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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 찾아 모은 중국 고소설집 역주 1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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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루쉰(魯迅) 집교(輯校)《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해제
일러두기
고소설구침서(古小說鉤沈序)
1. 《청사자靑史子》
2. 《어림語林》〔일명《배계어림裴啓語林》〕
3. 《곽자郭子》
4. 《투기妬記》〔일명《투부기妬婦記》〕
5. 《이문기異聞記》
6. 《현중기玄中記》〔일명《곽씨현중기郭氏玄中記》〕
7. 《이림異林》〔일명《육씨이림陸氏異林》〕
8. 《조비지괴曹毗志怪》
9. 《집이기集異記》〔일명《곽계산집이기郭季産集異記》〕
10. 《신이기神異記》〔일명《왕부신이기王浮神異記》〕
11. 《속이기續異記》
12. 《녹이전錄異傳》
13. 《잡귀신지괴雜鬼神志怪〔일명《잡귀신지雜鬼神志》·《잡귀괴지雜鬼怪志》〕
14. 《상이기祥異記》
15. 《선험기宣驗記》
16. 《정이기旌異記》〔일명《정이기精異記》·《적이전積異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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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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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桓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연구소(中文硏究所)에서 석사 학위를,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중문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중국영화의 이해와 감상』, 『한·중 유서문화(類書文化) 개관(槪觀)』, 『중국어 신조어와 현대 중국사회』 등이 있고, 공저로 『중국소설사의 이해』,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집교(輯校)와 역주(譯註)』, 『신라수이전 고론(考論)』, 『현대중국의 이해』 등이 있다. 역서로 『현대중국어 표현어법(表現語法)』 등이 있으며, 『대만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연구소(中文硏究所)에서 석사 학위를,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중문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중국영화의 이해와 감상』, 『한·중 유서문화(類書文化) 개관(槪觀)』, 『중국어 신조어와 현대 중국사회』 등이 있고, 공저로 『중국소설사의 이해』,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집교(輯校)와 역주(譯註)』, 『신라수이전 고론(考論)』, 『현대중국의 이해』 등이 있다. 역서로 『현대중국어 표현어법(表現語法)』 등이 있으며, 『대만 주요 도서관 소장 유서 목록』을 편역했고, 공역서로 『중국고전소설총목제요(中國古典小說總目提要)』 제1·2·3·4·5권, 『중국 고대소설의 유파』, 『한어어법 분석의 이론과 실천』, 『현대 중국어학 기초』, 『한자의 구조와 그 문화적 함의』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한·중 유서(類書), 중국 소설, 중국어 어휘, 중국 영화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는 주로 한·중 유서를 중심으로 문헌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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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778g | 153*225*30mm
ISBN13
9788975818592

책 속으로

이 책은 위진육조魏晉六朝 시기 고소설 자료의 보고인 루쉰魯迅의 《고소설구침小說鉤沈》을 역주한 것이다.《고소설구침》은 루쉰이 흩어지고 일부가 없어진 중국의 고소설집을 여러 전적典籍에서 찾아내어 집록輯錄하고 교감校勘한 책으로, 그가 쓴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과 함께 중국 고대소설 연구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루쉰은 중국 현대소설의 걸출한 작가이면서 중국 고대소설에 대해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룬 보기 드문 학자였다. 이 책의 번역과 역주 작업은 향후 이 시기 소설 작품의 감상과 연구에 큰 도움이 되며, 한국 고소설 연구에서도 같은 시대 또는 유사한 주제의 작품을 비교 연구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백화문白話文으로 번역한 백화본도 출현하지 않은 상황에서, 집교본輯校本《고소설구침》을 교감문校勘文까지 번역하고 자세하게 주를 붙여 번역을 시도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중국고대소설 자체의 역사와 중국소설사의 체계를 세우고 유형학 연구를 새롭게 개척

