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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_ News from Nowhere
18 _ Feature _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법 _ 올리버 버크먼 24 _ Feature _ 신성한 우연들이 춤추는 무도장 _ 앙드레 다오 30 _ Interview _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_ 케이트 스위니 36 _ Comic _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하다 _ 코리 몰러 40 _ Feature _ 불확실성 예찬 _ 존 암스트롱 46 _ Feature _ 불확실성은 나쁜 상태인가? _ DBC 피에르 54 _ Feature _ 절대 깨지지 않는 확신 _ 스티븐 로 62 _ Interview _ 존재론적 불확실성에 대하여 _ 데이비드 스피겔할터 경 78 _ Feature _ 불확실성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_ 프랜신 루소 86 _ Feature _ 불확실성에서 얻은 교훈 _ 톰 챗필드 92 _ Feature _ 인생에 다른 바다가 있기는 하고?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100 _ Feature _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릴 때 _ 패트릭 스톡스 106 _ Feature _ 여기 있는 우리 뼈가 당신 뼈를 기다린다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112 _ Feature _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좋다 _ 나이젤 워버튼 120 _ Interview _ 통제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_ 스튜어트 바이스 138 _ 고전 읽기 _ 확실성에 관하여 _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46 _ 고전 읽기 _ 절대적 확신 _ 존 스튜어트 밀 156 _ 6thinkers _ 불확실성Uncertainty 160 _ Our Library 164 _ Interview _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_ 하리스 나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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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세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불확실해지고 있을 가능성은 물론 존재한다. 그렇다면 매 세대가 과거보다 현재를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확신은 타당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작가 C. S. 루이스가 런던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말한 것처럼 또 다른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 가능성이란 극도의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의 기본 조건이며, 그걸 한동안 망각하게 하는 상황이 이따금 벌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전에 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구적인 상황을 한층 악화시켜 더는 그걸 외면 못 하도록 만들 뿐이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벼랑 끝에 놓여 있었다.”
--- p.20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법 _ 올리버 버크먼」 두려움과 불안은 밀접한 개념이다. 걱정 역시 그와 같은 감정군에 속한다. 두려움은 구체적인 위협을 느꼈을 때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수상한 소리를 들었거나 시야 언저리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두려워한다. 반면 불안과 걱정은 앞으로 어떤 위협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 또는 어떠한 위협을 감지했는데 그로 인한 두려움이 잦아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 p.32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_ 케이트 스위니」 확실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널리 알려진 개념은 ‘명백성’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것은 명명백백한 것이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자신의 모든 신념이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지 확인하기 위해 철저히 의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외부 세계에 대한 모든 믿음, 가령 그의 육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전부 의심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감각에 자신을 속이려는 강력한 악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데카르트는 ‘2+2=4’처럼 매우 단순한 수학적 진리까지 의심했다. 그가 의심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바로 자신의 존재뿐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사유하고 있었고, 사유하는 존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56 「절대 깨지지 않는 확신 _ 스티븐 로」 오직 엄격한 데이터 수집과 통계 분석을 통해서만 나 같은 사람이 매일 아침 스타틴을 복용하게 할 설득력 있는 증거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스타틴이 내게 좋을지 아닐지 모르며,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많은 사람이 스타틴을 복용한다면, 엄청난 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나는 스타틴이 나의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는 한 스타틴이 심장마비를 예방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스타틴이 나 같은 사람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통계 분석만으로도 안다. 따라서 통계는 사람을 살린다. --- p.73 「존재론적 불확실성에 대하여 _ 데이비드 스피겔할터 경」 상처는 언젠가 아문다. 서사적 손상도 마찬가지다. 다만 육체적 상처이건 서사적 손상이건, 꼭 이전과 같은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뼈가 예전과 다른 형태로 붙거나 결합조직이 과거만큼의 유연성이나 무게 지탱 능력을 되찾지 못할 수 있다. 질병, 사별 또는 실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수정된 감각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 적어도 과거와는 다른 서사적 방식으로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의 이야기는 ‘조각을 다시 짜 맞춘다’라는 비유가 가리키는 퍼즐처럼 정적이지 않으며 도리어 임시적이다. 서사는 계속 재구성된다. --- p.104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릴 때 _ 패트릭 스톡스」 의사 표명의 억압은 특유한 폐해를 낳는다. 바로 인류의 권리가 강탈당하는 것이다.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후세까지,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찬성하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빼앗기게 된다. 만약 그 사람의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비록 그 의견이 틀리더라도, 인류에 공헌할 만큼 위대한 가치, 즉 오류와 부딪치면서 도출되는 진실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고 생생하게 이해하는 값진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는 것이다. --- p.147「절대적 확신 _ 존 스튜어트 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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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에 익숙해질 날이 과연 올까?
