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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5
부엉이와 밝은 눈을 가진 아이·11 도성에 날아든 부엉이·13 왕자의 난과 부엉이·18 너는 낮을 지배하라! 나는 밤을 지배할 것이니·28 밝은 눈을 가진 아이·39 죽은 신덕왕후와 싸우다·43 한양을 다시 만들다·52 경복궁의 불길한 기운·57 물이 마르고 임금이 갇히는 흉한 터·60 도망 다니는 임금·68 집이 많아도 갈 곳이 없다·74 둔갑법을 써서 귀신을 속여라!·81 경복궁을 지켜라!·90 불길한 기운과 맞서 싸우는 두 임금·99 부엉이와 계유정난·113 계유정난을 예고한 부엉이·115 귀신놀이를 즐긴 세조·123 애꾸눈의 목효지·130 예언대로 전개되는 역사·139 333년 뒤 단종의 한풀이·150 궁궐 귀신이 된 두 여인·156 귀신이 흔하던 시대·167 성안에 요귀가 많습니다!·170 귀신들린 임금·179 붉은 기운으로 나타나는 연산 귀신·186 밤마다 우는 가마·192 괴물이냐? 귀신이냐?·197 임금이 죽은 다음 날 또 나타난 괴물·204 창경궁과 통명전·215 경복궁을 피하기 위해 만든 궁궐·217 자손이 귀신에게 해를 당할 곳·222 창경궁에 어린 두 여인의 한·229 궁궐 귀신에게 쫓긴 광해군과 인조의 콤플렉스·235 귀매들이 날뛰는 통명전·244 주요 사건 일지·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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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궁궐귀신을 물리치는 ‘구나驅儺’ 행사를 하라. 방상씨 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면서 악귀를 쫓는 놀이를 벌여라.” 방상씨는 악귀를 쫓는다는 신이다. 중국에서 행하던 귀신 쫓는 놀이의 일종인데 태종은 이것을 연말이나 연초에 궁궐에서 꼭 거행하도록 했다. 검은 옷이나 붉은 치마를 입은 방상씨는 눈이 네 개 그려져 있는 가면을 쓰고 곰 가죽을 둘러쓴다. 그리고 행렬 맨 앞에서 창과 방패를 들고 도망가는 귀신을 더 멀리 쫓는 몸짓을 한다.
--- p.50 태종은 자신의 살기등등한 기운이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정이 북악에서 내려오는 좋지 않은 기운 때문이라고 자주 한탄했다. 집이 많아도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바로 태종이었다. 경복궁이 싫어 창덕궁을 만들었지만 그곳에서도 거처하지 못하고 수강궁에서 살다가 낙천정에 머물렀으며, 그곳도 불안해지자 풍양궁과 연희궁 등지로 옮겨 다녔다. 이곳저곳에 자신이 갈 곳을 만들었지만 그 어느 곳도 편치 않았다. 태종은 언제나 떠다니는 구름처럼 그렇게 세상을 떠돌았다. --- p.80 밤이 깊어지자 원경왕후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헛소리를 했다. 세종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당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한두 명의 귀신이 몸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항상 곁에 두게 하세요. 그리고 오늘, 달이 가장 밝은 자정 무렵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직접 들고 북쪽 하늘 방향으로 절을 하세요. 그럼 귀신들이 두려워 물러날 겁니다.” --- p.82 신덕왕후 만큼이나 깊은 한을 가진 또 다른 여인이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다. 문종에게 유일한 아들을 선사하고 죽은 여인. 자신의 아들들이 대대손손 임금의 자리를 이어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폭군으로 변한 시동생에게 아들과 친정식구들이 처참하게 죽었다. 여인은 가해자의 꿈에 생생하게 등장해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많은 야사에서 그녀는 궁궐 귀신으로 등장한다. 1468년(세조 14년) 5월 27일, 세조가 죽기 세 달 전의 일이다. 환관 백충신이 경복궁 교태전에서 벼락을 맞았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세조는 이 벼락 소리에 놀라, 잡힌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죽음을 앞둔 세조는 형수(현덕왕후)의 모습이 자주 출몰하는 경복궁을 흉가로 규정하고 세자에게 명했다. “이제 누구도 경복궁에 들어가지 말라! 그곳에는 돼지 같은 가축이나 키워라!” --- p.159 17세기 후반 유교이념이 공고해지면서 궁궐의 귀신 이야기나 민가를 떠도는 귀신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 p.169 “귀신을 혼낸다? 역시 영의정의 담력은 남다르군! 내 영상의 집에서 귀신을 보고 싶다. 하긴 얼마 전 내 침실 앞에 부엉이가 앉아서 마치 아이처럼 우는데, 내시들이 쫓으려 하는 것을 말리고 가만히 쳐다보았지.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무엇이 궁금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니 그동안 흉하게 여겼던 마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귀엽게 생각될 정도였네. 역시 세상의 귀신들이란 사람 마음에 있는 것 아닌가? 마음이 약해지면 그곳에 귀신들이 거주하는 것 아닌가?” --- p.175 광해군은 창경궁 뿐 아니라 창덕궁도 꺼려했다. 단종과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난 곳이 바로 창덕궁이었기 때문이다. “요귀의 재앙이 지금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번 창덕궁 동궁에서 벌어진 요괴스런 변고 때문에 이제 다시 창덕궁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가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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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 많아도 갈 곳이 없다
궁궐귀신에게 쫓겨 다닌 조선의 왕들 조선의 왕들은 왜 그토록 자주 궁궐을 옮겨 다녔을까?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미신에 불과한 환영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의외로 귀신이나 기이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조선왕조의 정사인 『실록』에까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당시에는 왕의 신변을 위해하는 중요한 징조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귀신이나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조선왕실의 이면사를 재미있게 재구성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궁궐을 옮겨 다닌 사실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었으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귀신, 도깨비, 부엉이 울음소리를 못 견뎌 궁궐을 새로 짓고 옮겨 다닌 것이다. 개국 초기에서부터 거의 400여년 동안 궁궐귀신에게 쫓겨 다닌 조선의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지 않은 왕실의 역사, 궁궐의 변천사, 사회적 현상들을 보다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조선 개국 초기 한양의 궁궐이었던 경복궁은 귀신의 출몰로 인해 거의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의 말기에 대원군에 의해 겨우 중건되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태종 이방원은 죽을 때까지 귀신에 쫓겨 다녔다. 또한 끊임없는 질병에 시달렸던 세종은 복숭아나무를 맹신했으며,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는 주술에 걸린 듯 귀신놀이를 즐겼다. 폭군 연산군은 영매와 다름없는 기이한 행동들을 했으며, 광해군은 창경궁과 창덕궁을 두려워 해 별궁을 지어 줄곧 거처를 옮겨 다녔다. 너무 노골적인 특이한 사건들이기에 역사의 전면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기이한 역사적 사실들이며, 역사와 권력의 배경이 된 시대적 상황을 여러 방식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근거들이기도 하다. 책의 말미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귀신과 관련된 사건일지가 연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