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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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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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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INTRODUCTION 인간 본성의 가장 창조적인 관찰자 아서 래컴의 삽화와 함께한 삶
CHAPTER 1 내 취향은 처음부터 환상적이고 공상적
CHAPTER 2 이 신실한 친구와 함께하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CHAPTER 3 하늘에 초승달을 걸고 그믐달은 잘라서 별을 만들다
CHAPTER 4 더 부드럽게 명멸하는 상상력의 빛
CHAPTER 5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CHAPTER 6 다채로운 빛깔의 용에게 짓밟혀 부서지고 위협당하는 래컴 공주
CHAPTER 7 모두 흐―은들렸고, 떠―얼렸다
CHAPTER 8 모두 좋은 밤이 되기를 아서 래컴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여

인쇄 용어
출처 및 자료
아서 래컴 연보
아서 래컴의 삽화가 실린 책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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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

제임스 해밀턴

관심작가 알림신청
 

James Hamilton

큐레이터이자 강사이며 작가이기도 한 제임스 해밀턴은 1966년 맨체스터대학교에 입학, 기계공학을 공부했는데, 학위는 미술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급진적인 방향 전환은 그에게 런던의 예술과 과학,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큐레이터로서 제임스 해밀턴은 1970년대부터 수십 개의 미술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그중에는 빌헬름 렘브루크, 에드먼드 뒤락, 덴마크 쇼-현대 회화, 요크셔의 뉴 아트, 헬렌 프랑켄탈러와 J. M. W. 터너 등이 있다. 아서 래컴과 관련한 것으로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1년 동안 셰필드, 브리스톨, 빅토리
큐레이터이자 강사이며 작가이기도 한 제임스 해밀턴은 1966년 맨체스터대학교에 입학, 기계공학을 공부했는데, 학위는 미술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급진적인 방향 전환은 그에게 런던의 예술과 과학,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큐레이터로서 제임스 해밀턴은 1970년대부터 수십 개의 미술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그중에는 빌헬름 렘브루크, 에드먼드 뒤락, 덴마크 쇼-현대 회화, 요크셔의 뉴 아트, 헬렌 프랑켄탈러와 J. M. W. 터너 등이 있다. 아서 래컴과 관련한 것으로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1년 동안 셰필드, 브리스톨,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등에서 개최한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그는 1992년부터 2013년 은퇴할 때까지 포츠머스, 웨이크필드, 셰필드, 리즈, 버밍엄 대학교의 미술 컬렉션 및 전시 프로젝트 큐레이터이자 명예회원이었다.
강사로서 그는 영국과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미국에서 게인즈버러, 터너, 패러데이 등을 통해 18~19세기 영국 문화에 관해 강의했으며, BBC 라디오 및 BBC 텔레비전에서 제작한 J. M. W. 터너의 예술에 관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또한 옥스퍼드대학교 성 안토니 칼리지의 수석 연구원(Alistair Horne Fellow)이기도 했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 예술에 관한 평론을 다수 썼으며 《더 타임즈》, 《파이낸셜 타임즈》 및 여러 문학 잡지에 서적 및 전시 리뷰를 기고했다. 회화와 판화에 관한 그의 저술은 예술, 문학 및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한 특정 예술가에 관한 탐구가 주를 이루었다. 대표 저서로는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James Tait Black Memorial Prize) 후보에 올랐던 TURNER : A LIFE와 FARADAY : THE LIFE, 2014년 《선데이 타임즈》가 올해의 아트북으로 선정한 A Strange Business: Making Art and Money in nineteenth-century britain가 있으며, 그 외 마이클 패러데이, 윌리엄 히스 로빈슨 등의 전기가 있다.

