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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제1장 케네디 테이프 제2장 쿠바 미사일 위기의 전개 과정 제3장 엑스콤 비밀회의 에필로그 : 11월과 그 이후 결론 : 베일 벗은 케네디의 진면모 주석 주요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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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디의 보고를 받은 케네디는 분노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 작자가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그리고는 이날 아침 NSC 회의를 소집하라 고 지시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정찰 사진을 본 즉시 이렇게 외쳤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런 소련 개자식들.” ---p.54
회의가 시작되면서 방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합참의장이 운을 뗀다. “오늘 아침은 각하께서 합참 수뇌부의 말을 직접 들으실 좋은 기회라고 생각 합니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회의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주기라도 하듯 케네디 대통령은 합참의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곧장 자기 할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는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계속 횡설수설한다. “이문제에 대해 말 좀 어… 우선 어… 그 문제가 무엇 어… 적 어도 어…제가 보기에는, 어… 첫째 어…” ---p.127 “봉쇄와 정치적인 조치가 오히려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런 조치는 뮌헨에서의 유화 정책만큼이나 잘못된 방안입니다. … 제가 판단하기 에는 지금 당장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습니 다.” 이 순간, 자리에 참석했던 장군들 모두가 숨을 죽이면서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린 것이 틀림없다. 르메이의 발언은 군 최고통수권자에 게 조언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르메이는 당대의 겁쟁이를 상징하 는 최고의 비유, 즉 1938년 뮌헨에서 이루 어진 히틀러에 대한 유화 정책을 끄 집어내 대통령의 얼굴에 집어던진 것이다 ---p.128 르메이는 대통령을 거의 비웃는 듯한 태도로 내뱉는다. “다시 말해, 각하께 서는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습니다.” 케네디가 차갑게 되묻는다. “뭐 라고 했소?” 르메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한 말을 되풀이한다. “지금 아 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케네디는 신랄한 웃음과 함께 대꾸한다. “장군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소. 그것도 직접 말이오.” ---p.130 “머리에 별 단 작자들은 아주 유리한 입장에 있어. 말을 들어줘서 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나중에 살아남아 잘못을 지적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p.133 케네디는 “전쟁에 아주, 아주 가까이 갔어” 라고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피 어 샐린저와 에벌린 링컨 같은 백악관 근무자들은 가족 대피 방법에 관한 지침 을 받는다. 대통령도 영부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워싱턴을 떠나 있으라고 말해 둔 상태다. ---p.138 갑자기 러셀 상원의원이 대통령을 몰아붙인다. “각하, 저는 이런 상황을 가만 히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인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이보다 더 강력한 조 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보기에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미국이 최강대국인지 여부를 가늠할 갈림길 말입니다.” ---pp.158-159 “우리가 쿠바에 뛰어든다면, 발사 준비를 갖춘 쿠바 미사일의 발사 여부를 운 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도박을 정말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쨌든, 거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상황이 터무니없는 도박이라고 생각 합니다.” ---p.160 “어때 보여?” 로버트 케네디가 에두르지 않고 묻는다. “정말 골치 아프게 될 것 같아, 그치?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방법이 없어. 이 문제에 이런 식으로 나 온다면, 젠장! 다음번에는 어떤 개지랄을 떨까?” 케네디가 폭발한다. “아니, 다 른 방법이 없었어. 형이 탄핵됐을 수도 있었으니까.” ---p.189 번디가 대통령의 말을 자르면서 거칠게 반박한다. “나토를 비롯해서 우리와 동 맹을 맺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우리가 이 같은 거래를 원하는 것처럼 여기게 되면 아주 난처해질 겁니다.” ---p.278 “ U-2기가 격추되었습니다.” “ U-2기가 격추되었다고요?” 케네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다. “네. 격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맥나마라가 확답을 준다. “조종사가 죽었나요?” 로버트 케네디가 재촉한다. ---p.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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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대통령 서거 50주기,
