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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의 말
석지현의 말 선화(禪畵)의 세계 │ 진옥 선시(禪詩)의 세계 │ 석지현 1장 공空 발을 걷으면│원감충지(圓鑑?止) 창 밖에는│원감충지(圓鑑?止) 산은 푸르고│백운경한(白雲景閑) 고산 아래│백운경한(白雲景閑) 개울을 보며│태고보우(太古普愚) 이별│함허득통(涵虛得通) 구름 피어│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나그네│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거문고 소리 들으며│청허휴정(淸虛休靜) 어젯밤 꿈에│한산(寒山) 오도송│영운지근(靈雲志勤) 옛 절│중묵종형(仲?宗瑩) 오도송│천태덕소(天台德韶) 2장 무無 강서사 누각에서│함허득통(涵虛得通) 우물 밑 붉은 티끌이 일고│습득(拾得) 비 온 뒤│진각혜심(眞覺慧諶) 우수수 가을 잎은│진각혜심(眞覺慧諶) 빈손에 호미 들고│부대사(傅大士) 산노래│선월관휴(禪月貫休) 달 속의 여인│죽암사규(竹庵士珪) 산은 높은 대로│천동정각(天童正覺) 산집 고요한 밤│야보도천(冶父道川) 반야송(般若頌)│천동여정(天童如淨) 가을 밤 강물 위에│도잠(道潛) 석양│왕유(王維) 목련│왕유(王維) 밤비│백거이(白居易) 강설(江雪)│유종원(柳宗元) 건흥사에 자면서│여인룡(呂人龍) 3장 무상無常 석불상 앞에서(金剛山 內山 石佛像)│백운경한(白雲景閑) 지공 화상께 드림│백운경한(白雲景閑) 골에 흐르는 물│백운경한(白雲景閑) 그림자│진각혜심(眞覺慧諶) 봄의 어느 날│천태덕소(天台德韶) 옛 절│교연(皎然) 취승도│회소(懷素) 무위자연│협산선회(夾山善會) 자화상│영명연수(永明延壽) 보임│단하자순(丹霞子淳) 추운 달│단하자순(丹霞子淳) 죽암송│죽암사규(竹庵士珪) 산의 달│석옥청공(石屋淸珙) 경지│조천제(照闡提) 매화│석림도원(石林道源) 갈잎 쓸쓸히(偈頌)│작자 미상 쓸쓸한 모래톱에│유장경(劉長卿) 사람을 보내며│왕건(王建) 4장 무아無我 어은에게│태고보우(太古普愚) 강 위에서│함허득통(涵虛得通) 산집│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목암에게│벽송지엄(碧松智嚴) 말을 채찍해 옛 성을 지나가네│한산(寒山) 세월 밖의 봄│동산양개(洞山良介) 잠에서 일어나│정심수목(淨心修睦) 은자의 노래│부용도개(芙蓉道楷) 물이 흐르고 구름 가는 이치│차암수정(此菴守淨) 임종게│천동정각(天童正覺) 산거│설암조흠(雪巖祖欽) 서리 내린 강산에│석극신(釋克新) 풀집│삼의명우(三宜明盂) 절 집안은 원래│작자 미상 오도시│모녀니(某女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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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禪畵와 선시禪詩』의 김양수 화백은 삶의 근원을 찾아 수행하며 깨달음의 세계를 그리는 선화가(禪畵家)로 유명하다. 김양수 화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림 속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새도 되었다가, 소나무도 되었다가 때론 거대한 산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삶을 꿰뚫고 있다.
