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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지뢰꽃 11 지뢰알 13 문혜리 가는 길 15 아카시아 17 벽 틈의 풀 18 승일교 19 노동당사 20 뼈 22 오디가 익던 날 23 바둑을 두며 24 한반도 창자 25 삐라1-종이비행기 26 삐라2-딱지치기 27 삐라3-국기에 대한 경례 29 삐라4-평양댁 30 인민군 감옥1 31 제2부 비무장 지대1-흰나비 35 비무장 지대2-철조망 37 비무장 지대3-가을 38 비무장 지대4-까치집 40 비무장 지대5-섬 41 수복 지구1-고향이 된 지뢰꽃 마을 42 수복 지구2-팔려온 여자 43 수복 지구3-춘천댁 44 수복 지구4-헬로우 짭짭 45 수복 지구5-어떤 저녁 46 수복 지구6-빼앗긴 땅 47 수복 지구7-우리들의 학용품 48 넝쿨손 49 용화동에서 50 철마 가죽 52 신탄리 닭장-李氏 할머니 증언 53 제3부 어머니1-민들레 57 어머니2-반달 호미 59 어머니3-첫눈 61 어머니4-오덕리 개울에서 62 어머니5-유행성출혈열 63 아버지1-질경이 64 아버지2-낫 한 자루 65 아버지3-검정 엿 66 아버지4-소금 꽃 67 외삼촌 68 삼 남매 69 겨울-금학산 71 봄-금학산 73 여름-금학산 74 가을-금학산 76 도피안사, 1950년 6월 22일-총알받이 77 제4부 도피안사1-풍경 81 도피안사2-소풍 82 불안한 밤 83 제5 검문소 84 자장가 85 가을 단상 87 어물전에서 88 땅 90 추곡 수매 92 맞보증 서러 가는 길 93 저녁 강 95 감자 싹 97 복개천에서 99 새벽 101 뻐꾸기 103 눈물 젖은 초콜릿 104 발문 민영 109 첫 시집을 내며 112 시인의 산문 114 시인의 말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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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 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지 뢰 꽃」중에서 빨간 모자를 벗어라 관광객들아 여기를 로마 유적쯤으로 생각하려거든 냉큼 떠나라 이곳은 원통하게 죽은 귀신들이 쉬는 유일한 사당이니 어떤 자리에 서서 찍는 사진이 폼이 날까 망설이는 구둣발 아래 누구 기억에도 인화되지 못한 귀신이 울고 있나니 셔터를 누르는 집게손가락에 그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던 총알에 죽은 귀신들이 몸서리치나니 구멍 난 건물 보고 경탄하는 눈 철새들 아우성이나 듣는 귀 한탄강 얼음물에 정갈히 씻고 망자의 마음을 다시 와 밤에 뜨는 총총한 생별보다 더 많은 귀신들이 가슴에 총칼 자국을 지우고 있는 신음 소릴 무릎 꿇고 같이 들어보자 ---「노동당사」중에서 지뢰밭 뽕나무에 오디가 익던 날 우리들은 사격장에 탄피나 캐러 가고 배가 고프면 아카시아 꽃이나 따먹으면 배부른 걸 내 친구 영섭이는 지뢰밭 가시철망에 올라가 오디를 따다가 발을 헛딛어 지뢰밭 안으로 떨어졌었네 지뢰가 터져 두 다리가 끊어져서도 철조망 밖으로 기어 나와 사방공사에 나간 에미를 부르다 죽은 내 친구 영섭이는 두 손에 거무죽죽한 오디를 꼭 쥐고 있었네 시퍼렇게 뜬 두 눈은 뽕나무를 보고 있었네 ---「오디가 익던 날」중에서 오라버니 피난 보따리에 얹혀와 철원 들녘에 뿌리내린 나는 평안도 민들레지요 평생 밭고랑에서 살다 보니 이파리는 갈래갈래 찢어지고 곱던 피마져 희게 삭은 뿌리는 몇 밤을 우려내도 쓰디쓴 맛만 남았지요 황해도 서방을 앞세우고 땡볕에 키운 자식 훌훌 떠나 쭈그렁이 대궁만 남아도 이 들녘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고향 가는 날을 기다리기 때문이지요 시린 허리로 돌아눕는 긴 겨울이 가고 나면 봄 밭고랑에서 가장 먼지 싹을 내미는 나는 철원 민들레지요 ---「어머니1-민들레」중에서 허리가 늘어질 정도로 밟혀야 봄이 온다고 했다 땡볕에 등짝을 태운 뒤에야 여름이 온다고 했다 뼈마디가 짓이겨져야 가을이 온다고 했다 등골이 다 빠져나가야 겨울이 온다고 했다 짓밟힌 자리에 다시 씨를 심는 것을 희망이라 했다 힘없는 이 천 만근 발걸음을 느껴야 사는 것이라 했다 농부인 아버지는 ---「아버지1-질경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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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강원도 촌놈, 글을 쓰는 작부가 될래, 아니면 시인이 될래.” 첫 시집을 내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다 참가한 바닷가 문학 행사에 강원도를 대표해서 시 낭송 초청을 받았었다. 