 있고 세계 경제가 생태 한계의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도, 부유한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것이 정당한가? 이 책에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혜택이 그로 말미암은 손실보다 더 큰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면서, 성장이 번영을 이루는 데 필수요소라는 가정이 옳은지 꼼꼼히 따져볼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성장 없는 번영은 과연 가능한가?--- p.34 성장이 자원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삼고 있는 주제다. 경제위기가 이와 관계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무책임의 시대는 우리가 오랜 기간 물질계의 한계를 눈여겨보지 못했음을 증명해준다. 이런 무책임함은 우리에게 천연자원을 보호하고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무능력 때문에 금융시장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생태부채는 금융부채만큼이나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 두 가지 부채는 끊임없는 소비성장 추구에서 온전히 고려되지 않았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대처하기 어려운 금융부채와 생태부채를 암묵적으로 방기하고 나아가 추구해왔으며, 그러면서 그 것이 안전을 확보하고 붕괴를 막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전혀 지속적이지 않았다. 금융위기는 그것이 단기적으로도 지속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pp.54-55 효율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기후를 안정화시키거나 자원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은 망상이나 다를 바 없다. 성장의 딜레마에서 탈출하는 길로서 디커플링을 장려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근거와 성장의 기본 셈법을 더욱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자원효율성 제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과 자원처리량의 감소는 모두 경제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장에서 분석한 결과는 탄소 배출의 ‘대폭적인’ 감축과 자원절감이 시장경제 구조에 맞서지 않고도 달성될 수 있다는 가정은 공상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p.116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토대로 우리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전에 직면하여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7장과 8장 참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또한 실패하고 있는 시스템에 우리를 옭아매려는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유해한 소비 지상주의의 논리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변화(가치, 생활양식, 사회구조의 변화)의 기회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기존의 성장 시스템에서 우리 스스로를 ‘탈출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자원처리량의 증대를 부추기는 신상품의 끊임없는 흐름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하면 분명 생태와 사회의 한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번영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136 새로운 경제를 어떤 모습으로 생각하든지 간에,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용이 이루어지고, 저탄소 경제활동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사실 그러한 경제를 위한 씨앗은 지역 또는 공동체 기반의 사회적 기업에 이미 심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사회 에너지 계획, 가까운 농촌과 연계한 직거래 장터, 슬로푸드 협동조합, 스포츠클럽, 도서관, 지역사회 건강 · 운동 센터, 지역 수리 및 정비 서비스, 마을공방, 창작교실, 수상 스포츠, 지역 문화센터, 지역 기능훈련소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요가(또는 무술이나 명상)나 미용, 정원 가꾸기 관련 일도 그에 포함될 수 있다.--- p.170 이 장의 목적은 새로운 생태거시경제학이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 출발점은 영구적인 소비증가가 경제안정화의 유일한 토대가 된다는 가설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기본 조건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 조건 역시 경제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담아야 한다. 이 요구란 아마도 ‘회복력’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는 침체기 동안 혼란을 초래하는 내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외부 충격에도 저항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회복력은 사람들의 생활에 안정성을 보장하고, 공평한 분배를 확실히 실행하며, 자원처리량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p.183 소비주의의 사회논리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구조 변화를 중심 전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지속 불가능한(그리고 비생산적인) 지위 경쟁으로 사람들을 내모는, 뒤틀린 자극을 바로잡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에게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구조, 특히 덜 물질적인 방식으로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p.198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루는 일은 특정한 한계 안에서 사람들에게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한계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 자원의 유한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적 자원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욕구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번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당위이다. 변화를 위한 두 가지 핵심요소는 이미 밝힌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경제학을 재정립해 새로운 생태거시경제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p.203 정부의 주요 역할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공공재가 단기적인 사적 이익에 의해 침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역설적인데다 심지어는 비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전 세계의 정부 특히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정부들은 고삐 풀린 소비의 자유를 옹호하고, 소비자 주권을 사회적 목표보다 더 높이 떠받치고, 다양한 삶의 영역까지 시장이 팽창하도록 하는 데 너무나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p.214 이 점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이 바로 선진국 정부들이 이런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더욱 광범위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 말이다. 또한 경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 행동을 전개시키기에도 매우 좋은 기회다. 이러한 과정의 시작은 자국의 재정과 생태적 건강성을 향상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우리를 비생산적인 지위 경쟁에 몰아넣는 뒤틀린 동기부여와 사회논리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결국 더 이상 끊임없는 소비성장에 기초를 두지 않는, 탄력 있고 지속가능한 거시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해준 가장 분명한 교훈은 현재의 경제성장 모델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성장 없는 번영은 더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꿈이 아니다. 그것은 재정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필연인 것이다.