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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이태준 평설
정춘근
실천문학사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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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사진 자료 5
발간사 17
Ⅰ 일본 유학 중에 만난 나도향과 「오몽녀」로 등단 21
Ⅱ 상허 이태준과 어린이 문학 41
Ⅲ 문학 변곡점이 된 상허 이태준의 결혼 79
Ⅳ 성북동 수연산방이 반영된 작품 분석 113
Ⅴ 상허 이태준의 뿌리 깊은 상고주의 149
Ⅵ 상허 이태준과 기생 관련 문학 175
Ⅶ 상허 이태준과 신문소설 201
Ⅷ 상허 이태준과 구인회 217
Ⅸ 잡지 《문장》이 갖는 문학적 위상 237
Ⅹ 일제 강점기 화전민 비극을 담은 「촌뜨기」 315

저자 소개 1

1960년 강원도 철원에서 실향민(황해도 아버지와 평안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99년 《실천문학》에 「지뢰꽃」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지뢰꽃』, 『수류탄 고기잡이』, 『황해』, 『반국 노래자랑』, 『지뢰꽃 마을 대마리』가 있다. 창작활동을 하면서 ‘대한민국 단편소설 완성자’로 평가받는 상허 이태준 선생이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고향인 철원에 문학관 하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 신문에 300회가 넘게 ‘상허 이태준의 삶과 문학’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의 원고를 모아 『상허 이태준 평설1』을 발간했으며 이번에 『상허 이태준 평설2
1960년 강원도 철원에서 실향민(황해도 아버지와 평안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99년 《실천문학》에 「지뢰꽃」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지뢰꽃』, 『수류탄 고기잡이』, 『황해』, 『반국 노래자랑』, 『지뢰꽃 마을 대마리』가 있다. 창작활동을 하면서 ‘대한민국 단편소설 완성자’로 평가받는 상허 이태준 선생이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고향인 철원에 문학관 하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 신문에 300회가 넘게 ‘상허 이태준의 삶과 문학’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의 원고를 모아 『상허 이태준 평설1』을 발간했으며 이번에 『상허 이태준 평설2』를 출판하게 됐다. 정춘근 시인은 현재 상허 이태준 사료관 관장을 맡아 문학관 건립과 상허 문학상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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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542g | 152*225*30mm
ISBN13
9788939231306

출판사 리뷰

"글짓기가 아니라 말 짓기라는 데 더욱 선명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이 아니라 말이다.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은 마음이요 생각이요 감정이다.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가까운 것은 글보다 말이다." -문장강화(이태준)

이 책 평설의 주인공인 이태준(李泰俊)은 1904년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이다.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1909년 개화파 지식인인 부친 이문교(李文敎)의 망명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그 학교의 교원이었던 이병기(李秉岐)의 지도를 받아 고전문학의 교양을 쌓았다. 그런데 학교의 불합리한 운영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을 주도한 결과 1924년 퇴교를 당하였다.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上智大學]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5년 문예지 『조선문단』에 단편 소설 「오몽녀」가 입선되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에 개벽사(開闢社) 기자로 일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3년 친목단체인 구인회(九人會)를 이효석(李孝石)·김기림(金起林)·정지용(鄭芝溶)·유치진(柳致眞) 등과 결성하였다. 이어 순수문예지 『문장(文章)』(1939.2∼1941.4.)을 주재하여 문제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 『사상의 월야』,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 전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많은 동화들은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 월북 후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의 작품 성향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과거와 현실적 고통을 비교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썼으며, 그의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묘사적 문장은 독자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 그가 취택한 인물들은 가난하고, 무력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삶의식을 잘 드러내며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또 민족의식의 주제는 상당히 많은 편수에 이르고, 장편 「사상(思想)의 월야(月夜)」(1946)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소외된 인물들의 현실적 고난과 그 인물의 내면세계의 순수무구함을 드러내어 인간애의 의식을 촉구하는 주옥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광복 이전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띠기보다는 구인회의 성격에 맞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내었다.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광복 이후에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에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월북한 후에 종군기자로 전선에 참여하면서 쓴 「고향길」(1950)이나 「첫 전투」(1949) 등은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여과없이 드러냄으로써 일제하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가 월북한 것도 자의적인 것이 아닌 강제된 것이라는 후문을 남기고 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가 아니었으며 그의 열정은 오히려 순수성으로 해서 오해를 받는 인간적 서정성에 기초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달밤』 『가마귀』 『복덕방』 『해방 전후』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등이 있다. 수필집 『무서록(無序錄)』(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1946) 등도 그의 탁월한 문학적 저서로서 크게 공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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