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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예술 행위와 삶의 본질 _ 2
1장 _ 6 2장 _ 28 3장 _ 70 4장 _ 91 5장 _ 121 6장 _ 152 7장 _ 172 8장 _ 182 9장 _ 213 10장 _ 242 에필로그 _ 265 해설·‘본질을 쪼는 끌’·진형준 _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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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의 도자기는 그런 차원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지. 가장 비천한 하류 계급의 도공들은 자신들의 한과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을 도자기를 빚으며 무의식 속에서 승화시켜 나갔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백자는 옆에 두고 보면 볼수록 가슴으로 져며 오는 애틋함이 있고, 무상으로 이어지는 정을 느끼게 된다는 거지. 그러나 그 얘기는 조상들이 남겨 놓은 도자기 얘기고, 지금 그릇쟁이들이야 조상을 등에 업고 돈벌이하는 것이지 별것 있나? 대량으로 생산되는 그릇, 획일적으로 창작성을 잃은 그것들이 무슨 예술품이 되겠느냐는 얘기지.”
--- pp.45~46 관수는 새 담배에 불을 댕기며 다시 책상 위에 있는 분청 도자기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직선으로 된 원통형이 아니라 약간의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곡선의 양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지만, 어쩐지 여유 있는 양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그 곡선에 의해서인 것이 분명했다. 관수는 청규가 왜 이런 형태의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가마에서 이 도자기를 꺼내며 만족해하던 표정으로 보아 무엇인가를 의도하고 있고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관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마의 화구 앞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불꽃을 빨아들일 듯한 눈빛으로 변해가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청규는 무엇인가를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관수는 생각했다. 자신은 벌써부터 창작에 대한 꿈을 버린 지 오래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가슴속에서 무엇이 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p.55 관수는 스케치를 끝내고 몸을 일으키며 자신이 무엇인가 많이 변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들꽃 하나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는 건 성장을 한 후로는 없었던 일이었다. 이제껏 관수의 작업은 무수한 관념 속에다 뿌리를 내려 또 관념으로 이어지는 꽃을 피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관념의 꽃은 실제로 가슴에 와 닿지를 않고 언제나 한 발자국 물러나 저만큼에서 피어 있었다. 물론 관수 자신은 그런 식의 꽃을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피워놓고 보면 언제나 꽃은 관수의 곁에 있어 주질 않았다. 그러나 지금 관수는 조그만 들꽃을 스케치북에 옮기면서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다. --- pp.75~76 우리들은 빠리에 몸을 담갔다가 온 많은 선배들을 보았다. 그들이 말하고 내보이는 세계적인 것, 세련된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예술이 무슨 유행 같은 것이란 말인가. 빠리나 뉴욕에서 곁눈질하며 걸치고 온, 몸에 맞지 않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그들은 한국미술을 이끄는 선구자라는 착각 속에 빠져 어깨들을 우쭐거린다. 그들이 어깨를 우쭐거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어깻짓을 부러워하고 흉내를 내려고 어설픈 어깻짓을 했었던가. 우리는 우리의 어깻짓이 있는 것을 그들도 모를 리 없건마는 그런 걸맞지 않는 어깻짓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빠리라는 약의, 뉴욕이라는 약의 중독 증세의 몸짓인 것인가. 아냐. 예술은 그런 것이 아냐. 그런 것일 수가 없어. 그런 것이어서는 안 돼. 나의 뿌리에서 빨아올려진 수액으로 피워 놓은 꽃이어야 하고, 그 꽃을 회의하는 내면의 투쟁이어야 하는 거야. 빠리로 빠리로 외치는 소리가 내겐 빠지러 빠지러 빠지러 간다는 소리 같아. 알맹이를 빠뜨리고 겨우 껍데기만 건져오는 것이 그들일 것만 같아. --- p.143 후끈거리는 열기를 내뿜는 화구(火口)에 아직까지도 삭지 않은 불씨가 두꺼운 재 속에서 빨갛게 눈을 뜨고 있었다. 아무리 밤이라도 한여름 가마의 열기는 견디기 힘든 더위였을 거였다. 장작을 넣기 위해 화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 외에는 옆으로 비켜 앉아 불을 감시해야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청규는 화구에 머리를 박듯이 쓰러졌고,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다. 취한 상태에서 장작을 집어넣다 실수를 한 것이었을까. 발을 헛디뎠다거나, 너무 취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거나.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소주병 네 개가 모두 화구 앞에 딩굴고 있었다. 그렇다면 화구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술을 마셨을 것이 분명했다. 이 더위에 그 열기 속에서… 그럼 실수가 아니었단 말인가. 의식적으로 몸을 화구로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란 말인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네 병의 소주병을 밤새 비워냈을 것이고, 인사불성으로 취해 무슨 환상을 본 것일까. 무슨 착각을 일으키고 뛰어든 것이었을까. --- pp.240~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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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바바리코트를 입은 한 사내가 가지샛말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그는 캔버스에 두껍게 발라낸 각기 다른 색조의 물감을 긁고 뜯어내는 독특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화단에서는 젊은 작가로서 이름깨나 알려진 화가였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에는 작가로서의 희열과 흥분,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연 개인전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화랑 돌아보던 그는 모든 그림들이 휴지조각으로 느껴지고, 위선의 허울을 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렇게 관수는 서울의 미술계를 떠나 인적 드문 산골로 내려간 옛 친구 청규를 따라 가지샛말에 둥지를 튼다. 청구를 통해, 근처 장승골에 살며 산속에 묻혀 수도사 같은 생활을 한다는 송 노인과 그녀의 딸 지희를 소개받는 관수. 학교를 통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한때 법조계에 몸을 담았던 송 노인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쌓은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지희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고, 예술에는 손을 놓았다던 청규가 도자기를 통해 여전히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예술행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