그림아서 래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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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Rackham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영국의 삽화가이다. 12자녀 중 한 명으로 런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열여덟 살 되던 해 웨스트민스터 화재보험회사에서 하급 사무원으로 근무하며 램버스 예술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공부하였고, 사무원 일을 그만두고 1893년부터는 《웨스트민스터 버짓》에서 기자 및 삽화가로 근무하였다. 1903년 이디스 스타키와 결혼하였으며, 1908년 딸 바버라를 낳았다. 1906년에는 밀라노 국제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11년 바르셀로나 국제전시회에서도 역시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1914년에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영국의 삽화가이다. 12자녀 중 한 명으로 런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열여덟 살 되던 해 웨스트민스터 화재보험회사에서 하급 사무원으로 근무하며 램버스 예술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공부하였고, 사무원 일을 그만두고 1893년부터는 《웨스트민스터 버짓》에서 기자 및 삽화가로 근무하였다. 1903년 이디스 스타키와 결혼하였으며, 1908년 딸 바버라를 낳았다. 1906년에는 밀라노 국제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11년 바르셀로나 국제전시회에서도 역시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1914년에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아서 래컴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시작된 아동서적의 황금기 동안 동화와 판타지 문학을 위한 독특하면서도 잊히지 않는 이미지들을 창조했다. 1900년 『그림 동화집』 삽화를 맡게 되었고, 이 책의 성공으로 전문 삽화가 반열에 올랐다. 1905년에는 『립 밴 윙클』 삽화를 맡으며 에드워드 시대 최고의 삽화가로 명성을 굳혔다. J. M. 배리의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90여 편의 책에 삽화를 그리는 동시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성인을 위한 삽화 작업도 했는데 이 작품들은 비평적, 상업적으로 최고 성공작에 속한다. 1927년 출판과 함께한 뉴욕 전시회에서는 열광적 환호를 받았다. 만년에 완성한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래컴이 깊은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조지 크룩생크, 존 테니얼, 오브리 비어즐리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확실한 선, 부드러운 색조, 서로 얽힌 나뭇가지와 거품이 일어나는 파도, 구불구불한 덩굴, 의인화된 나무들 같은 정교한 배경 속에 도깨비와 님프, 거인과 악령, 바다용과 요정들이 가득한 신비한 세계를 창조했다. 래컴은 동시대는 물론 후대 삽화가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특히 디즈니 스튜디오의 만화영화 〈백설공주〉에는 그의 양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한 장면들이 다수 담겨 있다. 래컴은 1939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완성한 지 몇 주 만에 암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마지막 그림은 두더지와 물쥐가 소풍을 가기 위해 보트에 짐을 싣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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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경제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영어 그림책 및 아트북 전문 서점 웬디북에서 일했고 《미스테리아》 등에 책과 음식에 대한 글을 기고 중이다. 에세이 『내 식탁 위의 책들』을 펴냈으며, 옮긴 책으로 『미식가의 어원 사전』 『아폴로의 천사들』 『문학을 홀린 음식들』 『피의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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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0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1110g | 167*235*34mm
ISBN13
9791197894527

책 속으로

래컴의 삽화는 10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아이와 어른을 매혹하는 한편, 겁에 질리게도 만들었다. 사후 80년이 지난 지금도, E. V. 루카스가 말한 ‘우아함과 기괴함’의 조합이 만들어낸 특별한 ‘전율’은 힘을 잃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인류가 경험했고 아마도 늘 경험할 감정이자 특성인 선과 악, 쾌락과 고통, 안락과 비참, 아름다움과 흉측함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래컴의 삽화가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INTRODUCTION 인간 본성의 가장 창조적인 관찰자 아서 래컴의 삽화와 함께한 삶」중에서

아서 래컴이 정원을 누릴 만큼 성장했지만 그 신비와 고요를 경이로워할 만큼 어렸을 즈음에도, 오래된 주목과 거대한 그늘을 드리운 느릅나무들은 제멋대로 웃자라 있었을 것이다. 후일 아서의 전매특허가 될 혹, 옹이, 뒤틀린 뿌리를 가진 기형의 말라죽은 나무들도 존재했을 것이다. 아이라면, 특히 자신이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것에 끌린다는 걸 인정한 아이라면 이 이상한 정원의 매력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귀신들린 악마의 나무를 천 장씩 스케치하게 만든 게 이곳이었을까? 아서가 결국은 전 세계 무수한 아이와 어른의 상상과 글과 그림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준 경력을 시작한 곳이 여기였을까? 래컴은 늘 코크니를 자처했고, 1934년 〈자화상〉에선 자신을 ‘템스강 이남의 코크니’로 묘사했다. 그는 자신의 치밀한 관찰력, 기괴한 것에 대한 집착, 유서 깊은 나무들에 매혹당하는 것까지 그런 혈통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CHAPTER 1 내 취향은 처음부터 환상적이고 공상적」중에서

