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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대천사 생쥐스트
프랑스대혁명의 젊은 영웅
닫집 2023.01.06.
원제
Saint-J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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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 머리에·07

어린 시절 _1789. 7. 14. 바스티유 습격사건

생쥐스트의 어린 시절·20 / 수도회 기숙학교 생활과 파리 상경·21 / 수감생활·29 /?
바스티유 요새 함락 현장에서·33

로베스피에르와 만남 _1789. 6. 20.

바렌 사건텃밭에서의 선거 운동·46 / 공화파 주민과 다진 유대·47 /
조국의 제단 앞에서·51 /?로베스피에르와 편지로 맺은 인연·52 / 외로운 글쓰기·54 /?
국왕의 도피와 로베스피에르와의 만남·57 /국민공회 의원 생쥐스트·63
파리 시절 _1792. 9. 2.~7. 27. 국민공회 의원
다락방의 밀담·73 / 절대로 부패할 리 없는 로베스피에르·75 /
청렴한 혁명가의 의지를 다지며·82 /?탕플요 새에 감금된 왕과 왕비·85 / 혁명의 참뜻·92 / 국왕 처형·95 / 최고 실권자 생쥐스트·101 /?공안위원회의 공포정치·109

알사스의 위기 _1793. 5. 30.~12. 27. 공안위원회 위원

군사 전술을 바꾼 생쥐스트·118 / 혁명군의 개혁·124 / 단두대의 수호천사·127 /?
음모의 지뢰밭 스트라스부르·134 /혁명 과격파의 준동·141 / 승전가도·145 /
슈나이더 사건·148 /?진정한 야전 사령관·154

대혁명의 고비 _1793. 7. 13.~1794. 3. 6. 국민공회 의장

혁명정부 전복의 위기·159 / 국민공회 의장 생쥐스트·173 / 토지개혁·175 /
빈곤 퇴치의 영원한 꿈·197 /?교육사상·185

죽음의 대천사 _1794. 3. 24.~4. 5. 에베르와 당통의 죽음

혁명과 반혁명의 폭력·191 / 혁명 동지들의 부패·196 / 고독한‘ 죽음의 대천사’·199 /?
긴박한 공안위원회·201 / 당통의 죽음·204

북동부 전선에서 _1794. 4.~6. 26. 플뢰뤼스 전투

벨기에 전선의 분전·211 / 로베스피에르와의 갈등·216 / 플뢰뤼스 전투의 대승·219

대천사의 희생 _1794. 7. 27. 테르미도르 반동

승전보·225 / 지친 로베스피에르·227 / 파국의 전조·233 /
로베스피에르를 배신하지 않은 생쥐스트·239 /너무 빨랐던 운명의 시간·240 /
마지막 결전·246 / 내전을 막으려는 결단·252 / 혁명광장에서 맞은 최후·257

옮긴이 글·261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파리·266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프랑스와 주변 나라·268

저자 소개2

랄프 코른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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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Korngold