중국 사람들은 역사상에서 소설을 ‘소도(小道)’·‘한서(閑書)’·‘잡설(雜說)’ 등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중국고대소설 자체의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루쉰은 꾸준하게 옛날에 산일(散逸)된 고소설을 집록하고 교감하여 중국소설사 연구의 기초로 삼았다. 나아가 소설사 연구를 그가 힘을 기울였던 문예운동의 주요 내용으로 삼아, 1923년과 1924년에 각각『중국소설사략』상?하권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은 중국고대소설 자체의 역사를 갖게 했을 뿐만 아니라, 초보적으로 중국소설사의 체계를 세우고 중국소설의 유형학 연구를 새롭게 개척했다. 이는 물론 역대 소설의 史料를 집록하고 고증하는 기초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루쉰은 대략 1909년부터 1911년 말까지 고소설 집일 작업에 종사하였는데, 당시『고소설구침』·『당송전기집(唐宋傳奇集)』·『소설구문초(小說舊聞?)』 등을 엮게 되었다. 이 책들은 뒤에 출판된 『중국소설사략』의 중요 참고서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중 가장 먼저 집록한『고소설구침』은 루쉰의 중국고대소설의 원류(源流)에 대한 연구의 시작으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역사와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루쉰이 찾아 모은 중국 고소설집 역주(1)』에서 다루고 있는 고소설집들의 개별 해제는 다음과 같다.

1.『청사자(靑史子)』

전국시대의 잡조소설. 지은이를 알 수 없다. 이 책은 『한서?예문지』 제자략 소설가류에 57편으로 저록되어 있는데, 원주에서 “옛 사관의 기사이다(古史官記事也).”라고 하였다. 청대 장학성은 이 책을『춘추』다음 가는 책으로 치면서 소설과 같은 부류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혹자는 비록 이 책은 예교 관련 내용 즉 예법과 관련 된 작은 일들을 기술하였지만, 모두가 지식이 낮은 총찬소어류의 문장이기 때문에 응당 소설가류에 넣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다.

2.『어림(語林)』[일명 『배계어림(裴啓語林)』]

진대의 지인(志人)소설. 동진의 배계가 찬하였다. 이 책은 『수서?경적지』 소설류에 10권으로 저록되어 있는데, 원주에서 “동진의 처사 배계가 찬하였는데, 이미 망일되었다(東晉處士裴啓撰, 亡).”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 책은 당대에 이미 망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계는 정사에 전이 없다. 『세설신어·문학』 유효표주에서 〈배씨가전〉을 인용하여 “배영은 자가 영기로, 하동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배치인데, 풍성령을 역임하였다. 영기는 어려서부터 풍채와 재기가 있었으며, 고금의 인물에 대해 논하기를 좋아하였으니, 『어림』 수권을 찬하였다. 호를 배자라 하였다(裴榮, 字榮期, 河東人, 父稚, ?城令, 榮期少有風姿才氣, 好論古今人物, 撰『語林』數卷, 號曰裴子).”라고 하였다. 현존하는 일문을 『세설신어』와 비교하면, 우수한 부분은 이미 대부분 『세설신어』에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세설신어』에 수록되지 않은 이 책의 일문 중에도 가작(佳作)이 적지 않다. 이로부터 이 책의 특색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주로 당시 상층사회의 대화를 위주로 삼고 있다. 이 책의 문장 스타일 및 언어에 대한 정제는 모두 지인소설의 기풍을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다.

3.『곽자(郭子)』

진대의 지인소설. 동진의 곽징지가 찬하였다. 『어림』과 비교하면, 『곽자』의 현존 일문은 고사성이 결핍되어 있거나 괴이함과 관련된 이야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만큼 소설 개념이 분명해지고 진보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책 중에는 양진 명사들의 청담풍상중의 각종 현언묘태를 광범위하게 기술하고 있어 감상 가치가 비교적 높다. 그 중에서 위진 풍도를 구현할 수 있는 부녀 제재의 이야기는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이야기들은 대부분 편폭이 짧으나, 인물 묘사에서는 오히려 종종 그 기교가 뛰어나다. 그 언어는 간략하고 함축적이며, 필치는 청신하고 의미심장하다. 초창기 지인소설만이 가진 생동감 넘치는 운치를 여기서 어느 정도 볼 수가 있다. 이 책은 『어림』의 뒤를 이어 지인소설의 계승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소설 관념, 이야기 제재, 창작 기교 등 방면에서 모두 『세설신어』를 위해 준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현존 84조 일문 중 70여 조가 『세설신어』에 수록되었는데, 이는 양자의 연원관계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곽징지는 자(字)가 중정이며, 태원 양곡[지금의 산서 태원시 북쪽] 사람이다. 그는 먼저 상서랑이 되었으며 또한 남강상에 임명되었다. 후에 유유를 따라 먼저 상국참군이 되었다. 관직이 상국종사중랑에 이르렀으며, 남풍후에 봉해졌다. 『진서』에 그의 전이 있다.