“산마루를 향해 협곡을 올랐는데 한 시간 동안 느긋하게 걸은 후 날벌레들에게 패퇴했다. 온갖 종류와 크기의 거대한 야수와 조그마한 야수 중 제일 무시무시한 녀석은 파란 병처럼 생겼고 길이는 2.5센티미터 이상에 배 부분은 뾰족했다(거의 꼬리처럼 튀어나왔다). 이 야수는 내 프리즈 코트가 동물 모피라고 생각했는지 최대한 세게 쏘았지만 너무 두꺼워서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애들 어머니[애니 래컴]의 말에 의하면 내 등에 가끔 20~30마리의 날벌레가 동시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 이미지는 『걸리버 여행기』 1909년 판 중 거대말벌 여섯 마리와 사투하며 고전하는 걸리버 삽화에서 재차 수면으로 올라온다. 래컴은 특히 부모에게 헌정하고 선물한 『걸리버 여행기』의 헛장에 거대한 손이 소인국의 말벌인 인간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리는 것을 그리기도 했다. 이런 사적인 언급은 산비탈의 날벌레 사건과 『걸리버 여행기』의 말벌 삽화 사이의 확실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CHAPTER 2 이 신실한 친구와 함께하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중에서

“내가 정장을 차려입는 세련된 삶에 헌신하고 있다고는 절대 생각 안 해. 아버지나 모리스 같은 지위에는 미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근심과 의혹은 그보다 많지. 나 같은 직업은 일을 멈추는 순간 당연히 수입도 멈춰. 내 생각에 우리 런던 사람들은 가끔은 정말 응석받이야. 그냥 뭔가 꽤나 쉬운 일을, 꽤나 잘, 꽤나 정확히 10시에서 4시까지 하기만 하면 생계가 꽤나 잘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잖아. 삶과 연금이 뒤따르리라고 확신하면서 말이야. 예를 들어 아버지는 내가 자주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았어. 주문받은 일은 전부 해치웠는데, 더 해야 할 일은 수중에 하나도 없고, 일을 더 받을 방도도 거의 없는 경우 말이야. 가끔 한두 주 정도씩은 아주 우울해지는 걸 피할 수 없어. 일거리라는 게 전부 다 나를 떠난 것처럼 보이거든. 그렇다고 나태하게 앉아있는 것은 무용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옛날 연줄들과 부지런히 연락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거나, ‘요행수를 바라고’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말이지. 그럼에도 몹시 비관적일 때가 자주 있어.”
---「CHAPTER 3 하늘에 초승달을 걸고 그믐달은 잘라서 별을 만들다」중에서

이 단정하고 정확한 남자는 그리기 제일 편하고 늘 준비된 얼굴이라는 이유로 이미 자화상을 종종 작업물에 넣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이미지는 후대의 작가 및 기자들에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그의 기벽이 이런 이미지를 강화했다. 월터 스타키는 고모부가 “낡은 푸른 양복과 헝겊 슬리퍼 차림으로, 팔레트를 한 팔에 얹은 채 손에 쥔 붓을 휘두르며 작업실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것”을 봤을 때 고블린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 래컴 스스로 만든 시대착오적 이미지는 타인이 그를 보는 방식에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월터 스타키처럼 어린 독자가 그의 그림 속에서 노움으로 그려놓은 화가의 자화상을 본다면 화가가 노움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CHAPTER 4 더 부드럽게 명멸하는 상상력의 빛」중에서

『아일랜드 동화집』으로 래컴은 아일랜드 문학 삽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스티븐스의 이야기와 씨름하도록 그를 설득한 사람은 삽화를 그리겠다고 동의할 때까지 고모부에게 ‘평화’를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월터 스타키였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스티븐스는 구전과 게일어 문헌으로는 존재했지만 접근하기 쉬운 인쇄본은 없는 이야기들을 시적으로 재해석해 아일랜드판 『천일야화』를 창조하려고 시도했다. 래컴은 이 난제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조카의 등쌀은 그럴 만했음이 밝혀졌다. [더블린 인디펜던트]는 이 동화집을 특히 따뜻하게 환영하며 말했다. “우리가 잉글랜드 이야기를 음미하며 읽는 것은 잉글랜드적 이미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이야기에 대한 이미지가 부족한 것은 지금은 이름만 있는 것에 색채와 형태를 줄 그림이 없기 때문이다. 래컴의 그림 중 몇몇은 순수한 시이고, 독자가 꿈을 꾸게 만든다.”
---「CHAPTER 6 다채로운 빛깔의 용에게 짓밟혀 부서지고 위협당하는 래컴 공주」중에서

