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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무덤을 지나 숲 사이 관 2부 -아름다운 선을 그을 수만 있다면 3부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4부 -칸트의 집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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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과 몸짓의 소통이 단절된 시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하여 나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고 소장님 역시 타인과 소통을 거부하는 인물이지만 그들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아마도 그걸 교감이라고 하겠죠), 어떤 필요나 이유도 없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그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해 써 보고 싶었습니다. -작가 인터뷰에서 SNS를 통한 자기표현과 정보 공유가 활발한 시대이지만 그만큼 우리는 온기를 잃은 진정한 소통의 부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온라인에서 양산된 말들은 대상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지만 오히려 현실에서는 외롭고 진정한 소통으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최상희 작가는 "우리 모두가 (나무처럼)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칸트의 집』은 독자들을 철저한 '오프라인'으로 이끈다. 황량하리만치 고립된 바닷가 마을, 그리고 그곳에 모인 단절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통해 눈빛과 몸짓이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교감과 마법 같은 소통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맺어져 있다는 건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수반하지.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 세상 모든 것은 말이다. 하지만 말이야,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건지도 몰라. 삶은 아이러니란다.” -본문 126쪽 친구도, 피시방도 없는 고립된 곳에서 살게 된 '열무'에게 늘 같은 시각 세 떼를 몰고 다니며 바닷가를 산책하는 의뭉스러운 남자는 단번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책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에서 이름을 따, 그를 칸트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열무에게는 또 한 명의 칸트가 있다. 바로 철저히 자기 세계 안에서만 살아가는 나의 형 '나무'. 오직 규칙으로만 외부 세계와 교류하는 나무는 새와 그림에 대한 집착적인 관심 말고는 자기 안으로만 더듬이를 곧추세운다. 두 칸트는 서로를 알아보듯 둘만의 언어로 서로 소통을 시작하게 되고,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된 열무는 “형은 원래 그렇다”고 어느새 자신이 닫아 버린 가능성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만난 순수한 인연들을 통해, 남들과 조금 다른 형 때문에 묵직이 자리했던 타인에 대한 관계 맺음의 두려움을 마주 보고 이겨내게 된다. '나'라는 집, '집'이라는 꿈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 “선 말이야. 집을 지으려면 우선 도면을 그려야 하는데 도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수직과 수평이란다. 아름다운 선을 그을 수 있다면 집의 반은 완성된 거지.” -본문 98쪽 학교에서 일일 강연을 하게 된 칸트는 아이들에게 "집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말해 보라고 한다. 제각각 다른 대답을 들으며 열무는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칸트는 나무에게 “보이지 않는 집”을 그려 보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열무에게 “진짜 알아먹지 못할” 말들을 던지기도 한다. 이처럼 소설 속에서 ‘집’이라는 개념은 그저 건축물이 아닌, 자아와 마음이 담긴 공간, 나아가 꿈으로서의 집으로 확장된다. 열무 또한 처음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는 관처럼 생긴 칸트의 집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그 집 안에 머물며 관찰하는 사이 차차 칸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네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나면, 네게 필요한 집도 뭔지 알 수 있게 될 거다.” -본문 177쪽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나무와 자신이 지은 집에 갇힌 건축가. 낯설고 이상스런 만남을 총총히 따라가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도 똑같이 외롭고 늘 소통에의 갈증을 느끼는 존재라는 절절한 자각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질문 하나가 들려온다.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 나무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신만의 세상에 약간 더 깊숙이, 그리고 조용히 머물고 있을 뿐이다. 마치 이 소설이 대화에 몹시 서툰 내가 힘겹게 타인에게 건네는 이야기이듯이.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상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누구나 조금은 외로운 법이다. -「작가의 말」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