《뉴필로소퍼》 20호는 “불확실성 속에서 나아가기”를 주제로,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찰한다. 불확실성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한 혹은 ‘나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겠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인간은 확실한 것을 원한다.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법」에서 작가 올리버 버크먼은 세계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극도의 불확실성은 원래부터 인간의 기본 조건이었고, 그걸 한동안 잊고 살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자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이며, 우리가 아끼는 누군가에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문학자 C. S. 루이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전쟁이 전에 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구적인 상황을 한층 악화시켜 더는 그걸 외면 못 하도록 만들 뿐이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벼랑 끝에 놓여 있었다.” 심리학자 케이트 스위니는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은 “어떠한 정보를 알 수 없거나 모호하게만 인지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그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이유로 불확실성이 본질적으로 “생존에 위협”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으면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고, 부지불식간에 생존의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헛된 줄 알면서도 인간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을 없애기란 어렵다! 지금까지 말한 바대로라면 불확실성에 익숙해질 날이 과연 올지도 장담을 못한다. 그러나 기다림과 걱정 따위와 좀 더 건강하게 관계 맺을 수는 있다. 사실 걱정을 꽤 쓸모가 있다. 혹시 모를 위협을 의식하여 그것을 미리 막거나 대비하도록 우리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다른 바다는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바보가 아님에도, 세상은 온통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혼란과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확실성은 나름의 쓸모가 있다. 미술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암스트롱은 「불확실성 예찬」에서 인생에서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보다 더 심오한 주제는 없다면서, 인류는 이제까지 ”불가사의한 실존적 불안감에 굴복하지 않고 확고한 신념으로 줄곧 맞대응“했다고 강조한다. 미래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온갖 도전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신념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었다. 확신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견이 쓸모없거나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관심이 쏠리는 제안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제안을 실제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내일이라도 제대로 된 증거가 제시된다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어떤 사고 체계에 큰 관심이 생겨 매혹되거나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철학자 마리아나 알레산드리는 「인생에 다른 바다가 있기는 하고?」에서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스토아 철학과 실존주의 철학을 예로 들면서,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보면 평범한 인간은 죽음의 조짐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도망치는 겁쟁이다. 죽음을 피하려고 일상으로 깊이 숨어버리는 것도, 나아가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실존주의자들의 말을 빌려 인생에 다른 바다는 없다고 강조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처한 상황을 ‘구토’에 비유해 설명했다. 구역질이 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無’라는 벌레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자신이 A를 선택하면 나머지 B부터 Z까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소설과 영화가 인간의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만약’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불확실성, 철학함의 시작 확실한 것을 추구한다면, 죽음이라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장 확실한 것, 즉 죽음은 내게는 오지 않을 일처럼 생각하며 멀리한다. 철학자 패트릭 스톡스는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릴 때」에서 생존 가방을 준비하는 것보다 내 삶을 엉클어뜨리는, 언젠가 눈앞에 닥친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당장 내일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거나 자식이 죽는다면, 또는 집을 잃는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라”라고 말하면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당신 삶만 뿌리째 뽑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진다. 느닷없는 변화가 비일비재함에도 쉽사리 예상할 수 없는 이유가 아마 여기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예상하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어쩌면 ‘생존 가방’의 쓸모는 바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방을 준비해둔다는 것은 생존 자체를 위해서보다 서사적 지속성을 위한 것이다. 생존 가방의 존재는 우발적인 사건을 미리 내다보고 그것까지 이야기에 포함해두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모든 걸 계획해두었다는 착각. 그 착각은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 오는 순간까지만 유효하다.”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또 인정한다고 해도 삶은 여전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연, 즉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태어났고, 그 연장선상에서 ‘삶’이라는 불확실성을 껴안고 살아간다. 불확실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체념하자는 말은 아니다. 날마다 산 위로 돌을 밀고 올라갔던 시시포스처럼, 그것이 존재의 모순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숙명이라면, 그것이 삶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조차 철학함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