래컴 경력에는 늦깎이의 반복이 두드러진다. 그는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최초의 대중적 성공은 서른여덟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바버라는 마흔이 되었을 때 태어났고, 대부분의 사람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인 예순에 일을 계속하기 위해 출판사들의 지지를 얻으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미국에 갔다. 최후의 10년도 황혼의 반성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책 작업에 있어 제2의 위대한 창조의 시기였고, 예순여섯에는 무대 디자인에도 창조성을 발휘했다. 타고난 허약함과 막 시작된 병, 이디스의 거동 불가에도 불구하고, 아서는 어떻게든 원기와 기백을 찾아내 새집과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했을 뿐 아니라, 일찍이 그의 위대한 시기였던 1905~1916년의 책들 못지않게 일관되고 창조적인 일련의 책들을 마지막까지 해냈다.
---「CHAPTER 7 모두 흐-은들렸고, 떠-얼렸다」중에서

임종이 빠르게 다가오는 판국에도 래컴은 복제 공정을 걱정했고 여전히 삼색인쇄 사용을 고집했다. 그의 육신은 거의 활력을 잃었지만 정신은 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사망 19일 전 메이시에게 쓴 마지막 편지는 그가 현실을 실감하기 시작함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필멸에 대한 인정과 상황에 대한 늙은 전문가의 접근도 드러낸다. “선생님에게 지난번 보낸 편지에서 앞으로 가능할 것 같은 책들에 관해 이야기했죠.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 가능성에 회의적입니다. 침대에 있을 때도 조금은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고려 중인 책을 작업하더라도, 제가 그려야 할 것을 먼저 작업한 후 선생님이나 다른 출판사에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그림 네 점을 침실에서 그렸고, 선화들은 사실상 모두 침대에서 작업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제가 이제껏 그린 여느 작업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래컴이 출간을 못 본 채 사망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삽화에는 그가 늘 탐내던 의뢰에서 마침내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라도 하는 것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약해지는 시력 때문에,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삼색인쇄 공정의 높은 색조 복제 능력에 대한 새로운 신뢰 때문에, 래컴은 전보다 훨씬 더 밝고 맑은 색을 사용했다.

---「CHAPTER 7 모두 흐-은들렸고, 떠-얼렸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요정과 마녀, 괴물과 용, 그리고 말하는 나무 등 상상 속 대상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신화와 우화 그리고 동화는 물론 셰익스피어 등 고전에 이르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한 아서 래컴의 ‘삽화와 함께한 삶’


현대 판타지 문학의 대가를 꼽으라면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 삽화에서라면 어떨까? 아마도, 아니 분명 영국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을 1순위로 꼽을 것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1890∼1930년대 활동한 래컴의 그림은 1954년 출간된 『반지의 제왕』보다 시대상으로 앞서, 톨킨의 캐릭터 묘사에도 많은 부분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에 묘사된, 인간계를 제외한 수많은 생명체의 기괴하고 신비한 형상은 래컴의 탁월한 일러스트레이션 안에 이미 존재해 있던 것이다.

신화와 요정 이야기, 우화, 민간전승 등 신비하고 초월적인 이야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래컴의 그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초기 작품은 다소 평범했지만 워싱턴 어빙의 소설 『립 밴 윙클』 삽화를 통해 래컴은 일약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상한 산에서 한잠 자고 일어나니 20년이 지나있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낸 래컴은 급격한 시대변화에 혼란을 감추지 못하는 수염투성이 립 밴 윙클의 모습을 신비한 난쟁이들의 세계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 사이에 교차시킴으로써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했다.

우아하고 미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이 화면의 흐름을 주도하는 래컴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장 빛날 때는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 『걸리버 여행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등 독자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과 만났을 때다. 이 만남은 특히 『운디네』, 『니벨룽의 반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요정과 마녀와 난쟁이, 괴물과 용, 그리고 비틀어진 나무 인간 등 상상 속 생명체와 의인화된 생물체가 수없이 등장하는 고전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탁월한 상상력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을 재창조한 그의 삽화가 문자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원작에 더욱 강렬한 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머릿속에 특별한 기발함을 가졌다. 인간의 어떤 특이한 형상을 괴물 수준까지, 그렇지만 그 괴물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과장하는 능력 말이다. _「하늘에 초승달을 걸고 그믐달은 잘라서 별을 만들다」 중에서