한껏 기세를 올리며 시 낭송을 하고 뒤풀이를 끝내고 숙소에 누워있던 나를 찾아온 생면부지 원로급 시인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이미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발음마저 꼬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것처럼 보였다. “문학은 이런 거창한 행사에 있지 않고, 네가 사는 사람들 속에 있다. 작가 되려면 당장 돌아가서 문단에 기웃거리지 말고 분단의 상징인 철원에 처박혀 너만의 글을 써라.” 그 대성일갈(大聲一喝)에 나는 원로 시인의 눈을 바라봤다. 단호한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고 문학 초년생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선배의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원로 시인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갔지만 나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늘 끝처럼 가슴을 찌르는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무작정 숙소를 나와 바닷가 백사장을 밤새도록 걸으면서 원로 시인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마침 백사장에 놓여 있었던 벤치에 앉아 현대문학에 비해 볼품없어 보이는 내 시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을 했다. 도회지 풍의 글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내 글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그것이 원로 시인이 나 같은 철부지에게 바랐던 간절한 기대였다는 것을 알았고 그 깊은 사랑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문학 행사에는 발길을 끊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 대부분 실향민인 이웃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가만히 옆에서 들어 주고 있다. 문학은 힘없는 사람들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가끔 힘이 들면 강원도 촌놈인 나에게 문학의 길을 인도해준 대 원로 시인의 말을 떠올려본다. “강원도 촌놈, 글을 쓰는 작부가 될래, 아니면 시인이 될래.” 2023년 6월 정춘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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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서 첫 출간한 『지뢰꽃 마을, 대마리』에서 필자는 정춘근 시인은 오로지 철원의 시인으로 철원에서 태어나 철원에서 살며 평생을 분단과 실향과 통일을 시로 노래하다 철원에서 생을 마칠 것이라고 상찬한 적이 있다. 그동안 시인은 6권의 시집을 출간했는데, 역시 오로지 철원(분단·실향·통일)에 대해서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집들이었다. 시인의 별칭으로 굳어진 『지뢰꽃』은 시인이 본사를 통해 등단한 작품명이면서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을 빌리면 ‘지뢰꽃’은 지뢰 위에 뿌리를 내리고 피는 꽃으로 지뢰가 폭발하면 전부 찢겨지는 슬픈 꽃으로 단지 접경 지역 철원에 사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장한 평화 위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는 것 같은 우리 민족의 분단 현실을 상징하는 조어라고 한다. 지금 철원 노동당사 앞 광장에는 「지뢰꽃」 시비詩碑가 서 있고, 지뢰밭 둘레길이 생기면서 ‘지뢰꽃길’로 명명되었고, 매년 10월 3일에는 ‘지뢰꽃길 시낭송회’가 10년째 개최되는 등 이제 ‘지뢰꽃’은 철원과 분단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시집으로 본사와 인연이 닿지 못했다는 이 첫 시집의 사연을 듣고 언젠가는 본사에서 복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새삼 인연의 힘이 오묘함을 느낀다. - 윤한룡 (소설가, 실천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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