--- pp.236-237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미래의 문제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열대우림의 소실 역시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심한 빈곤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문제로만 비쳐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서 미래를(그리고 우리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이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에 대한 전망은 침식되고 만다. 더욱 직접적인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과제는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제도를 재편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번영을 새롭게 구축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굼뜨거나 주춤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겠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p.245 번영은 음식과 주거의 충족을 넘어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능력,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공유하는 능력, 이상을 추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질적 수단을 통해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데 익숙해져 왔다. 그러한 속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 변화를 위한 기초다.--- p.245 진보는 결정적으로 믿음직스러운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달려 있다. 이 대안은 덜 물질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회 차원에서 이것은 물질적, 재정적, 심리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재투자를 뜻한다. 특히 공공재 개념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공장소, 공공기관, 공동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되살려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목표와 자산, 사회 기반시설에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그다지 실속 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녹지 공간, 공원, 여가활용시설, 운동시설, 도서관, 박물관, 대중교통, 지역시장, 명상센터, 축제 등은 새로운 사회참여의 기대와 가능성을 높이는 구성요소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대다수가 공공서비스는 이런 필요들을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한정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p.246 성장이 물질적 유토피아를 꽃피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닌 사람들은 결국엔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생태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세기 말에 이르면, 우리의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은 기후악화, 자원고갈, 거주지 파괴, 종의 멸종, 식량 부족, 대규모 이주와 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하고 현실적인 선택은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사회를 형성하는 구조와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더욱 신뢰할 만한 전망을 세워야 한다.--- p.259 이 과업은 개인 차원의 것이기도 하고 사회 차원의 것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공동체에 기반을 둔 활동의 잠재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 우리가 돈을 투자하는 곳, 우리가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 등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변화는 우리의 일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지도자들에게 가하는 민주적인 압력과 투표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또한 변화는 풀뿌리 자치운동과 공동체 참여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개인의 자발적인 간소함 추구 역시 중요하다.--- p.259 사회 차원에서 구조의 변화는 필수다. 이 책은 그 과제를 이루기 위한 세 가지 구체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우리는 인간 활동에 대해 생태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성장 지상주의의 경제학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 셋째, 우리는 파괴적인 소비주의 사회논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 p.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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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껏 우리가 얼마나 성장 중독증에 빠져 있었는지, 생산주의 및 소비주의가 그간 얼마나 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달았는지 깨닫게 한다. - 강수돌(고려대 교수)
♠ 생태 문제에 대한 자기만족적인 기술적 해법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이들, 또 도덕적 비판 일변도의 담론에 허망함을 느끼기 시작한 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 - 홍기빈(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자멸이냐 전환이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번영과 행복에 대해 기존과 다르게 정의하고 GDP라는 경제지표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이 책은 우리의 과제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 앤서니 기든스(사회학자) 성장이 우리에겐 건 마법의 주문! “누군가는 경제 전문가들이 이미 그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잘 처리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장담하지는 말자. 그들이야말로 주문에 가장 강력하게 걸려 있어서, 아마도 가장 마지막에 깨어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추천사 중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통해서 부를 축적해온 경제 선진국들은 너무 일찍 자기들만을 위한 샴페인을 터뜨렸다. 황폐해진 지구와 하루 생계비가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는 10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을 둔 채로 말이다. 지금 세계 인구의 20%가 전 세계 소득의 2%를 얻고, 상위 20%의 부자들이 전 세계 소득의 74%를 거둬들인다. 그 막대한 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선진국 국민들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어 온갖 종류의 소비상품을 만들어 팔아 얻은 것이다. 물론 그 소비상품은 지구 환경과 자원을 약탈하여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금융시스템을 통하여 생산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 전 세계 부자들과 은행들을 위한 음악은 멈추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2008년 말 금융 거품이 터지며 전 세계는 재앙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음악은 멈추었고 더 이상 춤도 추지 못했다. 소비심리는 싸늘히 식어버렸고 투자도 멈추었다. 실업률은 급상승했고, 세계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 전망에 직면했다.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은행과 대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 목적은 금융계와 거대기업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시중 자금의 유동성이 회복되고 수요가 다시 확대되어 경기침체를 멈추는 데 있었다. 좀 더 궁극적으로는 계속해서 경제성장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누구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숨어 있다. 