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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ence Fer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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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렐리앙 로슈페르는 오래전부터 금에 대한 취향을 간직해왔다. 그가 태양과 빛으로 그린 거대한 화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을 사람들은 ‘프로방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가 금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오렐리앙은 알고 있었다. 금을 찾으려면 다른 인생은 포기해야 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금을 찾는 삶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리라는 것을.
--- p.13 할아버지와 오렐리앙은 단둘이 푸른색 덧창문들이 있는 황토색 농가에 살면서 라벤더를 키웠다. 뙤약볕 아래서 수천 마리 벌레들이 맴돌았다. 할아버지에게 금은 바로 라벤더의 색이었다. 오렐리앙에게 금은 꿀의 색이었다. “각자에게 색이 있는 거지.” 각자의 색을 강조하곤 하는 이는 클로비스였다. 그는 마을의 카페인 ‘초록 카바레’의 주인이었는데, 처음 겪은 사랑의 슬픔을 한 잔 초록색 압생트에 익사시킨 날 자신의 색을 선택했다. --- pp.15~16 벌통들을 돌보면서 그는 그 곤충들이 인간이 실패한 지점에서 성공했다고 느꼈다. 서로 몸을 기대고 일정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 함께, 공동체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느끼며 오렐리앙은 깨달았다. 인간은 천천히 진화하면서 조금씩 이상향에서 멀어져왔다는 것을. 그는 꿈꾸기 시작했다. 그도 한 마리 꿀벌이 되고 싶었다. --- p.23 꿀벌은 꽃 한 송이를 사랑해서 죽을 수 있다. 꿀벌은 사랑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 꿀벌은 그럴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꿀벌들의 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 p.24 오렐리앙은 마르세유로 가는 길로 들어서서, 꿈꾸던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아비시니아로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서가에서 꺼내 읽은 책에 따르면, 그 나라에서는 아직도 땅속에서 금을 캐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골드러시를 불러일으킨 캘리포니아와 같은 광대하고 풍요로운 지역들이 그 나라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고들 했다. 사실 그는 자신이 그 나라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몰랐다. 다만, 무언가를 찾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색을 갖고 있었다. 태양의 색. 이번에는 그 태양이 아프리카일 것이었다. --- pp.59~60 이폴리트 루아죌이 시가에 불을 붙이고 결과에 만족하며 말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할 때까지 기다리면 돼! 겨울은 길 거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꿀벌들의 나라의 소유주가 되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 나라는 네가 아프리카에서 본 것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한 나라일 거야. 절벽들 같은 꿀이, 아니, 산더미들 같은 꿀이 우리 머리 위로 흘러내릴 거야!” --- pp.201~202 “신사 숙녀 여러분. 최대한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여러분들이 목격하실 기념비적인 장면은 절대 정숙 속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뿐인 공연이고, 세계 최초의 공연입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함을 위하여, 삶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꿀 속의 금을 위하여, 금과 침묵으로 연주되는 오페라 앞에서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기술자가 손을 높이 쳐들고 두 눈을 크게 뜬 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긴 순간들 속에서 청중 모두가 침묵하길 기다렸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잊을 수 없는 경이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집중되었을 때, 그는 마치 오케스트라 단장이 단원들에게 첫 박자를 연주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갑자기 그러나 우아하게 손을 내렸다. 그렇게 지상에서 가장 조용한 오페라가 시작되었다. --- pp.21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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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금은 바로 라벤더의 색이었다.