4.『투기(妬記)』[일명 『투부기(妬婦記)』]

남조의 지인소설. 송의 우통지가 찬하였다. 우통지는 회계 여요[지금의 절강성에 있음] 사람이다. 그는 『주역학에 통달하였으며, 문명이 나 있었다. 그의 벼슬은 황문시랑?보병교위에 이르렀다. 그의 사적은 『남사·구거원전』에 붙어 있다. 이 책은 모두 양진 시기 여자의 투기에 관한 이야기로, 그 의향은 여자에게 경계를 하게 하기 위해서이지만, 여전히 남자 및 부권 중심의 봉건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야기들은 객관 상에서 오히려 봉건 부권에 대한 여자들의 항쟁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일부 이야기들은 호색남자들의 여러 가지 추태를 묘사하고 있으며, 아울러 조소와 풍자를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실제로 불합리한 혼인제도의 기형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세부묘사로써 이야기를 부각시키며 형상을 두드려지게 하는 데에 뛰어나다.

5.『이문기(異聞記)』

한대의 지괴소설. 동한의 진식(104―187)이 찬하였다. 진식은 자가 중궁으로, 영천허[지금의 하남성 허창 동쪽]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 현리가 되었다. 후에 독우·정장·공조 등을 거쳐 태구장(太丘長)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범선생이다. 『후한서』에 그의 본전이 있다. 이 책은 당시 민간에서 유전되던 각종 이문들을 두루 모아 이루어진 것으로, 지괴소설의 제재 범위를 확대시켰다고 할 수 있다.

6.『현중기(玄中記)』[일명『곽씨현중기(郭氏玄中記)』]

진대의 지괴소설. 서진의 곽박(276―324)이 찬하였다. 사지에는 저록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장화의 『박물지』와 같은 성격으로 박물체소설에 속하여 그 범위가 비교적 넓다. ‘복희’·‘여와’·‘형천’·‘전욱’·‘종산신’ 등과 같은 신화·전설이 들어 있으나, 약간은 소략하고 산만한 느낌이 든다. 또한 이역기문으로 ‘장부민’·‘화민’·‘기굉민’ 등의 이야기가 있으며, 산천풍물로는 옥초산·염화산)·‘도도산’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 중의 일부 정괴요이 이야기는 매우 아름다우며 감동적으로, 후대에 비교적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박물지』에 비해 신선도가에 관한 것이 비교적 적어 그 내용이 소박하며, 문장은 비교적 화려하다. 그래서 섭덕휘는 〈집곽씨현중기서〉에서 “매우 희귀하고 아름다움이 『산해경』·『십주기』 등의 책들과 비슷하다(恢奇塊麗, 倣佛『山海』·『十洲』諸書).”라고 하였다.

7.『이림(異林)』[일명『육씨이림(陸氏異林)』]

진대의 지괴소설. 육씨가 찬하였다. 이 책은 응당 서진 때에 이루어졌다. 일문은 사람과 귀신의 사랑 이야기를 기술하였다. 이 이야기는 후에 『수신기』·『유명록』 등의 책에 채용되기도 하였으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8.『조비지괴(曹毗志怪)』

진대의 지괴소설. 조비가 찬하였다. 조비는 진 성제·강제 때 사람으로, 자가 보좌이며, 초국[지금의 안휘성( 박현] 사람이다. 좌저작랑·태학박사·상서랑·진군대장군종사중랑·하비내사 등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광록훈을 마지막으로 역임하였다. 이 이야기는 원래 『삼보황도』 권4에서 인용한 『관보고어』에 실려 있으며, 현존본 『수신기』 권13, 『고승전』 권1 〈축법란전〉에도 실려 있다. 이로부터 이 이야기는 육조 시기 동방삭 류의 명인 일화와 불교 이야기의 융합임을 알 수 있다.

9.『집이기(集異記)』[일명 『곽계산집이기(郭季産集異記)』]

남조의 지괴소설. 송의 곽계산이 찬하였다. 곽계산의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현존하는 일문들은 귀괴와 점술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에서 귀괴 이야기가 비교적 볼 만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편폭이 짧아 백 자가 넘지 않지만, 대부분 구조가 완벽하고 수미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언어는 간략하고 세련되었으며 막힘이 없다.