랄프 코른골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암스테르담에서 살면서 17세 때부터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1903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08에 아메리카 사회당에 가입했다. 1914년에는 시카고에서 『미국 사회주의자』의 편집을 맡고 이후 서기장을 지냈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계를 떠나 식기류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나서 글쓰기에 전념했다. 1924년부터 프랑스 남부 코트 다쥐르 해안에 정착해 혁명기의 자료를 조사하고 집필에 몰두했다. 경제 대공황이 터지자 1930년에 시카고로 돌아갔다가 3년 뒤 프랑스로 다시 왔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베르나
랄프 코른골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암스테르담에서 살면서 17세 때부터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1903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08에 아메리카 사회당에 가입했다.
1914년에는 시카고에서 『미국 사회주의자』의 편집을 맡고 이후 서기장을 지냈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계를 떠나 식기류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나서 글쓰기에 전념했다. 1924년부터 프랑스 남부 코트 다쥐르 해안에 정착해 혁명기의 자료를 조사하고 집필에 몰두했다. 경제 대공황이 터지자 1930년에 시카고로 돌아갔다가 3년 뒤 프랑스로 다시 왔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베르나르 그라세, 1937)를 파리에서 프랑스어판으로 출간했다. 『생쥐스트』는 역사에 짓눌려 있던 혁명가 생쥐스트의 참모습을 보여준 거의 첫 번째 대중적 전기였다. 코른골트는 두 편의 전기를 통해 ‘공포정치’의 원흉이라는 이미지와 편견을 해소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후 흑인해방운동가의 일대기 『시티즌 투생』(1944)과 『나폴레옹의 마지막 몇 해, 세인트헬레나 억류 시절』(1959)을 발표했다. 1940년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하자 또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산타바바라에서 몇 권의 전기를 마무리하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서울대 미술대학과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부, 파리1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영남대학교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집필하며 번역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앙리 포시용의 『로마네스크와 고딕』,『후기인상주의의 역사』,『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그는 누구인가?』등의 책을 비롯하여, 에밀 말의 『서양미술사』, 존 리월드의 『인상주의 미술의 역사』, 드니 리우의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앙드레 루이예의 『세계사진사』, 매그넘 매그넘』 등 시각예술의 역사, 미학과 관련된 책을 번역해왔다. 쥘 미슐레의 「마녀」, 「바다」, 빅토르 타피
서울대 미술대학과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부, 파리1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영남대학교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집필하며 번역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앙리 포시용의 『로마네스크와 고딕』,『후기인상주의의 역사』,『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그는 누구인가?』등의 책을 비롯하여, 에밀 말의 『서양미술사』, 존 리월드의 『인상주의 미술의 역사』, 드니 리우의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앙드레 루이예의 『세계사진사』, 매그넘 매그넘』 등 시각예술의 역사, 미학과 관련된 책을 번역해왔다. 쥘 미슐레의 「마녀」, 「바다」, 빅토르 타피에의 「바로크와 고전주의」, 질 샤이에의 「황제들의 로마」, 엘리제 르클뤼의 「산의 역사」 등 프랑스 역사서 또한 번역했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출간된 예술가의 전기들을 발굴하여 번역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구 화가들의 애정관에 바탕한 미학을 파헤친 『사랑의 이미지』, 기록사진에 대한 비평서 『사진 속의 세상살이』, 농촌문화운동을 추적한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가족 앨범』, 『잃어버린 앨범』 등이 있으며, 『이일라가 사랑한 동물 이야기』 등 미술평론가로서 사진가의 사진집에 수많은 평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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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30g | 135*203*17mm
ISBN13
9791197185069

책 속으로

머뭇거리면 혁명은 실패한다. 사과만 받고 용서하려고 하다가는 실패한다.
“반쪽짜리 혁명에 나섰던 사람?모두 제 무덤만 팠다.”
--- p.92

(방토즈 토지개혁)법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의회도 원치 않았고 위원회도 원치 않았다. 진심으로 생쥐스트의 제안을 지지한 사람들은 위원회에서 로베스피에르와 쿠통, 또 의회에서 몇몇 의원뿐이었다. 극도로 불안한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 위원회가 승인했고 의회는 통과시켰다. 심각한 민중 봉기를 피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러나 위원회도 의회도 법령을 시행할 의지는 전혀 없었다. 의원 다수가 지주 집안 출신이었고 당통과 메를랭 드티옹빌 같은 의원들은 혁명으로 부자가 되었다. 토지개혁법안은 통과되었지만, 동시에 생쥐스트와 로베스피에르의 운명도 내기에 걸렸다. 이들이 법 시행을 강력히 주장하자 동료들은 그들과 싸웠고 그것은 전쟁이었다. 생쥐스트가 열렬하게 연설했을 때 이미 죽음의 그림자는 스멀거리며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 p.185

“당시 사건들을 가까이서 본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생쥐스트는 로베스피에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르바쇠르Rene Levasseur(1747~1834). 외과의 출신의 국민공회 의원.?
--- p.10

나폴레옹과 생쥐스트는 가장 위험한 적수가 될 뻔했다. 두 사람은 빠른 판단력과 실용적이고 깊은 통찰력, 지칠지 모르는 활력, 그리고 냉철한 야심과 확고한 목적의식으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들이 대결했다면 영웅들의 결전이었을 것이다. - 아돌프 레스퀴르Adolphe de Lescure(1833~1892). 역사가.
--- p.8

“생쥐스트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고결하고 높이 평가받을 청년이다. 거대한 민중 드라마의 주인공을 훗날 태평 시대의 지도자 다루듯 평가할 수는 없다. 혹평하기 전에 당시의 엄혹한 위험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혁명가들은 위기를 극복하려면 폭력밖에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첩첩산중 같은 안팎의 적들과 대치 중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신념과 깊은 인류애에 취해 다시없이 공평무사했다. 그들을 추앙한다고 무엇이 두려울까. 원칙을 지키려고 자신을 바친 희생자들 아닌가. 대혁명의 길에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청년 가운데 생쥐스트야말로 가장 출중했다.” - E. 아멜Ernest Hamel(1826~1898). 변호사, 시인, 역사학자, 언론인, 정치가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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