석지현 스님은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이후, 70년대 문학에서 ‘선시’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며, 특유의 감각적 시선과 자신만의 색채로 작품을 새롭게 읽어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전통 선시를 번역 해설한 작가 중 가장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민족사는 3년 전 ‘선화와 선시의 만남’을 기획했다. 선화와 선시라는 예술과 문학의 만남은 ‘선의 세계’를 훨씬 더 편안하게 다가가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는 김양수 화백과 석지현 스님과의 오랜 인연이 있었다. 두 분은 사랑방처럼 민족사에 자주 들러 차를 마시면서 ‘선화와 선시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며 의기투합, ‘선화와 선시의 만남’을 기획, 3년 만에 출간하게 되었다. 한국적 선화(禪畵)의 지평을 넓힌 김양수 화백과 석지현 스님이 번역·해설한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선시(禪詩)와의 만남 “선화는 선화라는 프레임도 거부한다. 선화에 갇히면 이미 선화가 아닌 죽은 그림이다. 소재에도 있지 않다. 대상이나 기법에도 있지 않다. (중략) 마음의 그림이지만 그것마저 표현일 뿐인 것이 선화이다. 혹자는 마음대로 그리거나 제멋대로 하는 것에 선화라는 이름을 붙이나 양두구육에 불과하다. 선화는 깨친 사람이 나를 비우고 욕심을 버린 선의 상태에서 관찰된 대상의 마음 그림자를 그린 그림이다.” -진옥 스님(석천사) 선화란 무엇인가? 선의 세계, 곧 깨달음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진옥 스님의 말씀에서도 엿볼 수 있듯 선화는 선화라는 프레임도 거부한다. 진옥 스님은 이 책에서 “깨친 사람이 나를 비우고 욕심을 버린 선의 상태에서 관찰된 대상의 마음 그림자를 그린 그림이다.”라고 하면서 선화가인 김양수 화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선화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선사해 준 김양수 화백의 내공이 선화 속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양수 화백은 이 책의 선화를 그리며 “내 안의 주인과 마주할 수 있었으며 무명(無明) 속에서 헤매기도 하였다. 그 길 위에서 참회하며 눈물로 먹을 갈아 선사를 만날 수 있는 귀한 인연이었다.”라고 하였다. 선시는 선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 선이면서 선이 없는 것이 시요(禪而無禪便是詩) 시이면서 시가 없는 것이 선이다(詩而無詩禪儼然). 석지현 스님은 “선시란 언어를 거부하는 ‘선’과 언어를 전제로 하는 ‘시’의 이상적인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언어에 뒤따르는 사고작용마저 선은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선에서는 오직 자기 자신 속에서의 직관적인 깨달음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깨달음의 희열을 담은 선시를 번역하기 위해선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석지현 스님의 선시 번역과 해설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장 빼어나다는 찬사를 받는 것이다. 62편의 선화와 선시, 4장으로 나누어 편집 사간동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수록 선화 전시회 개최 이 책에는 62편의 선화와 선시가 주제와 내용에 따라 1장 공(空), 2장 무(無), 3장 무상(無常), 4장 무아(無我)로 나누어 편집, 선화 1편당 선시 한 편이 담겨 있다. 먼저 석지현 스님이 전통 한문 선시 62편을 선정하여 번역과 간단한 해설을 달았고, 여기에 바탕하여 김양수 화백이 전남 진도에 칩거하면서 1년 동안 참구하면서 선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선화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마침내 선화와 선시, 이 환상적인 만남을 통하여 선의 세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책이 출간된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 독자들을 위해 이 책에 수록한 선화 전시회가 열린다. 선화와 선시 전시는 경복궁 옆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10월 19일부터 28일까지 전시한다. 무료 관람이며 문화의 달 10월 하순에 선화를 감상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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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禪畵)는 어떤 그림일까? 선(禪)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선은 무엇인가? 무아(無我)이다. ‘아(我)’가 영원성을 가진 자성이 있다고 착각하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가진 중생심을 벗어나 자성이 없는 공성의 무아를 깨친 것을 말한다. 선은 중생심을 비운 마음이다. 그래서 선은 일념이어서 두 갈래 마음이 없다. 이를 ‘도(道)’라고 한다. 이런 경지에 있는 사람을 승속(僧俗) 관계없이 도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무아가 되어 탐욕 없이 일념이 된, 그래서 선에 든 사람이 그린 그림을 선화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이외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매우 강력한 불교 예술이다. 선의 특성은 모든 형식과 모양 그리고 이름을 벗어난다. 그리고 이념의 틀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무애(無碍)이다. 즉 걸림 없는 자유이다. 그래서 선화는 선화라는 프레임도 거부한다. 선화에 갇히면 이미 선화가 아닌 죽은 그림이다. 소재에도 있지 않다. 대상이나 기법에도 있지 않다. 그래서 선의 표상인 달마를 그렸다고 선화가 아니다. 혜능의 말처럼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실체 없음의 허망함과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일어나는 한마음 이전을 그리는 것이다. 마음의 그림이지만 그것마저 표현일 뿐인 것이 선화이다. 혹자는 마음대로 그리거나 제멋대로 하는 것에 선화라는 이름을 붙이나 양두구육에 불과하다. 선화는 깨친 사람이 나를 비우고 욕심을 버린 선의 상태에서 관찰된 대상의 마음 그림자를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그 그림 또한 뜬구름으로 여겨 세속에서 값을 치르는 것을 거부하는 정신적 내용을 품고 있다. 무애의 붓끝이며 자유의 춤이며 흥겨운 노래이다. 도인들이 견처(見處)가 있어 오도(悟道)의 시를 짓고 붓끝에서 자유를 그리고 생사를 벗어난 노래를 불렀던 것이 도인의 풍모였으리라~. 저 먼 산에 뻐꾸기 우니 분명코 삼복이로다 어제의 장맛비 바람 개이니 뜨락에 치자꽃 향기 가득하구나. - 진옥스님 (석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