10.『신이기(神異記)』[일명 『왕부신이기(王浮神異記)』]

진대의 지괴소설. 왕부가 찬하였다. 일문 대부분은 신선과 관련이 있다. 왕부의 사적은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양 석혜교의 『고승전』 권1 〈백원전〉에 근거하면, 왕부는 진 혜제 때 사람으로, 관직은 좨주를 역임하였으며, 일찍이 『노자화호경』을 지어 불법을 비방하였다.

11.『속이기(續異記)』

남조의 지괴소설. 양진 시기의 책으로, 지은이를 알 수 없다. 이 책의 대부분은 요정 이야기와 기이한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동물 요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재미가 있으며, 표현수법 역시 변화가 많다. 이 책은 남조 송의 제해가 지은 『이기』의 속편으로 지은 것인데, 『이기』라는 책은 이미 일실되었다.

12.『녹이전(錄異傳)』

진송 시기의 지괴소설. 지은이를 알 수 없다. 일문 중에 진 융안 시기의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책은 대략 동진 말 혹은 유송 초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귀괴요이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는데, 위로는 주진 시기부터 아래로는 동진 시기까지, 심오하고 아름다운 전설들이 적지 않다. 그 중의 어떤 이야기는 이미 당시의 유명한 지괴서에도 보인다. 그 나머지 이야기들도 대부분이 가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많은 이야기들은 상상과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풍격이 매우 아름답다.

13.『잡귀신지괴(雜鬼神志怪)』[일명 『잡귀신지(雜鬼神志』·『잡귀괴지(雜鬼怪志』]

진대 지괴소설. 지은이를 알 수 없다. 세 가지 이야기는 진대에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는데, 아마도 진대 사람이 지은 것 같다.

14.『상이기(祥異記)』

남조의 지괴소설. 지은이를 알 수 없다. 이 책은 사지에 저록되어 있지 않다. 『태평광기』에 4조가 인용되어 있다. 그 중 권342의 ‘조숙아’와 ‘주제천’ 2조는 당 정원(貞元) 시기의 이야기로, 명 초본 『태평광기』에서는 출처가 각각 『광이기』와 『집이기』로 되어 있는데, 현존본 『태평광기』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2조의 출처에 대해 『법원주림』에서는 『명상기』라 하였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확정할 수가 없다. 이 2조는 모두 불교 숭배와 선양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15.『선험기(宣驗記)』

남조의 지괴소설. 송의 유의경이 찬하였다. 이 책은 작자가 불법을 선양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법림의 『변정론·십대봉불상편』에 “송의 왕들은 글재주가 있었으며 불경을 크게 익혔는데, 그 중에서 유의경이 가장 우수하며, ……『선험기』를 지어 삼보를 찬양하여 서술하였다(宋世諸王幷懷文藻, 大習佛經, 義慶最優, ……著『宣驗記』, 贊述三寶).”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모두 불법의 영험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중의 어떤 이야기들은 불법을 받들어 복을 얻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또 어떤 이야기들은 불법을 공경하지 않거나 살생을 저질러 징벌을 받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6.『정이기(旌異記)』[일명 『정이기(精異記)』·『적이전(積異傳)』]

수의 지괴소설. 후백이 찬하였다. 후백은 자가 군소로, 위군 임장[지금의 하남성에 있음] 사람이다. 그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민첩하였으며, 성격이 익살스러웠다. 그는 일찍이 수재에 천거되어 유림랑을 역임하였다. 그는 양소와 서로 조소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수 고조가 그에게 비서에서 국사를 찬수토록 명하였다. 후에 오품봉을 급여하였는데, 한 달이 넘어 죽었다. 그의 사적은 『수서·육상전』 및 『소씨연의』 권하에 보인다. 이 책은 대부분 석가모니·불경의 영이함 내지 불교도들의 신적과 기우 등을 묘사함으로써 불교의 법력을 널리 선양하려고 하였다. 이 책은 또한 ‘석씨보교지서’에 속한다. 이 책 중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편폭이 비교적 길며, 서사도 비교적 단계적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의 간결함과 번다함의 층계가 분명하며, 구조가 완벽하다. 그리고 배경 묘사를 잘함으로써 이야기의 분위기를 크게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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