고목이 살아나 말을 하고, 날개 달린 요정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가 하면, 앨리스와 카드의 여왕이 말다툼하고, 영원한 어린아이 피터 팬이 요정들과 뛰노는 모습을 작품만큼이나 아니 작품보다 더 신비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가끔은 더없이 기괴하게 묘사한 아서 래컴의 삽화는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없는 감동과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그중에서도 설화를 비장한 서사시로 승화시킨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그린 삽화들은 글과 함께 어우러진 그림의 힘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더없이 잘 보여준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성된 20세기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삶과 작품세계

현대 북 일러스트의 기원이자 20세기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룬『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는 큐레이터이자 강사이며 작가이기도 한 제임스 해밀턴이 아서 래컴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연구를 발전시킨 결과물로, 래컴이 남긴 편지와 일기는 물론 래컴 그림에 대한 당대 수많은 서평과 해설, 딸 바버라와 조카 월터 스타키의 증언, 그리고 그와 시대를 함께 했던 친구와 지인들의 증언을 철저한 고증과 함께 종합해 쓴 책이다.

고모부를 보면, 앤드루 랭의 『푸른 요정의 책』에서 읽은 코볼트가 떠올랐다. 하지만 켄싱턴 공원에서 화가가 팔레트와 붓으로 무장하면, 내 눈에 비친 고모부는 요술지팡이로 한 번 스칠 때마다 나의 상상을 엘프, 노움, 레프리콘으로 가득 채우는 마법사가 되었다. 그는 거대한 둥치를 가진 위풍당당한 나무 중 한 그루를 내게 응시하게 하고는 자신이 삽화를 맡았던 그림 동화에 대해, 요정의 나라에서 뿔나팔을 부는 난쟁이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다. _「하늘에 초승달을 걸고 그믐달은 잘라서 별을 만들다」 중에서

래컴은 사회적, 재정적 안정을 중시하는 아버지 밑에서 재정적 독립을 위해 열여덟 살 되던 해 웨스트민스터 화재보험회사에서 하급 사무원으로 근무해야 했고, 뒤늦게 삽화가로서 인정받은 후에도 재정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에 일을 따내기 위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미국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압박의 결과는 작품엔 축복을 내리는 열정이 되었다. 래컴은 임종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최상의 인쇄 품질을 걱정하며 출판업자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 작업을 의논했는데, 이런 열정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서 잉글랜드 예술의 ‘황금 같은 오후’를 보여주는 절대 잊지 못할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좀 더 사실적이고 정확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래컴의 시선은 늘 포즈를 취한 모델을 향해 있었고, 고품질의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이미 작품을 사들인 수집가들에게 작품을 손봐도 괜찮겠냐는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썼으며, 그림 동화에 나오는 고블린 중 한 명이 되어 “낡고 푸른 양복과 헝겊 슬리퍼 차림으로, 팔레트를 한 팔에 얹은 채 손에 쥔 붓을 휘두르며 작업실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부엌 장면의 모델은 래컴의 부엌과 요리사였다. “접시는 저분이 던질건가요?” 제인이 래컴에게 물었다. “오 아니야, 이미 깨뜨렸어.” 그가 대답했다. 세세한 부분이 정확한지 확인하느라 그가 이미 접시 몇 장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_「더 부드럽게 명멸하는 상상력의 빛」 중에서