현재의 경제체제는 번영을 위해 경제성장에 매달려왔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은 끊임없이 경제주체들의 부채와 소비수요를 증대시키며 달성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최근의 위기 상황이 대변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들이 경기침체를 불러온 것이다. 성장 그 자체가 시장을 붕괴시킨 것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를 맞아 또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장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명제가 과연 옳은 것일까? 만약 단기적으로 성공하여 다시 세계 경제가 성장추세로 돌아선다면 그 이후엔 위기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인가? 2008년 10월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은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른 시점에 새로운 대규모 쇼핑센터를 개장하면서, 심각한 신용위기 상황인데도 사람들에게 집 밖으로 나와서 돈을 쓰라고 재촉했다. 런던시장은 개장행사에 참석한 수많은 인파를 향해서, 런던 시민들은 “목요일 아침에도 거르지 않고 쇼핑을 하러 오는 현명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9·11 테러사건의 와중에도 사람들에게 “쇼핑을 하라”고 다그친 악명 높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문가와 정부와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언론도 소비 증대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강력한 마법의 주문에 걸려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 모두가 OECD 국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풍요로움에 도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2050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이상, 금세기말에 가서는 40배 이상의 경제 규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 그러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이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사회적·심리학적 연구와 케인스에서 마이클 샌델까지 세계적인 석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성장의 마법에 걸린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명쾌하게 분석한다. 나아가 새로운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획기적 패러다임으로 생태경제학을 제시한다. 우리 시대의 화두인 사회적 경제와 생태경제를 논할 때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경제학자에게 저주? 경기호황이란 극단적인 불평등을 바탕으로 얻어진 것이기도 했다. “다른 길은 없다.” 당시 영국의 대처 수상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운이 없다. 우리는 이제 끊임없는 경제 팽창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추천사 중에서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 2008년 후반 경제가 비틀거리자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실업과 파산위기에 몰린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침제의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나 몽상가, 또는 혁명주의자로 여겨졌다. 2008년 후반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Independent on Sunday〉 지는 다음과 같이 힘주어 주장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든 환경근본주의자든 경제위기를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강요할 기회로 삼으려는 반자본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유로운 자본주의 덕분에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삶을 누려왔다. 우리는 노동자 소비에트 치하의 유르트(몽골식 천막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자유로운 자본주의 덕분에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삶을 누려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왜 우리는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맞은 것일까? 이제 우리는 성장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에게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에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저주이다.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한 생태계 안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체제가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과 성장 숭배자들, 그리고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과 그들과 공생하는 언론은 답해야만 한다. 과거처럼 성장가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세계는 이미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 모두가 OECD 국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풍요로움에 도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2050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이상, 금세기말에 가서는 40배 이상의 경제 규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 그러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이다. 결국 성장을 문제 삼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성장 신화는 우리를 실패로 내몰았다. 성장 신화는 저유가 시대의 종말, 상품가격의 지속적 상승, 환경오염, 자연자원을 둘러싼 분쟁, 기후변화를 진정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와 경제를 회생시켜야 하는 절박함까지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예전의 성장 우선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생태계 파괴와 변함없는 사회 부정의를 기반으로 한, 소수를 위한 번영으로는 문명사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변화를 위해 노력할 모처럼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를 병들게 한 근시안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지속 가능한 번영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다루듯, 성장에 대한 고찰과 번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탐색하는 것으로써 내딛을 수 있다. 경제학의 이단인가? 아니면 경제학의 미래인가? 저자는 지구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인간 사회가 어떻게 번영할 수 있을지 신뢰할 만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망을 실행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경제학자에게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에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저주이다.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한 생태계 안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체제가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답해야만 한다. 생태거시경제학의 탄생! OECD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은 지난 1980년대 중반보다 더욱 심화되었다. 불평등한 사회는 불안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여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과시소비’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끊임없는 성장의 추구는 자원의 사용을 계속해서 확대시킬 수밖에 없기에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안정을 보장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다른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생태 한계가 존재하는 우리 세상에 들어맞는 다른 종류의 경제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는 성장의 딜레마에 묶여 있다. 