오렐리앙에게 금은 꿀의 색이었다. 전작에 이어 『꿀벌 키우는 사람』에서 막상스 페르민은 아름답고 투명한 문체로 절대적인 것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비교적 시대 배경이 명확했던 전작에 비해 프랑스와 아프리카라는 공간적 배경만 제시되는 이번 이야기에서 이야기는 한껏 더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색채를 띤다. “오렐리앙 로슈페르는 금에 대한 취향으로 인해 꿀벌 키우는 사람이 되었다.” 이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 말은 곧바로 독자들에게 의문을 자아낸다. ‘금을 좋아한다면서 (금과 관련된 직업을 갖지 않고) 왜 꿀벌 키우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금’과 ‘꿀벌’의 색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색은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에 있는 욕망과 그들의 정신을 드러내는 지표 역할을 한다. 이 경우에도 ‘금’과 ‘꿀벌’은 색이라는 유사성을 통해 오렐리앙이 욕망하는 가치를 동시에 드러낸다(그것은 “인생의 금”이라는 표현으로 재차 암시된다). 즉, 첫 문장부터 작가는 소설 속 세계가 단순히 물리적인 세계가 아님을, 가시적인 것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충만한 세계임을 암시한다. 모두가 라벤더를 재배하고 라벤더 향유를 생산하는 프랑스 랑글라드 지방에서 오렐리앙은 꿀벌을 키우는 사람이 되겠다는 독특한 꿈을 키운다. 그러나 네번째 양봉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오렐리앙의 꿈은 모두 타버린다. 번개로 시작된 불이 사나운 계절성 바람을 만나 오렐리앙의 벌집을 깡그리 태워버린 것이다. 낙심하여 모든 기력을 잃은 오렐리앙은 어느 날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책을 읽고 한 편의 꿈을 꾼다. 사막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작은 폭포, 그 아래서 피부가 금색인 여자를 발견하는 꿈이었다. 그 꿈을 꾼 다음날, 오렐리앙은 금을 찾으러 아프리카로 떠난다. “인생의 금”을 찾는 오렐리앙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삶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 헤매는 자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금은 곧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깔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라벤더를 키우는 “할아버지에게 금은 바로 라벤더의 색”이며, 꿀벌을 키우는 “오렐리앙에게 금은 꿀의 색”이 된다(초록색 압생트 술을 좋아하는 ‘초록 카바레’의 주인 클로비스에게 금은 초록색이 된다). 이를 드러내려는 듯 작가는 이야기 곳곳에 다양한 색채를 가진 풍경과 인물들을 삽화와 함께 집어넣는다. 아프리카로 가는 길, 수에즈 운하에서 “지중해의 푸름과 홍해의 불”은 뒤섞이며, 아프리카 “사막에서는 물이 금”이 된다. 흰색, 검은색, 금색, 이것은 모두 꿈의 색이다. 나의 글쓰기는 고유한 것입니다. 그것은 항상 로망roman과 콩트conte, 그리고 시poesie 사이에 있습니다. (작가가 역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페르민은 한국어 역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위와 같이 자신의 글쓰기를 설명한다. 마치 『눈』의 흰색이 『검은 바이올린』의 검은색과 『꿀벌 키우는 사람』의 금색을 만나 온전해지듯 페르민 역시 로망과 콩트, 그리고 시를 적절히 조합하여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문학 세계를 만들어낸다. 임선기 번역가는 페르민의 표명을 기반으로 그의 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페르민은 로망에서는 프랑스어 자체와 사랑 이야기와 모험담을 가져왔으며, 콩트의 전통에 따라 이야기를 짧게 만들었고, 콩트로서 환상적이고 스케치 같다. 콩트로서 철학적이기 때문에 독자를 지혜로 초대한다. 콩트는 시로 쓸 수 있기 때문에 페르민의 시적 소설에는 기본적으로 시로 가는 내적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를 건너가면 예의 단어들의 음악이 나온다. 즉, 페르민의 시가 펼쳐진다. (243쪽) 로망이자 콩트, 그리고 시인 페르민의 소설, 특히 그중에서도 ‘색채 3부작’은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서로 조응하며 더욱 깊어진다. 『눈』 『검은 바이올린』 『꿀벌 키우는 사람』, 제목에서부터 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세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를 세 가지 색을 통해 변주한다. ‘눈’의 흰색은 ‘결합’을, ‘바이올린’의 검은색은 ‘분리’를, ‘꿀벌’의 금색은 ‘자기 삶의 고유한 가치’를 표상하며 이야기 역시 이러한 상징을 통해 전개된다. 그리하여 마치 한 편의 이야기 속 인물이 다른 이야기 속에 환생하여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신의 삶을 찾는 모든 이를 위한 이야기 오로지 색채로만 소설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꿀벌 키우는 사람』의 표지는 별다른 장식 없이 색으로만 채웠다. 표지 전면부를 채색할 색으로 ‘자기 삶의 가치’를 상징하는 금색을 고르는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에게 각자의 ‘금의 색’이 있듯 단순히 ‘금색’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실체가 없는 공허한 화려함일 뿐일 것이다. 오렐리앙은 라벤더를 재배하는 지방에서 유일하게 라벤더꽃을 이용하여 꿀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는 아프리카로 금을 찾아 헤매었고, 이후 랑글라드로 돌아와 다시 꿀벌을, 그리고 줄곧 곁에 있었으나 인식하지 못했을 뿐인 진정한 자기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이처럼 “인생의 금”을 찾아나선 오렐리앙의 곁에는 언제나 조용히 ‘라벤더’가 있었다. 마치 오렐리앙이 꿈속 작은 폭포 아래에서 금을 찾아냈듯, 표지 역시 쏟아지는 금빛 아래에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는 라벤더를 형상화하여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금빛 아래 침묵 속에서 소중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라벤더처럼 『꿀벌 키우는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삶을 찾는 모든 이를 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