제임스 해밀턴의 수고의 결과가 이 책의 가치를 담당하는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아니 더 큰 축은 200여 컷이 넘는 아서 래컴의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그림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그림 말이다. 래컴이 삽화를 그린 책들은 단 한 번도 완전히 절판된 적이 없지만, 그 수많은 책에서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그림과 자료를 『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에서는 만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바탕에 컬럼비아대학교 희귀본 도서관 아서 래컴 컬렉션, 필라델피아 공립도서관 희귀본 부서, 런던 왕립미술원 도서관, 왕립수채화협회, 루이빌대학교 아서 래컴 기념 컬렉션 등에서 제공해준 래컴의 그림과 래컴에 관한 희귀 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서 래컴은 정작 모국인 잉글랜드에서는 훈장이나 작위를 한 번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공공 컬렉션에 그의 작품이 전시된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래컴 본인의 말마따나 ‘나를 먹고살게 만든’ 나라인 미국에서는 그의 원화를 공공 자료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특히 뉴욕, 필라델피아, 오스틴, 루이빌의 도서관에는 많은 작품이 존재한다.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 것도, 1967년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탄생 100주년 전시회로 그를 기린 것도 미국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도 래컴의 업적에 메달과 훈장을 수여했는데, 정작 영국에서는 1979년이 되어서야 셰필드, 브리스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등에서 1년간 이 조용한 천재의 전시회가 열렸다. 래컴은 “어린이 방에서 생을 다하는 것은 내 책들이 도달할 가장 바람직한 종말”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당대는 물론 이후 세대 어린이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의 영향력은 이후 문학 작품은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 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에는 원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다섯 편의 그림을 추가하였다. 『안데르센 동화집』의 「벌거벗은 임금님」 삽화 두 점과 「집요정과 식료품장수」 삽화 한 점, 그림 형제 동화인 「라푼젤」 삽화 한 점, 그리고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서 두더지와 물쥐가 소풍을 가기 위해 보트에 짐을 싣는 장면을 묘사한 아서 래컴의 마지막 그림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둔 1907년, 영국 출판계는 전운에 휩싸였다. 1865년 출간 이래 맥밀런 출판사가 독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영국 내 출판권이 만료되기 때문이었다. 어린이책 역사상 가장 유명한 텍스트의 재출간에 스무 곳 이상의 출판사가 달려들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흔히 어린이책의 황금기라고 한다. 인구 증가와 문맹률 감소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린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이 부상했고 마침 때맞춰 종이 가격과 인쇄비도 하락해 저가 도서 위주인 어린이책 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린이에게 교훈이 아닌 재미를 주기 위한 책들이 대거 쏟아지며 어린이 문학이 독립된 장르로 성립, 이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이 시대를 연 책이었다.

새로운 앨리스에 도전한 삽화가들의 경쟁상대는 서로가 아니었다. 초판의 삽화가 존 테니얼은 작가인 루이스 캐럴 못지않은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 누구의 앨리스가 가장 훌륭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애초에 테니얼이 아닌 다른 삽화가의 앨리스가 왜 필요하냐였다. 평론가와 대중의 견해는 완벽히 일치했다. “화가들 각자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고 내 알 바 아니다.”

이 불가능한 도전에서 아서 래컴은 단 한 명의 생존자였다. 혹독하게 비판받은 것은 다른 삽화가들과 마찬가지였지만 놀랍게도 논란은 책 판매를 오히려 부채질했다. 더 놀라운 것은 21세기의 대중도 여전히 래컴의 앨리스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랜돌프 칼데콧, 월터 크레인, 케이트 그리너웨이 등 어린이책의 황금기를 이끌어간 위대한 예술가 중 단 한 명만 꼽는다면 단연 아서 래컴이다. 그의 책들이 완전히 절판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일부는 21세기에 그려진 동일한 책보다 더 사랑받는다. 어째서 어떤 예술은 살아남고, 어떤 예술은 잊히는가? 『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는 이 난해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추천평

“래컴의 작품이 이렇게나 생명력이 긴 것은 그의 진정한 내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생명체들이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 Guillermo Del Toro ([판의 미로] 영화감독)
“하늘이 빙빙 돌았다. 순수하게 ‘북유럽적인 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거대하고 투명한 공간들이 북유럽 여름의 끝없는 황혼 속에 대서양 위에 고독하고 혹독하게 매달려 있는 환상에 시달렸다.” - C. S. 루이스 (『나니아 연대기』 작가)
“그림 동화의 삽화가들은 보통 이야기의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을 선택해 삽화로 그린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소한 것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이야기를 쌓아 올리기를 원했다. 드라마를 만들려면 끓는 솥을 그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여자들이 휘젓고 있을 필요는 없다. 바로 아서 래컴이 할 법한 방식이고, 그의 그림 동화는 대단히 훌륭하다.” - 데이비드 호크니 (화가)
“래컴의 책은 나의 인생관을 통째로 바꾸었다, 비록 인생까지는 아닐지언정! 그런 그림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나는 그 책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생명을 얻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나의 사랑이 돌아왔다. 영감이 너무나 솟구친 나머지 즉시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 리즈베트 츠베르거 (삽화가)
제임스 해밀턴은 한 근면한 런던내기의 놀라운 경력을 기록한다. … 그의 생산물은 수백만의 어린이들에게 기쁨을 준 끝에 이제는 전 세계 수집가들의 다툼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매 페이지가 판타지와 요정의 나라에 대한 래컴의 절묘한 재현을 충실하게 복제해 글과 매끄럽게 어우른 출판사에 대한 헌사이다.
- 데일리 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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