이 딜레마는 안정을 이루려면 성장을 피할 수 없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환경에 대한 악영향 또한 커지기 때문에 생긴다. 성장지지자들은 성장이 생태적 목표와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장은 경제 규모를 키울 뿐 아니라, 기술효율성도 향상시키기 때문에 생태 한계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커지는 경제 규모를 지속적으로 초과하여 기술효율성을 향상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증거는 이 전략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선진국의 탄소 배출량 감소는 공장의 해외이전 등을 통해,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을 통해 이룬 것이지 근본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킨 것은 아니다. 또한 기술혁신은 소비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왔다. 기술효율성은 경제 규모의 증대분을 초과하지 못했으며, 앞으로 그럴 수 있다는 징후 또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의 경제구조와 우리를 소비주의의 ‘철창’에 가두는 사회논리, 이 둘 모두와 맞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는 지속적인 소비성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안정을 실현하고, 경제활동이 생태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하는 거시경제학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거시경제학하에서는 우리가 생태 한계 안에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삶의 덕목이자 성공의 주요 척도가 되어야 한다.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이 부작용이 없는 성장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케인스는 ‘경제 문제’가 해결될 경우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를 비경제적 목적에 투여하기를 더욱 원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생태학이 결합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일 것이다. 사실, 생태거시경제학이 현실적으로 유효함을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는 아직 생태 한계 내에서 경제안정을 이뤄낼 능력은 부족하다. 우리는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 경우 일반 거시경제학상의 ‘총량’(생산, 소비, 투자, 무역, 자본, 공적 지출, 노동, 자금 공급 등)이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우리는 생태적 요인(예컨대, 자원이용과 생태계 서비스)들에 대한 경제의 의존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문제들이 경제학자들에게 친숙한 과제는 아니지만, 그 과제들이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성취 가능한 것임은 분명하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미래의 문제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열대우림의 소실 역시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심한 빈곤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문제로만 비쳐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서 미래를(그리고 우리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이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에 대한 전망은 침식되고 만다. 생태거시경제학의 기초 결국 이 경제 의제는 새로운 자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협동의 정신 역시 필요할 것이다. …… 우리는 공동의 희생과 공동의 번영에 함께하라는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제를 어떤 모습으로 생각하든 간에,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용이 이루어지고, 저탄소 경제활동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사실 그러한 경제를 위한 씨앗은 지역 또는 공동체 기반의 사회적 기업에 이미 심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생태거시경제학의 출발점은 영구적인 소비증가가 경제안정화의 유일한 토대가 된다는 가설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기본 조건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 조건 역시 경제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담아야 한다. 이 요구란 아마도 ‘회복력’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는 침체기 동안 혼란을 초래하는 내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외부 충격에도 저항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회복력은 사람들의 생활에 안정성을 보장하고, 공평한 분배를 확실히 실행하며, 자원처리량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통상적 거시경제학의 기본 변수들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출할 것이고 또 저축할 것이다. 기업은 여전히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세수를 높일 것이고 그것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지출할 것이다. 사적 부문과 공적 부문 모두가 물적, 인적, 사회적 자산에 투자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변수들이 확실한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변수 중에는 경제의 에너지 및 자원 의존도와, 탄소 한계를 반영하는 변수가 분명히 포함될 것이다. 또한 생태계 서비스나 자연자본의 가치를 반영하는 변수도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변수일지라도 생태거시경제학에서는 그 작용방식에서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소비와 투자 사이의 균형,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사이의 균형, 다양한 부문들의 역할, 생산성 향상의 성격, 수익성의 조건 등 이런 모든 사항들이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생태투자가 반드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채 규모를 통제하고자 한다면 저축률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고, 총수요함수에서 소비와 투자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투자의 수준과 성격은 공적부문 투자와 사적부문 투자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요구할 것이다. 생태거시경제학은 새로운 투자 생태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수익률과 생산성 개념을 다시 정립하여 장기적으로 사회 목표를 추구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되도록 함을 뜻한다. 또한 노동생산성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과 저탄소 산업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거시경제학은 경제를 사회와 환경에서 분리시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자본시장이 만든 경제위기를 고려하면, 그 새로운 방식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를 여전히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그러한 구분이 중요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스타트렉’에 나오는 스포크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봐, 짐. 그 자본주의는 말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건 아냐.” 새로운 경제운동이 떠오르고 있다. 뛰어난 이 책은 이러한 운동의 선언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읽어봐야 할 책이다. - 《영국 가디언지》 번영과 행복에 대해 기존과 다르게 정의하고 GDP라는 경제지표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이 책은 우리의 과제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 앤서니 기든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