그는 과연 어떤 지도자였을까? 편집된 기억이 아닌 녹음테이프를 바탕으로 케네디가 겪은, 그리고 인류 최악의 사건인 쿠바 미사일 위기의 진실을 밝힌다! “이 책은 케네디에 대한 온갖 종류의 거짓 신화를 벗겨내는 결정적인 기록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수퍼맨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모한 진격의 지도자도 아니었다. 불안전한 상황 인식과 사고의 틀을 가졌지만, 점차 피스메이커로 성장해 간 대통령이었다.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이 케네디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면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_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부총장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위기다.” _ 아서 슐레진저 2세, 미국 역사학자.『제왕적 대통령The Imperial Presidency』저자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뻔한 ‘13일’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 첩보기가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견했다. 이틀 뒤인 10월 16일, 케네디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 받고 비상대책기구인 엑스콤을 소집한다. 이후 13일 동안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뻔한 ‘13일’,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졌다. 냉전이 한창이었고, 미군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주둔해서 공산주의 세력과 대치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1949년 소련이 핵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핵 독점이 깨진 지 한참 후였다. 두 강대국의 충돌은 핵무기가 동원된 제3차 세계대전, 심지어 인류의 마지막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핵 확산 및 핵 테러리즘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때 전쟁이 벌어졌다면 “1억 명의 미국인과 그 이상의 소련인, 그리고 수백만 명의 유럽인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들어진 신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다행히 핵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두 지도자는 핵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을까? 사건이 끝난 뒤 각종 증언이 쏟아지고 〈10월의 미사일the Missile of October〉(1974)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특히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부 장관이던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암살되기 전『13일』이라는 회고록을 썼다(국내에는 2012년에 열린책들에서 번역 출간). 이 책은 젊고 용기 있는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의 동생이 소련의 핵 위협을 놀라울 정도의 냉철한 판단으로 절묘하게 막아낸 것으로 그리고 있다. 과연 이런 “영웅 신화” 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전대미문의 사초, 케네디 테이프 흥미롭게도 케네디 대통령은 '13일'의 진실을 알게 해줄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했을 때 케네디는 회의 자리에서 침공 계획을 지지한 사람들이 작전이 실패하자 말을 바꾼 사실에 불같이 화를 냈다. 이후 케네디는 자신의 집무실과 각료회의실에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녹음 장치를 설치했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케네디 테이프’ 가 만들어졌다. 저자 셀던 M. 스턴은 쿠바 마시일 위기를 담은 케네디 테이프를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해 독자들이 대화내용을 가급적 정확하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사건에 관여한 행위자들이 느꼈을 불확실성을 생생하게 묘사해, 소설과도 같은 스릴을 느끼게 해 준다. 녹음테이프가 말하는 케네디의 모습 피그스 만 침공 작전이 대실패로 끝난 뒤에도, 케네디는 카스트로를 끌어내기 위해 대규모 비밀전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진 데 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몫이 컸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일단 상황이 전쟁 일촉즉발까지 이르자 케네디는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했다. 이 기간 동안 케네디는 자문위원와 의회 지도자들의 호전적인 조언에 대해 거의 혼자서 맞선 경우가 많았다. 테이프에 따르면, 회고록『13일』에서 자문위원들 가운데 “절반 중 한 명이 대통령이었다면 전 세계가 파멸적인 전쟁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컸다” 라고 말한 동생 로버트 케네디마저 매파에 가까운 입장을 취한 것으로 드러난다. 케네디는 각종 군사적 조치가 내포하고 있는 우려스러운 의미를 확실히 이해했다. 핵전력에 있어서 미국이 소련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지만, 핵전쟁에서 승리가 의미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동생을 밀사로 보내 미사일 맞교환이라는 밀약을 하게하고, 전직 유엔 관리를 통한 이면 전략까지 준비해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핵전쟁을 막기 위해 자신의 적대 행위를 정치력과 지적 능력을 모두 동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